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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田 子 方 (외편 14, 전체 21)
田子方이 侍坐於魏文侯하야서 數稱谿工한대
文侯曰 谿工은 子之師邪아
子方曰 非也라 无擇之里人也니 稱道ㅣ數當할새 故无擇이 稱之하노이다
文侯曰 然則子는 无師邪아
子方曰 有하니이다
曰 子之師는 誰邪오
子方曰 東郭順子니이다
文侯曰 然則夫子는 何故로 未嘗稱之오
子方曰 其爲人也ㅣ眞이라 人貌而天虛하며 緣而葆眞하며 淸而容物하야 物이 无道어든 正容以悟之하야 使人之意也로 消케하나니 无擇은 何足以稱之리잇고
子方出이어늘 文侯ㅣ儻然 終日不言이라가 召前立臣而語之曰 遠矣라 全德之君子여 始吾 以聖知之言과 仁義之行으로 爲至矣라니 吾聞子方之師하고 吾形解而不欲動하며 口鉗而不欲言호니 吾所學者는 直土梗耳로소니 夫魏는 眞爲我의 累耳로다
전자방이 위 문후를 모시고 앉아서 (이야기를 할 때에) 자주 계공을 칭찬했더니,
위문후가 말하기를 “계공은 그대의 스승인가?”라고 하니,
전자방이 말하기를 “아닙니다. 무택인 저의 마을 사람입니다. 道에 대해서 일컫는 말이 자주 합당했기 때문에 무택인 제가 그를 칭찬한 것입니다.”라고 했다.
위문후가 말하기를 “그렇다면 그대는 스승이 없는가?”라고 물으니,
전자방이 말하기를 “있습니다.”라고 했다.
(위문후가) 말하기를 “그대의 스승은 누구입니까?”하고 물으니,
전자방이 말하기를 “동곽순자입니다.”라고 했다.
위문후가 말하기를 “그렇다면 선생님은 무슨 까닭으로 일찍이 (스승에 대하여) 한 번도 일컫지 않았습니까?”라고 물으니,
전자방이 말하기를 “그 사람됨이 진실한지라,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하늘처럼 텅 비었고, 사물을 따르지만 천진을 보전하며, 맑으면서도 사물을 포용하여 상대방이 道가 없으면 나의 용모를 바르게 하여 깨닫게 하여 남의 잘못된 의식으로 하여금 소멸케하니 저 무택은 어찌 족히 남을 칭찬하겠습니까?”라고 했다.
전자방이 나가거늘 위문후가 멍하니 종일토록 말하지 않다가 앞에 서 있던 신하를 불러 말하기를 “원대하구나! 온전한 덕이 있는 군자여. 처음에 나는 성스럽고 지혜로운 말과 어질고 의로운 행동으로 지극하다 여겼더니만 내가 전자방의 스승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나자 내 형체가 해체되어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고, 입은 재갈 물린 것처럼 말하고자 하지 않으려 하니 내가 배운 바의 것은 단지 흙으로 만든 인형일 뿐이었으니 대저 위나라는 참으로 나의 얽어매는 물건이로다.”라고 했다.
溫伯雪子ㅣ適齊할새 舍於魯러니 魯人이 有請見之者어늘 溫伯雪子曰 不可하다 吾聞中國之君子ㅣ 明乎禮義而陋於知人心이라호니 吾는 不欲見也하라
至於齊라가 反舍於魯어늘 是人也ㅣ又請見한대 溫伯雪子曰 往也에 蘄見我하고 今也에 又蘄見我하나니 是必有以振我也로다하고
出而見客하고 入而歎하다 明日에 見客하고 又入而歎이어늘 其僕曰 每見之客也에 必入而歎은 何耶잇고
曰 吾固告子矣로다 中國之民은 明乎禮義而陋乎知人心이라하니 昔之見我者ㅣ 進退에 一成規하고 一成矩하며 從容에 一若龍하고 一若虎하며 其諫我也ㅣ似子하고 其道我也ㅣ似父할새 是以로 歎也하노라
仲尼는 見之而不言한대 子路曰 吾子 欲見溫伯雪子ㅣ久矣러시니 見之而不言은 何邪잇고
仲尼曰 若夫人者는 目擊而道存矣라 亦不可以容聲矣로다
온백설자가 제나라로 가다가 노나라에 머물렀더니 (어떤) 노나라 사람이 뵙기를 청하거늘 온백설자가 말하기를 “안 된다. 내가 들으니, 중국의 군자들은 禮義에는 밝아도 사람의 마음을 아는 데에는 서툴다고 한다. 나는 (그런 사람을) 만나보고 싶지 않다.”라고 했다.
