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0. 주의세례축일. 성남동성당. 유낙준주교.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 나타나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라. 그러면 죄를 용서받을 것이다“하고 선포하였다(마르1:4). Turn away from your sins and be baptized, and God will forgive your sins.”
당신은 그리스도를 향합니까? 예. 나는 그리스도를 향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일체의 하느님의 이름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아멘.
주교의 지팡이를 Crozier 크로이져라고 부릅니다. 라틴어로는 Baculus Pastoralis 바쿨러스 파스토랄리스로 목자의 지팡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공회에서는 Holy Baculus 거룩한 지팡이로 聖杖성장이라 부릅니다. 성장을 주교의 지팡이라 하는데 성장의 위가 구부러져 갈고리 crook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양떼를 돌보라”는 주교단의 말씀과 함께 주교지팡이를 건네받습니다. 주교가 사목에 열심히 하라는 의미로 신도들과 늘 관계깊은 영적인 주교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구부러진 곳이 미사집전시에는 신도를 향하고 주교 스스로를 위한 감사성찬례때에는 구부러진 곳이 주교 자신을 향하게 합니다. 오늘은 교회의 신도를 위한 것이니 성장 위의 구버진 곳이 신도를 향하는 것입니다. 크로이져를 보좌가 잡을 때에 어깨에 걸친 두손이 들어가는 비단 베일천을 뷤파Vimpa라고 합니다. 하느님을 섬기는 물건을 항상 거룩하게 모시기 때문에 그냥 손으로 만져서는 안된다는 뜻으로 뵘파의 가장자리에 손이 들어가 손이 보이지 않게 하여 크로이져를 받드는 것입니다. 뉴욕교구의 신알랜주교님이 사목했던 성당에서는 지금도 이 vimpa를 사용합니다. 크로이져를 평소에는 Sudarium수다리움(포)이라는 천덥개로 덮어둡니다. 거룩하게 모시는 마음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본성이 거룩성이니까요. 하느님의 본성을 닮은 사람이라 하여 거룩한 백성으로 聖徒성도라 부르는 것이고 하느님의 본성인 거룩성이 공동체를 싸고 있기에 우리 교회를 거룩한 공교회로 聖公會라 부르는 것입니다.
구부러진 지팡이 크로이져의 맨끝은 한 점을 상징합니다. 저는 이를 우주의 시원이 한 점에서 시작하였다는 빅뱅의 이론을 떠올리게 합니다. 137억년 전에 한 점이 폭발하여 그것이 지속적으로 팽창하는 가운데 우주가 이뤄어졌다는 빅뱅이론은 벨기에 조지 르네뜨르신부님이 1927년에 만든 것입니다. 지금도 계속하여 우주가 팽창하는 이 이론은 라듸오의 주파수를 마추기 전에 지지직 거리는 소리가 빅뱅의 메아리라는 것입니다. 무수히 많은 밀도와 중량을 지닌 것들이 우주의 시간의 곡선을 그리면서 무수한 작은 공간 안에 거대한 덩어리가 포함된 한 차원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현대과학이론의 한 지점서 우주가 시작되었다는 것과 양떼를 돌보라는 전통적인 교회의 생각을 결합해 보고자 한 것입니다. 물리적인 법칙들을 우리가 다 알 수 없고 그것들을 다 작동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하느님의 크심에 엎드릴 수밖에 없음을 알고 겸손히 살라는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니까 전에는 산에서 자란 한 나무가 지팡이가 되었는데 이것을 알고부터는 주교의 지팡이 크로이져가 우아하고 기품있는 신앙의 길을 열어 주는 구부러진 원호로 우리가 신앙의 눈인 영적인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큰 우주 앞에 인간은 아주 작디작은 존재일 뿐인데 크신 분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니, 복받은 존재가 인간임을 알게 해주는 것이 주교지팡이 크로이져라는 것입니다.
