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중 구조의 시조 작법
시조시인들의 다양한 전략들을 소개하는 두 번째 글은 배우식 시인의 <이중 구조의 시조 작법>이다. 이 글은 유튜브 영상강의 내용을 요약 정리한 글이다. 시조 창작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소개하는 내용들은 절대적인 가치를 두기보다 시조 작법의 기초를 다지면서도, 창의적이고 현대적인 접근을 시도하는 데 중점을 두시기 바란다.(정리: 김태균)
필자는 시조 쓰기 전에 ‘표현’을 생각한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박목월 선생께서 제 작품을 보고 “표현이 되지 않았다”고 평하신 적이 있다. 나름대로 표현이 잘 된 것 같은데, 표현이 안 됐다니 그날부터 제 가슴에는 어떤 트라우마처럼 ‘표현’이라는 말이 붙었다. 표현은 모든 기법을 포함해서 그 안에 쓰여지는 문장에 대한 묘사나 진술, 비유법 등 모든 것이 들어간다. 그래서 시조를 쓰기 전에 ‘시조 쓰기는 재현이 아니라 표현이다’라는 문장을 생각한다. 재현이라는 말 자체는 잘 알다시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문장으로 쓰는 것이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써서는 문학이 되지 않는 것이다. 저는 아마도 그때 재현된 것을 쓰지 않았나 싶다. 예를 들어서 비가 온다거나 눈이 온다거나 나무가 춤을 춘다거나 하는 것들은 재현된 풍경이다. 아마도 저는 이런 문장을 썼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표현은 일단 시인의 머릿속에 혹은 시인의 가슴속에 사물이나 풍경이 들어와서 다시 재구성된 어떤 현상을 쓰는 것이다. 표현을 하는 데 여러 가지 기법이 있다. 오늘 제가 즐겨 사용하는 '이중 구조의 시조 작법'도 표현의 일종이다.
기법이나 작법들은 표현하는 데 있어서 하나의 그릇이라고 생각한다. 그릇을 우선 잘 만들어야 한다. 그릇은 여러 종류가 있다. 자기가 어울리는 그릇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서 나무 그릇을 쓸 수도 있고 플라스틱 그릇을 만들 수도 있다. 이런 그릇 만들기는 하나의 시조 작법이자 기법인 것이다. 이런 기법 중 하나가 제가 잘 이용하고 있는 '이중 구조의 시조 작법'이다. 화자인 나와 시적 대상 간에 이루어지는 기법이다.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작품을 통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바람 불면 한 잎의 시
새 울어도 또 한 잎의 시
내 몸의 푸른 시구
단풍 드는 늦가을
허공에 울음 터트리며
천 잎 파지 날린다
배우식 「산단풍」 전문
이 작품에서 화자인 나와 산단풍 간에 이루어지는 작품이다. 화자인 내가 산단풍이 되어서 산단풍의 행동으로 산단풍의 말을 하고 있는 작품이다. 따라서 이중 구조의 기법은 화자인 나와 시적 대상인 산단풍 간에 이루어지는 기법이다. 다음 작품을 또 하나 살펴본다.
밟히고 밟힐 때마다
온몸에 멍이 든다.
조금만 조금만 더
참아야지 참아야지
그렇게 참고 견디면
큰 상처도 꽃이 핀다
배우식 「질경이」 전문
이중 구조의 기법으로 쓰여진 작품이다. 화자인 내가 질경이가 되어 행동하고 말하고 하는 것이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화자와 시적 대상 둘 간에 이루어지는 기법이다.
반대로 질경이가 화자가 되어 내가 되어 나의 생각으로 나의 행동으로 나의 말을 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화자가 시적 대상이 되어서 그 생각과 행동으로 말하는 방법이고, 두 번째 방법은 반대의 방법이다. 시적 대상이 화자가 되어 화자의 생각으로 화자의 행동으로 화자의 말을 하고 있는 방법이다. 이 두 방법 중 많이 쓰이는 방법은 첫 번째 방법이다. 두 번째 방법은 그렇게 많이 쓰이지 않는다. 왜 그러냐 하면 시적 대상이 말하고 있어서 한정 되기 때문에 두 번째 방법은 잘 쓰지 않는다.
