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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23:1-17) 파악 안 되는 이글아이(Eagle Eye)
오늘 욥기서 23장 말씀중심으로 <파악 안 되는 이글아이> 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파악 안 되는 이글아이'
‘파악 안 되는’ 이라는 말은 여러분들이 이해하실 것입니다. "이글아이(독수리 눈)"는 영화제목인데, 이 영화에서 묘사되고 있는 어떤 특정부분이 오늘 본문을 이해하는데 아주 큰 도움을 주기 때문에, 한 번 비유적으로 가져와서 제목으로 붙여 봤습니다.
‘파악이 안 되는 이글아이’라는 이 제목이 뜻하는 바를 먼저 말씀을 드리자면 '파악이 안 되시는 하나님'으로 그 파악이 안 되시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의 태도는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파악할 수 없는 하나님, 파악되지 않으시는 그 하나님, 그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의 삶은 실질적으로 장사하고 직장생활하고 아이를 키우고 건강을 돌봐야 되고 재산관리를 해야 되는 실질적인 삶에서, 파악이 안 되시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사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것을 함께 생각하며 은혜받기를 원합니다.
이글아이 영화는 그 유명한 SF영화를 잘 찍으시고 또 가지가지 흥행을 주도하는 영화를 많이 찍으신 Steven Spielberg 감독이 10년 전에 상상을 했던 주제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10년 전에는 아직까지 그것이 실질적으로 공감이 되고 피부로 실감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으므로 영화로 만들지 못했다가 10년 전의 구상을 영화로 만든 것이 바로 이글아이입니다. 첫 장면이 이렇게 나와요.
난데없이 어떤 평범한 젊은이에게 핸드폰으로 전화가 옵니다.
‘30초 뒤에 FBI가 네가 살고 있는 집으로 들이 닥칠 테니 얼른 피하라’고 해서 ‘당신 누구요?’라고
했더니 ‘지금 15초 남았다. 빨리 피하라 지금 10초 남았다.’라고 하는데 진짜 30초가 되었을 때 FBI가 문을 쳐부수고 들어와서 잡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FBI에 잡힌 주인공을 또 꺼내 줍니다. 꺼내 주는데 똑같은 방식으로 여자를 불러다가 그 여자의 아이를 죽인다고 협박해서 전화로 그 여자를 불러다가 운전을 하게하고 그 여자가 운전하는 차에 이 남자가 같이 타고 도망을 가는데 오른 쪽으로 가라. 왼쪽으로 가라. 계속 지시를 하는데 LED 광고용 전광판 같은 것이 있지 않습니까? 그걸 통해서도 지시를 하고 또 신호등을 계속 파란 불로 바꾸어 줍니다. 아니면 빨간불인 신호등에서도 무조건 120km로 직진하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도대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오면서 일거수일투족을 다 파악합니다. 너, 지금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고 있는데, 그러지 말고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하니 답답해 죽지요. 도대체 누가 나를 쳐다보고 이렇게 전화를 하면서 지시를 하는지 알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사람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 전자기기나 기계장비나 그리고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자유자재로 사람을 관찰하고 그 사람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말을 안 들으면 벌을 내리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는데 하여간 누군지 모르는데 계속 조정을 해 나갑니다. 마지막에 결국 자기 스스로 남자와 여자를 자기에게로 오게 해서 누군지 알게 되는데 미국 국방부 지하 36층에 있는 슈퍼컴퓨터에요. 그 슈퍼컴퓨터가 모든 데이터를 다 빨아들여서 그 데이터를 해석하고 데이터로 판단을 해서 지시를 하는데 심지어는 커피 잔을 내려놓고 사람이 말을 하면 그 말이 커피 잔의 커피수면에 파동이 작용을 하는데 그 파동을 캐치해서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알아 듣는 슈퍼컴퓨터입니다. 꼭 만화 같은 얘기인데 만화 같은 얘기도 아니지요.
얼마 전에도 배우가 문자한 것이 도청되다시피 해서 그 소속사에서 말이 되기도 하고 그랬잖아요. 말하는 모든 것이 다 도청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자, 여기서 우리가 point로 떠올리려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글아이 슈퍼컴퓨터가 모든 전자장치 cctv나 모든 기계장비를 동원해서 나를 감시하고 나를 파악하고 있는데, 나는 누가 나를 그렇게 파악하고 지시하고 나를 이끌고 있는지 전혀 파악이 안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영화 속의 이야기이지만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단적으로 드러내 주는 비유적인 하나의 소재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 욥이 재미있는 표현을 써요. 자 ‘하나님을 만나서 내가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고 싶다. 하나님과 함께 변론하고 싶고 하나님께서 왜 나에게 이런 일을 허락하셨는지 하나님과 한 번 속 시원하게 말하고 싶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8절과 9절에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편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편으로 돌이키시나 볼 수 없구나”라고 합니다.
