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so serious?
글 윤대현(서울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빅토르 안. 소치 동계 올림픽에서 귀화한 러시아에 쇼트트랙 첫 금메달을 안겨준 안현수 선수의 러시아 이름이다. 그를 러시아에 보낸 상황을 떠올리면 속상하지만 재기에 성공한 그의 멋진 스토리에 우리 국민도 함께 즐거워했다. 금메달만큼이나 러브 스토리도 화제였다. 안 선수 부부의 몸에는 서로에 대한 사랑 고백을 담은 문신이 있는데 ‘You complete me’라는 강력한 사랑 고백이다.
‘You complete me.’ 직역하면 ‘당신이 나를 완성시켜’라는 뜻이 될 텐데, 이 말은 톰 크루즈가 제리 역을 연기한 <제리 맥과이어>란 영화에 나오는 대사다. 제리가 사랑하는 여인 도로시에게 건넨 말이다. 도로시의 답변 또한 강력하다. “You had me at hello.” “당신이 나에게 ‘헬로’라고 인사한 순간부터 난 당신의 것이었어요”라는 말이다. 어쩌란 말인가! 손발이 오그라든다. 사랑의 힘으로 제리도 안 선수도 재기에 멋지게 성공한 것이다.
그런데 ‘You complete me’라는 멘트를 연인이 아닌 자신의 적에게 날려 멋진 폼을 잡은 배역도 있으니, 영화<배트맨 다크나이트>에 악역으로 나온 조커다. 조커는 자신을 다그치는 배트맨에게 “You complete me(네가 있기에 내가 있다)”라고 말한다. 악당이 상당히 철학적이다. 그리고 조커가 날린 명대사가 하나 더 있다. 이처럼 악당이라고 해도자신의 정적조차 내 인생을 완상시키는 파트너라고 느낄 수 잇는 철학적 여유가 있다면, 그의 인생에서 심각하게 스트레스받을 일은 없겠다. 이런 사람은 삶의 고통스러운 순간조차 나를 완성시키는 자극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테니까.
나는 제리보다도 조커의 ' You complete me'가 더 진한 멘트라고 느꼈고, 그래서 조커의 팬이 되어버렸다. 보통 심각한 인생과 무료한 이생은 짝을 이루어 함께 가는 경우가 많다. 그냥 흘러보내도 될 걱정거리에는 과도하게 심각하게 반응하고, 삶의 기쁨이 될 자잘한 행복 사건엔 무덤덤하게 반응하는 마음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또한 "인생이 무료하다, 심심하다, 무언가 열정적인 사랑 같은 일이 내게 터졌으면 좋겠다"라고 이야기하는 이들에게는 가수 장기하의 '별일 없이 산다'라는 곡을 들려주고 싶다. 노래는 이렇게 시작한다. "니가 깜짝 놀랄 만한 얘기를 들려주마/아마 절대로 기쁘게 듣지는 못할 거다/뭐냐 하면, 나는 별일 없이 산다/뭐 별다른 걱정 없다." '너 없이 못산다'며 절규하는 사랑 노래들과 느낌이 참 많이 다르다.
인생이 행복하지 않고 무려하다고 고민하는 이가 적지 않다. 그런 이들에게 '심심한 인생 살기 연습'을 권한다. 우리는 행복이란 메시지에 너무 강하게 반복 노출되어 살짝 행복 중독에 걸려 있는 상황이다. 상당히 강렬한 '필'이 찾아와야 내 삶이 행복하다고 느낀다. 심심한 것은 곧 불행이고. 행복의 정의가 강한 느낌으로 뇌에 입력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계속 강렬한 자극만 원하면 뇌가 오히려 행복을 느끼기 어려워진다. 행복을 느끼는 민감도가 떨어지는 행복 내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니 행복감을 잘 느끼는 뇌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조 비어 있는 듯한 심심한 인생에서 은근히 찾아오는 심리적 만족감을 느끼는 연습이 필요하다. 행복에 대한 예민도를 증가시키는 방법이다. 행복에 대한 예민도를 증가시키기 위해선 먼저 삶의 고통에 "You complete me"라는 여유로운 멘트를 날릴 수 있는 배짱이 필요하다. 불필요한 불안이 내 뇌를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고요히 느껴지는 삶의 행복감에 내 뇌의 주파수를 살포시 맞추는 훈련을 해나가다 보면, 어제보다 더 파랗게 보이는 하늘의 청량감을 오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015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