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마지막 바램
김규진
99881234, 구십구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하루 이틀 아프다가 삼일 째 되는 날 죽는다는 말이다. 백세시대에 바로 우리 엄마가 주인공이다. 1925년 5월생으로 4개월 부족한 지난 1월, 99세에 소천하셨다. 비록 요양원에 6년간 의탁하셨지만 새벽에 잠이 드신 채 운명하셨다. 흔이들 말하는 호상이었다.
삼일 간 상을 치룬 후 1월달 요양원비 정산을 위해 요양원을 찾았는데, 체납된 요양원비가 740만원이나 되었다. 요양원비는 6형제가 매달 동일한 금액을 부담하였고, 셋째 누님이 관리 해왔다. 원장님은 이 사실을 비빌로 해달라는 누나의 딱한 사정을 들려주며 난감해 하였다.
내가 더 난감했다. 동행한 아내는 더 펄쩍 뛰었다. 어쩜 그럴수가 있냐고 행여나 당신이 어찌 해 볼 생각은 말라며 내 판단을 꼼짝 못하게 한방 날렸다. 관리부실로 눈 덩이처럼 불어난 요양원비에 화가 나기도 했지만, 누나의 어려운 사정을 받아 준 원장님의 따듯한 인정이 고맙기도 하였다.
누나는 셋쩨 딸은 보지도 않고 데려 간다는 옛말처럼 착한 인성의 소유자다. 집 안의 대소사를 다 챙기고 형제들과 살아 생전 어머님도 제일 신뢰하고 좋아하였다. 퇴직후 시작한 조그만 치킨집도 잘 되는 줄만 알았다. 장애인인 남편과 큰 딸, 실직한 아들, 그리고 밤 도둑도 들었으니 경제적으로 얼마나 힘들었을까? 허리가 휘청거렸을 것이다.
며칠 동안 잠도 오지 않고 일도 손에 잡히질 않았다. 하지만 형제들에게 오픈 한 일도, 누나에게 윽박 지를 일도 아니었다. 요양원비도 언제까지 체납할 일도 아니었다. 다음 날 원장님과 점심을 같이 하면서 요양원비 전부를 이체했다. 아내와 누나에게는 꼭 비밀로 해달라는 당부와, 누나가 요양원비 내는 데로 나한테 보내달라고 부탁을 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막혔던 쳇기가 가신 것처럼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엄마는 내가 정년 퇴직 5개월 전에 돌아가셨다. 아직 현직 신분인 덕분에 적지 않은 부조금이 들어왔기에 손님들을 잘 접대하고, 형제들 간 타툼 없이 아버지와 함께 부부 합동 납골당에 모셨다. 또한 누나의 자존심도 지켜주고, 요양원비도 슬기롭게 해결했다. 이 모든게 형제간 우애를 지키려 했던 어머님의 마지막 바램 아니었을까? '누나, 요양원에서 그 동안 보내 온 돈이 2백만원이야. 아직 540만원이 더 남았지만 난 괜찮아, 누나 힘내, 그리고 미안해! 오늘 저녁엔 치맥하러 갈께'
첫댓글 글이 훨씬 간결하면서도 전달이 잘 되서 술술 잘 읽힙니다.
어머님의 참뜻을 실천하시고, 형제들과의 화합과 우애를 생각하시는 속깊은 마음이 느껴집니다.
고생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