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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치 광 이
낮이 밤이 되고 밤이 낮이 되버린 하루. 잠못 이룸에 세상 지껄임 귀 막아 버린다. 시저의 로마제국 화형식이 진행되는 미쳐버린 불바다 . 음욕과 탐욕 포도주에 취해 꽃향기 찾는 곤충이 되버린 고깃덩어리들,, 무엇이 꿈이고 , 무엇이 현실이며 ,무엇이 행복이고, 무엇이 불행인지 갑을 평정에 지친 고뇌자들,, 주말 성당에 즐비한 수많은 신앙인들,, 정치인들 봉급쟁이요, 대통령 봉급쟁이다. 목사님 봉급쟁이 들이오, 스님도 봉급쟁이들이다. 황금덩어리 아닌 종이(지폐)가 지구를 황폐화 시킨다. 네로 황제가 사라진지 오래거니 그자리 권력이 아닌 재물(장사치)들이 차지했구려,, 양반,상놈 사라지고 동학혁명 메아리,, 돈잔치 파티에 타락되네. 글 쓴이 없고, 글 읽는이 없고, 시 쓰는이 없고,, 시 읽는이 없다. 돈 가진자가 세상을 통치하는 물질만능주의. 갑을에 지쳐 돈 때문에 파업하고, 돈 때문에 탐관오리로 타락한 관료들,, 겉치레 중시한 강남 성형외과 즐비하고, 겉치레 중시한 명품백 백화점에 즐비하다. 돈에 미쳐 버린 세상. 돈에 파괴되는 세상. 돈에 얽매이는 세상. 자본주의 나약함이 자본주의 절정을 보여주는 현실. 양반 ,상놈 없애자고 세상 엎어버린 동학혁명, 하물며 양반 상놈이 지금도 존재하거니 . 그것은 명문가 족보 신분상이 아닌, 졸부 들의 무지함과 향락에 빠진 나방처럼 신문지상을 도배하고 있는지 모른다. 선행이라곤 찾을 길 없는 매스컴. 매일,매시간,매초,, 범죄와 사건,사고만 방송하는 매스컴. 우리 주위에는 나쁜소식만 가득하다. 마치 사상주의 세뇌교육처럼 울들은 매일 좋은 소식이 아닌 나쁜소식만 접하고 지낸다. 그리고 결론 내린다. 세상은 그렇다고,, 추후 인상파가 나타나듯 로마제국의 시저처럼 온세상을 불질을지 모른다. 나약한 인간들,,, 황금에 눈먼 장님들,, 그들은 지금도 경마장,로또복권,마카오,정선에서 인생역전을 꿈꾸며 다닐지 모른다. 사업에 실패한 가정파탄 비방하는 신문들고 방황하며 다닐지 모른다. 매스컴이 없는 과거가 좋았는데.. 갑돌이와 갑순이가 시집갈때가 좋았는데.. 티브이 없을 때가 좋았는데.. 티브이 없을 때가 좋았는데.. 우린 지금 20kg 쌀가마니 창고에 두고 바보들의 행진속에서 바보가 되어 살고 있다. 돈에 미친 놈이 되어서.. 오호 통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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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로사우루스
스쳐간 슬픈미소가 기억난다. 어릴적 강아지 죽은지라 이부자리에 똘똘 말아 장의사 도움 없이 땅에 묻어진 이별이 생각난다. 어린시절 동네 골목길에서 100원 주고 산 노란 병아리 삐약거리다 눈꺼풀 내리고 죽으니 화분 옆에 묻어주고 슬퍼한 소년이 기억난다. 한겨울 태백산 골짜기 헤집어 겨울잠 자는 개구리 포획하여 기름에 튀겨먹는 무지한 나를 기억한다. 삼라만상이 겨울잠 자거니 북극곰처럼 어슬렁거리며 빈약한 몸뚱아리 헝겊으로 치장하고 눈밭에서 뒹구는 연약한 우리를 생각해 본다. 한겨울 삼라만상이 추위를 못참아 겨울잠 자거니 세상 헤집고 나는 우리들,, 개울가의 얼음 깨고 겨울잠 자는 산천어 , 개구리 잡아 초고추장에 회쳐먹고 포만감에 흡족해 하는 먹이사슬 최고층 우리를 생각해 본다. 하얀 면사포 쓰고 웨딩 카페트 거니는 신부의 순백한 백(白)을 선망하며 흰눈으로 펼쳐진 백(白)을 거부하며 골목길 눈을 치워버린 우리를 생각해 본다. 눈(雪)은 물의 육각형 결정체이다. 빙(氷)은 물의 겨울나기이다. 우린 어느순간 헷갈리기 시작한다. 한여름 냉장고 얼음인양 한겨울 얼음을 가볍게 여긴다. 눈은 생활에 불필요한 장애물로 생각한다. 겨울나기 하는 나비의 몸부림은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고통속에서 진행된다. 하찮은 개미도 한여름 포획한 음식 나누어 먹으며 어두컴컴한 개미굴속에서 혹독한 겨울을 나고 있다. 울들은 풍족한 벼이삭 거두고 소,짐승,닭,오리 양육하여 풍족한 겨울나기 하거니 무엇이 부족하여 얼음을 깨고 개울가 헤집으며 겨울잠 자는 만생 포획하여 조그마한 위 만족하려 공룡같은 짓거리 하고 있을꼬,, 어찌보니 우리들은 산천어나 개구리가 볼시는 공룡이여,, 우리들은 알로사우루스여,, 우리들은 어찌하여 알로사우루스 육식공룡이 되었을꼬,,, 추후 수억년후 빙하기가 오면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공룡화석인 석유처럼 추후의 생물체가 인류인 우리를 공룡 취급하며 화석연료로 사용하지는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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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예 인
