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예수님!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은 교회가 시작된 날인 성령 강림 대축일입니다. 성령 강림 대축일을 오순절이라고도 합니다. ‘오순절’이라는 그리스어 단어는 ‘펜테코스테(Pentecoste)’라는 말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펜테코스테’는 ‘50’이라는 숫자를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지 50일째가 되는 날, 곧 유다인의 축제인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셨습니다. 유다인과 우리 그리스도인이 오순절이라는 같은 단어를 사용하지만, 그 의미는 전혀 다릅니다. 달리 말하면, 유다인도 오순절을 지내고 그리스도인도 오순절을 지내지만 그 의미가 서로 다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사건, 곧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된 출애굽 사건을 겪은 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하느님께 감사드리기 위해 유월절에 양을 바쳤습니다. 유월절의 양을 바친 뒤 50일째 되는 날에,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시나이 산에서 율법을 내려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이를 기념하여 오순절을 지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지 50일째가 되는 날에 성령께서 강림하신 것을 기념하여 오순절을 지냅니다. 이 날은 제자들이 본격적인 복음 전도 사업을 시작한 날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이 날을 교회의 창립일이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유다교와 그리스도교가 오순절이라는 같은 단어를 사용하지만, 그 의미는 서로 다릅니다. 여기에 대해 레오 대 교황이 이렇게 말합니다.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자유인이 된 히브리인들에게, 유월절의 양을 바친 뒤 오십 일 되는 날 시나이 산에서 율법이 주어졌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수난으로 하느님의 참된 어린양께서 죽임을 당하시고 부활하신 뒤 정확히 오십 일 뒤에 사도들과 모든 신자에게 성령께서 내리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 구약의 시작, 즉 옛 계약의 시작이 복음의 시작에 이바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첫 번째 계약을 세운 바로 그 성령께서 두 번째 계약도 세우셨다는 것을 쉽게 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대 레오 『설교집』 75.)
이처럼 똑 같은 성령께서 첫 번째 계약과 두 번째 계약을 모두 세우셨습니다. 성경은 성령에 대해 ‘영’, ‘바람’, ‘숨결’, ‘불’, ‘비둘기’ 등으로 표현합니다. 성령은 하느님의 숨결이십니다. 하느님의 숨결은 진흙으로 빚어 만든 인간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시고, 예언자들에게 예언직을 수행하게 해주신 영이십니다. 바람이 불고 싶은 대로 부는 것처럼, 성령의 바람도 불고 싶은 대로 붑니다. 인위적인 장벽으로 바람을 막으면, 그 바람은 자연스러운 바람이 되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의 바람도 사람이 인위적인 장막을 세워 막는다거나 사람의 의지로 막는다면, 그것은 성령의 자연스러운 본성을 거스르고 방해하는 것이 됩니다. 예를 들어, 물은 어떤 형태의 그릇에도 다 들어가는데, 우리가 어떤 특정한 형태의 그릇에 있는 물만 물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성령의 바람을 거스르는 어리석음과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의지와 생각을 내려놓고 성령의 바람에 온 존재를 맡겨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이 함께 하는 교회, 성령이 역사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참고로, 레오 교황은 서로마 제국의 정치적으로 불안정해지는 시기에 교황이 되어, 교황의 영향력이 점점 더 강화 시켰습니다. 452년 훈족이 이탈리아를 침략했을 때, 레오 교황은 황제의 사절단과 함께 훈족 왕을 만나서 철수하라고 설득했습니다. 반달족이 오스티아에 쳐들어왔을 때, 레오 교황은 혼자 반달족을 만나러 갔습니다. 레오 교황은 로마가 약탈당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지만, 방화와 학살만은 못하게 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성령 강림 대축일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교회의 울타리를 벗어나 밖으로 나가라’고 말씀하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을 저는 ‘물리적인 밖’으로만 이해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틀에 박힌 습관적인 생각과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각, 새로운 사고방식이라는 밖으로 나가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 성령께서 마음껏 활동하실 수 있도록,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습관적인 생각과 사고방식의 울타리를 걷어내고 밖으로 나갑시다. 그것이야말로 참된 의미의 성령 강림대축일을 사는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