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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바다교회 주일설교
일자: 2025년 7월 20일
https://youtu.be/RUL6n02oceU?si=pcnn64rzVdPcFK7y
제목: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설교 본문: 고린도전서 1:22 ~ 24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I. 설교를 위한 묵상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한다고 고백했다. 그가 본 유대인의 특징은 신의 개입과 도우심에 대한 갈망이었고 헬라인의 특징은 지혜를 찾는 것이었다. 여기서 헬라인들이 지혜를 찾는다는 말이 무슨 의미일까?
나는 이번 설교에서 헬라인들의 신화를 살펴보고 그 안에서 헬라인들이 지혜를 찾는다는 말의 의미를 생각해 볼 것이다. 그리고 그 지혜가 사도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의 지혜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볼 것이다. 이 비교를 통해서 나는 헬라인들의 ‘지혜 사랑’이 가지는 의미를 생각해 보고, 동시에 성경이 말하는 지혜가 어떤 가치를 갖는지를 생각해 볼 것이다.
이 설교를 통해서 우리는 오늘날처럼 다양한 생각이 극도로 발전하는 상황에서 성경을 이해하는 방식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인공지능(AI)이 모든 지식을 집적하고 제공하는 수준이 전문가의 수준에 근접하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그 기술을 사용하고 누리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역량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II. 설교의 방향과 주요 내용 소개
나는 이 설교에서 유대인들이 구하는 표적의 의미와 헬라인들이 구하는 지혜의 의미를 조금 더 생각해 볼 것이다. 아마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현현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만이 삶의 보장을 위한 가장 확실한 길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헬라인들은 지혜를 구했는데 그것만이 번영을 위한 필수요소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신화는 현상을 이해하려는 고심이 담겨 있고, 그들의 건축물에는 그들의 염원이 서려 있다. 헬라인들은 자신들이 그리고 만든 신화와 지혜를 숭배하면서 그것으로부터 구원을 갈망했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유대인이나 헬라인 모두 본질적으로는 구원을 갈망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제시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이여 지혜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능력과 지혜는 곧 구원을 얻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마 능력은 유대인의 언어이며 지혜는 헬라인의 언어인 것으로 보인다.
사도 바울은 왜 십자가가 유대인들이 구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헬라인들이 구하는 하나님의 지혜라고 이해했을까? 그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담긴 의미 때문이 아닐까? 그것은 하나님이 오래 전부터 계획하신 바로 그 구원의 길이며 방법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길과 방법은 필연코 성경 이야기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하나님의 비밀의 경륜이라고 불렀다.
나는 이 설교의 마지막 부분에서 한 주간 동안 익힌 톰 라이트의 구원이란 무엇인가의 핵심 내용을 정리할 것이다. 그것이 사도 바울의 주장인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왜 하나님의 구원이며 하나님의 지혜인지를 보여줄 것이다.
III. 설교의 개요
1. 무엇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 우리에게 필요한 것
① 유대인의 대답
② 헬라인의 대답
③ 현대인의 대답
2. 사도 바울의 자랑: 그리스도의 십자가
3.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4.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지혜다!
5. 하나님의 어리석음과 하나님의 약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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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설교안
1. 무엇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 우리에게 필요한 것
최근 저는 ‘구원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깊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2년 전, 영국의 신학자 톰 라이트는 짧은 영상 아홉 편으로 구원을 설명했습니다. 평생 신약성서를 연구하고 가르친 이 노학자의 구원에 대한 종합적인 결론은 제게 매우 가치 있게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한글 자막을 달고 요약 영상을 새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구원이란 무엇일까요? 간단히 말해, 구원은 문제와 곤경 속에서 건짐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병든 자를 고치실 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선언하신 것처럼, 우리가 구원받았다고 말할 때 그것은 우리가 고통받던 문제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는 뜻일 겁니다. 이처럼 구원은 특정 시대나 민족만의 갈망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근원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2천 년 전 유대인과 헬라인들도 그랬고,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 문제가 없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죠. 문제는 우리를 난감하게 하고 괴롭게 만듭니다.
이처럼 구원이 문제에서 건짐을 받는 것이라면, 우리는 구원을 받기 위해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어떤 결핍 때문에 문제에 빠지거나 벗어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죠. 그래서 구원을 바라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나름의 답을 찾으려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들은 지혜를 찾는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유대인들이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능력, 즉 표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헬라인들은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는 의미일 겁니다.