삼강오륜 책자 사멸되고, 헌법과 육법 이외는 관심없는 세상. 죄와 악 구분함을 잃은지 오래요, 선행과 효인 찾기 힘들다. 열녀 사라진지 오래요, 효녀 심청이 교과서에서 사라지려 한다. 애국자는 옥편에 나오는 단어요. 영웅은 세대 차이에 의거 존재하지도 않는다. 몸뚱아리 양육한 가정. 정신의 영혼 깃들인 배움의 고향은 어디뇨,, 인간 말종들, 캠퍼스 사각모 집어던지자 길바닥 뛰쳐나와 짐승의 지배자 밑에 추종자되여 복종심 강한 충견으로 변절된다. 이집트 피라미드 밑에 그들은 무지한 하중에서 탈출하려 아우성 친다. 학교의 미적분 잊어버리고, 태종태세문단세,, 잊어버린다. 만원 지하철 안에서 어깨 밀치고 발버둥치며 빈자리 찾아 방황한다. 가진자 없는자로 판가름 되는 세상. 양반 상놈 사별되고 미개인 지식인 구분 평등화되고, 교사,스승 존칭 모호하다. 존경인은 오직 돈 많이 가진자요, 미개인은 산중턱의 달동네 빈곤층이다. 부의 축적은 지배권력의 군림과 요식행위 잘하고 편법을 자행한 자들의 아지트다. 가진자와 없는자 차이는 별반 의미가 없다. 무엇이 우리를 무능한 바보로 만들려 할까? 내가 보기에는 우리들의 착각인 것 같다. 삼시세끼 굶주린자 없거니. 사시사철 걸쳐 입을 옷 있거니, 눈비 막아줄 잠자리 있거니, 공간이동 도울 애마(자동차)도 있거니. 무엇이 그들을 지치게 하뇨,,, 그것은 착시현상이다. 가진자와 없는 자는 그것의 구분은 “ 많이 가진자와”와 “ 조금 가진 자‘ 이다. 인간변천사중 르네상스를 추구한 사상가나 철학자 들은 삶의 질보다는 영혼의 질을 중시여겼다. 별자리에 이름을 명하고 에고니즘을 추구하며 수많은 사상가를 배출하였다. 소크라테스,니이체, 레오나르도다빈치, 루소,데가르트,공자,맹자 등 그들은 빵과는 관심없는 정신세계의 배부름을 중시여겼다. 그러나 영국의 산업혁명이후 기계의 발달은 세상을 물질만능으로 변모시켰다. 그중에 특이한 것은 “ 연예인”이다. 연예인은 매스컴을 지배하고 우리들의 정신세계 가치관과 이상주의를 파괴시켰다. 그들의 지배력은 부의가치와 더불어 지식층 위에 군림하려 한다. 싸구려 웃음 팔고, 술판에서 노래부르고, 탈쓰고 연기하는 사당패 같은 족속들,, 지덕체 겸비 유무 검증 시스템도 없이 상업성 광고의 소모품이 된 그들, 부의 가치 절정을 향유하며 사춘기 청년의 우상이 된다. 더불어 인류사 이래 듣도 보도 못한 상류층에 합류한 것이다. 팔도강산 울려 퍼진 판소리 소리꾼. 사물놀이 사라진지 오래건만, 사당패 같은 족속들이 우리의 우상이 되어 버린 한심스러운 세상. 외모 우상주의와 산업주의의 다변화에 의해 변절될지언정,, 나는 생각해본다. “많이 가진자 ”를 선망하는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 체(體), 재물(財物) ” 겸비한 자가 아닌, 눈에 아니 보이는 “ 지(智), 덕(德)”을 많이 가진 “ 만석꾼”을 찾을길이 없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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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줄
구슬픈 비명소리 온 도시에 울려퍼진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한숨 쉬는 소리 요란하다. 비방하고 모략하며 이조시대 노론,소론 당파싸움에 지팡이 썩는줄 모르고, 여당 야당은 권력다툼으로 아비규환이고, 장사치들은 사상유래없는 무한경쟁에 하루살이 인생을 살고 있다. 길거리는 자동차 레이스장 되었고, 학원가는 인재양성이 아닌 낙오자 퇴출하기 여념이 없다. 교회성당 종소리 울리건만 나이트클럽 네온사인 휘영 찬란하고 , 극장가는 인명사상 전쟁광인양 파괴로 들끓는 불바다 연출하고, 도심속은 도로밑 썩은 물로 진동하고, 하늘에는 거미줄처럼 고압선 치렁치렁하다. 빌딩 그림자도 침범 못하게 하는 살벌 한 곳. 인사는커녕 눈한번 부딪히면 주먹다툼 일어나고 계급장 없는 지배층 구조 형성된다. 썩은 돈 뭉치 은행에 가득하고, 음식거리 넘쳐나 길거리는 온통 먹거리 천지다. 멧돼지 침범하면 창칼들고 살상 서슴치 않으며, 강가의 물고기 온간데 없다. 눈올시면 거추장거린 쓰레기 취급하며, 고전의 기와집 구경거리 되었다. 담배로 그슬린 빌딩 술잔. 