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 옥정호에서 진안으로 향했다
마이산을 제대로 본지 거의 20여년이나 흐른 것 같다
진안고원시장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진안은 무주, 장수와 더불어 소위 ‘무진장’이라고도 불리는 대표적인 고원지대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고장인만큼 주민들 간의 교류와 물자 유통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5일장이 발달하게 되었다.
진안고원시장은 2010년 2월 건물형 시장으로 시설을 재정비하여 상설시장으로 운영하지만, 지금도 4일과 9일마다 5일장이 함께 열린다. 5일장이 서는 날이면 백여 개의 점포가 들어서서 시장이 활기를 넘친다.
인삼과 고추, 약초로 유명한 고장인 만큼 시장에서도 특산물을 많이 판매하고 있으며 동시에 생필품을 판매한다.
저녁식사 후 진안읍내를 가로지르는 하천공원 정자에서 휘영청 떠오르는 3월의 보름달을 맞는다
다음날 새벽 우화정 공원을 산책하고 마이산 남부주차장으로 향했다
마이산 금당사 金塘寺 의 일주문이 제일 먼저 반긴다
금당사(金堂寺)라고도 한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이다. 절의 창건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650년(의자왕 10) 고구려에서 백제로 건너온 보덕(普德)의 11제자 중 한 사람인 무상(無上)이 그의 제자인 금취(金趣)와 함께 세웠다고 한다. 당시 위치는 지금보다 약 1.5㎞ 떨어진 곳이었으며, 그래서 예전 자리를 고금당(古金塘), 혹은 자연동굴을 법당으로 삼았으므로 혈암사(穴巖寺) 또는 금동사(金洞寺)로 불렀다고 한다.
지금의 자리로 옮긴 것은 1675년(숙종 1)의 일이다. 다른 하나의 창건설은 814년(헌덕왕 6) 중국승 혜감(慧鑑)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한때 대찰의 면모를 갖추었고 여러 차례의 중건 및 중수를 거쳤는데, 한때 고려의 고승 혜근(惠勤, 1320∼1376)도 이곳에 머물며 수도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쇠락하였으나 1675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중창하였다. 그 뒤 1978년에는 명부전, 1987년에는 산신각, 1990년에는 극락전을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전 · 지장전 · 삼성각 · 대방(大房) 등이 있다.
대웅전은 약 300여 년 전에 건립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나한전에 봉안된 6척의 목불좌상은 동구나무로 만든 것으로 1973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너비 5m, 길이 9m의 금당사 괘불탱은 1997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그 밖에도 대웅전 앞에는 고려 말 조선 초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석탑 1기가 있는데 1986년 전라북도 문화재자료(현,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이 절에서 근 1킬로미터 들어가면 마이탑사(馬耳塔寺)와 단군을 받드는 이산묘(이山廟)가 있다.
탑사까지 오르는 길 사이에는 탑영제로 막은 호수도 있어 탐방객의 마음을 더욱 들뜨게 한다 오리배도 탈 수 있어 가족단위 및 단체관광객이 흥을 돋우며 놀기에는 좋은 장소이다
우리가 갔을 때는 못 보았지만 이곳 벚나무 군락지 또한 유명해 이른 봄 벚꽃이 필 때는 더욱 장관이란다 너무 인파가 많아 진안사람들은 아예 벚꽃 구경을 피할 정도란다
대신 오늘은 영산홍과 이름모를 풀꽃, 꽃잔디가 화려하게 주변을 수 놓았다
마이산에 접근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북쪽에서는 진안읍 방향에서 천왕문으로 오르는 길이 있고, 남쪽에서는 마령면 동촌리 방향에서 금당사, 탑영저수지, 탑사, 은수사를 거쳐 천왕문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마이산에는 수마이산과 암마이산 중간에 금강과 섬진강의 분수계인 천왕문이 있고, 숫마이산 쪽에는 마이산 화엄굴이 있는데 이곳에는 석간수가 솟는다.
숫마이산은 경사가 급하여 등반이 불가능하고, 암마이산은 70~80%의 경사부분이 있지만 등반은 가능한데, 천왕문에서 0.45km 거리이다.
그리고 북쪽보다는(마이사) 남쪽에 유명한 사찰이 있다. 수마이봉 남쪽 기슭에는 은수사(銀水寺)가 있고, 그 아래에는 탑사(塔寺) 그리고 탑영저수지 아래에는 금당사가 있다.
마이산이 지금의 이름을 얻게 된 것은 조선 태종 때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태종이 남행(南行)하여 이 산 아래를 지나다가 그 모양이 말의 귀와 같다 하여 마이산이란 이름을 내렸다고 한다.
마이산 동쪽 봉우리를 수마이봉(667m), 서쪽 봉우리를 암마이봉(673m)이라 부른다.
탑사는 암마이봉의 수직 벽이 올려다보이는 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다. 탑사를 건립한 이는 처사 이갑룡(1860~1957)인데 그는 크고 작은 돌을 쌓는 방식으로 생전에 108기의 탑을 만들었다고 한다.
10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80여 기에 달하는 탑이 남아있다. 이갑룡의 본명은 이경의(李敬議 )이며 자는 갑룡(甲龍), 호는 석정(石亭)이다. 전주이씨 효령대군의 16대손으로 1860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나 백수(白壽)를 누리고 1957년에 마이산 기슭에 묻혔다.
본명보다 ‘이갑룡 처사’로 불리는 그는 생전의 숱한 일화들을 남겼는데 마이산 인근 사람들에겐 전설적인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그는 스물다섯 살 되던 해에 유 · 불 · 선 삼교에 바탕을 둔 용화세계의 실현을 꿈꾸며 이곳에 들어왔다고 한다. 그리고 사람들의 죄를 빌고 창생(蒼生)을 구할 목적으로 30년을 한결같이 낮에는 돌을 나르고 밤에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탑을 쌓았다.
그렇게 해서 이룩된 탑이 108개인데 이른바 백팔번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염원이 그 안에 담겨 있다고 한다.
탑사의 탑은 자연석을 원뿔 모양을 만들고 그 위에 외줄 탑을 올렸다. 탑은 단순한 형식이지만 비바람에도 무너지지 않는 견고함이 있다.
1976년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1885년(고종 25)경에 임실에 살았던 처사(處士) 이갑룡(李甲龍)이 수도하기 위하여 마이산 밑으로 이주한 뒤 108기의 석탑을 30여년에 걸쳐서 혼자 축조하였는데, 지금은 약 80여기가 남아 있다.
석재(石材)를 다듬어 만든 일반탑이 아니라 자연석을 차곡차곡 쌓아올린 탑들의 높이는 1m에서 15m까지 있고, 그 크기는 고르지 않다.
이 탑들은 천지탑(天地塔) · 오방탑(五方塔) · 월광탑(月光塔) · 일광탑(日光塔) · 약사탑(藥師塔) · 중앙탑(中央塔) · 월궁탑(月宮塔) · 용궁탑(龍宮塔) · 신장탑(神將塔) 등으로 이름이 붙어있으며, 각각 나름대로의 의미와 역할을 지닌다고 한다.
이갑룡이 25세에 마이산에 입산하여 솔잎을 생식하며 수도하던 중 신의 계시를 받아 만불탑(萬佛塔)을 쌓았는데, 낮에는 돌을 나르고 밤에는 탑을 쌓되 천지음양의 이치와 팔진도법(八陣圖法)에 따라 축조하여 완성시켰으며, 98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정성과 기도로 시종일관하였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