유대인들에게 구원은 하나님의 개입, 즉 “하나님의 능력(표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성경을 배우며 하나님이 능력으로 자기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내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개인의 번성과 형통도 하나님의 함께하심의 증거(표적)로 여겼죠. 즉,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능력의 팔을 펼쳐주실 때 모든 문제로부터 구원받을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렇다면 헬라인들이 ‘지혜를 찾는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헬라스는 오늘날의 그리스를 의미합니다. 그리스는 신화와 철학의 나라죠. 철학은 ‘지혜를 사랑한다’는 뜻이며, 그리스 신화는 인간 세상의 모든 일에 대한 지혜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게 그리스 신화는 마치 그림으로 철학을 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삶의 의미가 담긴 이야기이기 때문이죠.
우리가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 서 있다면, 혹은 오늘날 우리가 그리스 신화를 통해 그들의 세계관을 들여다본다면, 우리는 헬라인들이 무엇을 통해 삶의 근원적인 답을 찾으려 했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아테네의 수호신은 지혜의 신인 아테나 여신입니다. 올빼미는 모든 것이 잠든 시간에도 두 눈을 부릅뜨고 은밀한 가운데 일어나는 일을 살피는 모습 때문에 지혜의 여신 아테나를 상징하는 동물로 뽑혔다고 합니다. 아테네의 중심, 아크로폴리스 정상에는 아테나 여신을 위한 파르테논 신전이 웅장하게 서 있습니다. 헬라인들은 구원받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도시를 지켜달라고 지혜의 여신 아테나의 신전을 도시 한가운데에 세웠던 것이죠.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지혜의 여신 아테나는 아버지 제우스의 머리에서 완전한 성인의 모습으로 무장한 채 튀어나왔습니다. 이 이야기에는 지혜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그들에게 지혜는 남에게 의존하지 않으며 그 자체로 충분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저는 최근 서른이 된 자녀의 생일을 맞아 편지를 쓰면서 자녀의 성장에 대해 다시 생각했습니다. 자녀는 부모의 돌봄을 받지만, 성인으로 성장하면서 부모의 생각과 기대를 넘어 스스로의 길을 선택해야만 비로소 자신만의 길을 걷게 되죠. 저 또한 아버지의 기대를 넘어서 제 인생을 선택해 왔듯이 말입니다. 이처럼 아테나의 탄생 신화는 자녀가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정과 유사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스인들은 신화 속에 삶의 지혜를 담아 인생과 세상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들은 국가적인 위기 앞에서 신에게 지혜를 구하는 신탁에 의존했습니다. 페르시아 전쟁에서 델피의 신탁을 받아 승리한 이야기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과연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헬라인들은 지혜를 찾는 민족이었습니다. 그들은 지혜가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알려줄 것이라 확신했고, 그러므로 구원은 지혜를 통해서 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현대인은 어디에서 구원의 길을 찾고 있을까요?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대인은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할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다양하겠지만, 오늘날은 과학기술의 영향력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합니다. 특히 최근 “인공지능(AI)”의 괄목할 만한 발전은 우리에게 커다란 기대와 동시에 우려를 안겨줍니다. 과연 과학기술은 인류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근본적인 필요조건이 될까요? AI는 방대한 정보를 분석하고 효율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만, 삶의 근본적인 의미나 도덕적 가치, 혹은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궁극적인 지혜를 줄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지혜와 세상의 지혜가 나뉘는 지점입니다.
2. 사도 바울의 자랑: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 보내는 편지에서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들은 지혜를 구하지만, 자신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한다고 말했습니다. 유대인들의 구원 요구가 표적이었고 헬라인들의 구원 요구가 지혜였지만, 사도 바울은 구원의 길이 바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라고 그들에게 선포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는 표적이 문제 해결에 필수적이라고 여겼고, 헬라인들은 신으로부터 오는 지혜를 얻어야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사도 바울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의 길이라고 전했을 때, 그들은 어떤 반응이었을까요?
사도 바울은 복음 전도의 경험을 통해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의 반응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도 바울이 전하는 십자가의 복음을 거리끼는 것(걸림돌)으로 여겼습니다. 메시아가 나무에 달려 죽는 것은 저주받은 모습으로 여겨졌기에, 이는 메시아에 대한 모독이자 불쾌한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헬라인들은 그 이야기를 어리석은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구세주라면 테세우스나 헤라클레스처럼 영웅이 되거나, 적어도 페리클레스처럼 명망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체포되어 못 박혀 죽은 사람을 구원의 길이라고 소개하는 바울의 메시지를 도저히 수용할 수 없었던 것이죠.