제나라에 이르렀다가 돌아와 노나라에 머물렀거늘 이 사람이 또 뵙기를 청하거늘 온백설자가 말하기를 “지난번에도 나를 만나보기를 바랐고 지금에 또 나를 만나보기를 바라니 이것은 반드시 나를 진작시키는 것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숙소에서) 나가서 그 客을 만나보고는 들어와 탄식하였다. 다음날 客을 만나보고는 또 들어와서 탄식하거늘 그의 종놈이 말하기를 “매번 손님을 만나봄에 반드시 들어와서 탄식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라고 물으니,
(온백설자가) 말하기를 “내가 진실로 그대에게 알려주겠다. 중국의 백성들은 禮義에는 밝아도 사람 마음을 아는 데에는 서툴다고 했는데 어제 나를 만나본 사람은 나아가고 물러남에 한번은 그림쇠에 꼭 맞았고 한번은 곱자에 꼭 맞았으며, 조용히 있을 때에는 한번은 용 같았고 한번은 범 같았으며, 나에게 諫할 때에는 마치 자식 같았고, 나를 지도할 때는 마치 부모 같았다. 이 때문에 탄식하였노라.”라고 했다.
중니가 만나보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니 자로가 말하기를 “우리 선생님은 온백설자를 만나보고 싶어 하신 지가 오래되었는데 만나보고는 아무런 말씀을 하지 않으시니 무엇 때문입니까?”라고 하니,
중니가 말하기를 “그와 같은 사람은 눈으로 한번 보면 道가 있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또한 말로 형용할 수 없다.”라고 하였다.
顔淵이 問於仲尼曰 夫子步亦步하며 夫子趨亦趨하며 夫子馳亦馳호되 夫子奔逸絶塵이어든 而回瞠若乎後矣로이다
仲尼曰 回아 何謂邪오
曰 夫子步亦步也는 夫子言亦言也요 夫子趨亦趨也는 夫子辯亦辯也요 夫子馳亦馳也는 夫子言道回亦言道也요 及奔逸絶塵이어시든 而回瞠若乎後者는 夫子不言而信하며 不比而周하며 无器而民滔乎前한들 而不知所以然而已矣로다
仲尼曰 惡라 可不察與아 夫哀는 莫大於心死하고 而人死亦次之하니 日出東方而入於西極이어든 萬物을 莫不比方하며 有目有趾者 待是而後에야 成功이라 是出則存하고 是入則亡이니 萬物도 亦然이라 有待也而死하며 有待也而生하나니 吾는 一受其成形하나로 而不化以待盡하며 效物而動호되 日夜无隙而不知其所終하며 薰然其成形하야 知命不能規乎其前이라 丘ㅣ以是로 日徂하노니
吾終身與汝로 交一臂而失之하니 可不哀與아 汝는 殆著乎吾所以著也로다 彼已盡矣어늘 而汝求之以爲有하나니 是는 求馬於唐肆也어니따녀 吾服汝也도 甚忘하며 汝服吾也도 亦甚忘이니라 雖然이나 汝는 奚患焉이리오 雖忘乎故吾나 吾有不忘者ㅣ存하니라
안연이 공자에게 묻기를 “선생님께서 걸으시면 저도 또한 걷고 선생님께서 빨리 걸으시면 저도 또한 빨리 걷고 선생님께서 달리시면 저도 또한 달리되 선생님께서 빠르게 달리시어서 먼지 하나 내지 않으실 때에는 저는 뒤에 처져서 눈만 휘둥그레집니다.”라고 말했다.
