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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횡단보도 사고 母子의 악몽
파란불에 횡단보도 건너던 母子 ‘쾅’… 생후 두달 아들 뇌손상, 끝없는 고통
그래픽 김충민 기자
어머니와 아들의 비극은 횡단보도에서 벌어졌다. 2001년 1월 28일. 대구 서구의 한 횡단보도에 서 있던 윤정임(가명·당시 24세) 씨에게 여느 하루와 다름없는 날이었다. 태어난 지 두 달 된 아들에게 예방접종을 맞힌 뒤 가족의 저녁 찬거리를 무엇으로 할지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빨간불이 파란불로 바뀌고 왕복 10차선 도로를 중간쯤 건넜을까. 하얀색 승용차가 윤 씨 모자(母子)를 덮쳤다. 쾅 하는 굉음 저 멀리 정신이 아득해졌다. 당시 사고보고서에 따르면 윤 씨와 아들은 차에 부딪혀 15m 이상 날아가 길바닥에 떨어졌다. 아픈 줄도 몰랐다. 누군가 계속해서 뺨을 때렸다. 정신 차리라고, 괜찮으냐고. 한겨울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윤 씨는 본능적으로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우리 애를 구해주세요. 아이를 살려주세요.”
윤 씨가 다시 눈을 뜬 건 인근 대형 병원이었다. 고통스러웠지만 정신은 말짱했다. 오른쪽 골반 뼈 골절. 전치 12주였다. 더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진짜 불행은 아들에게 닥쳤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김정현(가명) 군의 자그마한 몸은 처참할 만큼 심각했다. 두개골 양측이 부서졌고 뇌까지 손상을 입었다. 의사는 “긴급 수술 끝에 목숨은 건졌다”고 했다. 처음엔 살았으니 됐다며 울고 또 울었다. 하지만 악몽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윤 씨 가족의 고통은 20년째 이어지며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는다. 단 한 번의 교통사고로 인해.
▼ 파란 불이라 건넜을 뿐인데… 엄마는 20년째 지옥에 삽니다 ▼
“옥에 갇힌 것보다 더 큰 고통 속에서 20년을 살아가고 있어요.”
피해자 윤정임(가명) 씨는 지금도 새벽이면 소스라치게 놀라며 잠에서 깬다. 사고를 당하던 때의 충격, 아픔, 그리고 그보다 더한 절망감. 그날 아들의 접종을 하루 미뤘더라면, 그 길이 아닌 다른 길을 택했더라면, 3초 더 속으로 센 뒤 길을 건넜더라면….
당시 가해자 유모 씨(당시 57세·여)는 사고를 낸 뒤 뺑소니를 쳤다. 다른 시민들이 적극 나선 덕에 멀지 않은 곳에서 붙잡혔다. 경찰 조사 결과 운전 실력이 미숙한데 술까지 마신 채(혈중알코올농도 0.099%) 운전대를 잡은 사실이 드러났다. 유 씨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도주치상)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유 씨에게 내려진 형량은 고작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었다. 재판부는 “유 씨가 잘못을 뉘우치고 있고, 윤 씨 가족이 7000만 원을 받고 합의한 점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윤 씨 남편이 당장 수술비가 급해 받은 돈이 유 씨에게는 자유의 기회가 됐다.
○ 운전자 과실로 멈춰버린 아이의 인생
사고 이후, 아들 정현의 시간은 그 순간에 멈춰버렸다. 숨넘어갈 듯 간질과 경기를 반복해 윤 씨는 아들을 들쳐 업고 하루에도 몇 번씩 병원 응급실을 들락거렸다. 2010년에는 대뇌 반구 절단술도 받았다. 말 그대로 뇌를 잘라냈다. 간질이 심해져 만성 뇌전증으로 악화된 탓이었다. 윤 씨는 “위험한 대수술이었지만, 낫기 위한 게 아니었다. 생명이라도 유지하려는 마지막 수단이었다”고 했다.
정현은 지금도 간질과 경기를 반복한다. 올해로 스무 살이 된 아들의 정신연령은 여전히 3세다.
피해가 덜한 줄 알았던 윤 씨도 몸이 나빠졌다. 제때 재활치료를 받지 못하고 아들에게만 집중해서였다. 점점 심해진 사고 후유증으로 이제는 오른쪽 다리를 절고 있다.
가계도 급격히 기울었다. 합의금 7000만 원은 금세 사라졌다. 병원비를 감당하느라 자가(自家)에 살던 가족은 전세로 월세로 집을 줄여갔다. 부부싸움도 잦아졌다. 시댁은 갈수록 윤 씨를 죄인 취급하는 눈초리를 보냈다. 더 이상 가정을 유지하기 어려워 2016년 남편과 이혼했다.
버거울 때마다 극단적인 생각이 윤 씨의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정현을 차에 태우고 가다 보면 ‘핸들 한 번만 꺾으면 모두가 편해지지 않을까’란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윤 씨는 “그때마다 룸미러로 보이던, 아무것도 모르는 아들의 해맑은 미소를 보며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했다.
○ 보행자 사상자가 한 해 4만7887명
이들 가족의 불행은 결코 남의 얘기가 아니다. 보행자를 배려하지 않는 운전문화가 개선되지 않는 한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교통사고 피해로 지원받은 이들은 36만3616명에 이른다. 공단 관계자는 “적지 않은 수지만, 여전히 더 많은 이들이 지원을 필요로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보행자 교통사고(2018년 기준)는 4만5921건. 사상자는 사망자 1487명을 포함해 4만7887명이다. 이 가운데 신호위반으로 인한 교통사고가 2만7921건이나 된다. 횡단보도에서 사고를 당한 보행자는 1만3416명. 목숨을 잃은 이도 344명이다.
이런 사고는 사고로만 끝나지 않는다. 윤 씨 가족처럼 가족의 평생이 망가진다. 정현을 돌보느라 경제활동도 쉽지 않은 윤 씨. 기초생활수급자로 전락했고, 그나마 공단이 2017년 6월부터 가족에게 매달 장학금 40만 원과 재활보조금 20만 원을 지원해 버티고 있다. 지난해 말 벤츠코리아가 전동휠체어도 보내줬다.
더 큰 문제는 가슴에 맺힌 피멍이다. 정현은 여전히 용변도 혼자 보질 못한다. 뇌 손상으로 성장을 멈춰 몸의 절반도 사용하질 못한다. 윤 씨는 우울증 약을 복용한다. 누군가에겐 ‘한 번의 실수’가 어느 가족에겐 ‘평생의 멍에’가 돼 버렸다.
▼ ‘횡단보도앞 무조건 멈춤’ 법안 3년째 국회에 ▼
한국의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꾸준히 줄어 최근 2년째 3000명대를 유지했다. 한데 정부 목표인 ‘2022년까지 교통사고 사망자 2000명대 진입’을 이루려면 정비가 필요한 법안이 많다. 동아일보가 전문가 조언을 받아 다음 21대 국회에서 통과돼야 할 주요 교통안전 관련 법안들을 추렸다.
지난달 27일 대전지방법원에선 지난해 9월 충남 아산의 한 중학교 정문 앞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횡단보도에서 숨진 김민식 군(당시 9세) 사건에 대한 1심 판결이 있었다. 재판부는 차량의 속도가 시속 22.5∼23.6km 정도로 속도 규정을 어기지 않았던 점을 인정하면서도 가해 운전자에게 금고 2년형이란 이례적으로 중형을 선고했다.
전문가들은 횡단보도 보행자 보호를 강화하는 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줄곧 피력해왔다. 한상진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적어도 횡단보도가 시작되는 위치에서 시야 확보가 되지 않는 경우엔 차량을 의무적으로 멈추는 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20대 국회에선 스쿨존은 물론 모든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서 의무적으로 차량을 일시 정지하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상임위에 계류돼 있다.
2018년 대전의 한 아파트단지에서 교통사고로 5세 여아가 숨지며 ‘도로외구역 보행자 보호’에 관심이 커졌다. 이 관련 법안 역시 계류돼 있다. 법적으로 ‘도로’로 규정한 곳의 보행자 보호 의무만 규정한 현행법을 바꿔 아파트 단지와 학교 내, 주차장 등 도로외구역까지 확대하자는 게 법안의 골자다. 한 교통전문가는 “사적 영역에 경찰권을 동원하는 것에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아 법 개정 관련 협의체의 논의가 겉돌고 있다”고 했다.
차량 리콜 건수가 늘며 사고기록장치(EDR·Event Data Recorder) 공개 범위 확대가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국토교통부가 운영하는 자동차리콜센터에 따르면 리콜 건수는 2013년 100만 대 수준이었지만 2017년 이후 200만 대를 넘었다.
