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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도움을 구하라,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구조를 받아야 할 상황에 처한다
코미디언 제리 세인필드에 따르면 어떤 사람이 부탁을 할 때 도와 달라는 말을 하고 나서 침묵이 흐르는 시간으로 그 사안의 경중을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침묵의 순간이 짧으면 간단한 일이고, 길면 큰 일인 것이다. 도움을 청하기 위해 오랫동안 기다릴 수록 침묵의 순간이 길어진다. 그만큼 다른 사람의 도움이 더욱 절실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사막 규칙의 '함께'라는 요소는 다른 규칙들과 상호 연관되어있다. 때로 오아시스에서 쉬어가려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아이 보는 데 심신이 지친 부모에게는 그들이 아이에게서 벗어나 자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아이를 돌보아 줄 베이비 시터나 친척이 필요하다. 앞뒤가 꽉꽉 막힌 상황에서는 우리의 자아에서 공기를 빼줄 수 있는 사람, 그래서 우리가 사과를 하거나 용서를 하거나 앞으로 나갈 수 있도록 도와 줄 친구나 상담자가 필요하다. 코치나 책 또는 지원 단체는 우리가 따라야 할 나침반의 바늘을 찾도록 도와 줄 수 있다.
인생의 사막에서 다른 차에 깃발을 흔들어 구조 신호를 보내야 할 이유는 많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 그것이 감정적인 자양분과 육체적인 힘이 되어 우리가 스스로 해야 하는 일을 하는데 쓰일 수 있다. 어느 누구도 나를 대신해서 사막을 건너 줄 수는 없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서로 교류하고 좋은 시간을 갖는 것은 다른 사람이 대신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인생의 사막을 건너는 데 길잡이가 되어 줄 내부의 나침반을 선택하는 것은 본인 스스로 해야 할 일이다. 다른 사람의 배신을 용서하고, 나 지신이 유한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철이 들고, 상실감에 슬퍼하고, 퇴직 이후의 생활에 적응하는 것은 본인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지금 자신의 사막의 중심으로 더 깊이 들어가기 위해서 어떤 종류의 도움이 필요한가? 단순한 도움이 구조를 받아야 할 상황으로 커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 되도록 빨리 도움을 구하는 것이 좋다.
동쪽으로 보이는 아하가르 산맥의 거무스레한 정상를 보니 타만라세트가 멀지 않은 것 같았다. 여기까지 무사히 온 것만도 다행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가장 위험하고 험난한 여정, 마지막 오아시스인 아가데즈까지의 여행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국경선을 넘어 니제르로 깊숙이 들어가면 아가데즈라고 하는 마지막 오아시스에도 도착하게 되고, 그곳을 지나면 사막의 모래는 점차 사하라 사막 이남의 땅으로 변한다. 타만라세트에서 아가데즈 까지는 길이 없다. 별 특징도 없는 모래와 바위로 이루어진 이 800킬로미터에 이르는 지역에서 수백 명의 여행자가 목숨을 잃었다. 낮 동안에는 기온이 54.4도까지 올라가고, 눈앞을 가리는 모래 폭풍이 며칠 동안 그치지 않고 계속 몰아칠 때도 있다.
길에서 몇백 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가 차라도 고장나면 탈수로 죽게 되는 그런 곳이다.
우리는 나무가 드리워진 타만라세트의 거리를 따라 캠프장으로 가서 마지막 남은 야영지를 차지했다. 장뤽은 이 오아시스에 사람이 너무 많은 것이 이상하다고 했다. 그 이유는 곧 밝혀졌다. 알제리와 니제르의 국경이 봉쇄되었기 때문이었다. 아가데즈로 가는 길 중간 쯤에 있는 니제르 국경에서 여행객들을 되돌려 보낸 것이다. 알제리 경찰은 타만라세트 이남으로 차량이 이동하는 것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았다.
서부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에서 쿠데타 시도가 있었고, 그 때문에 니제르처럼 예민한 이웃 국가는 아예 외국인들에게 국경을 봉쇄해 버렸다. 언제 국경이 다시 열릴지는 아무도 몰랐다.
