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십자가의 믿음을 구하면 천국의 비밀을 알게 됩니다. / 2022년 6월 12일 주일 오후 예배
본문 / 마태복음 7:7-12
저는 이런 생각을 자주 합니다. 하나님은 왜 나를 세상에 보내셨을까? 나는 세상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이런 질문은 곧 저에게 분명한 답을 줍니다. 인생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합니다. 여러분은 세상에 무엇을 하러 오신 줄 아십니까?
사람들은 정말 불쌍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불신자들은 말할 것도 없지만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교회에 있는 수많은 성도들도 하나님이 왜 세상에 보내셨는지, 무엇을 하고 가야 할지 모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한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그 외모가 무엇입니까? 타락한 이 세상에서 힘과 가치와 영광으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모든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타락한 인간에게 자기 외모를 가꾸는 것은 자신의 인생이 되어버렸습니다. 자신을 다른 사람들보다 힘 있는 자로 만드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된 것입니다.
왜 이 세상의 힘과 영광과 가치로 자신의 외모를 가꾸는 것이 사람의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 마음과 영에서 진짜 힘과 가치와 영광이신 하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거듭나지 못한 성도들은 교회에 나와서도 자신의 마음과 영이 아니라 외모를 가꾸는 것을 신앙의 목표로 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자신의 마음의 중심에 모시는 것이 아니라 말입니다.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서울에서 한 아파트 경비원이 한 주민에게 갑질을 당했습니다. 경비를 종놈이라고 부르고 아파트에서 창문을 열고 경비를 부르고는 그 밑으로 떡을 던져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경비 너는 뭐하는 놈이냐고 모욕을 주었습니다. 이 말이 큰 상처가 되었습니다. 너는 뭐하는 놈이냐? 그 말이 귓전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이 세상의 힘과 영광과 가치로 자신을 판단하는 세상과 함께 자신도 이 세상의 힘으로 자신을 정죄한 것입니다.
그로인해 심한 우울증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결국 그 사람은 그 상처와 슬픔과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목숨을 끊고 말았습니다.
저도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너는 뭐하는 거냐고 말입니다. 순간 아파트 주민이 경비에게 한 말이 생각이 났습니다. 제가 큰 교회에 있으면 감히 그런 말을 하겠습니까? 교단도 없고, 교인도 몇 명 없고, 그렇다고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 세상의 힘과 영광과 가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으니 너는 왜 사냐고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마귀가 저에게 굴욕을 주고 제 믿음을 꺾어 우울하게 만들려고 하는 말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에 흔들리면 믿음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가치와 힘과 영광으로 누군가 나를 판단한다고 해도 저는 판단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제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이 세상의 것으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판단하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들이 자나 깨나 판단하는 그 외모를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으로 여기시고 오직 그 마음의 중심만을 보시는 분입니다.
마음의 중심에서 무엇을 보겠습니까? 사람의 마음의 중심은 주인의 자리입니다. 보물이 있는 곳입니다. 인간은 타락하기 전에 그곳에 하나님을 모시고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만나 회개하고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은 마음의 중심에 진짜 주인이신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진짜 힘과 영광과 가치인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내 마음의 중심에는 이 세상을 만드시고 나에게 생명과 인생을 주어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이 계십니까? 그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버리면서까지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천하보다 나를 더 사랑하십니다.
나와 함께 하시면서 나를 영원한 영광만이 있는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세상과 믿지 않는 자들을 심판하여 영원한 불 못에 던져 넣을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내 마음의 중심에 모시고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있는데 쓰레기만도 못한 썩어질 세상의 영광과 가치와 힘을 의지하며 그것으로 나를 판단하는 그 불쌍하고 어리석은 자들의 판단을 제가 받겠습니까?
이 세상으로 나를 판단하는 자들이 한 없이 불쌍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우리교회에 들어오자 대뜸 하는 말이 사람들이 이것밖에 없느냐고 말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그 말을 하고 싶어서 온 것입니다. 한 번은 전도를 하는데 어디 교회냐고 묻기에 어디라고 말을 하였더니 교회를 다니다 쉬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교회로 오라고 했더니 몇 명이나 모이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제가 교인들이 적으면 그것은 성도들에게 더 좋은 거라고 말했습니다. 교인들이 백 명이 넘으면 목사가 성도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부르며 기도할 것 같습니까?
저는 하나님이 사람들을 보내주시면 좋지만 보내주시지 않는다 해도 낙심할 것도 없습니다. 저는 솔직히 지금 있는 성도들을 다 천국으로 인도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교인에 대한 욕심을 버리게 됩니다.