파악이 안 되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파악이 안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도대체 그분이 무슨 생각을 갖고 계시는지 어디로 향하고 계시는지 어떤 목적을 갖고 나에게 이런 현실을 주시는지 도대체 파악이 안 되는 것입니다. 슈퍼컴퓨터 이글아이가 지시는 하고 있는데 나를 쳐다보고 있는 줄은 알겠는데, 도무지 그게 무엇인지 나를 쳐다보고 있는 그 주체가 무엇인지 도저히 알 수 없는 상태인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가 없는 것이에요. 파악이 안 되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파악이 안 되면 어떠한 후속결과가 나타나는지 아십니까? 내 삶이 전혀 파악이 안 되는 것이에요. 내게 주어지는 삶의 문제, 지금 주어진 여러분의 상황이 파악이 안 되는 거예요. 이 상황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이 문제가 뭔지 내가 키우는 자식들이 지금 저렇게 행동하고 있는 것이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도무지 파악이 안 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파악이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끌어 가시는 우리의 삶의 모든 순간이 우리에게는 파악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파악이 안 되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주관하시는 우리의 하루하루 오늘 지금의 현실과 상황, 그것을 내가 파악하려고 하는 것이 죄인의 특징 중의 특징입니다. 내가 알아야 된다는 것이에요. 왜 파악하고 싶어 하십니까? 장악하려고 파악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파악은 뭐고 장악은 무엇이지요?
‘파악한다.’라는 것은 어떤 일을 잘 이해해서 확실하게 아는 것을 말합니다. '장악'이란 무엇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예요. 세력이나 권력을 잡거나 능력이 있거나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을 장악한다고 얘기합니다. 결국 우리가 끊임없이 파악하려고 합니다. 내게 주어진 상황을 분석합니다. 왜 파악하려고 합니까? 장악하려고. 내 마음대로 한 번 해보고 싶어서.
어떻게 돈을 잘 벌 수 있을까? 그 돈을 잘 벌 수 있기를 원하는 내 마음대로 하기를 원해서 지금의 상황을 파악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 우리의 상황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것이에요. 이 지구위의 통치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이글아이를 갖고 계신 거예요.
영화 속의 슈퍼컴퓨터는 결국 자기 스스로 판단하면서 나쁜 길을 가게 됩니다만, 그러나 비유적으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이글아이처럼 우리의 모든 행동과 말을 아실뿐만 아니라 심지어 우리 마음속의 생각까지도 감찰하신다고 성경에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분이 우리를 파악하시고 이끌어 가시는데, 그것을 정면으로 부딪치면서 우리가 파악하고,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이끌어가기 위해 장악하려고 하는데 이게 인간의 본능이에요. 죄적본능. 하나님이 통치하시고 하나님이 파악하시고 하나님이 장악하셔야 되는 세상 속에서, 우리 인간이 파악해서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우리가 장악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죄적인 인간이 하나님께 대해서 반역을 일으키고 있는 아주 전형적인 모습이라는 것이지요.
욥이 10절에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순금같이 나오리라”라고 하는데 이게 무슨 말입니까? 그가 나를 아시기 때문에 어떤 점을 깎고, 어떤 점을 더 붙이고, 어떻게 해야 된다는 것을 아시므로 나를 단련하신다는 겁니다. 그가 나를 아시고 파악하시고 그가 나를 단련하시나니 내가 그 분을 따라가기만 하면 순금같이 될 것입니다.
11절에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라고 하는데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앞서 가고 계신다. 그냥 믿는 거예요. 내가 파악하려고 하지 않고, 내가 내 삶을 내가 원하는 대로 장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나는 모른다. 지금 주어진 상황에 대해서도 나는 몰라, 그러나 하나님이 알고 계신다.’라는 것을 그냥 믿는 겁니다. 그냥 믿는 거예요. 그게 바로 우리가 파악할 수 없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고 태도입니다.