국회에선 사고 전후 페달 조작이나 엔진 상태 등을 실시간 기록하는 EDR의 공개 범위를 확대하는 법안이 지난해 6월 발의됐지만 상임위를 통과하지 못했다. 차주 및 운전자로 제한된 EDR 공개 범위를 확대해 경찰이 제조사와 판매자에 요구할 수 있게 하자는 내용이다.
지난해 여객 운송에 사용되는 차량에서 시동 전 음주 여부를 측정해 음주가 확인되면 시동이 걸리지 않는 ‘음주운전 시동잠금장치’를 의무 장착하는 법안도 발의됐지만 아직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성렬 삼성교통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음주운전은 습관적으로 반복된다. 상습 음주운전자 사고 예방을 위해 필수”라 했다.
전기자전거, 킥보드 등 퍼스널모빌리티(PM)는 이용자가 늘면서 사고 건수도 늘고 있다. 하지만 법적으로 PM에 대한 명확한 정의조차 없다.
<18>인도 위 민폐 유발 불법방치물
23일 점심 무렵 찾은 서울 종로구 동대문역 9번 출구 앞 동대문종합시장은 인도와 도로를 가리지 않고 주차된 오토바이들로 가득했다. 대부분 주변 상가의 의류 부자재를 옮기기 위한 ‘배달’ 오토바이였다. 불법 주정차 중인 오토바이 수십 대가 좁은 1차선 도로의 양쪽뿐 아니라 인도 위까지 점령해 보행자들이 도로로 나와 아슬아슬하게 차량을 피해 다녀야 했다.
퇴근 시간대인 이날 오후 6시경 서울 강동구 천호역 5번 출구 앞에도 폭 5, 6m의 넓은 인도가 있었지만 정상적인 보행이 어려운 상태였다. 인도 위에 방치된 전동 킥보드와 불법 옥외 광고물 사이로 보행자들이 뒤엉켰다. 인근에 사는 이모 씨(33)는 “출퇴근 때 인도 위에 주차된 전동 킥보드 등에 부딪혀 넘어질 뻔한 적이 많다”고 토로했다.
○ 널브러진 전동 킥보드 피해 아슬아슬 보행
인도 위 불법 방치물로 인한 시민 불편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특히 전동 킥보드가 크게 늘어나면서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보도블록 위에 전동 킥보드가 널브러져 있는 경우도 많다. 시각장애인은 케인(시각장애인용 지팡이)으로 점자 블록의 촉감 등을 느끼며 걷는데, 갑자기 전동 킥보드가 나타나면 ‘도로 위 벽’처럼 느낄 수밖에 없다. 공유 전동 킥보드 업체 관계자는 “이용자에게 주차구역을 준수해 달라는 공지를 하고 있지만 강제성이 없어 잘 지켜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보행자들의 민원은 빗발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에 접수된 전동 킥보드 관련 민원은 2016년부터 3년 동안 연평균 430건 수준에서 지난해 1927건으로 폭증했다. 올해에는 지난해보다 약 두 배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전동 킥보드의 인도 위 주정차 문제는 명확한 규정이 없어 사실상 단속 사각지대에 놓인 상태였다.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이런 문제를 고려해 이달 초 전동 킥보드의 주정차 금지구역을 발표했다. 횡단보도와 점자블록, 엘리베이터 입구 등 안전에 취약한 13개 구역이 포함됐다. 하지만 지자체 조례 제정 등의 절차가 필요해 현장에 적용되기까지는 상당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 “거치대 설치 등 근본 해법 찾아야”
인도 위 불법 주정차 오토바이들로 보행자들이 불편을 겪는 곳도 많다. 대표적인 곳이 서울 종로3가역부터 동대문역까지 이어지는 청계천 상가 일대다. 안 그래도 폭이 좁은 인도 위를 덩치 큰 오토바이가 차지하면서 일부 시민들이 인도 보행을 포기하고 도로 위를 걸어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인근 학원 수강생 김모 씨(21)는 “이 근방에서는 인도 위보다 도로 위를 걷는 게 편하다”며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매번 같은 모습이라 이제 익숙하다”고 전했다.
도로교통법상 이륜자동차가 주차장 외의 장소에 주정차를 하거나 보도 위를 주행할 경우 각각 3만 원, 4만 원의 범칙금이 부과된다. 하지만 인도에 오토바이를 세워놓는 운전자 상당수가 택배기사 등 생계형 근로자여서 경찰과 지자체 등 단속당국도 적극적인 단속에는 나서지 못하고 있다.
인도 위 미관을 해치고 보행자 불편까지 초래하는 불법 옥외 광고물도 단속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낮에는 사라졌다가 밤이 되면 화려한 불빛을 뽐내며 등장하는 풍선 광고물이 대표적이다. 이런 옥외 불법 광고물을 설치할 경우 500만 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되지만 관리 주체인 자치구의 단속 인원이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서울시는 불법광고물 시·구 합동 기동 정비단을 운영하고 있는데 서울 전역을 단속해야 하는 인원이 모두 9명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전동 킥보드와 오토바이가 인도 위를 점령하는 문제를 단속만으로 해결하기에 한계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법령 및 조례 개정 등으로 관련 기준을 명확히 설정하고 동시에 불법 주정차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도경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과거 자전거의 인도 주정차 문제가 대두됐을 때 거치대 설치 등의 해결방안을 마련한 것처럼, 효과적인 단속방안과 제도적인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며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인도 위 불법 방치물 문제 해결에 참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홍보와 지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19> ‘안전 강화’ 서울형 스쿨존 표준모델
11월 26일 서울 성북구에 있는 석관초등학교. 이 학교 주변에 지정돼 있는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은 기존에 알던 스쿨존과는 크게 달랐다. 50m 이상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서도 눈에 띌 정도로 스쿨존 전체가 어두운 붉은색(암적색)으로 포장돼 있었다. 바로 서울지방경찰청과 서울시가 손을 잡고 설계한 ‘서울형 스쿨존 표준모델’이다.
스쿨존 여부를 식별하기가 예전보다 크게 수월해지면서 벌써부터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주변을 지나던 한 운전자는 “인근에 지하철역과 시장 등이 있어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이지만 스쿨존이 한눈에 들어와 표지판이나 내비게이션 안내 없이도 자연스레 브레이크를 밟게 된다”고 전했다.
○ “스쿨존에서 급브레이크 소리 사라져”
석관초 스쿨존은 현재 서울형 스쿨존 표준모델이 처음 시범 운영되는 장소. 경찰 관계자는 “서울 초등학교 가운데 교통사고 위험이 높은 곳을 선정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해당 지역은 학교 앞 2차선 도로 건너편에 문구점과 학원, 분식집 등이 있어 도로를 부주의하게 건너려고 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았다.
서울형 스쿨존은 전 구간 도로를 암적색으로 미끄럼 방지 포장을 한 것 외에도 다양한 안전장치가 마련됐다. 비 오는 날에도 야간에 운전할 때 어린이보호구역인 것을 쉽게 인식할 수 있도록 스쿨존 시작 지점에 발광다이오드(LED) 표지판을 설치했다. 아이들이 주로 통학하는 건널목에는 ‘고원식(高原式) 횡단보도’를 마련했다. 이 횡단보도는 도로보다 높게 만들어 과속방지턱 기능도 한다. 보행 신호등도 차별화했다. 길을 건널 수 있는 녹색불이 들어오면 “좌우를 살피세요”라는 안내 목소리도 함께 흘러나온다. 또 곳곳에 신호·과속 단속 카메라와 실시간 속도측정기를 설치해 차량 감속을 유도했다.
인근 주민들은 “과거보다 훨씬 안전해졌다”며 반가워했다. 학교 건너편에서 문구점을 하는 A 씨는 “과거엔 제한 속도는커녕 신호도 지키지 않는 차들이 정말 많았다. 문구점에 있으면 일주일에 2, 3번은 급브레이크를 밟는 소리가 들렸는데 이젠 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학교 보안관인 B 씨는 “교문 앞에 늘어서 있던 불법 주정차 차량들이 없어진 점이 가장 후련하다”고 했다.