중니가 말하기를 “회야,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라고 물으니,
(안연이) 말하기를 “선생님께서 걸으시면 저도 또한 걷는다는 것은 선생님께서 의견을 말씀하시면 저도 또한 의견을 말하는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빨리 걸으시면 저도 또한 빨리 걷는다고 한 것은 선생님께서 변론을 하시면 저도 또한 변론을 한다는 것이고, 선생님께서 달리시면 저도 또한 달린다는 것은 선생님께서 道를 말씀하시면 저도 또한 道에 대해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빠르게 달리시어서 먼지 하나 내지 않으시는데 이르러서 제가 뒤에 처져서 눈만 휘둥그레질 따름이라고 한 것은 선생님께서 아무 말씀도 하지 않고서도 사람들에게 믿게 하며, 편당짓지 않고 골고루 두루두루하며, (선생님 재능이 워낙 넓어서) 한 방면으로 국한시키지 못해도 백성들이 선생님 앞에 넘쳐나게 모이는데 그렇게 되는 까닭을 알지 못할 따름입니다.”라고 했다.
중니가 말하기를 “아아! 잘 살피지 않았느냐. 무릇 슬픈 것은 마음이 죽는다는 것보다 큰 것이 없고, 사람이 죽는다는 것이 또한 다음이다. 그러니 해가 동방에서 뜨서 서쪽 끝으로 들어가는데 만물이 그 방향성이 나란하지 않음이 없으니 눈이 있고 발가락이 있는 동물은 이 해를 기다린 뒤에라야 일을 성공할 수 있다. 이 해가 떠오르면 존재하고 이 해가 지면 사라지니 만물 또한 그러하다. 무언가 기다린 뒤에 죽고 기다린 뒤에 살아가게 되니 나는 한번 이루어진 몸을 받으면 곧장 죽지는 않더라고(不化) 소진되기를 기다리며 (그 사이에) 다른 사물(존재)을 따라 움직이되 밤낮으로 잠시도 쉴 틈이 없어 마치는 것을 알지 못한다. 어렴풋이 사람 몸 형태를 이루어서 자기의 운명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이전의 모습은 도저히 알 수 없으니 나는 이 몸으로 날마다 나아가나니 나는 종신토록 너와 함께 하는데 너는 팔뚝 한번 스치고 지나간 것처럼 뒤에 처져 나를 잃어버리니 슬프지 않겠는가. 너는 거의 나의 드러난 면만을 보는 것 같다. 그러나 저 (겉모습도) 이미 다한 것인데 너는 그것을 있는 것이라고 여겨서 찾으니 이는 마치 말이 길가의 쉬어가는 곳에 잠시 머물다 갔는데 뒤늦게 그 모습을 찾는 것과 같다. 나는 너에 관해 생각했던 것을 빨리 잊어버렸는데 너도 나에 관해 생각했던 것을 또한 빨리 잊어버려야 할 것이다. 비록 그렇지만 너는 어찌 걱정할 것이 있으리오? 비록 옛날의 나를 잊어버렸다 하더라도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孔子ㅣ見老聃한대 老聃이 新沐하야 方將被髮而乾하야 慹然似非人이어늘 孔子ㅣ便而待之러니 少焉코 見曰 丘也는 眩與아 其信然與아 向者에 先生의 形體掘若槁木하야 似遺物離人而立於獨也로다
老聃曰 吾는 遊心於物之初하노라
孔子曰 何謂邪잇고