12절에 “그의 입술에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일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구나”라고 하는데 무슨 말입니까? 필요한 일을 하나님이 지시하실 테니까, 그냥 시키는 대로 하는 겁니다.
이글아이 영화에서 어디로 가서 전철을 타라, 전철을 타고 가서 몇 정류장가서 내려라, 필요한 일들을 다 시키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지시하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루 세끼 밥 먹는 것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시키고 계시는가를 욥은 귀담아 들었다는 겁니다.
13절에 보면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킬까 그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이 있고, 뜻이 있고, 소원이 있다고 믿는 겁니다. 내 삶을 파악할 수 없는 이유는 내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고, 내 삶을 장악할 수 없는 이유는 내 삶을 내가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인데 파악하지 못하는 나의 삶을 어떻게 내가 장악합니까?
무엇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어떤 목적을 향해 내 삶이 흘러가고 있는지 내가 모르지 않습니까? 그러니 내가 어떻게 장악을 합니까?
장악하려고 하는 것이 뭐예요? 장악하려는 마음이 어떻게 나타납니까? 이 일이 이렇게 됐으면 좋겠고, 내 자식이 저렇게 됐으면 좋겠고, 지금 추진되고 있는 일이 이런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고, 이게 다 내가 장악하려고 하는 것이 마음에 나타나는 것이에요. 그런 목표와 장악하려는 의도가 있으니까 지금이 파악이 돼야 되지 않습니까? 파악을 해서 잘 된 것은 더 힘을 실어주고 못된 것은 깎아내리고 잘라내고 파악하려고 하잖아요? 근데 안 된다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에게 파악이 되겠습니까? 하나님은 당신 스스로 당신을 보여 주시는 것 만큼, 우리에게 보이실 뿐이고 깨달아 질뿐입니다. 우리가 주도적으로 하나님을 장악하고 파악하려고 하나님을 잘 이해하려고 해서 되는 분이 아닙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도 파악할 수 없고, 단지 우리가 할 수 있는 태도는 믿는 것입니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라는 말처럼 내가 가는 인생의 길을 나는 몰라요. 그러나 파악하려고 하지 않아요.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아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알고 계시면 되고 나를 나보다 더 사랑하시는 그분께서 알고 계시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뜻이 있어요. 나에게 작정하신 뜻이 있어요. 그러니까 내가 열망하고 내가 소원하지 않아도, 심지어는 언제나 경험하는 것이지만 휴가조차도 하나님이 작정하신 것이 있어요. 그러니까 내가 어디로 가면 좋겠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겁니다. 내가 내 인생을 파악할 수 없으니까 장악할 수도 없으니까.
자, 하나님이 내 인생을 장악하셔야 돼요. 장악하시면 되잖아요. 이글아이에서 말을 안 들으면 사고가 나고, 가던 기차가 멈춰지고, 예를 들어 시카고로 가라는 전철을 안 타고 다른 전철을 탔다면 다른 데로 가던 전철이 거꾸로 가버리게 합니다. 전자기기를 역으로 작동해서 맘대로 하는 거예요. 마찬가지죠.
자, 우리의 인생의 행복이 어디서부터 오는 겁니까? 하나님이 나를 파악하시고, 하나님이 나를 장악하려 하십니다. 장악하시려면 못하실 것도 없으시죠. 그러나 나라는 사람의 인격을 상대자로 존중하시면서 기다리십니다. 스스로 하나님의 손에 장악이 되도록 장악의 장자가 손바닥 ‘掌’자에 악이 쥘 ‘握’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손바닥에 쥐시도록 내 스스로가 나를 내어 드릴 때까지 하나님이 기다리고 계시는 것이에요. 이미 파악은 하셨습니다. 그까짓 것 장악하시려면 못하실 게 없지만 기다리고 계시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살아갑니까? 내가 내 삶을 장악하려고 합니다. 내가 내 삶에 대해 소원이 있습니다. 내가 내 삶에 대해 계획이 있습니다. 뜻이 있습니다. 내가 내 삶을 장악하려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파악하려고 합니다.
왜 파악하고 싶어요? 하나님이 아시면 됐지. 왜 내가 알아야 됩니까? 하나님이 계획하시면 됐지. 왜 내가 계획하려고 합니까? 하나님이 소원하시면 됐지. 왜 내가 소원하려고 합니까? 내 인생에 대해서.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에요.