개선을 바라는 의견도 있었다. 이곳을 지나던 운전자 이모 씨는 “암적색 도로가 너무 넓게 깔려 있어 오히려 경각심을 떨어뜨리는 측면도 있다”며 “주요 통학로를 중심으로 암적색 포장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 학부모는 “미끄럼 방지 포장이 너무 거칠어서 아이들이 실수로 넘어졌다가 상처를 입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 다양한 아이디어로 어린이 보호
지방자치단체들의 어린이 보호를 위한 노력도 활발해지고 있다. 2019년 말 국회를 통과한 개정 도로교통법(일명 민식이법)에 따라 전국 지자체는 2022년까지 초등학교 어린이보호구역에 과속 단속 카메라를 설치해야 한다. 이에 더해 다양한 시설 개선을 위한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겨 어린이 교통안전에 더욱 힘을 쏟고 있다.
서울 서초구가 2018년 전국 최초로 도입한 ‘활주로형 횡단보도’는 전국으로 확산되는 추세를 보인다.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의 양옆 바닥에 LED 유도등을 매립해 횡단보도가 더욱 두드러져 보이는 효과를 주는 시설이다. 서울 종로구는 올해 어린이보호구역에 진입하는 이면도로에 노란색 정지선을 설치했다. 정지선과 같은 45cm 폭의 차선테이프에 ‘어린이보호구역’ 글씨를 음각으로 새겨 바닥에 부착해 운전자에게 경각심을 주는 효과를 낸다. 서울 노원구, 구로구는 횡단보도 진입 부위 바닥에 LED 신호등을 깔아 시선을 아래로 둔 보행자들도 쉽게 신호 변화를 알 수 있게 했다.
<20·끝>헷갈리는 교통약자 보호구역(12.18)
최근 서울 관악구에 있는 한 노인복지관 앞에서 도로교통공단 마스코트인 호동이와 호순이가 어르신 보행자들과 함께 노인보호구역 표지판을 들고 홍보 활동을 하고 있다.
15일 서울 종로구의 한 전통시장. 거리에 늘어선 상점을 따라 이어지던 보도가 블록이 나뉘는 지점에서 갑자기 끊겼다. 캐리어에 물건을 싣고 시장을 거닐던 시민들은 자연스레 이면도로로 내려와 차량과 섞여 걸었다. 전통시장 특성상 상당수가 머리가 희끗한 어르신 보행자였지만, 이곳에 노인보호구역(실버존) 등 고령 보행자를 보호하는 장치는 보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반응 속도가 더딘 고령 보행자들은 차와 부딪칠 수 있는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었다.
○ 실버존, 꼭 경로당 앞에만 만들어야 하나
국내 도로에는 교통 약자의 안전을 위한 다양한 보호구역이 존재한다. 가장 잘 알려진 건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이다. 어린이 교통사고 여러 건이 여론의 주목을 받으며 법 개정은 물론이고 시설도 많이 개선됐다. 하지만 다른 보호구역들은 아직 그 중요성이 제대로 인식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곳이 실버존이다. 실버존은 고령 보행자의 통행량이 많은 곳에 설정해 차량 속도 제한을 낮추는 등의 방식으로 운영된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종로구 전통시장 앞처럼 어르신들이 많이 다니는 장소인데도 실버존이 없는 곳이 적지 않다. 이렇다 보니 교통사고도 자주 발생한다.
이는 현재 실버존이 대부분 노인복지관이나 경로당 주변을 위주로 설치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곳들에 설치되는 건 당연한 얘기지만, 실제로 고령자 통행량도 관련 사고도 많은 장소가 실버존에 포함되지 않고 있다. 한 교통 전문가는 “전통시장이나 병원, 약국 앞 등이 대표적인 경우”라고 지적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만 65세 이상 고령 보행자의 사망자 수 점유율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전체 보행 사망자 수 중 고령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4년 48%(898명)에서 2018년 57%(823명)로 늘었다. 한 노인복지시설 관계자는 “한국도 고령사회에 접어들어 보행자 연령이 갈수록 올라가는데 보호시설이나 제도는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통 전문가들도 고령 보행자들의 이동 특성을 고려한 실버존 설정이 중요하다고 봤다. 유상용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전통시장은 보행자의 동선이 단절된 구간이 많아 사고 위험이 높다. 병원과 약국은 보행자와 차량이 혼재돼 충돌 위험이 크다”고 했다.
국토교통부에서 추진하는 ‘마을 주민 보호구간(빌리지존)’도 잘 알려지지 않은 보호구역이다. 빌리지존은 자동차가 통과하는 도로 주변 마을의 주민을 보호하기 위해 도로의 진행 방향을 따라 설치한 구역이다. 2015년부터 현재까지 해마다 구간을 신설해 현재 총 246개 구간이 운영된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마을 주민 보호구간이 설치된 곳의 사고는 15∼35% 감소했다.
이들 보호구역이 제 기능을 하려면 보호구역의 종류를 늘리기보단 일원화해 보다 쉽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다양한 보호구역이 혼재된 상태에서 서로 제한 속도마저 달라 오히려 규정을 준수하기 힘들단 지적이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호구역을 세분하는 대신 ‘교통약자 보호구역’으로 통일하고, 제한속도도 맞추는 게 실효성이 더 클 수 있다”고 조언했다.
○ 정부, 보행권 보장 위한 법 개정
정부도 도로 위 약자들의 안전 증진을 위해 시동을 걸었다. 17일 행정안전부는 “보행안전 및 편의증진에 관한 법률(보행안전법) 개정안이 22일 공포돼 6개월 뒤부터 본격 시행된다”고 밝혔다. 이 개정안은 보행자 안전 보장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행안부 장관은 5년마다 ‘국가 보행안전 및 편의 증진 기본계획’과 ‘연차별 실행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현재까지는 기본계획 없이 지방자치단체에서 세운 계획대로 보행자 안전 증진 사업을 추진했지만, 앞으로 정부 차원에서 체계적인 계획을 세운다.
지자체의 보행안전 수준과 보행정책을 계량적으로 측정·비교할 수 있는 보행안전지수를 도입해 정부의 보행사업 예산 배분 기준으로 쓸 예정이다. 지자체의 보행안전 수준도 정부가 직접 평가해 등급을 매긴다.
파란불에 횡단보도 건너던 母子 ‘쾅’… 생후 두달 아들 뇌손상, 끝없는 고통
그래픽 김충민 기자
어머니와 아들의 비극은 횡단보도에서 벌어졌다. 2001년 1월 28일. 대구 서구의 한 횡단보도에 서 있던 윤정임(가명·당시 24세) 씨에게 여느 하루와 다름없는 날이었다. 태어난 지 두 달 된 아들에게 예방접종을 맞힌 뒤 가족의 저녁 찬거리를 무엇으로 할지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빨간불이 파란불로 바뀌고 왕복 10차선 도로를 중간쯤 건넜을까. 하얀색 승용차가 윤 씨 모자(母子)를 덮쳤다. 쾅 하는 굉음 저 멀리 정신이 아득해졌다. 당시 사고보고서에 따르면 윤 씨와 아들은 차에 부딪혀 15m 이상 날아가 길바닥에 떨어졌다. 아픈 줄도 몰랐다. 누군가 계속해서 뺨을 때렸다. 정신 차리라고, 괜찮으냐고. 한겨울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윤 씨는 본능적으로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우리 애를 구해주세요. 아이를 살려주세요.”
윤 씨가 다시 눈을 뜬 건 인근 대형 병원이었다. 고통스러웠지만 정신은 말짱했다. 오른쪽 골반 뼈 골절. 전치 12주였다. 더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진짜 불행은 아들에게 닥쳤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김정현(가명) 군의 자그마한 몸은 처참할 만큼 심각했다. 두개골 양측이 부서졌고 뇌까지 손상을 입었다. 의사는 “긴급 수술 끝에 목숨은 건졌다”고 했다. 처음엔 살았으니 됐다며 울고 또 울었다. 하지만 악몽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윤 씨 가족의 고통은 20년째 이어지며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는다. 단 한 번의 교통사고로 인해.
▼ 파란 불이라 건넜을 뿐인데… 엄마는 20년째 지옥에 삽니다 ▼
“옥에 갇힌 것보다 더 큰 고통 속에서 20년을 살아가고 있어요.”
피해자 윤정임(가명) 씨는 지금도 새벽이면 소스라치게 놀라며 잠에서 깬다. 사고를 당하던 때의 충격, 아픔, 그리고 그보다 더한 절망감. 그날 아들의 접종을 하루 미뤘더라면, 그 길이 아닌 다른 길을 택했더라면, 3초 더 속으로 센 뒤 길을 건넜더라면….