曰 心이 困焉而不能知하며 口ㅣ辟焉而不能言이니 嘗爲汝하야 議乎其將호리라 至陰은 肅肅하고 至陽은 赫赫하니 肅肅은 出乎天하고 赫赫은 發乎地니 兩者ㅣ交通成和하야 而物生焉호되 或爲之紀而莫見其形하며 消息滿虛와 一晦一明이 日改月化하야 日有所爲而莫見其功하며 生有所乎萌하며 死有所乎歸하야 始終相反乎无端而莫知乎其所窮하나니 非是也면 且孰爲之宗이리오
孔子曰 請問遊是하노이다
老聃曰 夫得是면 至美至樂也니 得至美而遊乎至樂을 謂之至人이라하나니라
孔子曰 願聞其方하노이다
曰 草食之獸는 不疾易藪하고 水生之蟲은 不疾易水하나니 行이 小變而不失其大常也라 喜怒哀樂을 不入於胸次하나니라 夫天下也者는 萬物之所一也니 得其所一而同焉이면 則四肢百體ㅣ將爲塵垢며 而死生終始ㅣ將爲晝夜라 而莫之能滑이온 而況得喪禍福之所介乎따녀 棄隸者ㅣ若棄泥塗는 知身이 貴於隸也니라 貴在於我면 而不失於變하나니 且萬化而未始有極也어니 夫孰足以患心이리오 已爲道者아 解乎此하리라
孔子曰 夫子는 德配天地하난대 而猶假至言하야 以修心하시니 古之君子는 孰能脫焉이리오
老聃曰 不然하니라 夫水之於汋也에 无爲而才自然矣오 至人之於德也에 不修而物不能離焉하나니라 若天之自高와 地之自厚와 日月之自明은 夫何脩焉이리오
孔子ㅣ出하야 以告顔回曰 丘之於道也에 其猶醯鷄與인저 微夫子之發吾覆也를 吾不知天地之大全也랏다
공자가 노담을 만나보았는데 노담이 새로 목욕하고 막 머리를 풀어 말릴려고 하여 꼼짝하지 않고 있는 것이 사람 같지가 않거늘 공자가 편안히 기다리다가 잠시 뒤에 뵙고 말하기를 “제가 어지러워 잘못 보았습니까? 아니면 참다운 것이라고 믿어도 됩니까? 선생의 형체는 우뚝 솟은 마른 나무와 같아서 만물을 잊고 인간세계를 떠나서 홀로 서 계신 것 같았습니다.”라고 했다.
노담이 말하기를 “나는 만물의 시초에서 마음을 노닐게 하고 있다.”라고 하니,
공자가 말하기를 “무엇을 말씀하신 것입니까?”라고 하니까,
(노담이) 말하기를 “마음은 피곤하게 되도 알 수 없으며 입은 크게 열어도 말할 수 없으니 일찍이 너를 위해 그 대략을 말해보겠다. 순수한 음기는 고요하고 차며 순수한 양기는 밝게 빛나고 뜨거우니 고요하고 찬 음기는 하늘에서 나오고 밝게 빛나고 뜨거운 양기는 땅에서 발현된다. 그러니 두 가지가 서로 통해서 화합을 이루어 만물이 생기는데, 혹 그 실마리가 만들어지는 것 같은데 그 형체를 볼 수가 없으며, 만물이 소멸했다 자라났다가 가득 찼다가 텅 비었다가 하는 것과 한번 어두워졌다가 한번 밝았다 하는 것이 날로 바뀌고 달로 변화하여 날마다 작용하는 바가 있지만 그 功을 볼 수 없으며, 생성되는 것은 싹트는 바가 있고 死滅하는 것은 돌아가는 바가 있어서 처음과 마침은 끝이 없는 데에서 서로 反轉하여 그 다하는 바를 알지못하나니 이것(至陰, 至陽)이 아니면 또한 무엇이 만물의 마루(근원)가 되겠는가?”라고 했다.
공자가 말하기를 “청컨대 여기에 논다는 것에 대하여 묻겠습니다.”라고 하니,
노담이 말하기를 “무릇 이것(至陰, 至陽)을 얻으면 지극히 아름답고 지극히 즐거워지니 지극한 아름다움을 체득하여 지극히 즐거운 경지에 노니는 사람을 일러 至人이라 한다.”라고 했다.
공자가 말하기를 “원컨데 그 방법을 듣고자 합니다.”
