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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金素月)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虛空中)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主人)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心中)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西山)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山)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 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시어, 시구 풀이]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 ‘주인 없는 이름’, 즉 이름에 주인이 없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된 서술이다. 이런 논리적으로 모순된 표현이 임의 부재, 죽음의 상황을 더욱 강하게 암시한다. 죽은 임을 부르는 처절함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 배경을 통해 시적 화자의 허탈한 모습이 나타난다. 허무적 배경을 통해 생사의 영원한 갈림길을 제시하였고 ‘사슴’을 통해 슬픔의 비장미(悲壯美)로 승화시켰다. 부르는 소리는 비껴 가지만 /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 땅과 하늘의 거리는 곧 서정적 자아와 임과의 거리이며, 삶과 죽음 사이의 거리이다. 그 이어질 수 없는 절망적인 거리인 허공 중으로 임을 부르는 소리가 메아리쳐 처절하게 울려 퍼지는 것이다.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 돌아오지 않는 임을 기다리다 죽어 돌이 되었다는 망부석의 전통에 연결되어 있다. ‘돌’은 임의 죽음을 결코 인정할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임은 끝내 돌아와야 한다는 비원(悲願)을 품은 한의 응결체이다. [핵심 정리] 지은이 : 김소월(金素月, 1902-1934) 본명 정식(廷湜). 평북 구성(龜城) 출생. 오산 중학, 배재 고보에서 수학. 오산 학교 때의 스승 김억(金億)에게서 시의 지도를 받았다. <영대(靈臺)> 동인으로 작품 발표를 했고, 그의 대표작 ‘진달래꽃’은 1922년 <개벽>지에 실렸으며, 127편이 실린 시집 <진달래꽃>은 1925년에 나왔다. 통설에 따르면 민요시만 쓰다가 1926년부터 절필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최근에 짙은 저항성이 담긴 그의 말기 작품이 많이 발굴되었다. 대표작으로 ‘초혼’, ‘금잔디’, ‘가는 길’, ‘산유화’, ‘진달래꽃’, ‘접동새’, ‘예전엔 미쳐 몰랐어요’ 등이 있다.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율격 : 내재율(3음보의 율격) 성격 : 애상적. 감상적. 전통적. 격정적 어조 : 의지적이며 절규적, 격정적 어조 표현 : 자아 내면의 간절한 절규가 애절하게 표출됨 특징 : 설화적 모티프. 반복과 영탄을 동반한 강렬한 어조. 7.5조 3음보의 전통적 민요조 의 리듬 구성 : 1연 임의 부재(不在)에 대한 확인 2연 임의 상실로 인한 슬픔 고조 3연 삶의 의미를 상실한 허탈감 4연 이어질 수 없는 절망적 거리 5연 임의 재생에 대한 비원(悲願) 제재 : 임과의 사별(死別) 주제 : 사별한 임에 대한 그리움 출전 : <진달래꽃>(1925) ▶ 작품 해설 이 시에서 초혼은 ‘고복(皐復)’이라고도 하는 전통적인 장례 절차의 하나이다. 고복 의식은 죽은 사람을 재생시키려는 의지의 한 표현으로 혼을 불러들이는 일종의 ‘부름의 의식’이다. 반복되는 감탄사와 상대방을 부르는 어조가 이러한 고복 의식을 수용한 것으로, 이는 감정의 격앙 상태를 나타낸다. 1연의 네 시행은 점층적인 관계로 연결되어 화자의 강렬한 감정의 폭발을 나타내고 있다. 2연은 자신의 격앙된 감정이 다소 가라앉았다가 다시 상승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3연은 배경과 자신의 행동을 묘사하고 있는데, 여기서 우리는 화자의 감정이 다소 정돈되어, 자신의 위치와 행동을 바라볼 수 있는 거리감이 생긴 것을 알 수 있다. 4연에서 자신의 소리가 남에게 도달될 수 없는 안타까움을 말한 다음, 5연에서 다시 임을 부르는 처절한 외침으로 끝나고 있다.
<참고> ‘초혼’의 의미 소월 시의 주류(主流)는 임과의 이별을 여성적인 목소리로 노래한 것이다. 그러나 소월 시에서 절창(絶唱)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는 ‘초혼’은 세상을 떠난 임을 애타게 부르는 남성의 노래이다. ‘초혼’이라는 제목에 이 시 이해의 단서가 있다. 혼을 부르는 행위는 죽은 사람의 혼을 불러 다시 소생하게 하려는 간절한 소망에 의한 것이다. 이 시는 이처럼 죽은 사람을 소생시키려는 전통적 고복 의식(皐復儀式)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떠난 임을 부르는 이 시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던 바탕은 그 시대가 국권을 상실당한, 즉 우리 민족 모두가 상실감에 젖어 있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의 의미는 사랑하는 사람, 잃어버린 국권, 상실한 땅 등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특히, 이 시를 비롯한 몇몇 시들에서 일제 강점기의 역사 의식과 사회 의식에 구현되어 있다고 평가된다. <참고> 소월 시의 한(恨)과 민요와의 관계 소월 시의 저변에 흐르는 한(恨)은 한민족의 심층에 깔린 정서이다. 이것은 고려속요나 시조에서 살펴볼 수 있거니와, 그 외에도 구전(口傳)하는 민요나 민담에서도 쉽게 발견되는 것들이다. 여러 민요를 살펴보면 소월이 그의 시에서 노래한 이별의 한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민요에 내포된 한의 정서는 특히 비기능요(非機能謠-노동요 같은 어떤 기능성을 띤 노래가 아닌 민요)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한국 민요의 정서가 소월 시의 그것과 일치한다는 점은 여러 평가들에 의해 지적된 바 있다. <참고> 김소월의 시사적(詩史的) 위치 김소월의 시는 한국인의 보편적인 정서와 민요적 율격에 밀착되어 있다. 표면에 그리움, 슬픔, 한(恨) 등 비극적 사랑의 정감이 있으면서도 이면에는 존재에 대한 형이상학적 성찰을 담고 있으며, 그 심층에는 험난한 역사와 현실 속에서 삶의 어려움을 참고 이겨내고자 하는 초극(超克)의 정신이 자리잡고 있다는 점에 참뜻이 놓여 있다. 무엇보다도 소월 시는 서구 편향성의 초기 시단 형성 과정에 있어서 한국적인 정감과 가락의 원형질을 확실하게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민족시, 민중시의 소중한 전범(典範)이 된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1) 향토성(鄕土性) : 그의 시는 거의가 향토적인 풍물, 자연, 지명을 소재로 삼고 있다. (2) 민요풍(民謠風) : 오랜 세월 동안 겨레의 정서 생활의 가락이 되어 온 민요조의 리듬으로 이루어졌다. (3) 민족 정서(民族 情緖) : 시의 주제와 심상은 민족의 설움과 한(恨)의 정서를 활용, 민족의 보편적 감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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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초혼 시 감상 잘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