당시 가해자 유모 씨(당시 57세·여)는 사고를 낸 뒤 뺑소니를 쳤다. 다른 시민들이 적극 나선 덕에 멀지 않은 곳에서 붙잡혔다. 경찰 조사 결과 운전 실력이 미숙한데 술까지 마신 채(혈중알코올농도 0.099%) 운전대를 잡은 사실이 드러났다. 유 씨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도주치상)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유 씨에게 내려진 형량은 고작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었다. 재판부는 “유 씨가 잘못을 뉘우치고 있고, 윤 씨 가족이 7000만 원을 받고 합의한 점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윤 씨 남편이 당장 수술비가 급해 받은 돈이 유 씨에게는 자유의 기회가 됐다.
○ 운전자 과실로 멈춰버린 아이의 인생
사고 이후, 아들 정현의 시간은 그 순간에 멈춰버렸다. 숨넘어갈 듯 간질과 경기를 반복해 윤 씨는 아들을 들쳐 업고 하루에도 몇 번씩 병원 응급실을 들락거렸다. 2010년에는 대뇌 반구 절단술도 받았다. 말 그대로 뇌를 잘라냈다. 간질이 심해져 만성 뇌전증으로 악화된 탓이었다. 윤 씨는 “위험한 대수술이었지만, 낫기 위한 게 아니었다. 생명이라도 유지하려는 마지막 수단이었다”고 했다.
정현은 지금도 간질과 경기를 반복한다. 올해로 스무 살이 된 아들의 정신연령은 여전히 3세다.
피해가 덜한 줄 알았던 윤 씨도 몸이 나빠졌다. 제때 재활치료를 받지 못하고 아들에게만 집중해서였다. 점점 심해진 사고 후유증으로 이제는 오른쪽 다리를 절고 있다.
가계도 급격히 기울었다. 합의금 7000만 원은 금세 사라졌다. 병원비를 감당하느라 자가(自家)에 살던 가족은 전세로 월세로 집을 줄여갔다. 부부싸움도 잦아졌다. 시댁은 갈수록 윤 씨를 죄인 취급하는 눈초리를 보냈다. 더 이상 가정을 유지하기 어려워 2016년 남편과 이혼했다.
버거울 때마다 극단적인 생각이 윤 씨의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정현을 차에 태우고 가다 보면 ‘핸들 한 번만 꺾으면 모두가 편해지지 않을까’란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윤 씨는 “그때마다 룸미러로 보이던, 아무것도 모르는 아들의 해맑은 미소를 보며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했다.
○ 보행자 사상자가 한 해 4만7887명
이들 가족의 불행은 결코 남의 얘기가 아니다. 보행자를 배려하지 않는 운전문화가 개선되지 않는 한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교통사고 피해로 지원받은 이들은 36만3616명에 이른다. 공단 관계자는 “적지 않은 수지만, 여전히 더 많은 이들이 지원을 필요로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보행자 교통사고(2018년 기준)는 4만5921건. 사상자는 사망자 1487명을 포함해 4만7887명이다. 이 가운데 신호위반으로 인한 교통사고가 2만7921건이나 된다. 횡단보도에서 사고를 당한 보행자는 1만3416명. 목숨을 잃은 이도 344명이다.
이런 사고는 사고로만 끝나지 않는다. 윤 씨 가족처럼 가족의 평생이 망가진다. 정현을 돌보느라 경제활동도 쉽지 않은 윤 씨. 기초생활수급자로 전락했고, 그나마 공단이 2017년 6월부터 가족에게 매달 장학금 40만 원과 재활보조금 20만 원을 지원해 버티고 있다. 지난해 말 벤츠코리아가 전동휠체어도 보내줬다.
더 큰 문제는 가슴에 맺힌 피멍이다. 정현은 여전히 용변도 혼자 보질 못한다. 뇌 손상으로 성장을 멈춰 몸의 절반도 사용하질 못한다. 윤 씨는 우울증 약을 복용한다. 누군가에겐 ‘한 번의 실수’가 어느 가족에겐 ‘평생의 멍에’가 돼 버렸다.
▼ ‘횡단보도앞 무조건 멈춤’ 법안 3년째 국회에 ▼
한국의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꾸준히 줄어 최근 2년째 3000명대를 유지했다. 한데 정부 목표인 ‘2022년까지 교통사고 사망자 2000명대 진입’을 이루려면 정비가 필요한 법안이 많다. 동아일보가 전문가 조언을 받아 다음 21대 국회에서 통과돼야 할 주요 교통안전 관련 법안들을 추렸다.
지난달 27일 대전지방법원에선 지난해 9월 충남 아산의 한 중학교 정문 앞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횡단보도에서 숨진 김민식 군(당시 9세) 사건에 대한 1심 판결이 있었다. 재판부는 차량의 속도가 시속 22.5∼23.6km 정도로 속도 규정을 어기지 않았던 점을 인정하면서도 가해 운전자에게 금고 2년형이란 이례적으로 중형을 선고했다.
전문가들은 횡단보도 보행자 보호를 강화하는 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줄곧 피력해왔다. 한상진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적어도 횡단보도가 시작되는 위치에서 시야 확보가 되지 않는 경우엔 차량을 의무적으로 멈추는 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20대 국회에선 스쿨존은 물론 모든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서 의무적으로 차량을 일시 정지하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상임위에 계류돼 있다.
2018년 대전의 한 아파트단지에서 교통사고로 5세 여아가 숨지며 ‘도로외구역 보행자 보호’에 관심이 커졌다. 이 관련 법안 역시 계류돼 있다. 법적으로 ‘도로’로 규정한 곳의 보행자 보호 의무만 규정한 현행법을 바꿔 아파트 단지와 학교 내, 주차장 등 도로외구역까지 확대하자는 게 법안의 골자다. 한 교통전문가는 “사적 영역에 경찰권을 동원하는 것에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아 법 개정 관련 협의체의 논의가 겉돌고 있다”고 했다.
차량 리콜 건수가 늘며 사고기록장치(EDR·Event Data Recorder) 공개 범위 확대가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국토교통부가 운영하는 자동차리콜센터에 따르면 리콜 건수는 2013년 100만 대 수준이었지만 2017년 이후 200만 대를 넘었다.
국회에선 사고 전후 페달 조작이나 엔진 상태 등을 실시간 기록하는 EDR의 공개 범위를 확대하는 법안이 지난해 6월 발의됐지만 상임위를 통과하지 못했다. 차주 및 운전자로 제한된 EDR 공개 범위를 확대해 경찰이 제조사와 판매자에 요구할 수 있게 하자는 내용이다.
지난해 여객 운송에 사용되는 차량에서 시동 전 음주 여부를 측정해 음주가 확인되면 시동이 걸리지 않는 ‘음주운전 시동잠금장치’를 의무 장착하는 법안도 발의됐지만 아직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성렬 삼성교통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음주운전은 습관적으로 반복된다. 상습 음주운전자 사고 예방을 위해 필수”라 했다.
전기자전거, 킥보드 등 퍼스널모빌리티(PM)는 이용자가 늘면서 사고 건수도 늘고 있다. 하지만 법적으로 PM에 대한 명확한 정의조차 없다.
<18>인도 위 민폐 유발 불법방치물
23일 점심 무렵 찾은 서울 종로구 동대문역 9번 출구 앞 동대문종합시장은 인도와 도로를 가리지 않고 주차된 오토바이들로 가득했다. 대부분 주변 상가의 의류 부자재를 옮기기 위한 ‘배달’ 오토바이였다. 불법 주정차 중인 오토바이 수십 대가 좁은 1차선 도로의 양쪽뿐 아니라 인도 위까지 점령해 보행자들이 도로로 나와 아슬아슬하게 차량을 피해 다녀야 했다.
퇴근 시간대인 이날 오후 6시경 서울 강동구 천호역 5번 출구 앞에도 폭 5, 6m의 넓은 인도가 있었지만 정상적인 보행이 어려운 상태였다. 인도 위에 방치된 전동 킥보드와 불법 옥외 광고물 사이로 보행자들이 뒤엉켰다. 인근에 사는 이모 씨(33)는 “출퇴근 때 인도 위에 주차된 전동 킥보드 등에 부딪혀 넘어질 뻔한 적이 많다”고 토로했다.