소리에 귀가 먹을 지경이며, 글읽는 랲 노래소리 요지경 세상된다. 감투쓴자 밀담하기 좋은 곳, 혼란한 향락가 제격이요. 백성 운운하는 선비들 어느 섬 (여의도)에서 도도하게 주인행세 한다. 산으로 둘러쌓인 분지속에 듣도 못한 성냥갑 세워놓고 집타령 할세라 서로 비좁아 아비규환일세,, 사는 곳이 어디뇨,, 마치 전쟁난민처럼 분지(서울) 속에 같혀 동냥하고 사는 우리들,, 어는이 분지를 벗어나지 못할까. 교육,,경제,,문화,, 아니다. 내가 볼시 우리는 필시 분지를 못떠날 것이다. 왜냐하면 분지 이외는 갈 자신이 없고 두려워서 마치 개줄을 묶였다가 길거리 풀어주면 집주위만 맴맴도는 강아치처럼 울들은 도심의 개줄(?)에 묶여 사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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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 룽 지
구수한 숭늉. 주걱으로 팍팍 긁어 솥밑창 보이니 검고 티티한 밥풀떼기 즐비하다. 쌀톨 누룽지 만들어 구수한 숭늉 들이키니 그 맛 어디서 찾으리오. 전기밭솥 편리함에 솥단지 사라진지 오래거니 설탕에 찍어먹는 누룽지를 생각한다. 솥단지에 찬물부어 끓여먹은 누룽지. 김치 한 조각 걸치고 맛깔스레 먹은 저녁 한 끼. 그리고 걸축하게 들이킨 숭늉 한사발. 막걸리 탁주 한사발처럼 거나하게 들이킨 숭늉이 그립다. 누룽지 잊고 사는 우리들. 전기밭솥의 편리함에 구수한 누룽지의 숭늉을 잊은지 오래다. 구둘장 아루목에 앉아 식은 땀 흘리며 먹던 누룽지. 그 음식 그리워 냄비에 밥짓기를 시도하고 밥을 태워버린다. 밥은 탄내로 진동하였고 삼층밥을 유지 하고 있었다. 윗부분부터 먹고 맨바닥 부분은 물을 부어 누룽밥을 해먹었다. 그리고 물을 다시 부어 숭늉을 해 먹었다. 밥한끼 먹음에 구수함을 음미한 식탐. 현존 전기밥솥에서는 꿈도 못꿀 구수함이 넘쳐났건만 , 우린 솥단지의 밥을 그리워하며 살자 모른다. 인생사. 우리 모두 솥단지 밑바닥에서 누룽지 될 생각은 없느뇨,,, 왠지 밑바닥에서 느끼는 정이 더욱 구수하고 감미로운 것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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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 장 이 로 세
빗장이로세. 아흔아홉칸 대문앞에 빗장 걸치니 오가는 이 없고 종,머슴이 앞정원 개되여 지켜주네. 빗장이로세. 오가는 걸인들 문고리 잡고 꽝꽝거리거니 종놈이 놀부처럼 주걱들고 문전박대 하니 아흔아홉칸 방이 평온하네. 빗장이로세. 대문 크게 만들고 담장 높게 만들고 연못속의 잉어 쳐다보며 사는 즐거움 느낄세라 , 이웃집 불나니 부리나케 대문 열고 줄행랑이네. 빗장이로세. 각자 빗장걸고 버린 세상 호래호식 하며 살려니 오랑캐들이 침범하여 기겁하여 종놈 데리고 보따리 싸기 바쁘네. 빗장이로세. 어제온 첩살이 시골뜨기 처자 그리워 밤못 이룸에 큰아들놈의 처자문 외는 소리 요란하다. 암행어사 출두요, 암행어사 출두요, 우린 잊어버렸다. 우린 잃어버렸다. 춘향이를 살린 암행어사를. 우린 어느 순간 공중으로 부양하여 살고 있었고, 아흔 아홉칸 아닌 공중에서 새처럼 세네칸 방에서 살며 아방궁을 꿈꾼다. 허울좋은 시멘트벽에 인테리어 감각 자랑하며 가식없는 독수리 새끼인양 하늘에서 산다. 암행어사 출두요. 우리 주위에는 암행어사 없어진지 오래다. 모두 하늘로 사라졌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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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신 병 자
“ 정신병원” 용인 산자락에 있겠거니 ,관리소홀로 정신병자 길바닥에 뛰쳐나와 도시는 착란자로 넘쳐나네. 정신적 착시판단 기준점이 모호한 세상에 정신병환자 감옥 아닌 감옥에 쳐 놓고 세상은 미쳐 버리고 있다. 우리 모두가 미친 광란자이거늘 누가 미친자이고 누가 정신병자인가? 정상적 육체 가진자가 뇌 착란으로 정상인 행위를 하지못함에 , 울들은 그들을 정신병자 일켰는다. “ 정신병자” 청량리가 아닌 용인 산속에 죄인인양 가두었건만 우린 매일 주위에서 정신병자 접하고 산다. 매스컴에서,인테넷에서,주위에서 “ money” 에 미쳐 텍사스 황금개척사처럼 서로 총질하며 서서히 미쳐가 버린 정신병자를 슆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능력과 자질과 노력이 아닌 기회주의자로 득실대는 시궁창같은 세상.
