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위에 세워진 람브레히트 수도원서는
연중 다양한 콘서트·모임·회의 등이 열려
이번 호에서 돌아볼 오스트리아 성 람브레히트와 제카우, 성 게오르겐베르크 피히트 수도원 역시 베네딕토 성인의 모범을 따라 사는 수도승들의 공동체다.
베네딕토회(Ordo Santi Benedicti)는 베네딕토 성인이 남긴 수도규칙을 따르는 남여 수도회들의 연합을 일컫는 말이다. 특히 베네딕토회 수도자들은 고전적 의미의 수도자(Religious)와 구분, 자신들을 ‘수도승’(Monachus)이라 부른다. 수도승 생활은 하느님을 찾는 삶 자체를 목적으로, 크게 ‘하느님의 일’(Opus Dei), ‘성독’(lectio divina), ‘노동’(labor manum)으로 구성된다. 흔히 ‘기도하며 일하라’(Ora et Labora)를 베네딕도회 모토(moto)로 말하는 경향이 만연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기도하며 일하며 읽어라’(Ora, Labora et Lege)고 해야 더욱 맞갖은 표현이 된다.
이렇게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듣는 수도자들의 곁에 서면 의외로 자연스럽게 침묵에 빠져들 수 있다. 너도나도 자기 말을 먼저 내뱉는 세상에서는 하느님의 소리가 작게 느껴진다. 하지만 수도원에서는 하느님 소리에만 귀 기울일 수 있는 충분한 침묵이 이어진다.
오스트리아 티롤 봄프 지방 ‘성 게오르겐베르크 피히트 수도원’(Stift St. Georgernberg-Fiecht, 이하 게오르겐베르크 수도원) 순례 여정은 그 시작부터 깊은 산을 휘감은 침묵과 동행한다.
이 수도원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산기슭에서부터 1시간30여 분간 깊은 협곡과 산등성이 몇 개를 넘어야 한다. 해발 2500m 꼭대기로 이어지는 산길에는 십자가의 길도 나란히 놓여져, 순례객들이 잠시 멈춰서 기도하며 숨을 고를 수 있게 한다. 15세기에 처음 만들어진 다리 ‘호에 브뤼케’(Hohe Brücke)도 산등성이를 휘돌아 올라가는 수고를 덜어준다.
게오르겐베르크 수도원의 역사는 10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산 속에 작은 암자를 짓고 기도생활을 한 복자 라트홀트(Rathold von Aibling)의 모범을 따르는 이들이 늘면서 수도원이 지어졌다. 이곳은 1138년 베네딕토 수도회로 교황의 공식 인가를 받았다. 특히 1310년 미사 중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성혈로 변모하는 기적이 일어나고, 그 성혈이 보관되면서 수많은 순례객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하지만 잦은 화재로 인해 수도원은 피히트 마을로 이전하고 이곳은 순례지로서만 남아 있다. 화마의 피해를 입지 않고 남은 피에타상을 비롯한 각종 교회미술품과 영혼을 정화하는 의미로 하얗게 꾸민 바로크 양식의 성당 내부 등은 순례 후에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남부 슈티리아 지방 위쪽에 자리 잡은 ‘성 람브레히트 수도원’(Stift St. Lambrecht)은 베네딕토 성인의 수도규칙을 철저하게 따르고 있는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수도원이다.
람브레히트 수도원은 겉모습과는 달리 제2차 세계대전의 아픔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1942~1945년 나치들은 수도원을 강제로 장악해 나치 정권에 반대하는 이들을 가두고 강제노역을 시키기 위한 수용소로 사용했다.