○ 널브러진 전동 킥보드 피해 아슬아슬 보행
인도 위 불법 방치물로 인한 시민 불편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특히 전동 킥보드가 크게 늘어나면서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보도블록 위에 전동 킥보드가 널브러져 있는 경우도 많다. 시각장애인은 케인(시각장애인용 지팡이)으로 점자 블록의 촉감 등을 느끼며 걷는데, 갑자기 전동 킥보드가 나타나면 ‘도로 위 벽’처럼 느낄 수밖에 없다. 공유 전동 킥보드 업체 관계자는 “이용자에게 주차구역을 준수해 달라는 공지를 하고 있지만 강제성이 없어 잘 지켜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보행자들의 민원은 빗발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에 접수된 전동 킥보드 관련 민원은 2016년부터 3년 동안 연평균 430건 수준에서 지난해 1927건으로 폭증했다. 올해에는 지난해보다 약 두 배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전동 킥보드의 인도 위 주정차 문제는 명확한 규정이 없어 사실상 단속 사각지대에 놓인 상태였다.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이런 문제를 고려해 이달 초 전동 킥보드의 주정차 금지구역을 발표했다. 횡단보도와 점자블록, 엘리베이터 입구 등 안전에 취약한 13개 구역이 포함됐다. 하지만 지자체 조례 제정 등의 절차가 필요해 현장에 적용되기까지는 상당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 “거치대 설치 등 근본 해법 찾아야”
인도 위 불법 주정차 오토바이들로 보행자들이 불편을 겪는 곳도 많다. 대표적인 곳이 서울 종로3가역부터 동대문역까지 이어지는 청계천 상가 일대다. 안 그래도 폭이 좁은 인도 위를 덩치 큰 오토바이가 차지하면서 일부 시민들이 인도 보행을 포기하고 도로 위를 걸어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인근 학원 수강생 김모 씨(21)는 “이 근방에서는 인도 위보다 도로 위를 걷는 게 편하다”며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매번 같은 모습이라 이제 익숙하다”고 전했다.
도로교통법상 이륜자동차가 주차장 외의 장소에 주정차를 하거나 보도 위를 주행할 경우 각각 3만 원, 4만 원의 범칙금이 부과된다. 하지만 인도에 오토바이를 세워놓는 운전자 상당수가 택배기사 등 생계형 근로자여서 경찰과 지자체 등 단속당국도 적극적인 단속에는 나서지 못하고 있다.
인도 위 미관을 해치고 보행자 불편까지 초래하는 불법 옥외 광고물도 단속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낮에는 사라졌다가 밤이 되면 화려한 불빛을 뽐내며 등장하는 풍선 광고물이 대표적이다. 이런 옥외 불법 광고물을 설치할 경우 500만 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되지만 관리 주체인 자치구의 단속 인원이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서울시는 불법광고물 시·구 합동 기동 정비단을 운영하고 있는데 서울 전역을 단속해야 하는 인원이 모두 9명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전동 킥보드와 오토바이가 인도 위를 점령하는 문제를 단속만으로 해결하기에 한계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법령 및 조례 개정 등으로 관련 기준을 명확히 설정하고 동시에 불법 주정차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도경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과거 자전거의 인도 주정차 문제가 대두됐을 때 거치대 설치 등의 해결방안을 마련한 것처럼, 효과적인 단속방안과 제도적인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며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인도 위 불법 방치물 문제 해결에 참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홍보와 지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19> ‘안전 강화’ 서울형 스쿨존 표준모델
11월 26일 서울 성북구에 있는 석관초등학교. 이 학교 주변에 지정돼 있는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은 기존에 알던 스쿨존과는 크게 달랐다. 50m 이상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서도 눈에 띌 정도로 스쿨존 전체가 어두운 붉은색(암적색)으로 포장돼 있었다. 바로 서울지방경찰청과 서울시가 손을 잡고 설계한 ‘서울형 스쿨존 표준모델’이다.
스쿨존 여부를 식별하기가 예전보다 크게 수월해지면서 벌써부터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주변을 지나던 한 운전자는 “인근에 지하철역과 시장 등이 있어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이지만 스쿨존이 한눈에 들어와 표지판이나 내비게이션 안내 없이도 자연스레 브레이크를 밟게 된다”고 전했다.
○ “스쿨존에서 급브레이크 소리 사라져”
석관초 스쿨존은 현재 서울형 스쿨존 표준모델이 처음 시범 운영되는 장소. 경찰 관계자는 “서울 초등학교 가운데 교통사고 위험이 높은 곳을 선정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해당 지역은 학교 앞 2차선 도로 건너편에 문구점과 학원, 분식집 등이 있어 도로를 부주의하게 건너려고 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았다.
서울형 스쿨존은 전 구간 도로를 암적색으로 미끄럼 방지 포장을 한 것 외에도 다양한 안전장치가 마련됐다. 비 오는 날에도 야간에 운전할 때 어린이보호구역인 것을 쉽게 인식할 수 있도록 스쿨존 시작 지점에 발광다이오드(LED) 표지판을 설치했다. 아이들이 주로 통학하는 건널목에는 ‘고원식(高原式) 횡단보도’를 마련했다. 이 횡단보도는 도로보다 높게 만들어 과속방지턱 기능도 한다. 보행 신호등도 차별화했다. 길을 건널 수 있는 녹색불이 들어오면 “좌우를 살피세요”라는 안내 목소리도 함께 흘러나온다. 또 곳곳에 신호·과속 단속 카메라와 실시간 속도측정기를 설치해 차량 감속을 유도했다.
인근 주민들은 “과거보다 훨씬 안전해졌다”며 반가워했다. 학교 건너편에서 문구점을 하는 A 씨는 “과거엔 제한 속도는커녕 신호도 지키지 않는 차들이 정말 많았다. 문구점에 있으면 일주일에 2, 3번은 급브레이크를 밟는 소리가 들렸는데 이젠 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학교 보안관인 B 씨는 “교문 앞에 늘어서 있던 불법 주정차 차량들이 없어진 점이 가장 후련하다”고 했다.
개선을 바라는 의견도 있었다. 이곳을 지나던 운전자 이모 씨는 “암적색 도로가 너무 넓게 깔려 있어 오히려 경각심을 떨어뜨리는 측면도 있다”며 “주요 통학로를 중심으로 암적색 포장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 학부모는 “미끄럼 방지 포장이 너무 거칠어서 아이들이 실수로 넘어졌다가 상처를 입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 다양한 아이디어로 어린이 보호
지방자치단체들의 어린이 보호를 위한 노력도 활발해지고 있다. 2019년 말 국회를 통과한 개정 도로교통법(일명 민식이법)에 따라 전국 지자체는 2022년까지 초등학교 어린이보호구역에 과속 단속 카메라를 설치해야 한다. 이에 더해 다양한 시설 개선을 위한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겨 어린이 교통안전에 더욱 힘을 쏟고 있다.
서울 서초구가 2018년 전국 최초로 도입한 ‘활주로형 횡단보도’는 전국으로 확산되는 추세를 보인다.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의 양옆 바닥에 LED 유도등을 매립해 횡단보도가 더욱 두드러져 보이는 효과를 주는 시설이다. 서울 종로구는 올해 어린이보호구역에 진입하는 이면도로에 노란색 정지선을 설치했다. 정지선과 같은 45cm 폭의 차선테이프에 ‘어린이보호구역’ 글씨를 음각으로 새겨 바닥에 부착해 운전자에게 경각심을 주는 효과를 낸다. 서울 노원구, 구로구는 횡단보도 진입 부위 바닥에 LED 신호등을 깔아 시선을 아래로 둔 보행자들도 쉽게 신호 변화를 알 수 있게 했다.
<20·끝>헷갈리는 교통약자 보호구역(12.18)
최근 서울 관악구에 있는 한 노인복지관 앞에서 도로교통공단 마스코트인 호동이와 호순이가 어르신 보행자들과 함께 노인보호구역 표지판을 들고 홍보 활동을 하고 있다.
15일 서울 종로구의 한 전통시장. 거리에 늘어선 상점을 따라 이어지던 보도가 블록이 나뉘는 지점에서 갑자기 끊겼다. 캐리어에 물건을 싣고 시장을 거닐던 시민들은 자연스레 이면도로로 내려와 차량과 섞여 걸었다. 전통시장 특성상 상당수가 머리가 희끗한 어르신 보행자였지만, 이곳에 노인보호구역(실버존) 등 고령 보행자를 보호하는 장치는 보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반응 속도가 더딘 고령 보행자들은 차와 부딪칠 수 있는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었다.
○ 실버존, 꼭 경로당 앞에만 만들어야 하나
국내 도로에는 교통 약자의 안전을 위한 다양한 보호구역이 존재한다. 가장 잘 알려진 건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이다. 어린이 교통사고 여러 건이 여론의 주목을 받으며 법 개정은 물론이고 시설도 많이 개선됐다. 하지만 다른 보호구역들은 아직 그 중요성이 제대로 인식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곳이 실버존이다. 실버존은 고령 보행자의 통행량이 많은 곳에 설정해 차량 속도 제한을 낮추는 등의 방식으로 운영된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종로구 전통시장 앞처럼 어르신들이 많이 다니는 장소인데도 실버존이 없는 곳이 적지 않다. 이렇다 보니 교통사고도 자주 발생한다.
