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25년 7월 22일(화), 12:00~17:00
참석: 이진흥 선생님, 고미현, 곽미숙, 김미숙, 김용순, 박수하, 박유경, 이규석, 이자, 정정지, 정해영, 박경화
장소: 반월당 ‘부자갈비 by 경복궁’
의논: 문학기행과 1,000회 물빛 토론 및 동인지 출판기념회 등(자세한 것은 추후 공지 예정)
* 토론 작품: (작품 평은 ‘작품 토론방’ 참고)
1. 학과 거머리 · 김미숙
2. 댄스 파티 · 이규석
3. 공범 · 정정지
4. 바람호수 · 정해영
5. 나이 듦을 생각하며 · 박수하
6. 눈망울 · 박경화
*
낮술
김혜순
술이 온 몸 가득 뿌리를 내리는군
뿌리 끝으로 반딧불이 날아 왔어
땅이 조금씩 갈라지는군
뿌리 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어
반딧불이 땅 갈라진 틈으로 들어가면서
나는 반듯하게 쓰러졌어
당신은 샌드 페이퍼로 내 얼굴을 문지르는군
이봐 내 머리털 속에 반딧불이 환하지 않아?
숲 속이 환하지 않아?
나는 대낮부터 뿌리가 뽑혔어
우리 집이 조금씩 갈라지면서
별들이 떨어지는 것이 보이는군
이제 발길질일랑 멈추지 그래
· 1981년 시집, 『또 다른 별에서』 중에서
· 아주 아주 가끔 낮술을 마실 때가 있는데 그때 편하고도 재미있는 사람이 이경희 시인, 손경희 시인, 이도원 소설가, 김현옥 시인이다. 내가 무척 좋아하는 여성들이며 모두 개성이 뚜렷하다. 지금은 미국에 사는 이경희 시인은 노래라도 한 곡 뽑으면 홀딱 반할 정도로 매력적이다. 게다가 말솜씨며 자신감도 뛰어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정신없이 빠져든다.
손경희 시인도 미국에 사는데 오래전에 둘이서 막걸리 한 잔씩 마시고 취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모른다. 마치 막걸리를 한 말쯤 마신 것처럼 취했었다. 독립운동가 손병희 자손임을 자랑스러워하는 그녀가 나도 자랑스럽다. 시와 기도로 살아가는 참 예쁜 동생인데 때로는 언니 같기도 하다. 술이 아니어도 우리는 분위기에 한껏 취할 수 있다. 몇 년에 한 번씩 한국에 나와 만나게 되면 우리는 꼭 서로의 시를 읽어주며 시간을 보낸다. 낮술이 아닌 낮시로 만나는 사이다.
김혜순 시인의 ‘낮술’을 읽으니 요즘 소식이 뜸한 그녀들이 보고 싶다.
오늘 물빛 모임을 마치고 2차로 나는 몇 분 회원과 국숫집에 가서 국수는 물론 막걸리와 파전을 사고 싶었는데 다들 배부르다고 국수만 드셨다. 그것도 나중에 곽미숙 님이 기어코 국수 값을 내셨다. 다들 헤어지고 나는 예스24 중고서점에 가서 시집 몇 권을 샀다. 이제 책은 그만 사고 빌려봐야지 하면서도 그게 잘되지 않는다. 그리고 시집은 단 한 편의 시만 마음에 들어도 소장하고 싶어 사게 된다. 비록 헌 것이지만 대학교 후배 시인의 시집도 사게 되어 기분이 좋았다. 후배는 내가 자신의 팬인 것을 알면 기뻐할 것이다.
물빛 회원들은 모두 모범생이고 선해서 재미가 덜 하다. 이야기를 나누면 다들 고운 말 바른말을 억수로 쏟아붓고 눈빛은 착해서 하늘 아래 거짓말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사람들 같고 뭐 하나 빈틈없이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분들 같기도 하다. 모두 이진흥 선생님을 꼭 닮았다. 그 스승의 그 제자님들! 그러니 42년 동안 시를 주거니 받거니 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
가야금
김혜순
가을의 창가에 넘쳐 흐르는 하늘
가을의 하늘로 피어오르는 안개
그 사이로 기러기떼 흐르며
우는 듯, 우는 듯, 흐느끼는 듯,
기러기발 사이로 활을 튕기며,
땅을 치며, 술대를 밀며,
소리 죽여, 죽여, 죽여
넘치는 하늘, 피어오르는 강물
부르는 소리,
더운 안개의 가슴에
심금을 기대어
우는 듯, 우는 듯,
흐느끼는 듯,
· 1981년 시집, 『또 다른 별에서』 중에서
· 이 시의 2연에서 나는 뭔가 이상하다. 이 시집을 사서 읽던 1988년도에나 지금이나 같은 생각이다. 제목은 가야금인데 2연의 내용은 거문고 같기 때문이다. 가야금을 연주할 때는 손으로 줄을 뜯고 튕기고 누를(짚을) 뿐이다. 거문고는 술대를 가지고 친다(연주한다). 아쟁은 활을 가지고 줄을 문지른다(켠다, 연주한다).
시인이 무엇을 착각했을까? 아니면 나름대로 의도한 바가 있을까? 시적 자유일까? 알 수 없어서 만나 뵙고 물어보고 싶은 부분이기도 하다. 이 글을 쓰는 것도 조심스럽다.