프랑스인들은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앙드레는 탤리스와 나 둘이서 계속 여행을 하는 것은 바보짓이라고 했다. 우리가 받은 알제리 비자는 곧 유효 기간이 만료될 상황이었다. 돈도 거의 다 떨어졌다. 국경이 다시 열린다 해도, 무임승차 승객을 태워 줄 만한 여우가 있는 사람은 없었다. 아가데즈까지 800킬로미터를 가려면 공간을 최대한 활용해서 기름과 물을 실어야 할 터였다.
텔리스는 곧 마음을 결정했다. 그는 나와 함께라면 계속 남쪽으로 가겠다고 했다. 겨울이 없는 아름다운 해변에서 2월을 보낸다는 생각이 그를 계속 유혹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발길을 돌리자고 하면 그는 주저없이 프랑스로 향할 것이었다. 이제 나만 결정하면 될 일이었다. 나는 완전히 혼자인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클라우스에게 내 심정을 토로하며 조언을 구했다. 그러자 그는 특별한 제안을 해왔다.
"나랑 함께 갑시다. 나는 아세크램에 있는 은자의 처소로 가는 길입니다. 거기 가면 진짜 완벽하게 혼자가 될 수 있습니다."
더욱 완벽하게 혼자가 되는 것이 그때 내가 빠져 있던 딜레마에 대한 답인 것 같지는 안았지만, 나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탤리스는 프랑스인들과 캠프에 남았고 나는 아하가르 화산의 봉우리와 바위가 달빛을 받아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기는 곳으로 향했다. 심하게 울퉁불퉁한 바위 길을 통통거리며 달려가면서 클라우스는 그 유명한, 사막 안에 있는 은자의 처소의 유래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샤를 드 푸콜은 군인으로서 세운 공보다는 방탕한 생활로 더 유명한 프랑스의 군 장교였다. 귀족 집안 출신의 자작으로서 사를은 1800년대 후반 알제리로 배속되어 상류 생활을 누렸다. 하지만 군복부를 마친 후 그의 생활은 급변했다. 그는 금욕적인 수도승이 되어 투아레그 유목민을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는 일에 헌신했다. 그는 아하가르 산맥의 바람에 씻긴 황량한 봉우리들에 둘러싸인 2,700 미터 높이의 산꼭대기에 은자의 거처를 세웠다. 샤를은 직접 말로써 개종을 설파하기 보다는 자선과 이기심 없는 생활을 통해 사람들이 스스로 교화되기를 바랐다. 결국 투아레그인들의 존경과 사랑은 얻었지만, 한 사람도 가톨릭교도로 개종시키지는 못했다고 한다.
이 성인의 독실함에 영감을 받은 클라우스는 기도를 하기 위해 사하라 사막을 찾았다. 그는 젊은 아내가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이것밖에 없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는 완벽하게 혼자가 되어서 하느님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했다.
우리는 조그만 트럭 안에서 억지로 잠을 청하며 추운 밤을 보냈다. 아침 6시에 클라우스가 나를 깨웠고 우리는 어둡고 고요한 길을 따라 은자의 처소까지 이어진 수킬로미터에 달하는 바위 길을 걸어 갔다. 거대하고 평평한 산 정상에 다다르자 모직 모자와 오리털 재킷을 입은 수도승이 우리를 맞았다. 그는 샤를 이 창시한 '예수님의 작은 형제들. 의 일원이었다. 클라우스는 하늘이 엷은 녹색을 띤 청색의 빛을 발하기 시작할 무렵 동쪽의 절벽으로 걸어갔다. 나는 바위에 등을 기대고 앉아서 지평선 너머로 하늘 색깔이 변하는 모습을 지켜 보았다. 나는 혼자 앉아서 누군가 지구상에서 가장 멋진 광경이라고 평한 그 해돋이를 기다렸다. 타마세크어로 아세크렘은 '세상의 끝' 을 의미하는데, 정말 그런 느낌이 들었다. 사방은 조용했고, 광대한 사막에 있는 내가 정말 보잘것없는 초라한 존재로 느껴졌다. 나는 혼자였지만 외롭지 않았다.