이는 현재 실버존이 대부분 노인복지관이나 경로당 주변을 위주로 설치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곳들에 설치되는 건 당연한 얘기지만, 실제로 고령자 통행량도 관련 사고도 많은 장소가 실버존에 포함되지 않고 있다. 한 교통 전문가는 “전통시장이나 병원, 약국 앞 등이 대표적인 경우”라고 지적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만 65세 이상 고령 보행자의 사망자 수 점유율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전체 보행 사망자 수 중 고령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4년 48%(898명)에서 2018년 57%(823명)로 늘었다. 한 노인복지시설 관계자는 “한국도 고령사회에 접어들어 보행자 연령이 갈수록 올라가는데 보호시설이나 제도는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통 전문가들도 고령 보행자들의 이동 특성을 고려한 실버존 설정이 중요하다고 봤다. 유상용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전통시장은 보행자의 동선이 단절된 구간이 많아 사고 위험이 높다. 병원과 약국은 보행자와 차량이 혼재돼 충돌 위험이 크다”고 했다.
국토교통부에서 추진하는 ‘마을 주민 보호구간(빌리지존)’도 잘 알려지지 않은 보호구역이다. 빌리지존은 자동차가 통과하는 도로 주변 마을의 주민을 보호하기 위해 도로의 진행 방향을 따라 설치한 구역이다. 2015년부터 현재까지 해마다 구간을 신설해 현재 총 246개 구간이 운영된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마을 주민 보호구간이 설치된 곳의 사고는 15∼35% 감소했다.
이들 보호구역이 제 기능을 하려면 보호구역의 종류를 늘리기보단 일원화해 보다 쉽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다양한 보호구역이 혼재된 상태에서 서로 제한 속도마저 달라 오히려 규정을 준수하기 힘들단 지적이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호구역을 세분하는 대신 ‘교통약자 보호구역’으로 통일하고, 제한속도도 맞추는 게 실효성이 더 클 수 있다”고 조언했다.
○ 정부, 보행권 보장 위한 법 개정
정부도 도로 위 약자들의 안전 증진을 위해 시동을 걸었다. 17일 행정안전부는 “보행안전 및 편의증진에 관한 법률(보행안전법) 개정안이 22일 공포돼 6개월 뒤부터 본격 시행된다”고 밝혔다. 이 개정안은 보행자 안전 보장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행안부 장관은 5년마다 ‘국가 보행안전 및 편의 증진 기본계획’과 ‘연차별 실행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현재까지는 기본계획 없이 지방자치단체에서 세운 계획대로 보행자 안전 증진 사업을 추진했지만, 앞으로 정부 차원에서 체계적인 계획을 세운다.
지자체의 보행안전 수준과 보행정책을 계량적으로 측정·비교할 수 있는 보행안전지수를 도입해 정부의 보행사업 예산 배분 기준으로 쓸 예정이다. 지자체의 보행안전 수준도 정부가 직접 평가해 등급을 매긴다.
어머니와 아들의 비극은 횡단보도에서 벌어졌다. 2001년 1월 28일. 대구 서구의 한 횡단보도에 서 있던 윤정임(가명·당시 24세) 씨에게 여느 하루와 다름없는 날이었다. 태어난 지 두 달 된 아들에게 예방접종을 맞힌 뒤 가족의 저녁 찬거리를 무엇으로 할지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빨간불이 파란불로 바뀌고 왕복 10차선 도로를 중간쯤 건넜을까. 하얀색 승용차가 윤 씨 모자(母子)를 덮쳤다. 쾅 하는 굉음 저 멀리 정신이 아득해졌다. 당시 사고보고서에 따르면 윤 씨와 아들은 차에 부딪혀 15m 이상 날아가 길바닥에 떨어졌다. 아픈 줄도 몰랐다. 누군가 계속해서 뺨을 때렸다. 정신 차리라고, 괜찮으냐고. 한겨울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윤 씨는 본능적으로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우리 애를 구해주세요. 아이를 살려주세요.”
윤 씨가 다시 눈을 뜬 건 인근 대형 병원이었다. 고통스러웠지만 정신은 말짱했다. 오른쪽 골반 뼈 골절. 전치 12주였다. 더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진짜 불행은 아들에게 닥쳤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김정현(가명) 군의 자그마한 몸은 처참할 만큼 심각했다. 두개골 양측이 부서졌고 뇌까지 손상을 입었다. 의사는 “긴급 수술 끝에 목숨은 건졌다”고 했다. 처음엔 살았으니 됐다며 울고 또 울었다. 하지만 악몽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윤 씨 가족의 고통은 20년째 이어지며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는다. 단 한 번의 교통사고로 인해.
▼ 파란 불이라 건넜을 뿐인데… 엄마는 20년째 지옥에 삽니다 ▼
“옥에 갇힌 것보다 더 큰 고통 속에서 20년을 살아가고 있어요.”
피해자 윤정임(가명) 씨는 지금도 새벽이면 소스라치게 놀라며 잠에서 깬다. 사고를 당하던 때의 충격, 아픔, 그리고 그보다 더한 절망감. 그날 아들의 접종을 하루 미뤘더라면, 그 길이 아닌 다른 길을 택했더라면, 3초 더 속으로 센 뒤 길을 건넜더라면….
당시 가해자 유모 씨(당시 57세·여)는 사고를 낸 뒤 뺑소니를 쳤다. 다른 시민들이 적극 나선 덕에 멀지 않은 곳에서 붙잡혔다. 경찰 조사 결과 운전 실력이 미숙한데 술까지 마신 채(혈중알코올농도 0.099%) 운전대를 잡은 사실이 드러났다. 유 씨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도주치상)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유 씨에게 내려진 형량은 고작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었다. 재판부는 “유 씨가 잘못을 뉘우치고 있고, 윤 씨 가족이 7000만 원을 받고 합의한 점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윤 씨 남편이 당장 수술비가 급해 받은 돈이 유 씨에게는 자유의 기회가 됐다.
○ 운전자 과실로 멈춰버린 아이의 인생
사고 이후, 아들 정현의 시간은 그 순간에 멈춰버렸다. 숨넘어갈 듯 간질과 경기를 반복해 윤 씨는 아들을 들쳐 업고 하루에도 몇 번씩 병원 응급실을 들락거렸다. 2010년에는 대뇌 반구 절단술도 받았다. 말 그대로 뇌를 잘라냈다. 간질이 심해져 만성 뇌전증으로 악화된 탓이었다. 윤 씨는 “위험한 대수술이었지만, 낫기 위한 게 아니었다. 생명이라도 유지하려는 마지막 수단이었다”고 했다.
정현은 지금도 간질과 경기를 반복한다. 올해로 스무 살이 된 아들의 정신연령은 여전히 3세다.
피해가 덜한 줄 알았던 윤 씨도 몸이 나빠졌다. 제때 재활치료를 받지 못하고 아들에게만 집중해서였다. 점점 심해진 사고 후유증으로 이제는 오른쪽 다리를 절고 있다.
가계도 급격히 기울었다. 합의금 7000만 원은 금세 사라졌다. 병원비를 감당하느라 자가(自家)에 살던 가족은 전세로 월세로 집을 줄여갔다. 부부싸움도 잦아졌다. 시댁은 갈수록 윤 씨를 죄인 취급하는 눈초리를 보냈다. 더 이상 가정을 유지하기 어려워 2016년 남편과 이혼했다.
버거울 때마다 극단적인 생각이 윤 씨의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정현을 차에 태우고 가다 보면 ‘핸들 한 번만 꺾으면 모두가 편해지지 않을까’란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윤 씨는 “그때마다 룸미러로 보이던, 아무것도 모르는 아들의 해맑은 미소를 보며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했다.
○ 보행자 사상자가 한 해 4만7887명
이들 가족의 불행은 결코 남의 얘기가 아니다. 보행자를 배려하지 않는 운전문화가 개선되지 않는 한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교통사고 피해로 지원받은 이들은 36만3616명에 이른다. 공단 관계자는 “적지 않은 수지만, 여전히 더 많은 이들이 지원을 필요로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보행자 교통사고(2018년 기준)는 4만5921건. 사상자는 사망자 1487명을 포함해 4만7887명이다. 이 가운데 신호위반으로 인한 교통사고가 2만7921건이나 된다. 횡단보도에서 사고를 당한 보행자는 1만3416명. 목숨을 잃은 이도 344명이다.