결혼 10주년 때 남편이 무엇을 갖고 싶냐고 해서 나는 할 줄도 모르는 가야금을 택했다. 사주겠다고 해서, 나는 가야금 장인을 찾아 서울까지 가서 장인이 권하는 것을 사 왔다. 그것을 들고 가야금을 배우러 가니 선생님께서 좋지 않으니 새로 사라고 했지만, 많은 돈을 주고 산 것이었기에 나는 그냥 그것으로 하겠다며 배우다가 말았다.
보기에는 재미있어 보였는데 실제로 해보니 정말 무지무지 섬세하여 꼼꼼하지 못한 내 성격으로는 배우기가 어려웠다. 그 밖에도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오른손 셋째와 넷째 손가락이 연주할 때면 서로 붙어 다니는 바람에 가끔씩 가야금의 엉뚱한 줄을 건드리곤 하니 소리가 깔끔하지 못했다. 손가락이 이런 사람이 드물게 있다고 한다.
둘째, 연주하다 보면 안족(기러기 발이라는 뜻으로 가야금 줄을 받치는 것)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이는데 그것을 감지해 가면서 왼손이 안족을 제 위치에 바로 옮기며 오른손으로는 연주하는 게 쉽지 않았다. 절대음감도 필요했다. 셋째는 내 만한 가야금을 들고 다니는 게 힘들었다. 운전을 못 하니 매번 남편이 데려다주는 것도 번거롭고 택시를 타거나 버스를 타도 악기가 다칠까 봐 조심해야 했다. 그러다 아무것도 들지 않아도 되는 민요를 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지금까지 경기민요를 공부하고 있다. 김혜순 시인의 ‘가야금’을 읽고, 줄이 몇 개 끊어진 가야금을 꺼내 보았다. 무슨 용기와 객기로 이것을 사려고 혼자 서울까지 갔을까? 참 철없이 낭만이 철철 넘치던 시절이었다.
*
詩
김혜순
오늘 밤 우리는 하릴없이
이를 잡는다.
어디서 땅 위로 물 넘치는 소리 크게 들리는데
마당귀 한 구석에 쪼그리고
캄캄히 엎드려 우리는 이를 잡는다.
검은 머리채 사이사이
뼈 마디마디, 크고
작게 기어 나오는
징그러운 이들을 오늘 밤 우리는 잡는다.
하늘 가득 벗어 놓은 빛나는 것들,
우리 가슴 속과 눈 속을 드나들면서
물 웅덩이에 둥둥
미류나무 줄기줄기 기어내리는
저 빛나는 것들을
오늘 밤 우리는 잡는다.
깊고 푸른 물 속으로 끝없이 떨어지는
저 빛나는 별들을
오늘 밤 우리는 하릴없이
하염없이 잡는다.
· 1981년 시집, 『또 다른 별에서』 중에서
· 시는 이, 시는 별!
감탄이 나오게 하는 시다.
지금 세상에서야 이를 구경하기 힘들지만. 시를 쓴다고 늘 이 글 저 글 긁적긁적하는 것은 내 몸 구석구석에 숨어 기어 다니고 있는 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가 별이 되도록 쓰고 쓰고 또 써야 하는지도 모른다.
이가 별이 되려면 얼마의 시간이 필요한지 가늠조차 할 수 없고, 말도 되지 않는 소리지만 이는 별이 되어 시로 반짝일 수 있다. 어마어마한 시간을 들이며 생각에 생각을 하다 보면 이는 별이 되고, 시가 될 것이다. 이런 믿음으로 시를 쓰는 것인지도 모른다.
잡아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가려움, 시가 온몸을 기어 다니기 때문이다!
첫댓글 ㅎㅎㅎ, 꽃나비달 회장님도 (아주 가끔) 낮술을...? 술은 전혀 못 마시는 줄 알았는데...
결혼 10주년 선물로 받은 (장인이 만든) 고급 가야금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 연주는 못하고,
아주 가끔 눈으로 연주하고 마음으로 듣는 분이니 우리 물빛 회장님 정말 고수이네요.
대단합니다.. 짝짝짝 ~ !!
구석에 세워둔 가야금을 오랜만에 꺼내 놓고 안족 사진을 찍으며 뭔가 애틋하고 미안했는데, 댓글을 읽으니 기운이 납니다.
나의 쓸쓸한 가야금에게 “너를 눈으로 연주하고 마음으로 듣고 있단다.”라고 해주어야겠습니다. 멋진 말을 해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소리 공부를 하며, 우리 몸도 악기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노래 부르기나 춤추기 등을 하지 않으시지만, 선생님의 주옥같은 시가 곧 노래, 시평이 곧 춤이 될 수 있겠지요. 선생님만의 노래와 춤을 우리와 함께하고 계시는 것이지요. 그 노래와 춤을 오래오래 함께할 수 있기를 우리 모두 기원합니다. 사모님과도요~^^
저럴수가!!
과연 낮술을 마시면 저리된답니까??
평생 한 번도 못 마셔 보았으니 알턱이 있나
언젠가는 꼭 ....
윤슬님은 따로 낮술 밤술이 필요없듯이 늘 '주님'과 함께하고 계시잖아요~^^
@꽃나비달 술주와 내 주님이
잠시 엇갈려 지나가고
나는 길을 잃었던가 봅니다
그래도 술에 취했던 기억이
잠시 나를 웃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