믿음과 과학, 감정, 지식간의 대화를 시도함으로 새로운 세계를 보는 신기함을 갖게 하는 크로이져입니다. 그 시작이 믿음에 젖은 시와 노래와 모든 예술로 표현되어도 부족할 싯귀절입니다.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어내셨다(창세1:1). In the beginning, When God created the universe.” “땅은 아직 모양을 갖추지 않고 아무 것도 생기지 않았는데, 어둠이 깊은 물 위에 뒤덮여 있었고 그, 물 위에 하느님의 기운이 휘돌고 있었다(창세1:2). ”하느님께서 “빛이 생겨라!”하시자 빛이 생겨났다(창세1:3).” “그 빛이 하느님 보시기에 좋았다(창세1:4).” 전에는 모든 것이 있었고 거기에 하느님이 계셨습니다. 수많은 하느님이 아니라 한 하느님이 계신 것입니다. 물 위를 움직이는 하느님의 숨결이 하느님으로부터 온 바람입니다. 모양이 갖춰지지 않은 삶에 하느님의 숨결이 온다면 어떻게 될까? 고독하고 외롭고 황량한 삶에 하느님의 숨결이 오신다면 어떤 인생이 될까? 전에는 땅과 생명의 모든 조직체와 이상하고 괴기한 것이 억제되고 삼가하는 창조가 일어나는 매일매일이 있은 후에 빛이 비쳤습니다.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으로 종결된 창조의 것만 보신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느님께 창조하시도록 내 맡겨야 합니다. 그것이 하느님을 믿는 사람의 태도입니다.
요한복음의 시작은 창조의 시작과 같은 단어를 사용합니다. “한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으신 분이셨다(요한1:1). In the beginning the Word already existed:” 한처음이라는 싯귀절의 단어는 신약시대에서도 같이 사용합니다. 이는 예수님이 이해하는 시각으로 표현을 한 단어입니다. "예수님이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예수님이 하느님이시고, 예수님이 오시기로 하신 분"이심을 고백합니다. 여기서 복음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한처음"의 단어가 구약과 신약성경에서 모두 사용합니다. 이는 "한 처음"부터 복음이 동시에 시작되었다는 뜻입니다. 한 처음에 하느님이 함께 하셨다는 말씀이십니다. 예수님이 하느님과 함께 하셨다는 것입니다. 모든 일들은 하느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입니다. 그가 없이는 하나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고백으로 우리가 존재한 근거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 안에 존재하기 위하여 하느님 안에 온 모든 것들은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 생명이 모든 사람들을 비칩니다. 빛이 어둠을 비칩니다. 어둠은 빛을 극복하지 못합니다. “한처음에 하느님이 창조하셨고 인간에게 빛을 가져오시고 생명을 가져오셨습니다.” 이 선포가 우리 안에서 어떻게 울려퍼져 더 큰소리를 내고 있습니까? 하느님은 나와 당신을 창조하시고 이는 우리의 생각이 아니고 지속되는 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삶 안에 빛을 주셨고 의미를 주셨습니다.
오늘 마르코복음에서는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예수님이 세례를 받습니다. 창조이야기(창1:1-5)와 오늘 마르코복음 1장(4-11절)의 공통점은 물입니다. 예수님은 물에 가까이 오셨고 물에 잠기셨고 물에서 올라오셨습니다. 거기에 하느님의 영이 계셨습니다. 거기에 새생명이 있습니다. 거기에 확신의 선언이 있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너와 함께 하는 나는 매우 기쁘다(마르1:11).” 세례를 통해서 자신을 완전히 알아차리게 되었고 자신의 인생목적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생명 안에서 우리의 목적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세례성사는 우리에게 우리가 왜 사는지에 대한 답을 주기 때문에 세례성사를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례를 통해서 우리가 사람과 사물에 대해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세례성사라는 기준과 규범 안에서 우리는 생명 안에서 목적을 알고 우리 자신을 그 생명으로 묘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인하여 우리의 믿음이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정체성과 우리의 인생목적을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를 통해서 얻습니다. 새해가 시작되는 시간에 우리는 오래전에 읽었던 신앙교리 공부시의 약속을 끄집어내 봅니다.
첫째,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습니까? 예. 믿습니다.” 사제의 이 질문 후에 "예수님을 믿는다는 의미가 무엇인지요?"라고 재차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매일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요?"라고도 질문을 합니다. 이는 우리의 존재 자체인 신앙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숙고하게 합니다. 둘째, “당신은 당신의 죄를 회개합니까? 나는 나의 죄를 회개합니다.” 세례성사시에 12질문중의 9번 문항에서 “죄에 빠졌을 때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오겠습니까?”라는 질문에 “예.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답을 하였습니다. 여기서 사용되는 Sinful은 죄많은, 죄있는, 죄받을 이라는 뜻인데 "죄가 무엇을 의미합니까?" 또한 "회개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왜 용서가 필요합니까?" 셋째, “당신은 이기적인 생활을 거절하십니까? 나는 거짓과 부정직한 이기적인 삶 모두를 거절합니다.” 이 세 번째 질문에 답을 하면서 다시금 첫째 질문에 답이 떠오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이 한처음의 창조사역을 하신 하느님과 관계맺어 창조사역을 우리가 이어가는 것입니다. 바로 성공회 신앙이 그러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선포하였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