이런 사고는 사고로만 끝나지 않는다. 윤 씨 가족처럼 가족의 평생이 망가진다. 정현을 돌보느라 경제활동도 쉽지 않은 윤 씨. 기초생활수급자로 전락했고, 그나마 공단이 2017년 6월부터 가족에게 매달 장학금 40만 원과 재활보조금 20만 원을 지원해 버티고 있다. 지난해 말 벤츠코리아가 전동휠체어도 보내줬다.
더 큰 문제는 가슴에 맺힌 피멍이다. 정현은 여전히 용변도 혼자 보질 못한다. 뇌 손상으로 성장을 멈춰 몸의 절반도 사용하질 못한다. 윤 씨는 우울증 약을 복용한다. 누군가에겐 ‘한 번의 실수’가 어느 가족에겐 ‘평생의 멍에’가 돼 버렸다.
▼ ‘횡단보도앞 무조건 멈춤’ 법안 3년째 국회에 ▼
한국의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꾸준히 줄어 최근 2년째 3000명대를 유지했다. 한데 정부 목표인 ‘2022년까지 교통사고 사망자 2000명대 진입’을 이루려면 정비가 필요한 법안이 많다. 동아일보가 전문가 조언을 받아 다음 21대 국회에서 통과돼야 할 주요 교통안전 관련 법안들을 추렸다.
지난달 27일 대전지방법원에선 지난해 9월 충남 아산의 한 중학교 정문 앞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횡단보도에서 숨진 김민식 군(당시 9세) 사건에 대한 1심 판결이 있었다. 재판부는 차량의 속도가 시속 22.5∼23.6km 정도로 속도 규정을 어기지 않았던 점을 인정하면서도 가해 운전자에게 금고 2년형이란 이례적으로 중형을 선고했다.
전문가들은 횡단보도 보행자 보호를 강화하는 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줄곧 피력해왔다. 한상진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적어도 횡단보도가 시작되는 위치에서 시야 확보가 되지 않는 경우엔 차량을 의무적으로 멈추는 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20대 국회에선 스쿨존은 물론 모든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서 의무적으로 차량을 일시 정지하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상임위에 계류돼 있다.
2018년 대전의 한 아파트단지에서 교통사고로 5세 여아가 숨지며 ‘도로외구역 보행자 보호’에 관심이 커졌다. 이 관련 법안 역시 계류돼 있다. 법적으로 ‘도로’로 규정한 곳의 보행자 보호 의무만 규정한 현행법을 바꿔 아파트 단지와 학교 내, 주차장 등 도로외구역까지 확대하자는 게 법안의 골자다. 한 교통전문가는 “사적 영역에 경찰권을 동원하는 것에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아 법 개정 관련 협의체의 논의가 겉돌고 있다”고 했다.
차량 리콜 건수가 늘며 사고기록장치(EDR·Event Data Recorder) 공개 범위 확대가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국토교통부가 운영하는 자동차리콜센터에 따르면 리콜 건수는 2013년 100만 대 수준이었지만 2017년 이후 200만 대를 넘었다.
국회에선 사고 전후 페달 조작이나 엔진 상태 등을 실시간 기록하는 EDR의 공개 범위를 확대하는 법안이 지난해 6월 발의됐지만 상임위를 통과하지 못했다. 차주 및 운전자로 제한된 EDR 공개 범위를 확대해 경찰이 제조사와 판매자에 요구할 수 있게 하자는 내용이다.
지난해 여객 운송에 사용되는 차량에서 시동 전 음주 여부를 측정해 음주가 확인되면 시동이 걸리지 않는 ‘음주운전 시동잠금장치’를 의무 장착하는 법안도 발의됐지만 아직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성렬 삼성교통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음주운전은 습관적으로 반복된다. 상습 음주운전자 사고 예방을 위해 필수”라 했다.
전기자전거, 킥보드 등 퍼스널모빌리티(PM)는 이용자가 늘면서 사고 건수도 늘고 있다. 하지만 법적으로 PM에 대한 명확한 정의조차 없다.
<18>인도 위 민폐 유발 불법방치물
23일 점심 무렵 찾은 서울 종로구 동대문역 9번 출구 앞 동대문종합시장은 인도와 도로를 가리지 않고 주차된 오토바이들로 가득했다. 대부분 주변 상가의 의류 부자재를 옮기기 위한 ‘배달’ 오토바이였다. 불법 주정차 중인 오토바이 수십 대가 좁은 1차선 도로의 양쪽뿐 아니라 인도 위까지 점령해 보행자들이 도로로 나와 아슬아슬하게 차량을 피해 다녀야 했다.
퇴근 시간대인 이날 오후 6시경 서울 강동구 천호역 5번 출구 앞에도 폭 5, 6m의 넓은 인도가 있었지만 정상적인 보행이 어려운 상태였다. 인도 위에 방치된 전동 킥보드와 불법 옥외 광고물 사이로 보행자들이 뒤엉켰다. 인근에 사는 이모 씨(33)는 “출퇴근 때 인도 위에 주차된 전동 킥보드 등에 부딪혀 넘어질 뻔한 적이 많다”고 토로했다.
○ 널브러진 전동 킥보드 피해 아슬아슬 보행
인도 위 불법 방치물로 인한 시민 불편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특히 전동 킥보드가 크게 늘어나면서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보도블록 위에 전동 킥보드가 널브러져 있는 경우도 많다. 시각장애인은 케인(시각장애인용 지팡이)으로 점자 블록의 촉감 등을 느끼며 걷는데, 갑자기 전동 킥보드가 나타나면 ‘도로 위 벽’처럼 느낄 수밖에 없다. 공유 전동 킥보드 업체 관계자는 “이용자에게 주차구역을 준수해 달라는 공지를 하고 있지만 강제성이 없어 잘 지켜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보행자들의 민원은 빗발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에 접수된 전동 킥보드 관련 민원은 2016년부터 3년 동안 연평균 430건 수준에서 지난해 1927건으로 폭증했다. 올해에는 지난해보다 약 두 배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전동 킥보드의 인도 위 주정차 문제는 명확한 규정이 없어 사실상 단속 사각지대에 놓인 상태였다.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이런 문제를 고려해 이달 초 전동 킥보드의 주정차 금지구역을 발표했다. 횡단보도와 점자블록, 엘리베이터 입구 등 안전에 취약한 13개 구역이 포함됐다. 하지만 지자체 조례 제정 등의 절차가 필요해 현장에 적용되기까지는 상당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 “거치대 설치 등 근본 해법 찾아야”
인도 위 불법 주정차 오토바이들로 보행자들이 불편을 겪는 곳도 많다. 대표적인 곳이 서울 종로3가역부터 동대문역까지 이어지는 청계천 상가 일대다. 안 그래도 폭이 좁은 인도 위를 덩치 큰 오토바이가 차지하면서 일부 시민들이 인도 보행을 포기하고 도로 위를 걸어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인근 학원 수강생 김모 씨(21)는 “이 근방에서는 인도 위보다 도로 위를 걷는 게 편하다”며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매번 같은 모습이라 이제 익숙하다”고 전했다.
도로교통법상 이륜자동차가 주차장 외의 장소에 주정차를 하거나 보도 위를 주행할 경우 각각 3만 원, 4만 원의 범칙금이 부과된다. 하지만 인도에 오토바이를 세워놓는 운전자 상당수가 택배기사 등 생계형 근로자여서 경찰과 지자체 등 단속당국도 적극적인 단속에는 나서지 못하고 있다.
인도 위 미관을 해치고 보행자 불편까지 초래하는 불법 옥외 광고물도 단속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낮에는 사라졌다가 밤이 되면 화려한 불빛을 뽐내며 등장하는 풍선 광고물이 대표적이다. 이런 옥외 불법 광고물을 설치할 경우 500만 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되지만 관리 주체인 자치구의 단속 인원이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서울시는 불법광고물 시·구 합동 기동 정비단을 운영하고 있는데 서울 전역을 단속해야 하는 인원이 모두 9명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전동 킥보드와 오토바이가 인도 위를 점령하는 문제를 단속만으로 해결하기에 한계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법령 및 조례 개정 등으로 관련 기준을 명확히 설정하고 동시에 불법 주정차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도경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과거 자전거의 인도 주정차 문제가 대두됐을 때 거치대 설치 등의 해결방안을 마련한 것처럼, 효과적인 단속방안과 제도적인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며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인도 위 불법 방치물 문제 해결에 참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홍보와 지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19> ‘안전 강화’ 서울형 스쿨존 표준모델
11월 26일 서울 성북구에 있는 석관초등학교. 이 학교 주변에 지정돼 있는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은 기존에 알던 스쿨존과는 크게 달랐다. 50m 이상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서도 눈에 띌 정도로 스쿨존 전체가 어두운 붉은색(암적색)으로 포장돼 있었다. 바로 서울지방경찰청과 서울시가 손을 잡고 설계한 ‘서울형 스쿨존 표준모델’이다.
