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영화 ‘국제시장’이 개봉되었던 바로 그 시점에 마침 부산 국제시장을 찾았다. 부산이 고향이기도 하고, 지금 부모님의 집은 다른 곳으로 이사했지만, 부산 중구에 살았던 초등학교 시절의 추억을 되살려보며 오랜만에 어머니를 모시고, 동생 가족들과 나들이 삼아 갔던 것. 아직도 국제시장과 인근 자갈치시장, 부평동 시장 등에 머물면서 생업에 종사하는 친구도 있고, 영화 속에서처럼 전후 부산 국제시장에 정착한 실향민의 부모님을 둔, 국제시장을 터전으로 한 가업을 물려받아 운영하는 친구도 있기에, 나에게도 ‘국제시장’은 굳이 우리 현대사를 관통하는 공간이라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언제라도 찾고 싶은 마음의 고향이자 삶에 지치고, 힘들 때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정감 있고, 향수 어린 곳이기도 하다. 서울에 와서,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이슈가 된 영화 ‘국제시장’을 보았다. 주변에는 유난히 가족단위의 관객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관객은 우리 부모님 세대의 지긋한 어르신에서부터 아내와 자녀들과 동반한 중년의 가장들. 나는 얼마 전 내가 머물렀던 그 ‘국제시장’의 기운과 비린 냄새를 기억하며 영화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한국전쟁 때 흥남에서 철수하던 배에 올라타려던 덕수 가족. 어린 덕수는 끝끝내 업고 있던 막내 동생 막순이를 놓치고 만다. 막순이를 구하느라 배에서 내리는 덕수의 아버지. 어린 덕수는 “이제부터는 네가 가장이다.”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가슴 깊이 묻고 어머니와 동생 둘과 함께 빅토리아호에 오른다. 엄청나게 추웠다는 1950년 겨울, ‘장진호 전투’와 ‘빅토리아’호에 얽힌 이야기는 익히 알고 있었으나 이번 영화를 통해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고, ‘빅토리아호’의 기적은 ‘크리스마스의 기적’이었다는 사실을 또 한 번 확인했다. 미군 장비를 버리고 무려 1만 4,000명을 태운 이 기록은 기네스북에 올랐고, 이 배로 탈출한, 덕수 같은 피난민의 굴곡진 인생 스토리가 펼쳐지게 된 것이다. 부산 ‘꽃분이네’ 고모 집에 거지꼴로 도착한 덕수는 고모네 집에 얹혀살면서 가족들을 돌보겠다는 사명감으로 열심히 살아간다. 슈사인 보이, 부두에서 노동자를 하면서 친구 달구와 우정을 쌓아가며 가족을 부양한다. 스물여섯에 중졸 검정고시를 보려 하지만, 서울대에 합격한 동생의 학비를 위해 서독 광부모집에 지원하게 되고, 그곳에서 힘든 생활을 보내지만, 파독 간호사 영자를 만나 사랑하고, 귀국 후 그녀와 결혼하게 된다. 이제 좀 편안하게 사나 했는데 끝순이의 결혼과 고모의 가게 ‘꽃분이네’를 지키기 위해 또 다시 월남전에 참전하게 된다. ‘마도로스’가 꿈이었던 덕수. 이번에는 해양대 합격 통지서를 바람에 날려버린 채 가족이라는 배를 몰고, 세상이라는 바다를 안전하게 운항하는 가장으로서 살아간다. 월남전에서는 다리를 다쳐 절름발이가 되어 돌아오는 덕수. 이후, 그의 삶은 평탄해 보였고 자신의 꿈 ‘마도로스’는 접은 채, 칠순노인이 될 때까지 악착같이 고모의 가게를 지켜낸다. 하늘도 감복했는지 ‘이산가족찾기’에서 흥남부두에서 생이별했던 동생 막순이도 찾게 된다. 아내 영자에게 “니 꿈은 뭐였노?”라며 지그시 물어보는 덕수. 라스트 씬에서 가족들끼리 웃고 떠드는 평화로운 한때에 홀로 조용히 빠져나와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하며 오열하는 덕수. 나도 덕수 아저씨와 함께 울었다. 아버지의 눈물은 잃어버린 꿈에 대한 회한이기도 하지만, 아버지의 약속이었고, 책임이었고, 희생이고, 사랑이었다. “나의 아버지와 아버지 세대에 대한 헌사로 이 영화를 바치고 싶다.”고 한 윤제문 감독과 나도 비슷한 마음이다. 이념 논쟁 운운하고, 보는 사람에 따라 순수한 공감이 되지 않을 수 도 있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오히려 사실적인 표현과 배우들의 진정성 있는 연기, 슬픔과 아픔을 때로는 웃음과 기지로 승화시키는 영화적 요소가 많은 사람들을 개운하게 힐링 시켜주고, 세대 간의 간격을 조금은 좁혀주지는 않을까? 싶었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중년 이상의 분들은 대부분 울고 난 뒤의 계면쩍고 생각이 많은 표정이었다. 젊은 친구들도 “아, 우리 할아버지, 부모 세대가 저런 마음으로 우리를 키웠구나.”싶었을 듯. 나 역시, 우리 부모님 세대의 사랑과 희생을 다시금 돌아보고, 그 사랑을 잊지 않고, 갚아드리고 싶다는 다짐을 했다. 그것은 지금 맞닥뜨리고 있는 나의 삶에 충실해야 하는 거 아닐까? 어쩌면 또 다른 고민과 아픔과 갈등과 경쟁으로 힘들어하는 요즘 젊은 세대에게도 영화 ‘국제시장’이 조금이라도 위안과 용기가 되는 영화이기를 바라는 건, 나도 어쩔 수 없는 기성세대로서의 노파심일까? |
출처: 심평원 블로그 원문보기 글쓴이: 심평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