최첨단 과학과 문명인으로 가득한 현대인. 그러나 현대인들은 고고한 학문과 창조적인 예술적 고화와 동굴속 벽화 집어던지고 신비의 바벨탑 쌓으며 로마제국 콜롯세움 관중으로 돌변한다. 사상가는 간데 없고 , 책 몇권 읽고 지식인 행세하며 논평가 되고 사설가 된다. 히포크라테스 선서 모른 성형외과 의사 테헤란로에 즐비하고 , 십계명 모르는 목사, 사서삼경 모르는 사상가, 백팔번뇌 잊은 스님, 육법 모르는 판사, 빌게이츠이 사회환원 모르는 사업가. 헌법 제1조 모르는 정치인, 우린 그중에 풍요속에 빈곤 외치며 59년 왕십리 부르며 서서히 진화해 왔다. 가치관은 소실되고, 강아지 밥 주는 주인 말에 충실하며 개처럼 무조건 주인에게 복종하여 노예가 된다. 청춘시절 인생관은 사춘기 일기장 이야기하며 현실에 충실하며 끝없는 인생마라톤 쉼없이 달려간다. 대법원의 로비 동상 저울 기운지 오래고, 광화문사거리 이순신장군 갈라진 한반도 남북보며 통탄할 지어다. 역사의 고고한 마포나루 사라진지 오래거니, 용산 삼각지 찾을 길 없네. 남산의 소나무 송충이 잡으러 간날 어느메뇨,, 흘러간 세월중에 변한 것이 있거니 그것은 “ 월,화,수,목,금,토,일 ” 일주일 반복되는 톱니바퀴에 한해 가는 줄 모르고, 나무그늘 시원함 모르고 늙어간 우리들. 명예도,권력,금욕도,욕망도, 넘쳐나 세상천지가 미쳐버려 우리도 덩달아 미쳐버린 현실. 내가미친 척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세상.
오늘따라 지팡이 하나들고 탁주한잔 동냥하며 삿갓쓰고 팔도유람한 김병연(김삿갓)이 부러움은 왜일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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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어(民魚)
민어(民魚). 백성의 생선이라네. 만백성의 생선이라네. 수많은 물고기 명칭중에 백성 민(民)자 앞세운 고기 없거니 하찮은 바닷물고기 한테 백성 민(民)자 덧붙힌 물고기 민어(民魚)칭함에 어찌된 일이뇨,, 세상 먹거리 천지거니 초여름부터 추석이전 목포 서남해안 신안앞바다 인근에서 한시적으로 포획한 민어가 추상같은 벡성 민(民)자로 호칭하리오. 광어,우럭,농어,참다랑어,복어,놀래미,도미,, 하구많은 바다생선중 어찌(民)자 앞세운 생선 있으리오. 본시 이조시대 한여름 복날 귀한 양반들 몸보심용으로 먹던 민어탕이 제격이거니, 어찌 천한 백성들 음식 탐하리오. 이는 양반 상놈 할 것 없이 누구나 먹거리로 즐긴 물고기로 생각되나 하찮은 바닷물고기에 천한 백성 민(民)자 덧붙어 명명하리오.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 이데올로기 민주주의의 첫단어를 바닷물고기에 칭하거니 이에 의구심 가지고 민어 유래 사전 찾아보니 민어는 백성들이 누구나 아무 부담없이 자유스럽게 먹을 수 있는 흔한 생선 이었다. 이에 의구심이 또 나온다. 고가의 물고기가 어찌 민어란 말이오. 그러나 사전을 탐독해 보니 일제 강점기 이후 인천 앞바다에서 무지한 포획으로 그 종자가 희귀해져 지금은 6월이후 제주도에서 서식한 민어들이 신안 앞바다 이외에는 포획할 수 없는 희귀종이 되어 제주도 담금바리 생선처럼 귀한 대접 받거니,, 십여년전 청와대 통치자 밥상에 공수된 민어(民魚). 민어회의 감칠한 맛과 두떠운 껍질의 바다향음을 음미함에, 통치자 음식이기전에 백성 민(民)을 염려하며 막걸리초장에 민어회 한 접 드시고, 두툼한 민어껍질 초장에 찍어먹으며 무슨 생각을 하였을꼬,,, 필시 그 통치자는 생각 하였을 것이다. 어릴적 고향에 맛이자, 지금은 귀하여 아무나 먹을 수 없는 민어 물고기가 풍유로워져 만백성이 누구나 부담없이 먹을 수 있는 민어(民魚)를 꿈꾸며 먹었을지 모른다.