스쿨존 여부를 식별하기가 예전보다 크게 수월해지면서 벌써부터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주변을 지나던 한 운전자는 “인근에 지하철역과 시장 등이 있어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이지만 스쿨존이 한눈에 들어와 표지판이나 내비게이션 안내 없이도 자연스레 브레이크를 밟게 된다”고 전했다.
○ “스쿨존에서 급브레이크 소리 사라져”
석관초 스쿨존은 현재 서울형 스쿨존 표준모델이 처음 시범 운영되는 장소. 경찰 관계자는 “서울 초등학교 가운데 교통사고 위험이 높은 곳을 선정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해당 지역은 학교 앞 2차선 도로 건너편에 문구점과 학원, 분식집 등이 있어 도로를 부주의하게 건너려고 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았다.
서울형 스쿨존은 전 구간 도로를 암적색으로 미끄럼 방지 포장을 한 것 외에도 다양한 안전장치가 마련됐다. 비 오는 날에도 야간에 운전할 때 어린이보호구역인 것을 쉽게 인식할 수 있도록 스쿨존 시작 지점에 발광다이오드(LED) 표지판을 설치했다. 아이들이 주로 통학하는 건널목에는 ‘고원식(高原式) 횡단보도’를 마련했다. 이 횡단보도는 도로보다 높게 만들어 과속방지턱 기능도 한다. 보행 신호등도 차별화했다. 길을 건널 수 있는 녹색불이 들어오면 “좌우를 살피세요”라는 안내 목소리도 함께 흘러나온다. 또 곳곳에 신호·과속 단속 카메라와 실시간 속도측정기를 설치해 차량 감속을 유도했다.
인근 주민들은 “과거보다 훨씬 안전해졌다”며 반가워했다. 학교 건너편에서 문구점을 하는 A 씨는 “과거엔 제한 속도는커녕 신호도 지키지 않는 차들이 정말 많았다. 문구점에 있으면 일주일에 2, 3번은 급브레이크를 밟는 소리가 들렸는데 이젠 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학교 보안관인 B 씨는 “교문 앞에 늘어서 있던 불법 주정차 차량들이 없어진 점이 가장 후련하다”고 했다.
개선을 바라는 의견도 있었다. 이곳을 지나던 운전자 이모 씨는 “암적색 도로가 너무 넓게 깔려 있어 오히려 경각심을 떨어뜨리는 측면도 있다”며 “주요 통학로를 중심으로 암적색 포장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 학부모는 “미끄럼 방지 포장이 너무 거칠어서 아이들이 실수로 넘어졌다가 상처를 입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 다양한 아이디어로 어린이 보호
지방자치단체들의 어린이 보호를 위한 노력도 활발해지고 있다. 2019년 말 국회를 통과한 개정 도로교통법(일명 민식이법)에 따라 전국 지자체는 2022년까지 초등학교 어린이보호구역에 과속 단속 카메라를 설치해야 한다. 이에 더해 다양한 시설 개선을 위한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겨 어린이 교통안전에 더욱 힘을 쏟고 있다.
서울 서초구가 2018년 전국 최초로 도입한 ‘활주로형 횡단보도’는 전국으로 확산되는 추세를 보인다.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의 양옆 바닥에 LED 유도등을 매립해 횡단보도가 더욱 두드러져 보이는 효과를 주는 시설이다. 서울 종로구는 올해 어린이보호구역에 진입하는 이면도로에 노란색 정지선을 설치했다. 정지선과 같은 45cm 폭의 차선테이프에 ‘어린이보호구역’ 글씨를 음각으로 새겨 바닥에 부착해 운전자에게 경각심을 주는 효과를 낸다. 서울 노원구, 구로구는 횡단보도 진입 부위 바닥에 LED 신호등을 깔아 시선을 아래로 둔 보행자들도 쉽게 신호 변화를 알 수 있게 했다.
<20·끝>헷갈리는 교통약자 보호구역(12.18)
최근 서울 관악구에 있는 한 노인복지관 앞에서 도로교통공단 마스코트인 호동이와 호순이가 어르신 보행자들과 함께 노인보호구역 표지판을 들고 홍보 활동을 하고 있다.
15일 서울 종로구의 한 전통시장. 거리에 늘어선 상점을 따라 이어지던 보도가 블록이 나뉘는 지점에서 갑자기 끊겼다. 캐리어에 물건을 싣고 시장을 거닐던 시민들은 자연스레 이면도로로 내려와 차량과 섞여 걸었다. 전통시장 특성상 상당수가 머리가 희끗한 어르신 보행자였지만, 이곳에 노인보호구역(실버존) 등 고령 보행자를 보호하는 장치는 보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반응 속도가 더딘 고령 보행자들은 차와 부딪칠 수 있는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었다.
○ 실버존, 꼭 경로당 앞에만 만들어야 하나
국내 도로에는 교통 약자의 안전을 위한 다양한 보호구역이 존재한다. 가장 잘 알려진 건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이다. 어린이 교통사고 여러 건이 여론의 주목을 받으며 법 개정은 물론이고 시설도 많이 개선됐다. 하지만 다른 보호구역들은 아직 그 중요성이 제대로 인식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곳이 실버존이다. 실버존은 고령 보행자의 통행량이 많은 곳에 설정해 차량 속도 제한을 낮추는 등의 방식으로 운영된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종로구 전통시장 앞처럼 어르신들이 많이 다니는 장소인데도 실버존이 없는 곳이 적지 않다. 이렇다 보니 교통사고도 자주 발생한다.
이는 현재 실버존이 대부분 노인복지관이나 경로당 주변을 위주로 설치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곳들에 설치되는 건 당연한 얘기지만, 실제로 고령자 통행량도 관련 사고도 많은 장소가 실버존에 포함되지 않고 있다. 한 교통 전문가는 “전통시장이나 병원, 약국 앞 등이 대표적인 경우”라고 지적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만 65세 이상 고령 보행자의 사망자 수 점유율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전체 보행 사망자 수 중 고령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4년 48%(898명)에서 2018년 57%(823명)로 늘었다. 한 노인복지시설 관계자는 “한국도 고령사회에 접어들어 보행자 연령이 갈수록 올라가는데 보호시설이나 제도는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통 전문가들도 고령 보행자들의 이동 특성을 고려한 실버존 설정이 중요하다고 봤다. 유상용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전통시장은 보행자의 동선이 단절된 구간이 많아 사고 위험이 높다. 병원과 약국은 보행자와 차량이 혼재돼 충돌 위험이 크다”고 했다.
국토교통부에서 추진하는 ‘마을 주민 보호구간(빌리지존)’도 잘 알려지지 않은 보호구역이다. 빌리지존은 자동차가 통과하는 도로 주변 마을의 주민을 보호하기 위해 도로의 진행 방향을 따라 설치한 구역이다. 2015년부터 현재까지 해마다 구간을 신설해 현재 총 246개 구간이 운영된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마을 주민 보호구간이 설치된 곳의 사고는 15∼35% 감소했다.
이들 보호구역이 제 기능을 하려면 보호구역의 종류를 늘리기보단 일원화해 보다 쉽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다양한 보호구역이 혼재된 상태에서 서로 제한 속도마저 달라 오히려 규정을 준수하기 힘들단 지적이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호구역을 세분하는 대신 ‘교통약자 보호구역’으로 통일하고, 제한속도도 맞추는 게 실효성이 더 클 수 있다”고 조언했다.
○ 정부, 보행권 보장 위한 법 개정
정부도 도로 위 약자들의 안전 증진을 위해 시동을 걸었다. 17일 행정안전부는 “보행안전 및 편의증진에 관한 법률(보행안전법) 개정안이 22일 공포돼 6개월 뒤부터 본격 시행된다”고 밝혔다. 이 개정안은 보행자 안전 보장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행안부 장관은 5년마다 ‘국가 보행안전 및 편의 증진 기본계획’과 ‘연차별 실행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현재까지는 기본계획 없이 지방자치단체에서 세운 계획대로 보행자 안전 증진 사업을 추진했지만, 앞으로 정부 차원에서 체계적인 계획을 세운다.
지자체의 보행안전 수준과 보행정책을 계량적으로 측정·비교할 수 있는 보행안전지수를 도입해 정부의 보행사업 예산 배분 기준으로 쓸 예정이다. 지자체의 보행안전 수준도 정부가 직접 평가해 등급을 매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