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이동학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도시들을 두루 여행하면서면서 느꼈던 점과 개인적인 인터뷰의 결과를 책으로 썼다. 저자는 구소련의 국가들과 북유럽, 북미, 남미, 아프리카 등 세계의 각지를 여행하면서 도시에 대한 고민을 풀고 있다. 글은 전체적으로 생생한 체험에서 비롯한 경험적인 내용에 충실하지만, 학술적인, 또는 통계적인 근거는 부족한 느껴지는 면이 있다.
저자가 관심 있게 추적한 주제는 저출산과 다문화이다. 저자는 저출산이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한다. 유럽의 국가들도 저출산 문제를 겪고 있으며, 아프리카와 개발도상국도 발전의 과정에서 출산율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저자는 저출산이 현대 사회의 당연한 현상이며, 오히려 높은 출산율이 과거에 여성권을 경시해서 올 수 있었던 결과가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을 품는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공감이 가는 의문이었다. 나는 개인의 삶이 중요한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삶을 희생해야 하는 가족이라는 구조가 가치를 상실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가는 시대에 따라 변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유물론적인 관점과 관념론적인 관점에서 목적과 물리적 환경 중 무엇이 우선인지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전개되고 있지만, 인간의 삶이 과거와는 다름은 인정되고 있다. 개인주의와 자본주의의 확산은 인간이 자기 자신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경제적 이익을 최대한으로 확보하는 것을 추구하게끔 만든다. 돈을 벌지 못하면 무의미하고, 낙오된 삶을 사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수입을 포기하면서 가족을 만들어야 할 이유가 있는가? 과장하자면 사회적인 흐름은 오히려 전 인류에게 가족을 버리라고 요구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인공 자궁으로 인공적인 생명을 출산하고, 육아 기계를 통해 육아를 하는 사회가 도래되어, 개인이 가족의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에서 해방되었을 때, 인간이 가족을 형성하겠다는 목적을 추구할 것인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저출산의 흐름이 필연적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국가와 정부의 관점에서 저출산은 중대한 사회문제이다. 왜냐하면 저출산은 곧 ‘인적자원’의 부족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부에서 인적자원을 수급하면서 다문화 사회가 도래하기 시작했다. 다문화는 새로운 인구 집단의 도래를 의미하며, 이것은 새로운 문제를 야기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정치적인 동물로 정의했다. 슈미트는 정치를 피아구분이라고 말했다. 이 두 명제를 연결한다면 인간은 피아구분을 하는 동물인 것이다. 다문화 사회는 국가 내부에서 피아구별이 가능한 새로운 집단을 등장시킨다. 따라서 갈등이 심화되기 시작한다. 현대 국가 대부분은 이러한 갈등으로 내홍을 겪고 있다. 한국도 그런 길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예측이다.
저출산과 다문화에 대한 고민을 세계 곳곳에서 지속하고 있는 저자의 노력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또 시민들을 인터뷰하여 문제를 탐구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책이 가벼운 느낌이었기에, 저자가 어느 정도까지 진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지는 느껴지지 않았다. 만약 저자가 같은 주제로, 더 심화된 고민을 전개한다면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독서였다.
첫댓글 한 학기 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