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 같았던 산업혁명이었지만, 그동안 가내수공업에 의존해 살던 사람들의 생활은 오히려 더 궁핍해졌다. 충격적인 기술진보는 기존 시스템을 고수하려는 사람들과 신기술 도입을 앞당기려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불러왔다. 갑자기 일자리를 잃은 숙련공들이 기계를 파괴하는 ‘러다이트운동(Luddite Movement)’까지 일으켰다. 이들은 기계를 파괴하면 노동 조건이 다시 회복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식량 부족, 목재와 화석연료의 고갈은 기술진보로 해결되었지만, 사람들 사이에 형성된 갈등은 증폭 되었다. 사람들의 의식주 활동을 설명하는 경제학은 수학이나 과학처럼 불변의 원칙이 존재하는 학문이 아니다. 한 시대를 담당하던 주류 경제학이 더 이상 경제 현상과 문제를 제대로 진단하지 못하거나,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면 새로운 이론과 사상이 등장한다.
스미스가 『국부론』을 발표한지 1세기 후인 1867년 독일의 경제학자 칼 마르크스(1818~1883)가 자본주의 경제의 문제점을 분석한 『자본론』을 출간했다. 마르크스는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 자본에 의한 노동 착취, 그에 따른 경제적 불평등에 반대했다. 대신 생산 수단의 공동 소유와 계획적인 생산, 평등한 분배를 주장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으로 사회주의를 제시했다. 자본주의 경제는 지나친 이윤 추구와 빈부 격차 문제, 비인간적인 노동 착취 등 내재적인 요인으로 인해 주기적으로 공황이 발생할 것이라고 했다. 정부의 경제 정책으로는 공황을 해소하거나 완화시킬 수 없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결국 자체적인 모순에 의해 스스로 붕괴될 것이다. 이러한 마르크스 사상은 1917년 러시아 혁명과 사회주의 체제의 이념이 되었다.
생산 수단과 분배의 평등이라는 이상적인 목표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사회주의 원칙을 고수하는 계획 경제 국가는 거의 없다. 중국은 덩샤오핑(鄧小平, 1904~1997) 개혁 개방 이후 급속하게 경제 성장을 이루며 세계 2위의 생산 규모 수준이 되었다. 1986년부터 개방 정책을 채택한 베트남도 제조업 생산을 기반으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1990년에는 독일이 통일되었고, 1991년에는 구 소련연방이 해체되면서 대부분의 동유럽 국가들도 사회주의를 포기했다.
사회주의 경제가 자본가 계급(부르주아지)으로부터 노동자 계급(프롤레타리아트)을 해방시켜준다고 했지만, 사람들을 국가의 절대 권력에 귀속되었다. 개인의 사유 재산과 자유로운 의사 결정을 인정하지 않고, 사람들은 계획 경제의 수단이 되었다. 자본주의 경제가 절대 왕정의 전제정치를 극복한 시민 사회와 함께 형성된 것을 이해한다면 사회주의 경제가 왜 시대적으로 퇴보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