그럼 내가 할 일은 뭡니까? 지금 이 자리에서, 이 사건 앞에서, 내 남편과 아내 앞에서, 내 자식 앞에서, 도대체 하나님이 내게 지시하시는 바가 무엇인가를 들을 수 있으면 돼요. 그래서 하나님께 장악이 되면 됩니다. 스스로 장악이 되는 거예요.
이렇게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장악되게 해 주시는 사건이 십자가사건입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왔다'는 것은 내가 파악하려고 합니다. 내가 내 삶을 장악하려고 합니다. 이제까지 장악하려고 해서 아무것도 된 것이 없고, 파악하려고 해서 된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을 알면서도 경험적으로 평생 그러다 마는 거예요. 아무것도 파악되고 장악되는 게 없지 않습니까?
경제? 날마다 전문가들이 예측합니다. 뉴욕에 있는 유명한 비즈니스 스쿨 나온 아주 천재들이 수재들이 경제가 어떻게 될 거다, 어떻게 될 거다, 증권의 동향을 파악하려고 하고 경제의 흐름을 파악하려고 하고 별 난리를 다 쳐도 안 되잖아요? 누가 요즘 같은 경제공황을 원한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세 살 된 어린아이로부터 죽기 직전의 노인들 까지 누가 경제가 이렇게 안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아무도 안 바라요. 그런데 모두가 다 경제를 이해하고 파악하려고 애를 씁니다. 전 65억 인구가 다 그래요. 다 경제를 파악해서 자기 경제를 늘리려고 하고, 확장시키려고 하고, 성공리에 마치려고 하지요. 아무도 그 뜻대로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을 하나님이 주관하고 계시기 때문인데 아직도 모르겠어요.
파악이 안 되는 이글아이, 파악이 안 되시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우리 삶의 하루하루 우리가 파악할 수 없고 장악 할 수 없어요. 파악할 수 없고 장악할 수 없는 사실을 깊~~이 깨닫는 자! 그 자가 바로 하나님께 장악되는 자요. 하나님의 축복 권 안에 들어가는 자입니다. 그런데 그게 안 돼요. 왜냐하면 끊임없이 우리 속에 있는 죄는 스스로 파악하려 하고 장악하려는 본능을 심어주기 때문입니다. '야, 이 일은 이렇게 돼야 되고 저 일은 저렇게 돼야 되지 않아?’라고 벌써 마음에 바람이 생기는 게 장악하려는 것이고 그 다음에 파악하려고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기억하는 순간 우리의 장악하려는 죄적 본능이 죽고 억제됩니다. 그 순간만큼 하나님의 장악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나를 잡고 이끌어 가시는 겁니다.
예를 들어 애들도 몸이 찌뿌듯할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아이의 발을 잡아 주면 얼굴이 빨개지면서 기지개를 펴지 않습니까? 그런 것처럼. 우리의 삶에 고달픈 찌뿌듯한 우리의 심령을 하나님이 꽉 잡아 주시면 시원해요. 그래서 베드로가 '유쾌하게 되는 날이 임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잡힐 때 얼마나 시원한지 모르지요? 하나님께 꽉 잡히면 시원한 것뿐만 아니라, 이제 하나님께서 내 삶을 당신이 계획하신 대로 ‘나를 향하신 작정하신 뜻이 있으시다. 나의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필요하다면 잘라 내실 것이요. 필요하다면 붙일 것이고. 하나님께서 나를 정금같이 만들어서 당신의 천국의 아들딸로 빚어 갈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파악되지 않는 이글아이'
그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분의 말씀을 듣고, 하라는 것 이외의 것은 하지 않고, 하나님이 알고 계시고 하나님이 바라고 계시고, 그러므로 나는 오직 주님의 십자가 붙잡고 하나님만을 바라는 것이 바로 믿음 아니겠습니까?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하나님을 파악할 수 없으면 하나님이 특별한 뜻과 소원과 계획을 가지시고 이끌어 가시는 나의 삶의 하루하루도 내 스스로 파악할 수 없습니다. 파악할 수 없다면 장악할 수 없는 것을 장악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소원하며 희망하며 헛된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오늘도 주님의 십자가 붙잡고 내 삶을 스스로 장악하려는 죄적본능이 죽게 하시고 오히려 하나님께 장악되어 유쾌하며 복된 에덴과 가나안복지가 이루어지는 정말 기쁜 하루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첫댓글 하나님 내마음속에 계획과소원을 십자가에서죽게하시는깨달음을주셔서감사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