마음의 중심 그 주인의 자리에 하나님을 모시는 것은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를 믿음으로 회개하고 거듭날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안 되면 교회에 다니며 주여 주여는 해도 여전히 세상의 힘과 영광과 가치로 자신과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그것으로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교만에 치우치기도 하고 열등감에 빠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내 영과 마음의 중심에 완전한 힘과 영광과 가치이신 하나님이 없는 사람이 아주 교만한 사람을 만나 공격을 받으면 극심한 열등감에 빠지게 됩니다. 너는 뭐하는 거야? 하는 게 뭐가 있어? 이 말은 너는 무슨 가치가 있는 사람이냐는 말이 되고 그 즉시 이 세상의 힘과 영광으로 자신을 판단하며 아무 것도 내세울 것 없는 자신을 확인할 때에는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마귀의 시험과 전략입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한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귀의 시험과 전략에 넘어가서 기가 막히게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마귀의 자식들과 세상의 힘으로 비교하며 열등감에 빠져 하나님마저 불신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이 세상에서는 그 외모로는 바보 머저리 같아도 그것은 잠시 아침에 입었다가 저녁에 벗는 옷과 같은 것입니다. 속사람을 보시는 하나님께 우리는 그 마음의 중심에 진짜 보화이며 힘과 영광이신 하나님을 모셔야 하는 것입니다. 머리가 좋다고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고 얼굴이 예쁘다고 하나님도 예쁘게 보지 않다는 겁니다.
성도에게는 거인 골리앗을 향해 달려가는 소년 다윗과 같은 강한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다윗이 세상의 힘을 의지하며 교만하던 거인 골리앗을 넘어뜨렸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다윗이 이같이 물매와 돌로 블레셋 사람을 이기고 그를 쳐죽였으나 자기 손에는 칼이 없었더라.”
타락한 인생들이 의지하고 자랑하는 칼과 단창과 큰 신장과 힘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뭘 구하고, 뭘 찾고, 뭘 두드리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예수님은 앞에서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이런 것은 구하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을 위해 이 세상의 영광과 힘과 가치를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는 말씀이 아닌 것입니다.
산상수훈은 십자가의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믿음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이제는 구원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그 구원을 이루어가기 위해 무엇이 있어야겠습니까? 십자가의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십자가에 내어 주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신 하나님이 그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자들이 이 세상에서 그 구원을 이루어가기 위해 십자가에 믿음을 구할 때 주시지 않겠느냐는 겁니다.
십자가의 믿음이 있어야 좁은 길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자신을 부인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뜻을 받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자들은 많지만 구원을 이루어가기 위해 십자가의 믿음을 구하는 자들은 적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믿음을 구하고 찾는 것이 결국은 천국의 문을 드리는 것입니다. 오전에 십자가의 믿음이 없으면 부활은 어림도 없다는 말씀을 하였는데 십자가의 믿음으로 구원을 이루어가지 않으면 부활은 꿈도 꿀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믿음을 구하고 있습니까? 십자가의 비밀을 찾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문으로 들어가 좁은 길을 가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산상수훈의 마지막 부분에서 천국은 주여 주여 한다고 다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순종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십자가의 믿음은 십자가의 비밀이며 그것은 곧 천국의 비밀이기도 합니다. 내가 죽고 내 안에 주님이 사시는 그 십자가의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부활의 영광을 누리게 될 천국의 비밀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국은 나를 낮추어 남을 높이고 섬기는 곳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도는 천국의 그 원리를 이 세상에서 십자가의 믿음으로 배우고 가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 세상에서 자신을 낮추어 남을 섬기는 것은 상상도 못하는 교만한 사람이 주여 주여 하며 믿는 척한다고 천국에 가겠습니까? 자신을 낮추어 남을 섬길 줄 모르고 나에게 잘 못한 사람을 용서할 줄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나를 낮추어 섬기고 사랑하는 천국에 가겠습니까?