해발 1028m 산 위에 세워진 수도원 성당에 들어서면 한기가 먼저 다가온다. 하지만 한겨울을 제외하면 이곳 수도원에서는 연중 다양한 콘서트와 모임, 회의 등이 연이어져 열기를 더한다. 각종 피정과 ‘생명학교’ 등도 관심을 모으는 수도원 운영 프로그램이다. 또 박물관은 베네딕토회의 역사와 영성을 담은 교회유물 뿐 아니라 다양한 예술품과 조류전시관 등을 갖추고 있다. 대형 정원에서도 힐데가르트 폰 빙엔 수녀가 각종 약초와 꽃 등으로 꾸몄던 전통이 이어져, 봄·여름이면 갖가지 식물들도 만나볼 수 있다.
거대한 고딕양식으로 탄탄히 자리 잡은 수도원을 눈에 담기 위해서는 우선 한 바퀴 고개를 돌려야 한다. 이곳은 수도원과 농장, 광산 등을 포함한 대지만 50헥타르(50㎢)에 이르는 대규모 수도원이다. 수도원 소속 건물만도 100여 개이며, 설립 초기에는 상주하는 수도자들만도 130명이나 됐다고 한다. 현재 이곳 수도자들은 본당 사목 지원을 비롯해 피정 지도, 각종 상담 등에 더욱 힘을 싣고 있다.
같은 슈티리아 지방에 위치한 ‘제카우 수도원’(Stift Seckau)도 오스트리아의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전에 둘러본 크램스뮌스터, 멜크, 괴트바익 수도원 등에서는 또 다른 웅장함을 드러나는 수도원이다.
수도원 가까이 다가가면 성당 위로 솟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거대한 종탑 두 개가 맨 처음 순례객들을 반긴다. 이 성당은 지난 1930년 교황으로부터 일반 성당보다 격이 높은 ‘바실리카’의 특권을 부여받기도 했다. 곧바로 수도원 안내를 담당하는 수사의 설명이 이어지면서 순례 여정은 800여 년의 시간을 뛰어넘는 중세와 현대를 오간다.
제카우 수도원은 처음에는 1140년 아우구스티노회로 출발했다. 이후 1218년 잘츠부르크 교구(현재 그라츠 교구) 주교의 지원 등으로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하지만 1782년 요제프 2세 황제의 수도원 개혁정책으로 인해 폐쇄되는 아픔도 겪어야 했다. 이러한 역사의 굴곡 안에서 수도원은 독일 베네딕토회의 문화투쟁(Kulturkampf)에 힘입어 1883년 베네딕토 수도회로 새로 문을 연다. 이후 베네딕토 성인의 영성을 꾸준히 키워온 수도원은 오는 2014년 성당 봉헌 850주년과 2018년 수도원 설립 800주년 기념의 해 준비로 분주한 일정을 보내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 수도원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깊은 생채기를 입었다. 1940년 제카우의 수도자들은 나치에 의해 추방당하고 수도원도 압류당해 몇 년간 문을 닫아야만 했다.
현재 이곳 수도자들의 소임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은 김나지움(중·고등학교)과 운영이다. 수도원 김나지움은 오랜 기간 지역사회 인재를 양성하는 구심점이 되어왔으며, 현재도 1100여 명의 학생들이 재학 중이다. 학생들의 수업이 끝나는 오후면 수도원은 또 다시 깊은 침묵으로 들어간다.
▲ 눈 내리는 밤, 성 람브레히트 수도원 외부 전경.
▲ 성 람브레히트 수도원 대성당 제대 정면
▲ 정상을 향한 고갯길에서 바라본 성 게오르겐베르크 피히트 수도원의 모습.
▲ 성 게오르겐베르크 피히트 수도원 책임 수도승이 제대 뒷면 비밀감실에 보관 중인 그리스도의 성혈로 순례객들을 강복하고 있다.
▲ 성 게오르겐베르크 피히트 수도원 뒤에서 본 종탑의 모습.
▲ 제카우 대성당 제대 우측에 자리한 피에타상.
▲ 8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제카우 수도원 대성당의 고딕 양식 십자가.
▲ 제카우 수도원. 눈덮인 정원이 ㅁ자 형태로 지어진 수도원 건물에 둘러싸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