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까미귀의 눈물
강석희
주인님 심부름으로
부리에 무화과 한 송이 물고
산 힘겹게 넘는다
시냇가 돌밭에
지쳐 쓰러진 이
한때 역전의 용사였다나
이 가련한 자에게
내일 저녁은 누가 갖다 주려나
저 멀리 강뿌리 말라가던데
그때는 어찌하려나
주인님이 다 알아서 할 텐데
오지랖도 병인가
스멀 올라오는 염려
보슬비로 말끔히 씻어내고
등지로 가벼이 돌아간다
2. 시인의 비애
강석희
토요일 오후
아내랑
원적산에 올랐다
날파리 같은 시어가
이명처럼 앵앵거려
손부채로 분주히 쫓아내지만
이내 우회하여
눈앞에서 아른거리고
떠도는 심상의 나래
얼기설기 꿰어
트림처럼 툭툭 뱉어내자
내지르는 아내의 습한 외마디
“고마해라”
삐죽한 쑥대궁 날개 꺾어
서럽게 훌쳐대는데
갈피 못 잡은 날파리는
내내 어지러이
시인의 꽁무니만 쫓아온다
3. 역할놀이
강석희
엄마와 딸은
역할을 바꾸며 논다
파도치는
인생의 바다에서
어릴 때는
엄마가 딸을 안고 업고
세월 흘러서는
딸이 엄마를 안고 업고
듬새 피어난
웃음꽃이 닮았다
딸은 생글 벙글
엄마는 계면쩍게
엄마와 딸은
역할을 바꾸며 논다
가끔은
눈물지으며
4. 땡감
강석희
어린 가슴에
툭 떨어졌다
세찬 바람에
시퍼렇게 멍들어
조그만 장독에
눈물 절반 채우고
푹 담가
싸리울타리 두른
뒤꼍 양지에 두었다
별이 스며들고
별이 보듬고
바람 어루만지니
묵묵한 세월에 우러나
향긋하게 삭히어진다
※ 註 : 아픔도 세월 속에 삼투압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5. 자유의 함성
강석희
살며시 들어서니
그윽한 흰머리 예수님
말없이 꼬옥 안아준다
삶의 고단한 무게로
단내 나는 몸은
눈물이 핑 돌아
어깨에 어깨 의지하고
긴장한 눈빛은
지휘자의 섬세한 손끝에 모아져
하늘로부터 굽이쳐 휘몰아치는
쇼파르의 거룩한 여운
투박한 북소리 장단에
가슴 뚫고 터지는 자유의 함성
옥죄는 죄의 사슬 끊고
견고한 삶의 여리고성 무너뜨리고
바다로 산맥으로 열방으로
거침없이 넘실거린다
북받치는 승리의 기쁨
가슴 한켠 고이 갈무리하고
일터로 나가는 새벽 춤사위
태초의 새처럼 우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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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향문학 14호 원고방
덕향 14호 원고 / 강석희 시인 - 5편-
영원 김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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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04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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