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를 버려 나를 얻는다.♥
"나무는 꽃을 버린 후 열매를 얻고 강물은 강을 버린 후 바다에 이른다." - 화엄경-
'내가 보기에', '내 생각에는', 상대방과 대화할 때 우리는 흔히 나를 앞세우는 경향이 있다. 좋게 보면 주체적인 의사표현으로 볼 수도 있으며 이런 습관이 나의 자존감을 높여준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거꾸로다. 혜자와 장자의 다음 논쟁이 보여주듯이 나를 앞세운다고 자존감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나를 버림으로써 진정한 자아를 얻는 경우가 많다.
혜자가 장자에게 말했다. “어느 날 위나라 왕으로부터 큰 박씨를 하나 얻었는데 그걸 심었더니 엄청난 크기의 박이 열렸다네. 너무 커서 바가지로 만들어 쓸 수도 없고 해서 부숴버렸지.”
惠子謂莊子曰 魏王胎我大瓠之種 혜자위장자왈 위왕태아대호지종 我樹之成而實五石 以盛水漿 其堅不能自擧也 아수지성이실오석 이성수장 기견불능자거야 剖之以爲瓢 則瓠落無所容 부지이위표 즉호락무소용 非不呺然大也 吾爲其無用而掊之 비불효연대야 오위기무용이부지 - 장자 소요유편-
크기만 하고 정작 쓸모가 없는 박처럼 장자의 생각도 겉보기에는 웅장한 것 같지만 사실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으니 없애버리는 것이 낫다는 걸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장자는 손을 트지 않게 하는 약의 비유를 들어 곧 바로 반격에 나선다.
"자네는 큰 걸 쓰는데 서툴군 그래. 내 예를 하나 들어주지. 송나라 사람 중에 대대로 솜을 표백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 있었다네. 이 사람은 직업상 손이 자주 터서 괴로워하다가 스스로 약을 하나 개발했다네. 이 약은 손을 트지 않게 하는데 아주 잘 들어 명약으로 소문이 났어. 그래서 어느 날 나그네 한 사람이 와서 백금의 돈을 주고 이 약을 만드는 비방을 사갔다네. 이 나그네가 오나라 왕에게 가서 비방을 말했더니 오나라 왕은 나그네를 장수로 삼아 월나라와 전쟁을 치르게 했다네. 추운 겨울 수전(水戰)에서 오나라는 월나라를 대파했고, 마침내 나그네는 왕으로부터 큰 봉지를 얻었다네. 같은 비방을 가지고 어떤 사람은 평생 솜 타는 일을 했지만 어떤 사람은 장수가 되고 큰 봉지도 얻었듯이 같은 것이라도 쓰기 나름 아니겠나. 큰 박이 쓸모없다고 하지만 그걸로 요트를 만들어 바다에 띄우면 얼마나 근사하겠나? 자네 생각은 쑥부쟁이처럼 옹졸한 것일세. " 원문은 핵심적인 문구만 소개한다.
莊子曰 夫子固拙於用大矣 장자왈 부자고졸어용대의 今子有五石之瓠 何不慮以爲大樽而浮乎江湖 금자유오석지호 하불려이위대준이부호강호 而憂其瓠落無所用 則夫子猶蓬之心也夫 이우기호락무소용 즉부자유봉지심야부 - 장자 소요유편-
장자는 박의 크기를 탓하면서 부숴버릴 것이 아니라 크기에 맞춰 적절하게 박의 쓰임새를 정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면서 혜자의 논리를 반박하고 있다. 작은 박이면 바가지로 쓸 수 있지만, 큰 박이면 요트로 쓸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타이타닉호와 같은 초호화 유람선이나 크루즈를 만들 수도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혜자는 장자로부터 한 방 얻어맞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다시 큰 나무의 비유를 들어 장자의 허황되고 비현실적인 생각을 재차 공격한다. "나한테 큰 가죽나무가 하나 있다네. 근데 줄기는 울퉁불퉁하고 가지는 구불구불해서 도무지 쓸모가 없지. 그래서 목수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네. 자네 말은 제법 거창하지만 황당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라 사람들한테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吾有大樹 人謂之樗 오유대수 인위지저 其大本擁腫而不中繩墨 其小枝卷曲而不中規矩 기대본옹종이부중승묵 기소지권곡이부중규구 立之塗 匠者不顧 입지도 장자불고 今子之言 大而無用 衆所同去也 금자지언 대이무영 중소동거야 - 장자 소요유편-
거듭된 혜자의 공격에도 장자는 물러서지 않는다. 이번에는 먹이를 찾으려고 이리저리 헤매다가 덫에 걸려 죽고 마는 너구리와 족제비의 비유를 들면서 다시 반격한다.