태양은 아하가르 산맥의 화산 절벽을 눈이 어지럽도록 비추어 주는 느린 불꽃놀이, 조용한 폭발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해가 뜨는 모습을 바라보고 일어섰다. 그리고 길로 접어들어 클라우스의 트럭을 세워둔 곳까지 내려왔다. 나는 마음을 정했다. 탤리스와 나는 아가데즈까지 간다. 내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논리적으로 설명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오아시스까지 어떻게 갈 것인지에 대한 계획도 없었다. 내가 아는 것은 내 안의 나침반이 계속 남쪽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유명한 화가나 걸작을 창작할 때 도제나 조수를 활용한다. 캔버스에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이건 소설을 쓰기 위한 조사 작업이건 이러한 팀워크를 통해 역사적인 위대한 작품들이 탄생되는 것이다. 하지만 스케치나 성격 묘사, 명암이나 줄거리 구상 같은 아주 중요한 본질적인 부분은 다른 사람에게 절대로 위임하지 않는다. 화가나 작가는 '이 부분만큼은 나 혼자 작업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위대한 창의성을 타고난 사람은 자기가 혼자 작업해야 할 부분을 직감으로 안다. 하지만 사막에서의 변화는 직관에 반대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자아는 변화에 저항하는 속성이 있으며, 이 때문에 해야 할 일로부터 멀어져 스스로 해야 할 일을 피하거나 남에게 위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장뤽과 앙드레가 프랑스로 되돌아가기로 했을 때 나는 그들과 함께 가느냐 아니면 가던 길을 계속 가느냐 하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 기로에 서게 되었다. 나는 그 결정을 누군가 남에게 미루고 싶었다.
우리의 결혼 생활이 끝났을 때 나는 280평방미터(약85평)에 달하는 우리의 새집, 꿈의 집을 나왔다. 그 집에서는 브리티시 컬럼비아의 셀커크 산맥에 있는 빙하에서 흘러 내려온 물로 이루어진 호수가 보였다. 나는 그런 집을 떠나 트레일러 공원 안에 있는 이동식 주택을 빌렸다. 나는 이혼한 아내에 대해 불평을 하며 소일했고 술도 많이 마셨다. 어느 날 전화로 언쟁을 벌이다가 화가 난 전처는 차를 몰고 와서 내 트래일러를 박아 버렸다. 나는 말도 안 되는 컨트리 노래가사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어느 날 저녁 나는 마음이 너무 울적해서 텔레비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과거와 현재의 스타들이 나와서 옛날 컨트리 노래를 부르는 프로그램에 채널을 고정시켰다. 맥주병을 막 땃을 때 파란색과 흰색의 카우보이 재킷을 입은 은발 신사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오늘 너무 외로워 눈물이 날 것 같은데,....." 나는 그 노래에 완전히 동화되어 울기 시작했다. 나는 그 노래가 멈추지 않기를 바랐다. 그 노래는 마치 나를 위해 씌어진 노래 같았다. 나는 그 프로그램을 녹화한 비디오를 주문하기 위해 펜을 찾아서 수신자 부담 전화 번호를 적었다.
그러다가 제정신이 든 나는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를 깨닫고는 화들짝 놀랐다. 나는 절대로 텔레비젼에서 광고하는 물건을 주문하기 위해 수신자 부담 전화 번호를 적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맥가이버 칼도, 티타늄으로 만든 신제품도 살 사람이 아니다. 하물며 컨트리 음악을 사기 위해 전화를 하다니. 완전히 정신이 나갔거나 최면에 걸렸던 것이 틀림없었다.
