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동의 비밀방
혜화동 대학로의 밤은 조용했다. 바람이 옅게 불어오는 차가운 골목, 붉은 벽돌로 된 낡은 건물 사이를 지나면 한때 유명했던 극장들이 눈에 들어온다. 화려한 조명이 비치는 거리를 지나 골목 깊숙이 들어가면, 작은 간판 하나가 숨어 있다. ‘레트로 펍’이라고 적힌 낡은 간판.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그저 평범한 술집이었다. 하지만 그 안쪽, 아무도 모르는 구석방에서는 아주 다른 이야기가 벌어지고 있었다.
문을 밀고 들어가면 눈에 띄는 건 허름한 나무 테이블과 오래된 의자 몇 개. 그리고 그 테이블 주위에 둘러앉은 이들은 누구보다도 불타는 눈빛을 가진 대학생들이었다. 그들은 그곳에 비밀스럽게 모여, 나란히 앉아 서로의 얼굴을 살폈다. 창밖의 소리 없는 거리와는 달리 그들 사이에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이윤박 정권, 이제는 끝장을 봐야 해.” 김철민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호했다. 경제학과에 다니는 그는 지난 몇 년간 거리 시위에서 선봉에 섰던 인물이었다. 박정희 독재 시절의 투쟁을 이야기로만 듣던 그였지만, 지금의 현실은 그때와 다를 바 없다고 느끼고 있었다.
“우리가 가만히 있는 동안, 그들은 더 많은 사람들의 자유를 빼앗고 있어. 짭새들은 여전히 우리를 감시하고, 언론은 통제당하고 있어.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우리가 목숨 걸고 싸우지 않으면, 이 나라는 다시 암흑 속으로 들어갈 거야.” 철민은 말하며 손에 쥔 담배를 힘주어 내리쳤다. 연기가 천천히 피어올랐다.
“맞아, 철민아.” 옆에서 듣고 있던 한정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녀는 사회학과 학생으로, 최근 언론 검열과 정치적 탄압에 맞서 싸우는 캠페인을 주도하고 있었다. “우리가 지금 나서지 않으면, 우리 세대는 그저 순응하고 말 거야. 그건 우리 후배들, 미래에 대한 배신이야.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
그녀의 말에 방 안의 다른 학생들도 하나둘씩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은 모두 대학 내에서 활동하는 비밀 운동권 그룹이었다. 박정희 시절,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선배들처럼, 지금도 그들은 스스로를 새로운 저항의 상징으로 여기고 있었다.
방 안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바깥에서는 웃음소리와 노랫소리가 흘러들어오고 있었지만, 이곳에서 나누는 대화는 전혀 다른 세계의 것이었다. 그들은 진지하게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이번 주말에 시위를 준비해야 해.” 정민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는 법학과에 다니는 학생으로, 지난 시위에서 체포된 적이 있었다. 그의 얼굴엔 여전히 체포 당시 맞았던 멍 자국이 남아 있었다. “이번엔 대규모로 해야 해. 소규모로는 의미가 없어. 정부에게는 더 이상 우리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수천 명이 모여야지. 그래야 그들이 우리를 무시하지 못해.”
“어떻게 모을 수 있을까?” 한 학생이 물었다. “정부는 이미 SNS를 감시하고 있어. 지난번에도 많은 친구들이 잡혀갔잖아.”
철민이 손가락을 탁탁 두드리며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 모인 거야. 감시망을 피하는 방법은 생각해 둔 상태야. 전통적인 방식으로 가자. 인쇄물과 포스터. 직접 발로 뛰는 거야. 눈에 띄지 않게 작은 모임들로 시작해서, 정보를 흘리면 돼.”
정희가 이어서 말했다. “그리고 필요한 건 단순한 구호가 아니야. 우리가 왜 싸워야 하는지, 그 의미를 분명하게 전달해야 해. 이윤박 정권이 우리를 어떻게 억압하고 있는지, 자유와 민주주의가 얼마나 위협받고 있는지 정확히 짚어야 해.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고 분노해야만 움직일 수 있어.”
방 안에는 고요한 결의가 감돌았다. 그들은 단순히 분노에 휩쓸린 게 아니었다. 이 투쟁은 계획된 것이었고, 조직적인 저항이었다. 박정희 시절 목숨을 걸었던 선배들처럼, 이들은 지금도 투쟁의 불씨를 지피고 있었다.
“그럼, 구체적인 계획은?” 철민이 다시 입을 열었다.
민호가 손에 쥔 노트를 펴며 말했다. “이번엔 정부 청사 앞에서 대규모로 모일 거야. 최대한 많은 사람을 끌어모으고, 우리 요구사항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구체적인 플랜이 필요해. 언론사에도 연락할 거야. 그들이 우리를 보도하지 않으면 그건 그들 자신에게도 해가 될 테니까.”
“그건 너무 위험하지 않아?” 한 학생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정부는 이미 강경 대응을 예고했잖아. 체포될 위험이 커.”
민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해. 하지만 이 싸움에서 물러설 수 없어. 우리가 지금 멈추면, 앞으로는 더 많은 억압이 이어질 거야. 정부는 우리가 무릎 꿇기를 바라겠지만, 우리가 꺾이면 이 사회의 미래는 없어.”
방 안은 다시 침묵에 잠겼다. 그들은 한치의 두려움도 없이 목숨을 걸 각오로 이 자리에 모였다.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이 싸움이 단순히 정치적인 투쟁이 아니라 자신들의 존재 이유임을 확인했다.
“우리가 싸우는 이유는 단 하나야.” 철민이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자유, 그리고 정의. 대한민국은 그 어느 때보다도 민주주의의 위기에 처해 있어. 역사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단호한 저항이야. 이 싸움은 우리의 의무야.”
그들은 조용히 술잔을 들어 올렸다. 그것은 단순한 건배가 아니었다. 그들의 술잔은 투쟁의 상징이었다. 그날 밤, 혜화동의 비밀 방에서 그들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목숨을 걸기로 결심했다.
밖에서는 여전히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대학로의 밤은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갔다. 하지만 그 안에서는 자유와 정의의 불씨가 타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