"어허, 자네 참으로 딱하네. 자네는 너구리와 족제비도 보지 못했는가? 그 놈들은 먹이를 낚아채려고 이리저리 뛰다가 결국은 덫에 걸려 죽고 말지. 그리고 이우라는 검은 소는 하늘의 구름 같이 덩치가 크지만 정작 쥐새끼는 잘 못 잡는다네. 나무가 커서 걱정이라는데 발상의 전환을 하면 되지 않는가. 아무도 없는 넓은 들판에 그 나무를 심어놓고 그 곁에 누워서 휘파람이나 불면서 느긋하게 쉬면 그곳이 곧 낙원이 아니겠는가. 누가 와서 도끼질을 할 염려도 없고 해코지 할 사람도 없을 테니 이보다 더 안전한 곳이 어디 있겠는가.“
子獨不見狸猩乎 卑身而伏以候敖者 자독불견리성호 비신이복이후오자 東西跳梁 不避高下 中於其辟 死於罔罟 동서도량 불피고하 중어기벽 사어망고 今夫斄牛 其大若垂天之雲 此能爲大矣 而不能執鼠 금부이우 기대약수천지운 차능위대의 이불능집서 今子有大樹 患其无用 何不樹之於无何有之鄕 금자유대수 환기무용 하불수지어무하유지향 廣莫之野 彷徨乎无爲其側 逍遙乎寢臥其下 광막지야 방황호무위기측 소요호침와기하 不夭斤斧 物无害者 无所可用 安所困苦哉? 불요근부 물무해자 무소가용 안소곤고재? -장자 소요유편-
장자 사상의 진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구절이다. 혜자는 눈앞에 보이는 이익(먹이)을 쫓다가 덫에 걸려 죽고 마는 너구리와 족제비로 묘사되었고, 장자는 자잘한 이익(쥐새끼)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유유자적한 삶을 사는 큰 소(이우)로 묘사되었다. 혜자는 큰 나무의 쓰임새를 알지 못했지만 장자는 그걸 적절하게 활용해서 지극히 자유롭고 여유로운 삶을 누린다. <장자> 33편의 들머리를 장식하는 소요유 편은 위의 우화에 나오는 소요호침와기하(逍遙乎寢臥其下)라는 구절에서 유래했다. 이 우화의 핵심 메시지는 외형의 크고 작음에 있지 않다. 장자에게 대소의 구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날개 짓 한 번에 구만리를 나르는 대붕이나 폴짝 뛰어서 나뭇가지에 간신히 안착하는 쓰르라미나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는 게 장자의 생각이다. 여기서 혜자와 장자의 차이는 기준점의 차이다. 혜자는 '나'의 생각에 '사물'의 쓰임새를 맞추었고, 장자는 '사물'의 쓰임새에 '나'의 생각을 맞추었다. 그러다 보니 혜자는 편협함과 고루함을 벗어나지 못하는 속 좁은 인물이 되었고 장자는 자유롭고 탄력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대범한 인물이 되었다. 혜자는 내 기준에 외물(타인)을 맞추어서 자존감을 높이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자존감을 떨어뜨리게 되었고, 장자는 외물(타인)에 자신을 맞춰서 통 크게 양보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절대적인 자존감을 획득하게 되었다.
--고전의 지혜<장자의 명언> 중에서-- 나를 버림으로써 나를 얻는다ㅣ장자 명언ㅣ고전의 지혜 (youtub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