하지만 사도 바울은 달랐습니다. 그는 못 박혀 죽으신 그리스도야말로 하나님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지혜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부르신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이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확신은 그가 복음 전도를 통해 만난 사람들을 통해 생겼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지혜라고 소개하는 것일까요? 아마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한 것은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을 향한 메시지였을 것이고, 하나님의 지혜라고 말한 것은 지혜를 구하는 헬라인들을 향한 메시지였을 것입니다. 즉, 유대인이나 헬라인 중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라면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분이 바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점에서 하나님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지혜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할 때, 우리는 사도 바울이 유대인들의 요구와 헬라인들의 갈망을 염두에 두고 이 말을 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3.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유대인들은 구원의 길을 “하나님의 개입(표적)”에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가장 강력한 개입이라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즉,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개입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개입이라 하면, 우리는 자기 백성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을 떠올립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셨고, 애굽의 이스라엘에게 오셨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할 때도 하나님은 그 성전에 영광으로 충만하게 임하셨죠.
그러나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떠나셨습니다. 에스겔이 환상 중에 본 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서 떠나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다시 자기 백성에게 돌아오셔서 그들의 문제에 개입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그래야 옛날 출애굽 때처럼 자유와 해방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서 기자들과 함께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심이 이사야의 예언대로 고난받는 종으로 오시는 하나님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약 성경의 모든 예언이 완성되었다고 사도들은 믿었기에, 그들의 설교에 구약 성경 인용이 많았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보기에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야말로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오셔서 그들을 죄와 사망에서 자유롭게 하고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있게 하시는 가장 명확한 표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에게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이것은 겉보기에는 유대인들의 기대를 벗어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예언자들의 예언을 성취한 하나님의 정확한 응답, 바로 복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그 복음을 듣고 기뻐하며 받아들였지만, 자신의 욕심과 무지, 그리고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도무지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은 어쩌면 불의 예언자 엘리야를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기도하여 하늘로서 불이 내리는 표적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엘리야를 하나님의 산으로 인도하시고 땅이 진동하고 강풍이 부는 불 가운데서 말씀하시지 않고 모든 것이 잠잠해졌을 때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 세미한 음성 가운데 들려오는 그 말씀은 결국 모두 성취되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심판이 이루어졌습니다.
사도 바울은 어쩌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야말로 하나님의 능력이며 온 세상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과 같은 분이라고 소개하는 것은 아닐까요? 예수님이 자신을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소개하셨는데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새롭게 하는 능력은 어쩌면 유대인들이 바라는 불 같은 표적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 안에 머물러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사도 바울도 십자가가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이겼다고 선언했습니다(골로새서 2:15).
4.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지혜다!
그렇다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는 헬라인들에게 어떤 점에서 하나님의 지혜가 될까요? 헬라인들은 지혜를 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지혜를 구하는 이유는 그것으로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보았듯이, 그들은 이 세상과 인생을 이해하기 위해 사람의 지혜를 담아 신화를 만들고, 그것을 바탕으로 철학을 논하며, 예술을 사랑했습니다. 아마 헬라인들은 이 세상이 혼란스러운 이유를 지혜의 결핍으로 이해했는지 모릅니다. 그들에게 지혜는 한편으로는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생과 세상 전체를 이해하는 지도와 같았을 것입니다.
헬라인들의 신화를 보면 그 모든 이야기에 신들의 활동이 나타납니다. 이는 인생 전체를 신들의 계시와 활동을 통해 이해하려 노력했음을 보여주죠. 그러나 그들의 신화는 초월적인 지혜라기보다는 인간 세상의 삶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 신화 속 신들은 인간처럼 결혼하고, 분노하고, 실수를 범합니다. 그러므로 지혜를 구하는 헬라인들이 만들어낸 신화는 어느 정도 인간의 삶을 반영하지만, 실제로는 허탄한 이야기였습니다.