엊저녁 민어회를 먹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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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水仙花)
사랑과 고결함과 신비를 간직한 꽃한송이. 푸른 벌판에 노란색 저고리, 여섯줄 초록 치맛자락 산들바람에 너풀되며 더덩실 춤을 춘다. 꽃향음 초야에 뿌릴세라 벌,나비 초대한다. 사랑의 그리움에 한겨울 참았고, 신비의 봄잔치에 온몸 자태 부려대니 주위 꽃들 시샘한다. 설중화. 한겨울에도 자태 뽐낸 꽃이여! 설중화. 이른 봄 초야의 꽃향연에 한겨울 고통 잊은채 방긋 웃는 수선화(水仙花)여 ! 한 여인이 사랑한 나르키소스. 그의 자리에 넌지시 핀 꽃 한송이. 그 꽃은 여인의 꽃 수선화요. 여인이 사모한 꽃 수선화다. 호수가의 구름비친 물가 수선화 피어나니 백조 한 쌍 마실가듯 구경온다. 사랑스런 수선화(水仙花). 어찌 추디 춘 한겨울 애닮게 꽃피우뇨.
그꽃이 노랗게 피어날 봄을 기다리며..
며느리에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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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어제,그제,그그저께
오늘. 헤푸게 쓴 일 없건만 은행잔고 새벽안개처럼 사라지고 한겨울 벌거숭이 나뭇가지 되어 한숨 짓네. 젊은 시절 무심코 버린 시간. 어디서 잘못 되었는지 모르거니 소주 한 잔 들이키며 바닷가 거닐다 산자락 모난 돌뎅이 바닷가에 조약돌 되어 백사장 나뒹굼에 반가워 한다. 오늘. 월광욕 하고저 윗저고리 벗으니 싸늘한 에어컨 바람 불어대여 추위에 움츠리니 바위틈에 노송 비죽 웃어댄다.
어제. 낙옆주어 책깔피에 꽂아보니 가늘한 실핏줄 손바닥 지문처럼 선명하다. 결혼한답시고 양복 맞추러 가고 넥타이 매고 주례선생 앞에서 사진 찍었거니 앨범책자 표절 시비 요란하다.
그저께. 초원위의 들판 토끼 잡아 뛰었거니 풀잎사이 토끼는 충혈된 빨간 눈이 낮술 취한 양 애초로워 보였다. 대전 내탑 개울가에서 가재 잡고 물방개 잡던 시절의 자손들은 잘있는지 안부 전해본다.
그그저께. 남포불 키고 물지게 하고 우물 기웃거리던 시절. 형제끼리 골목길에서 볼차며 골키퍼 연습하던 시절. 가물거리는 연어의 고향처럼 강가 거슬러 올라가 보니 보이는 것은 세월의 무심함에 사라진 초가집 돌담의 잔재뿐이구려,,
내가 기억하는 것은 오늘,어제,그제,그그저께 뿐이다. 4일만 살아온 기분이 난다. 나는 그그저께로부터 오늘까지 4일만 산 것이다. 58년 산 것이 아니라 4일만 기억하고 산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산 세월이 너무 짧다. 4일 밖에 못 살았으니 내가 기억하는 오늘. 어제. 그제, 그그저께. 기억함에 내가 산 전부건만 왜 이리 나이가 많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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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학동(靑鶴洞)마을
동포 입고 상투드리니 드라마 세트장 같은 곳. 서당 같은 마루켠에는 상투에 삿갓 쓴 훈장님이 곰방대 들고 있다. 마치 이조시대로 돌아간 풍경이 실현되는 그 곳. 낙양 읍성처럼 새끼줄 이엉으로 엮긴 초가집에는 호박덩쿨 치렁치렁 얽혀있고, 시냇가 물 흐르는 소리 크게 들리는 그 곳. 지리산 삼신봉 자락에 앉아 섬진강 물줄기 굽이굽이 쳐다보는 그 곳. 문명에 박애되고 현대가 정지된 그 곳. 그곳에는 옛 조상 같은 분들이 살고 있다. 유교,불교 혼연된 갱정유도교를 신앙으로 30여가구가 모여 사는 마을. “ 청학동(靑鶴洞)마을 ” 이로세. 물질 만능주의에 우리 주위에는 예절 가리키는 학교나 학원 없거니. 유일무일 예절 중시여기는 마지막 보루의 성지여! 예절이 무엇인지 도덕적 판단과 행위로 실천하는 것을 가리킴에 토속적 유교의 철학이 계승되는 무형문화제인 그 곳. 우린 그 곳에 가야 한다. 우린 그 곳에 가봐야 한다. “ 예절 교육도 못 받았다.”는 옛어른들의 말이 지금은 사라진지 오래다. 무엇이 예절인지 모르고 서로 고개만 저어댄다. 우린 가봐야 한다. 지리산 끝자락 청학동 마을에 가봐야 한다. 만약 청학동 마을이 사라진다면 어디에서 삿갓 쓴 훈장님 곰방대에 알밤 한번 맞아보리오. 우린 가봐야 한다. “ 청학동(靑鶴洞)마을” 에 알밤 맞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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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冬柏)