(노담이) 말하기를 “초식동물은 수풀을 바꾸는 것을 미워하지 아니하고, 물에 사는 벌레는 물을 바꾸는 것을 싫어하지 않으니 행동이 조금 변해도 큰 떳떳함을 잃지 않으면 희노애락의 감정이 가슴속에 침입하지 않는다. 무릇 천하라는 것은 만물이 일체가 되는 곳이니 그 하나로 돌아가는 것을 터득하여 同化되면 사지백체 우리 몸둥이의 각 부분은 장차 티끌이 될 것이며 죽고 살고 마침과 시작이 장차 대자연의 밤낮과 같이 되어 끊임없이 반복되니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히지 못하나니 하물며 얻음과 잃음, 재앙과 복 따위가 개입할 수 있겠는가? 종노릇을 버리기를 진흙 버리듯이 함은 자기 몸이 종보다 귀한 줄을 알기 때문이다. 귀한 것이 나에게 있고 외부 변화에 따라 잃어지는 것도 아니며, 또한 끝없이 변화해도 처음부터 다함이 있지 않으니 무릇 무엇이 마음을 괴롭히기에 충분하겠는가? 이미 도를 닦는 사람만이 이것을 이해할 것이다.”라고 했다.
공자가 말하기를 “선생은 덕은 천지와 짝하는데 오히려 지극한 말을 빌려서 마음을 닦고 있으니 옛날의 군자는 누가 능히 이것을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니,
노담이 말하기를 “그렇지 않다. 무릇 물이 솟아 나오는 것은 작위를 하지 않아도 재질이 저절로 그렇고 至人이 덕에 있어서 닦지 않아도 萬物과 萬人이 (그를 사모해서) 떨어지지를 않습니다. 하늘이 저절로 높고 땅이 저절로 두텁고 해와 달이 저절로 밝은 것은 대저 무슨 닦음이 있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공자가 밖으로 나와서 안회에게 일러 말하기를 “내가 道에 있어 (아는 수준이) (항아리속의) 초파리와 같다. (노담)선생이 나의 항아리 뚜껑을 열어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천지가 크게 온전함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했다.
莊子ㅣ見魯哀公한대 哀公曰 魯多儒士호되 少爲先生方者하니라
莊子曰 魯에 少儒하니라
哀公曰 擧魯國而儒服이어늘 何謂少乎오
莊子曰 周는 聞之호니 儒者ㅣ冠圜冠者는 知天時하고 履句屨者는 知地形하고 緩[綬]佩玦者는 事至而斷이니 君子 有其道者는 未必爲其服也요 爲其服者도 未必知其道也니다 公이 固以爲不然인댄 何不號於國中曰 无此道而爲此服者는 其罪死라하시나니잇고
於是에 哀公이 號之한대 五日而魯國에 无敢儒服者요 獨有一丈夫 儒服而立乎公門이어늘 公이 卽召而問以國事한대 千轉萬變而不窮하더라
莊子曰 以魯國而儒者ㅣ 一人耳로소니 可謂多乎아
장자가 노나라 애공을 만나 뵈었는데, 애공이 말하기를 “노나라에는 유학하는 선비들은 많은데 선생의 방식대로 하는 사람들은 적습니다.”라고 하니,
장자가 말하기를 “노나라에는 儒者도 적습니다.”라고 하였다.
애공이 말하기를 “노나라를 통틀어 儒服을 입고 있거늘 어찌하여 적다고 말씀하십니까?”라고 하니,
장자가 말하기를 “莊周인 제가 들어보니 儒者가 둥근 갓을 머리에 쓰고 있는 것은 하늘의 때를 알고 있다는 뜻이요, 네모난 신발을 신고 있는 것은 땅의 형태를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인끈에 패옥을 묶어 허리에 차는 것은 일에 다달아 결단한다는 뜻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군자로서 그 道를 가진 자는 반드시 그런 복장을 하지는 아니하고, 그런 복장을 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그 道를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애공께서 진실로 그렇지 않다고 여기신다면 어찌 나라 안에 ‘이 儒者의 道가 없으면서도 이 儒者의 복장을 한 사람은 그 죄가 죽음일 것이다.’라고 호령하지 않으십니까?”라고 했다.
