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곡으로 탄생한 시(詩)
아내를 통하여 우리 가곡을 알게 된 후 나는 군(軍)에 있으면서도 거의 날마다 아내가 보내준 가곡테이프를 들으면서 고향과 어머니,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고, 결혼 후에는 아내의 손을 잡고 각종 「가곡의 밤」이나 「엄정행독창회」 등을 열심히 찾아다녔다. 그리고 그렇게 가곡을 듣고 온 날이면 일기나 수필 속에 그에 대한 이야기들을 써놓곤 하였다.
그리고 내 가슴 속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깊이 묻어둔 한 가지 소망이 있었다. 그것은 “언젠가는 내가 쓴 시(詩)에 곡(曲)을 붙여 가곡으로 만들고 싶다”는 것이었다. 각종 가곡의 밤에 가서 성악가들이 연주하는 가곡을 듣고 있으면 시로 이루어진 그 가곡의 노랫말이 무척 아름답게 느껴졌고, 어쩌면 그렇게 그 시에 어울리는 곡이 만들어졌는지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도 가곡의 노랫말이 된 시를 꼭 써보고 싶었고, 그렇게 쓰여진 나의 시가 가곡으로 탄생하여 실제로 무대에서 불려지는 상상을 할 때면 절로 황홀하였다.
2021년 가을, 나는 공식적으로 노인(老人)이 되어서야 나의 자서전 3권을 완성했고, 2022년 여름에는 서울시인협회의 추천을 받아 첫 시집 「그리움을 향한 평생보고서」를 출간하였다. 이로써 시집을 내고 싶다는 내 오랜 한 가지 꿈은 이루어졌지만 아직 내 시를 가사로 한 가곡을 탄생시키지는 못하였다.
나는 우선 우리 가곡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참여하는 인터넷카페인 ‘아리수 사랑’, ‘한국예술가곡보존회’, ‘서울우리예술가곡협회’ 등에 회원으로 가입하고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카페를 통하여 각종 공연이나 가곡에 대한 정보를 많이 얻었으며, 그때부터 열심히 각종 「가곡의 밤」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가곡의 밤에 가보면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나이가 지긋한 노인들이 객석에 많이 앉아 있었다. 그분들도 나처럼 70년대 우리 가곡의 전성기를 추억하면서 아직도 그 시절을 잊지 못하고 있는 분들 같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리 가곡의 위상이나 인기가 옛날 같지 않아서 씁쓸하고 슬프기도 하였다. 요즘 TV에서는 ‘트로트’ 라고 불리는 대중가요가 인기를 끌고 있고, 각종 경연프로그램도 많은데다 여러 가지 오락 프로그램도 수없이 많았으나, 70년대와 같은 우리 가곡을 전문적으로 들려주는 프로그램은 전혀 없었다. 우리 가곡은 그 역사만 하여도 100년이 넘었고,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와 애환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데다 가사도 격조 있는 시(詩)로 이루어져 있고, 그 선율도 순수하고 아름다웠으나 많은 국민들이 우리 가곡의 좋은 점을 몰라준다는 사실이 야속하기만 하였다.
그러던 중 나는 ‘한국예술가곡보존회’ 김재규회장을 알게 되었고, 그를 통해 박경규작곡가를 알게 되었다. 박경규작곡가는 내가 좋아하는 가곡 「그대 그리움」을 작곡한 분이기도 하였지만 우리나라 가곡의 발전과 부흥을 위해 많은 기여를 하신 분이었으므로 언젠가 꼭 한번 만나고 싶었던 분이었다.
그리고 나는 드디어 그 분의 초청음악회에서 그 분을 만나고 내 첫 시집을 드렸다. 그리고 그 시집에 있는 시 3편을 골라 가곡으로 만들어 주십사고 요청하였다. 이렇게 하여 내가 쓴 시 중 「봄편지」, 「내게도 그런 사람이」, 「부부」 등에 그 분이 곡을 붙여 3곡이 작곡되었다. 그리고 그중 「내게도 그런 사람이」는 2023년 11월 예술의 전당 IBK챔버홀에서 있었던 한국예술가곡보존회 주최 「가곡의 밤」 무대에서 테너 김충희의 연주로 초연(初演)을 하였다.
그 날 아내는 친구들과 함께 객석에서 이 노래를 들었고, 우리 딸들은 꽃다발을 사가지고 와서 내 사진을 찍어 주었다. 내가 작시(作詩)한 시가 가곡으로 만들어져 처음 무대에서 불려질 때의 감동이란... 말해 무엇 하랴. 나는 어린 시절부터 내가 꿈꿔왔던 그 순간이 드디어 현실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가슴 깊이 감동하고 있었다.
그 후에도 박이제작곡가가 내가 쓴 시 중에서 「전원으로」를 작곡해주었고, 이 웅 작곡가도 「사랑한다는 말」에 곡을 붙여 가곡으로 탄생시켜 주었다.
첫댓글
결혼을 좀 이른 나이에 하셨나봅니다
아내의 군 시절에 도움이
오늘날 이렇게 작가님의 이름으로 함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