교만하고 용서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자들이 가는 곳은 지옥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믿음과 천국의 비밀을 맡은 자가 되어 남들이 가지 않는 십자가의 좁은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전에도 말씀을 드렸었습니다. 한 목사님이 오갈 데 없는 여러 명의 아이들을 돌아보았습니다. 그 중에는 신학교에 다니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학교를 휴학하고 집에서 아이들의 공부를 가르치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다 자기 공부가 우선인데 이 학생은 자기 공부를 뒤로 미루고 아이들 공부를 먼저 챙기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이 이 학생이 기특해서 방으로 불렀습니다. 내가 너에게 특별히 천국의 비밀을 알려주겠다고 하였습니다. 학생은 긴장을 하며 목사님이 말하는 것을 받아 적었습니다. 이 집에서 가장 더럽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게 뭐냐? 화장실입니다. 이제부터 화장실 청소는 네 것이다. 그 다음은 어디냐? 부엌의 음식 쓰레기입니다. 그것도 남에게 빼앗기지 말고 네가 해라. 그 다음은 뭐냐? 아이들이 빨래를 구석에 버리는 것입니다. 네가 아이들이 구석에 버린 빨래를 거두어서 해라.
신비로운 천국의 굉장한 비밀을 기대했던 학생은 얼굴이 점점 굳어졌습니다. 그렇지만 이 학생은 순종했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다 하겠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이 학생에게 어느 날 너는 변호사를 한 번 해보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학생은 국제 변호사가 될 수 있는 한동대의 로스쿨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실력으로 어림도 없었습니다. 그 로스쿨에 들어가기 위해 명문대 출신들이 몇 년을 공부하는데 이 학생은 영어도 못하고 기초지식도 없었습니다. 면접을 보기 위해 한동대에 가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학생이 식사를 마치고 다른 사람들이 버리고 간 식탁을 청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한 사람이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학생은 누군데 여기서 청소를 하고 있느냐고 말입니다. 저는 이런 목사님과 아이들과 함께 사는데 이런 것을 치우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그렇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면접장에 들어갔는데 면접관 중에 식당에서 만난 분이 로스쿨의 부학장이었습니다. 한동대는 면접의 비율이 높다고 합니다. 그렇게 면접을 보고 왔지만 워낙 실력이 떨어지니 합격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있었는데 합격 통지서가 날아온 것입니다. 이 학생은 이론이 아니라 삶으로 살아내는 그 십자가의 믿음이라는 진짜 실력으로 합격을 한 것입니다.
십자가의 믿음과 천국의 비밀이 무엇인지 알아도 막상 삶으로 순종하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좁은 길을 가는 자들은 적은 것입니다. 나를 겸손하게 낮추어 남을 높이고 섬기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은 십자가에 나를 부인하는 그 믿음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나의 기쁨보다 남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쉽겠습니까? 그러나 구원을 이루어가는 성도는 항상 그 마음에 십자가를 품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십자가의 믿음이라는 것이 대단하고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내 삶에서 아주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안준모 집사님이 상추를 갖고 오셨습니다. 자기에게 필요하고 먹을 만한 것은 다 가져가고 필요 없는 것은 남겨놓았습니다. 상추를 가져갔던 안 갖고 갔던 그게 문제가 아니라 남들이 가져가고 필요 없는 것만 남았을 때 그것을 내가 가져가서 치워야지 하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다 자기에게 필요하고 유익한 것을 챙길 때 남들이 원치 않고 싫어하는 것을 아! 저것이 내 것이라고 치우는 사람이 가장 귀하고 좋은 것을 가져간 사람입니다. 상추를 가져가면 한 번 먹고 말겠지만 남들이 버린 쓰레기를 가져간 사람은 하나님이 눈여겨 볼 것입니다. 그 사람은 가장 귀한 것, 영원한 것을 가져간 것입니다. 그것이 십자가 즉 천국의 비밀입니다.
하나님은 그래, 너는 남들이 외면하는 십자가를 아는구나 하실 겁니다. 저는 교회 주방의 음식 쓰레기를 가져가는 성도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에게 하라는 게 아닙니다. 기대하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알고 천국의 비밀을 아는 사람이 지켜보면 알 겁니다. 음식 쓰레기는 항상 사모님이 치우네. 저거 내가 가져가야지 하는 사람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음식 쓰레기를 내가 안 치워서 좋은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아는 사람, 천국의 비밀을 아는 사람을 만나는 기쁨은 최고인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을 기쁘게 하길 원하십니까?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나도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다는 믿음이 있는 분들은 들으십시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은 대단한 것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교회에서 남들이 싫어하는 것, 원치 않는 것, 외면하는 것을 찾아보십시오. 그곳에 십자가와 천국의 비밀이 있을 것입니다. 남들과 같이 해서는 평생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의 눈을 뜨고 잘 보십시오. 십자가의 믿음을 구하십시오.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을 찾으십시오. 천국의 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