강진 백련사의 붉은 빛이여. 고창 선운사의 빨간 색이여. 여수 오동도의 레드(red) 색이여. 경첩을 알려주는 꽃망울들이여. 춘화들이 개화 하기전 넌지시 피어나는 꽃들이여. 김유정의 바보 연인처럼 순박한 꽃들이여,,, 한겨울 눈꽃 속에 묻혀 빨간색 눈망울 피운다. 동백(冬柏)꽃. 어느 누가 “ 한겨울 꽃”이라 명명 했을 꼬,, 붉은 빛 꽃망울 맺음은 동백나무의 애절함에 절로 숙연해 진다. 너무나 밝은 빨간색은 화가가 붓으로 찍어 놓은것이요, 눈부신 꽃망울은 일출의 광경을 연상케 한다. 동백꽃 향기 하늘과 땅에 진동하니 어찌 그 자태 잊으리오. 대지에 낙화된 동백꽃 그 자테 유지하니 발디딤에 조심한다. 사랑스러운 꽃이여,,, 한겨울 남몰래 동정한 세상 그리워하며 모진 바람 견디어 꽃한송이 피우니 누가 그 꽃을 꺽으리오. 로망스의 상징 동백꽃이여! 소설,시,수필,가요 등에 등장하며 사라지는 동백(冬柏)꽃이여. 그 꽃이 피어날 날 얼마남지 않았으니 우리 모두 여수 오동도. 고창 선운사. 강진 백련사로 꽃놀이 가세나. 그때를 기다리며,,, 시아버지가 며느리에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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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광 스 님
허튼 소리가 들려온다. 온갖 괴변에 듣도못한 저속한 단어 지껄이며 붓으로 달마도 그려댄다. 파계승이며 걸레 하나 들고 걸레 자청하니 “ 걸레스님” 이로세. 시읆조리니 시인이요. 붓을 드니 화가로세. 영화에 데뷰하니 영화배우요. 목탁 두드리니 중이로세. 한세상 삶에 율법 아니 터득하고 , 중생보다 못한 자신을 비하하니 중생들이 의아히 쳐다본다. 어찌 저리도 천박할꼬,,, 스님 이란 자가 음주가무 즐기며 담배대 물으니 괴이한 일이로세.
허튼소리가 들려온다. 중광스님의 번뇌에 찬 해탈의 지껄임이 속세의 무지함을 타이르듯 우리의 상식을 무너트린다. 곤지암 “ 벙어리 절간 ” 타계후 들려오는 중광스님 영혼의 외침이 생생하기도 하다.
허튼소리가 들려온다. 속어 남발하며 저속한 말 지껄이며 지식인을 비아냥 거린 무의식의 글이 나열댄다. 중사시오. 내 중을 사시오. 기인인지 파계승인지 그의 지껄임에 현혹되고 만다. 홀로 즐긴 세상. 붓으로 휘갈려 낙서하며 듣도 못한 언어구사 지껄여 대니 그의 정신세계 누가 헤아릴꼬. 지금은 고인이 되어 허튼소리 하는 이 없으려니 하건만,, 중광이 사라진 오늘. 허튼 소리가 온천지를 뒤덮으며 속세인 들을 현혹한다. 괴이하고 달콤한 허튼소리가 매일 매스컴에서 나온다. 극락에 있을 중광이 웃을지어다. “ 허튼소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여,, ”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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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수송령(花壽松齡)
보이는 산야가 드넓구먼. 산야 아니보고 하늘아래 구름 크다 하리오. 구름이 요동치니 대지 모퉁이 초라한 인생 신세지며 사니거니 광할한 대지 넓다 하리오. 어울린 인생. 소래포구 바람 쐬고 소래산 밑자락에 둥지 트니 어이 학(鶴) 한쌍 견주리오. 소래포구 갈매기 울리거니 모난 내 자식 입춘대길 기다린다. 송도유원지 추억 옛말이오. 맥아더 동상 어디있뇨. 짠 소금물에 발담그고 파도 속에 파뭍히니 소래산 소나무가지 천년지시 학(鶴) 소나무에 걸치니 백년지기 장담하며 화투짝 솔광으로 자칭한다. 두루미 천수(天壽) 소나무 백수(白壽) 엉켜보니 학수송령(鶴壽松齡 ) 이 아닌 화수송령(花壽松齡) 이로세. 입춘지나 꽃이 피어날거니 백년지기 소나무 보다 더한 아름다운 꽃이 피어날 것이니 봄꽃들 어찌 감당하리오,
시아버지가 며느리에게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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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포 (榮山浦)