첫 번째 방법, 화자가 시적 대상이 되어 행동하고 말하고 생각해서 쓰는 기법이 많이 쓰이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은 단순한 이중 구조의 기법이다.
다음에 살펴볼 작품은 복합적인 이중 구조의 기법으로서 이것은 단순 이중 구조의 기법을 응용하거나 변형시켜서 만들어진 기법이다. 복합 이중 구조의 기법으로 쓰여진 작품을 살펴본다. 지금까지는 이중 구조의 기법을 단시조로만 보았다.
연시조로 쓰기에는 단순한 이중 구조 기법으로는 부족한 것 같아서 복합 이중 구조 기법을 사용했다.
감나무 속으로 아버지가 들어갔다
그의 봄 문득 들리는 발자국 자박 소리
눈 씻고 뒤돌아보면 환한 눈빛 감꽃이었다.
아득히 그리운 길 한 바퀴 돌 때마다
출렁출렁 차오르는 아버지 저 살냄새
그 바다 오르내리며 만남을 꿈꾸었다
눈 감아도 눈 속으로 파고드는 울 아버지
감나무 안다는 듯 말랑말랑 붉어지고
나에게 속살을 살짝 드러내 보여 주었다
감나무 문 밖으로 홍시가 걸어 나왔다.
늦가을 간절한 듯 붉게붉게 익은 얼굴
달려가 바라다 보면 환한 눈빛 아버지였다.
배우식 「감꽃 아버지」
어느 날 아버지가 문득 돌아가셨다. 화장을 하고 그 유골을 받아든 저는 유골의 일부를 감나무 아래에 묻었다. 묻으면서 생각난 구절 하나가 있었다. “감나무 속으로 아버지가 들어갔다”는 문장이다. 시인의 감각으로 이 문장을 붙들고 오랫동안 생각했다.
이 문장을 서랍에 넣어두었다가 다시 꺼내보고 다시 넣고 다시 꺼냈다 하는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한 수 한 수 작품을 완성해 나갔다. 단순 이중 구조 기법은 화자인 나와 시적 대상 간에 이루어지는 기법이지만, 복합 이중 구조 기법은 화자인 나와 시적 대상이 둘이 등장한다. 「감꽃 아버지」라는 작품은 복합 이중 구조로 쓰여진 작품이다. 여기에 화자인 나와 감나무와 아버지가 등장한다. 감나무와 아버지는 서로의 속성에 흡수되어서 서로의 특색을 잘 나타내고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기법이나 시조 작법은 그릇을 만드는 것과 거의 동일하다. 그릇을 잘 만들었어도 표현이 잘 되지 않으면 그 작품은 실패하게 된다. 따라서 작품이 성공하려면 표현이 잘 돼야 하는데 가장 기본적인 묘사와 진술만큼은 시를 쓰기 전에 스스로에게 점검을 한 다음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저는 항상 묘사가 무엇인지 진술이 무엇인지를 입속으로 되뇌며 작품을 쓰는 과정을 거친다. 그렇다면 묘사는 무엇이고 진술은 무엇일까?
묘사는 어떤 풍경이나 사물의 지배적인 인상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시조를 쓴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풍경이 있다고 했을 때, 자전거를 쳐다보는 사람도 있고 또 연을 날리는 소년도 있고 여러 가지 풍경이 겹쳐져 있을 때 그 풍경을 전부 쓰려고 하면 작품은 실패한다. 그러니까 막연한 것이 아니고 전체를 다 쓰는 것이 아니고 가장 인상적인 풍경 하나를 붙들고 이것에 집중해서 그 구체적인 것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묘사는 또한 회화적으로 가시화하는 것이다. 이 말을 다시 풀어서 이야기하면 회화적인 것은 그림이라는 것이다. 그림 그리듯이 보여주는 것이다.
가시화하는 것도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게 하는 것 이것이 가시화이다. 저도 이것에 항상 주의를 하면서 경계를 하면서 하고 있다. 그렇다면 진술은 무엇일까? 쉽게 말해서 우리가 그대로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학문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독백이나 깨달음 등을 가청화하는 것이다. 아까 말한 묘사에서 가시화하는 것의 반대되는 개념으로서 가청화이다. 말하자면, 소리를 내는 것 소리화하는 것 이것이 진술의 어떤 정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것만 가지고는 좋은 표현이 될까?