헬라인들이 지혜를 사랑하고 신들의 지혜를 찾기 위해 애썼음을 우리는 압니다. 그러나 그들의 지혜는 수많은 현자들을 죽음에 몰아넣었으며, 자기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결정들을 반복했습니다. 그 결과 헬라인들은 여전히 고민과 갈등 속에서 참된 지혜를 찾기 위해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염원은 간절하기 그지없었지만, 그 염원이 충족될 것이라는 확신은 미약했습니다. 한마디로 간절히 바라지만 결코 얻지 못하리라는 것을 아는 사람과 유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처럼 지혜를 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헬라인들에게 사도 바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지혜라고 소개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가 왜 하나님의 지혜라고 사도 바울은 말했을까요? 아마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야말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셨다고 확신했던 것 같습니다. 헬라인들이 구하는 지혜란 결국 신의 지혜, 즉 하나님의 지혜를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과 형상을 그 삶으로 가장 잘 보여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가 보여주는 하나님의 형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리고 그것이 어떤 점에서 참된 지혜가 될까요?
그리스 신화에서 지혜의 여신 아테나는 아버지 제우스의 머리를 가르고 완전무장을 한 채 아이기스(Aegis)라는 방패와 긴 창을 들고 튀어나왔습니다. 헬라인들은 그 지혜의 여신이 도와주었으므로 페르시아에게 승리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활동하던 당시 그리스는 신흥 강국 로마에게 정복되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세상을 선도하는 국가가 아니었죠.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는 여전히 파르테논 신전이 위용을 자랑했지만, 그들의 나라는 더 이상의 영광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 아테나 여신은 더 이상 참된 지혜가 아니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여전히 불안과 갈등, 그리고 결핍 속에 살았습니다. 웅장하고 화려한 신전은 있었지만, 삶에 참된 지혜를 주는 진짜 신은 그 신전에 없었던 것입니다. 헬라인들은 우상을 섬기면서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는 제단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헬라인들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던 사도 바울은 그처럼 허망한 것을 진리로 받들고 살아가는 헬라인들에게 참된 지혜를 소개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한 가장 강력한 방책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하나님이 죄와 사망의 저주 아래 있는 우리를 해방하게 하는 하나님의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세상의 구원이 칼이나 창, 또는 혈육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자기 백성에게 오심으로 이루어질 것임을 누구보다도 분명하게 확신했습니다. 그 하나님은, 사도 바울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세상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표징이자 참된 지혜였습니다.
5. 하나님의 어리석음과 하나님의 약함
고린도전서 1장 25절은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세상의 눈에는 ‘어리석고’ ‘약해’ 보이는 십자가야말로, 인간의 모든 지혜와 능력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능력과 지혜를 드러냅니다. 전에 아테나의 지혜를 구하면서 살았던 헬라인이 이제 하나님의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며 따른다면, 그들도 이제 인생과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면서 빛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는 무엇을 통해 구원을 얻으려 합니까? 인공지능이 제시하는 효율과 정보입니까, 아니면 세상의 성공 공식입니까?
어쩌면 오늘도 우리 인간은 2천 년 전의 유대인들이나 헬라인들처럼 더 강력한 능력과 인간적인 지식을 구원의 길로 여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더 강력한 무기가 있어야 나라가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더 많은 국민소득이 우리를 행복하게 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진 사람도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인간은 이제 곧 첨단과학기술을 이용하여 영생불사를 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 저는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싸워야 할 가장 교묘하고 강력한 ‘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눈에 보이는 적이나 이념적 대립보다 더 깊숙이 우리 내면과 삶의 방식을 잠식해 들어오는 환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사도 바울을 따라서 십자가의 그리스도께서 오늘날 우리에게 참된 능력과 지혜가 된다고 선포하고 싶습니다. 더 많은 무기가 우리를 평화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와 포용의 십자가 정신이 세상에 평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더 많은 재력이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정신을 따라 나누고 베푸는 삶에 행복이 있을 것입니다. 최고로 발전한 첨단 기술이 인류에게 영생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에서 우리의 약함과 한계를 인정하고 최고가 아니라 최선을 위해 노력할 때 인류에게 지속가능한 미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라는 역설적인 진리는 오늘 우리에게도 그리고 앞으로 오고 오는 모든 세대에게도 필수불가결일 것입니다. 그 역설적인 진리 안에서 우리는 진정한 구원과 삶의 방향을 찾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살이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문명이 발전하는 것 같을지라도 우리는 복음의 진리를 굳게 붙들고 그 진리를 따라 살아갑시다. 그것이 진리를 따라 항해하는 구도자들의 교회, 생명의바다교회가 배우고 힘쓸 과제입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