영산강 굽이굽이 흘러 영산포에 이르니 홍어 삮힌 냄새 진동하고, 구수한 나주곰탕 뚝배기 끓는 소리 금계동에 요란하다. 고인돌의 장고함 수천년 유지하며 벌판에 널려지고, 배나무 언덕위에 즐비하다. 한반도 살기 좋은 곳. 사시사철 온도 온화하고 바닷뱃길 열려 바다생선 영산포에 지천이고, 오곡백과 들판에 널렸으니 어찌 백성들 굶주리오. 양반 상놈 곡주 한잔 걸치고 서편제 불러대고, 강아지 생선머리 들고 다니니 닭들이 벼슬 곧게 세운다. 5월경 피어나는 배꽃들은 온 천지를 하얗게 물들이고, 나주배 사랑예찬 한 폭의 풍경화 되어 온도시를 휘감는다. 세상에서 가장 풍요로운 곳. 그 곳 나주에는 노래가 있고 풍류가 있고 인심이 넘쳐난다. 남으로는 월출산, 북으로는 무등산 아래 호위 받으며 평화로운 시골이건만 그 명성 광주에 넘겼거니 오늘날 우리는 영산포 (榮山浦) 나주(羅州) 시를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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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 치 자
우리는 사대문(四大門)이 있었다. 동대문의 흥인지문, 서대문의 돈의문, 남대문의 숭례문, 북대문의 숙정문. 성곽으로 둘러쌓인 그 곳은 주요관직의 벼슬아치와 백성이 어울린 공간이었다. 엄격한 통제와 일반 왕래가 슆지 않았던 그 곳에는 만백성의 임금이 거주하는 곳에 충직한 신하와 백성이 함께 거주하는 지엄한 곳이었다. 지금의 종로, 청계천, 인왕산을 주축으로 엄연히 구분된 지엄한 곳이었으나, 지금은 두 개 대문만 존속할 뿐.. 그래서인지 지금은 자유 분망하게 누구나 지나다는 곳이 되어버렸다. 제왕과 왕족의 신주를 모시는 종묘와, 정도전이 기술한 토지.제사신을 모시는 사직단, 남쪽으로는 덕수궁을 거두고 있었거니 중앙의 경복궁. 그곳에는 경회루와 비원 , 창덕궁을 거느리고 경복궁의 정문 격인 광화문이 있다.
하찮은 만백성들이여! 지엄한 광화문 문고리 누가두드려 보리오.
우리는 생각해 본다. 이조시대 임금통치하에 있던 근정전. 경복궁 안에 통치자인 나라님을 모신 조상님. 수백년이 지난 지금도 우린 조상님들 깃어린 그 자리에 임금 모시고 사는지 모른다. 국보급 문화재 중앙에 통치자를 옥좌자리에 앉히고,북악산 근처 얼씬도 못하니, 청와대 자리가 이조시대 만백성의 우상화로 비쳐지는 성지가 되어버렸다. 중국으로 말하면 자금성 안에다 청와대를 두었다는 이야기,, 우리는 지금 청와대의 진실을 알고 싶다. 어찌 문화재 안에다 통치자를 두었을꼬,, 경복궁의 경회루 불이 연못가에 휘영 찬란 하거니, 외국 관광객 앞에 이조시대 재현하거니 불현 듯 문화재속 청와대. 현존 통치자를 어찌 임금이나 국왕이라 하리오. 임금 아닌 국왕이 이조시대인양 “ 여봐라..”하며 세종로에 우렁차게 울려퍼지니 우리는 지금 이조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찮은 백성중 누가 광화문 문고리를 두드려 보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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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수 셈
“ +” 자가 다니니 개신교요. “ - ” 마음에 새기니 불심이요. “ 0 ” 종탑위애 보이거니 원불교요. “ ☆ ” 가슴곽 저고리에 새기니 유태인이다.
어울린 인생. 사실 종교 상징 표기함에 나홀로 객관적 판단을 지껄여 본다. 물론 괘변 일 수 있다.
“ + ”를 십자가로 표기한 개신교. 예수님 로마제국 십자가 짊어지고 시온산에서 사지 못박혀 천당으로 가시게니. 아이러니하게 로마군들은 어찌 예수에게 십자가 나무에 못을 박고 박해 하였을꼬,,, 내가 보기에는 죽음에 이른 육체 이탈후 영혼의 삶을 재현시키려는 더하기(+)함에 삶과 죽음의 엄현한 현실을 죽음의 미화책으로 더하기 위해 한 것은 아닐는지.. 그래서 인지 도시는 별빛 못지 않은 십자가(+)가 도심을 뒤엎고 있다. 그러나 실체는 크로마뇽인 샤머니즘의 동굴벽화 인지도 모른다.
“-”의 불심. 한자로는 “ 한일” 자요. 아라비아 숫자로는 마이너스이다. 불심은 “ 정신일도하사불성”을 강조하며 만물을 터득하고 자신의 초라함을 인식하고, 천지에 융화함을 원칙으로 한다. 불교는 일심(一心)이요. 자신을 버리라는 마이너스(-)인 것이다. 즉 자신을 버려야 터득할 수 있는 세상을 뜻한다. 그래서인지 사찰의 성지는 모두 버리라는 어절로 가득차다.
원불교의 (0)는 새상의 교리 끝이 없으며 모든 만생은 둥그러운 원안에서 포효하고, 우주의 모든 것을 수용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둥그런 원그리기를 가볍게 여긴다.
별(☆)를 기리는 유태인들. 깊은 내막은 알 수 없으나 다윗의 별을 상징하는 것으로 기인한다.
