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기가 되어 어도연 모임을 나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감상글 순서도 생각지 못한 채 정신 없이 보내고 있던 중에, 아름이와 대화하다가 이번 주 감상글을 쓰는 차례가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앗, 이 소식 못 본 눈 삽니다.’했다. 감상글 못 쓴다고 해야 하나, 일단 조용히 있어 볼까, 책을 빌려서 얼른 읽고 써 볼까 갖가지 생각이 들던 중, 나의 고민의 텔레파시가 전해졌는지 바로 교육부장님께 카톡이 온 것이 아니겠는가.(소오름..) 짐짓 태연한 척 “쓰겠습니다^^” 답하고는 상호대차 신청해놓은 책이 빨리 오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책을 기다리며 궁금한 마음에 인터넷으로 먼저 책을 찾아보았는데, 핑크색 표지에 감성적인 그림들, ‘천천히 안녕’이라는 책 제목 등에서 느껴진 첫 인상은 호감이었다. 왠지 몽글몽글한 이야기가 담겨있을 것 같다는 인상을 받고 스크롤을 내려 책 소개를 읽는데, ‘옆 반에 도깨비와 외계인이 있다고?’, ‘의자에서 갑자기 귀신이 튀어나왔다?’, ‘죽은 거북이를 냉장고에 넣었다?’ 소개글을 한 줄 한 줄 읽을수록 으잉~~? 이 책 완전 기괴한 내용 아니야? 싶었다. 결이 맞지 않는 책을 읽고 어떻게 감상문을 써야 하나.. 걱정이 되었다.
책을 빌리고는 약간의 긴장감과 감상글을 써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일단 읽어보기로 한다. 응? 근데 이 책 뭐지? 우려와는 달리 이야기들은 하나하나 몰입되었고, 표현도 흡입력도 좋아 단숨에 빠져들었다. 이야기에 몰입하다 보니 어느새 나도 4학년 초등학생이 되어 있었다. 친구가 가장 좋을 나이, 진짜 내 모습을 보여줘도 놀라지 않고 놀리지 않는, 내 정체를 말하기 전에 나를 알아보고, 내 진짜 모습을 보여줘도 도망하지 않고, 같은 비밀을 서로 간직한 친구를 만났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나이. 도깨비와 외계인 친구의 만남은 학창시절 우리가 그토록 고대하던 영혼의 단짝을 만나는 찐 우정이었던 것이다.
<자꾸 생각나>에서는 읽는 내내 내 마음이 괜히 간지럽고 피식피식 웃음도 나고 그 나이대의 아이들이 처음으로 경험할 좋아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 사이에서의 갈팡질팡한 마음,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고민하는 마음도 마구 느껴져서 오랜만에 몽글몽글한 감정도 피어올랐다. 태영이가 멋있던데, 하은이의 사랑은 민규에게 직진한다. ‘사랑’이라니, 가을 바람과 함께 오랜만에 가슴이 뛴다.
모처럼 가슴이 뛰려는 찰나, 갑자기 멈춘 엘리베이터 안 어둠 속에서 대화를 나누게 된 소혜와 진주를 마주한다. 학교에서는 ‘인싸’인 소혜와 ‘아싸’인 진주는 그동안 서로에게 겉으로 드러나 ‘보여진’ 모습이 아닌 어둠 속에서 비로소 서로가 가진 그 이면의 모습을 새로이 보게 된다. 늘 친구들에게 둘러 쌓인 소혜지만 정작 속으로는 진짜 혼자가 되어 버릴까봐 유행하는 것들을 모두 섭렵해 친구들을 곁에 두고 싶어 했던 자신의 모습을 고백하고, 아싸인 것 같았던 진주는 혼자 있는 것 같지만 용감하고 재미있고 당당하기까지 한 모습을 보여준다. 학창 시절에 어쩌면 지금도, 눈에 보여지는 상대의 모습에 대해서만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기가 많은 친구, 언제나 밝고 아무 걱정 없어 보이는 사람도 나름의 연약함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어쩐지 혼자인 것 같고 조용하지만 내면은 단단히 일상을 살아갈 우리 주변의 그 누군가들이 떠올랐다.
가장 궁금했던 <천천히 안녕>은 도대체 어떤 이야기일지 단단히 팔짱을 끼고 어디 한번 보자는 마음으로 읽어내려 갔는데, 웬걸. 기욱이의 말과 고양이 몸으로 들어온 부기와 우기의 대화에서는 나의 편견과 편협한 시선이 와장창 깨져버렸다. 작가는 이미 독자들의 그런 시선쯤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 이모의 말을 통해 ‘냉장고는 음식을 넣어 두는 곳이니 죽은 동물을 함께 두면 위생상 안 좋고 보기에도 끔찍하지 않냐’고 먼저 선수를 친다. 기욱은 ‘닭고기, 돼지고기, 소고기도 모두 죽은 동물’이라고 말하며, ‘닭은 머리도 자르고 배도 갈라 더 끔찍하다고, 그런데도 며칠씩 넣어두면서 부기는 몸도 멀쩡한데다 이제 겨우 이틀째라고’ 일침을 가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이었다. 반려동물이 죽었다고 오늘, 당장, 바로 헤어질 수 없는 그 마음.. 애도할 시간이 필요했던 그 마음. 이후 고양이의 몸을 빌려 우기부기로 다시 만나 나눈 대화해서는 내 마음도 같이 먹먹해졌다. 진심어린 마음을 나눈 이들은 서로가 안다. 온 마음을 내어준 것을. 그로 인해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을. 부기에게는 우기가 그런 존재였고, 우기에게 역시 부기는 아빠의 부재로 인해 쓸쓸해진 마음의 커다란 구멍을 채워준 그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였음을 보면서, 나는 나에게 있는 애정을 그토록 쏟아본 대상이 누구였을까, 무엇이었을까.. 가만히 돌아보게 된다.
이후 <영재의 의자>와 <어디까지 왔니?>까지 인상 깊게 읽었다. 처음 읽게 된 고재현 작가님의 책인데, 작가가 이야기 곳곳에 배치해 놓은 가슴 한 켠 묵직해지는 장면, 몽글몽글 설레는 장면, 순간 울컥하게 되는 장면들을 마주할 때마다 잠시 멈춰 서서 다시금 그 대목을 읽으며 머무르게 하는 힘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어쩜.. 아직 30대임에도 다 잊어버리고 잃어버리고 살던 그 때 그 시절의 감성과 더불어 지금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흥미진진하게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소재에 단순 흥미 요소에서 그치지 않고 깊이 있는 깨우침을 준 책, ‘천천히 안녕’. 왜 ‘기묘하고 낯선 세계를 향해 인사를 건네는 동화집’이라고 소개되었는지 이제는 알겠다. 순수하고 행복한 시선으로 여전히 우리에게 “안녕?”이라고 인사를 건네는 작가님의 인사에 “안녕!”하고 대답한다. 어도연 식구들도 안녕~(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