저는 항상 작품을 써놓고 작품이 제대로 묘사가 잘 됐는지 아니면 설명인지를 항상 체크한다. 보통 우리가 시를 써놓고 보면 아니면 시조를 써놓고 보면 설명화돼 있는 것들이 많다. 그래서 저 역시도 작품을 쓰다 보면 설명을 하는 경우가 많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문학에는 설명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저 역시도 제 작품에 설명이 가능한 한 들어가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면 설명과 묘사의 구분법은 어떻게 할까? 설명은 개괄적인 상황이나 생각을 드러내는 정보 이것이 설명의 학문적인 개념이다.
또 하나 줄거리를 요점 정리하듯 쓰는 것도 설명에 해당된다. 묘사는 구체적이고 설명은 개괄적인 것이다. 그리고 다만 정보를 제공할 뿐이다. 그러면 어느 것이 설명인지 예를 들어본다. 두 문장으로 항상 체크를 한다. 시조를 쓰기 전에도 쓰고 난 후에도 이 문장으로 항상 체크한다. 첫 번째 문장은 "해가 저물고 있다"라는 문장이다. 두 번째는 "횡단보도 앞에 한 사람이 서 있다"라는 문장이다. 첫 번째 "해가 저물고 있다"란 문장은 묘사일까? 개괄적인 정보일 뿐이다.
따라서 앞에서 설명했듯이 이것은 바로 설명이 되고 만다. 두 번째 문장 "횡단보도 앞에 한 사람이 서 있다." 이것도 횡단보도 앞에 한 사람이 서 있는 정보만을 나타낼 뿐이고 정보만을 알려줄 뿐이므로 이 문장 역시 설명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묘사가 될까요? "해가 저물고 있다"라는 문장에서는 해가 있는 풍경을 구체적으로 적시해야지 묘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횡단보도 앞에 한 사람이 서 있다"라는 문장 역시도 신호등이 빨간 신호등인지 아니면 초록색 신호등으로 바뀌어 있는지, 신호등 옆에는 또 어떤 사람들이 같이 서 있는지 아니면 또 어떤 풍경이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잡아서 써야지 묘사가 된다.
그리고 ‘한 사람이 서 있다’라는 자체만 개괄적으로 이렇게 쓰지 말고 ‘한 사람이 서 있는데, 그 사람의 옷은 무슨 티셔츠를 입었는지, 와이셔츠를 입었는지, 모자는 썼는지, 아니면 머리가 벗겨졌는지, 머리가 긴지’ 이런 것도 구체적으로 언급해야지 좋은 묘사가 되고 좋은 표현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뒷문장이 묘사 문장이 이루어진다면 뒷받침할 수 있는 문장이 이루어진다면 첫 문장, 둘째 문장 이것도 단순히 설명이라고 결론 내리기는 힘들다. 따르는 문장이 “해가 저물고 있다”라는 정황을 잘 뒷받침해주는 묘사가 따른다면 좋은 표현이 될 수 있고 좋은 묘사가 될 수 있다.
두 번째 문장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시조를 쓸 때마다 때때로 설명의 문장이 들어가기도 하지만 뒷문장을 구체적으로 해서 그것을 뒷받침해 주기도 한다. 왜 그러냐 하면 설명적인 문장도 아끼고 싶은 문장이 때때로는 있다. 버리기 싫은 문장도 있다. 그래서 이 문장을 살리기 위해서는 뒤에 따르는 문장을 묘사적인 문장으로 뒷받침해서 그 문장이 살아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으로 시조를 쓰곤 한다. 여러분은 어떻게 시조를 쓰고 있습니까? 묘사와 진술, 아니면 설명과 묘사를 잘 구분해서 쓰시나요?
저는 항상 이 분야에 대해서도 굉장히 심각하게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하면서 항상 이것을 가지고 체크를 하고 수정을 한다. 지금껏 제가 이중 구조 기법을 사용해서 작품을 많이 쓰고 있었는데, 여러분도 이렇게 써보시기 바란다.
첫댓글 김태균 시인님!
<이중 구조의 시조 작법>
詩作法에 많은 도움이
되는 긴 강의! 여러번
반복, 탐독하여 잘 이해
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연송 샘, 오늩도 평강하세요.
잘 일고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채시인님 안녕하세요. 무더운 하절에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