우린 생각해 본다. 더(+)해보고 빼(-)보니 영 (0) 이로세. 그중에 별(☆)을 만나고 사니 그것이 우리 인생 아닌가벼,,,
더하거니 빼거니 제로거니 별이거니 , 삶에 중요한 것은 산수시간의 아라비아 숫자 덧셈 뺄셈이 아닌 그 숫자를 인용한 종교 창시자들의 상징성에서 또다시 의아해 본다. 왜 그들은 십자가 짊어지고 더하기 셈 알리고 일심자 내세우면 빼기 셈하며 불자들에게서 봉양받으니 , 진정 그들은 초등생처럼 우리들에게 더하기 뺄셈을 가르칠려 하였을까,, 그것을 알 시는 저 세상에나 갔을시 알법한 산수셈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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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 케 치
흰 도화지에 연필로 스캐치 해본다. 산봉우리 두세개 그리고 , 하늘에는 두리둥실 구름도 그려보고, 바람에 흔들리는 메타세콰이어 가지도 그려본다. 싸래기 담장의 복실이 강아지도 그려보고, 정자에서 한가로이 낮잠 주무시는 어른신 옆모습도 그려본다. 우리칸에서 여물먹는 소도 그려보고, 들판의 야생화도 그려보고, 굴뚝에서 피어나는 장작피는 연기도 그려보고, 마당의 들깨타작도 그려본다. 저멀리 간이역도 그려보고 들판을 가로지르는 기차도 그려본다. 경운기로 밭일구는 농사꾼도 그려보고, 개울가에서 빨래하는 아낙네들도 그려본다. 장작 한가득 지게에 지고 가는 신작로 나무꾼도 그려보고, 하교하는 동네 꼬맹이들도 그려본다. 신작로 자전거 타고 가는 우체부 그려보고, 버스정류장에서 졸고 있는 어르신 그려본다. 그리고 맨 나중에 내 집을 그려본다. 그리고 웃는 우리 가족을 그려본다. 그리고 맨 끝에 내 얼굴을 그려본다. 그리고 그려본다. 어제 꿈속에서 본 내 아가를 ,,,,,
시아버지가 며느리에게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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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부작신(換腐作新)
무엇이 삶이요. 무엇이 자아인가. 자아도취(自我陶醉)에 빠져 흐느적 거려본다. 자신의 한량한 밑바닥을 찾아내고 자신의 모든 것에 만족한다. 내가 실현코자 했던 꿈도, 내가 버리고자 한 허구도 모두 자아의식 중에 빠져 건져내 본다.
무아지경(無我之境)에 빠져 본다. 자신을 잊고 세상 만물에 혼신을 잊어버린다. 자신보다 더 한층 아름다움에 심취하여 자신의 영혼과 육체를 내팽겨치고 멍하니 혼령없는 귀객이 되어 본다.
우린 젊은 시절 자아도취에 빠져보기도 하고 무아지경에서 헤매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순(耳順)에 즈음하여 말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나이인 즉,
환부작신(換腐作新).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드리거니, 우리에게 지금 가장 어울린 사자성어가 아닐는지..
묵은것과 나쁜 것 따위를 새것으로 바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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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 두
표고버섯,소고기,양파,당근,파프리카에 당면 섞어 후라이팬에 뒤섞여 잡채 만들어 본다. 돼지고기,당근,파,,두부,버섯에 계란 옷입어 식용유 튀겨서 동그랑땡 만들어 본다. 엿기름 부풀려 삵힌 쌀톨에 부어서 식혜 만들어 본다. 돼지고기,부추,김치,버섯,파 섞어서 만두 만들어 본다.
녹두,고사리,도라지,양파,숙주,김치,마늘 뒤섞혀 식용유에 어울린 녹두빈대떡.
녹두 빈대떡이 을시년스레 제사상 한자리 차지하고 미식가 현혹한다. 녹두 빈대떡... 빈대떡의 상징이 된 서민 음식 녹두여! 좌포우혜,오동육서,홍동백서,, 차례상 차림에 녹두빈대떡이 돋보임은 왜일꼬,,,, 생동숙거에 의해 왼쪽에 있는 음식이니, 녹두빈대떡이 제사상 한자리 차지한다.
“ 새야 새야 녹두밭에 앉지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간다. “ 전봉준 장군 읆조리니 ,, 청포장수의 투명한 청포묵. 제사상 아닌 말안장에 우렁차건만,,
우린 먹어본다. 녹두빈대떡을,, 고결한 살결 어디서 찾아보고, 결백한 마음 어디서 만나보고 먹어보리오.
그리고 우리는 녹두의 청렴함과 결백함을 청포묵에서 또다시 어울려 본다.
청포묵,, 속이 다 보이는 투명한 청포묵, 유일무일 투명함을 다그치는 청포묵이여! 투명한 음식의 고결함과 순백함이 동보이는 청포묵,, 조상님과 어울려 먹는 청포묵,,
구정날 온 가족이 청포묵 먹음에 몇 달 후에 태어날 * * 도 같이 청포묵에 숟가락질을 하고 있었다.
시아버지가 며느리에게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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