어쨌든 그 노래와 내 황량한 주변 환경 덕분에 나는 내가 얼마나 완벽하게 혼자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그것을 회피할 수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길 수도 없었다. 그저 나 혼자 느껴야 했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혼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나는 덜 외로워졌다. 이 사막, 이혼 후의 외로움에 대해 얼마나 많은 노래가 만들어졌던가. 그건 다른 사람들도 이런 길을 걸어왔다는 뜻이 아닌가. 나는 갑자기 나처럼 혼자라고 느끼는 동료를 수천 명 만난 기분이었다. 그들 대부분이 아마 엘비스가 아직 살아 있는 게 아닌가 싶을 만큼 노래를 불러댔을 터였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혼자라는 사실을 참을 수 있게 되면 지원병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저 잠시 혼자 있을 수 있으면 그 상태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고, 심지어는 앞으로 가야 할 방향까지 볼 수 있다.
적절한 위안거리나 위안을 줄 사람을 찾으면 혼자가 되는 것도 쉬워진다. 불치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친구 또는 호스피스 자원자와 같은 낯선 사람이라도 침상 곁에 함께 하면 죽음의 외로움에 맞설 수 있다. 숙련된 치료사나 성직자 또는 정신적인 스승이 있으면 중년의 위기라고 하는 어둡고 힘든 여행이 견딜 만해지고 또 앞으로 가야 할 길까지 찾을 수 있다. 이러한 매서운 시험은 우리의 여행을 대신해 줄 사람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옆에서 도와 준다고 해도 우리는 여전히 혼자다. 클라우스는 내가 해야 할 결정을 대신 내려 주지 못했다. 대신에 그는 세상에서 가장 멀고 황량한 곳에 위치한 은자의 집에 나를 데려감으로써 자기의 고독을 나와 나누어 가졌다. 그는 내가 나와 함께 할 수 있도록 도와 준 것이다. 진정 혼자가 되고 나면 무엇인가 변화가 일어난다. 내부에 잠자고 있던 나침반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결혼의 사막에서 종종 사람들은 타인을 위해 자신을 잃어 버리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기도 한다. <<결혼 안식일>>이라는 소설에서 작가 셰릴 자비스는 몇 십 년 동안 아이들과 남편을 돌보는 일에 정성을 쏟았던 중년 여성들이 즐거움을 좇아가면서 자아를 발견해 나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책에는 결혼 생활에서 벗어나 몇 주 동안 또는 길게는 2년 동안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 중에는 전문적인 집필 시설에 들어가서 책을 쓰는 여성도 있고, 2년동안 평화 봉사단에서 활동하는 여성도 있다. 가족과 떨어져서 혼자가 되자 이 여성들의 삶에 새로운 것이 들어온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일상적인 결혼 생활을 할 때는 보이지 않았던 자신의 일부를 발견하고 스스로와 소통하게 된다. 그들은 이렇게 자아를 발견하고 난 뒤 가족에게로 돌아온다.
혼자가 되어야 할 순간에는 산을 타는 산악인이 되기보다는 사막의 은둔자가 되는 것이 낫다. 진짜 사하라 사막에서건 인생의 사막에서건 혼자가 되는 순간 우리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더 잘 들을 수 있고, 우리의 영혼이 원하는 것을 똑똑히 알 수 있으며, 우리 속에 들어 있던 심오한 지혜의 울림을 분명히들을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의사소통을 하기 위한 비법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목적도 없이, 일정도 없이 그냥 혼자가 되는 것이 그 방법이다. 그러나 혼자가 된 다고 해서 외로워지는 것은아니다. 고독한 상태에서는 자신보다 큰 다른 무언가와 연결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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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혼자가 되어야 할 순간에는 산을 타는 산악인이 되기보다는 사막의 은둔자가 되는 것이 낫다....공감합니다.
고마워요,..^^모나리자님. 오늘 글을 읽지 않고 올렸어요. 쓸때 두어번, 올릴때 한 번 더 읽고 올리는데,...하기사 점검을 해도 오타를 못찾을 때도 있네요.^^
^^ 밑에서 4째줄 ? 잘 읽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