이에 애공이 호령하였는데 5일이 지나자 노나라에는 감히 儒者의 복장을 하지 못하였는데 유도 한 사내가 儒者의 복장을 입고 공문에 서 있거늘 애공이 즉시 불러서 나랏일을 물었더니 천태만상으로 어려운 난제에도 막힘이 없었다.
장자가 말하기를 “노나라에 儒者는 한 사람 뿐이니 많다고 이를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百里奚는 爵祿을 不入於心이라 故로 飯牛而牛肥하야 使秦穆公으로 忘其賤하야 與之政也하니라 有虞氏는 死生이 不入於心이라 故로 足以動人하니라
백리해는 벼슬과 녹봉(을 바라는 욕심)이 마음에 침입하지 못하였다. 고로 소를 먹이자 소가 살쪄서 진나라 목공으로 하여금 (백리해의) 그 천함을 잊게 하여 그와 더불어 정치를 하였다. 유우씨(순임금)는 죽음과 삶이 그 마음속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고로 충분히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宋元君이 將畵圖어늘 衆史皆至하야 受揖而立하야 舐筆和墨하야 在外者半이러니 有一史後至者ㅣ 儃儃然不趨하며 受揖不立하고 因之舍어늘 公이 使人으로 視之하니 則解衣般礴臝러라 君曰 可矣라 是야 眞畵者也로다
송나라 임금 元君이 장차 그림을 그리게 하여 여러 화공들이 모두 이르러 (송 원군의) 揖을 받고 서서 붓에 침을 바르고 먹을 섞으며 있는데 (너무 많은 화공들이 와서 안에서 밀려나서) 밖에 있는 자들이 절반이었는데 어떤 한 명의 화공이 뒤늦게 이르러 머뭇거리면서 빨리 가지도 않고 읍을 받고는 서 있지 않고 곧바로 집안으로 가거늘 公이 사람을 시켜서 엿보게 했더니 옷을 벗고 두 다리를 뻗고 벌거벗고 있었다. 임금이 말하기를 “옳다. 이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화공이다.”라고 했다.
文王이 觀於臧하다가 見一丈人釣로되 而其釣莫釣하니 非持其釣하야 有釣者也로되 常釣也러라
文王이 欲擧而授之政이나 而恐大臣父兄之弗安也요 欲終而釋之나 而不忍百姓之无天也하사 於是에 旦而屬之大夫하야 曰 昔者에 寡人이 夢見良人호니 黑色而염(冉+頁)이오 乘駁馬而偏朱蹄하야 號曰 寓而政於臧丈人이면 庶幾乎民有瘳乎인저하더라
諸大夫ㅣ蹴然曰 先君王也랏다
文王曰 然則卜之하라
諸大夫曰 先君之命이시란대 王其无他어시다 又何卜焉이리오
遂迎臧丈人而授之政한대 典法을 无更하며 偏令을 无出한 三年에 文王이 觀於國則列士壞植散群하며 長官者ㅣ不成德하며 螤斛이 不敢入於四竟하더라 列士壞植散群은 則尙同也요 長官者不成德은 則同務也요 螤斛不敢入於四竟則諸侯无二心也니라
文王이 於是焉에 以爲太師하고 北面而問하야 曰 政可以及天下乎아 臧丈人이 昧然而不應하고 泛然而辭하야 朝令而夜遁하야 終身无聞하니라
顔淵이 問於仲尼曰 文王도 其猶未邪아 又何以夢爲乎리오
仲尼曰 黙汝无言하라 夫文王이 盡之也하니 而又何論刺焉이리오 彼ㅣ直以循斯須也니라
문왕이 臧에서 노닐다가 한 남자가 낚시질을 하고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낚시는 일반 낚시질이 아니었으니 곧 낚시대를 잡고 고기를 낚으려는 것이 아니요, (따로 낚으려는 것이 있어서) 늘 낚시질을 하고 있었다. 문왕이 그를 등용하여 정치를 맡기고자 하였으나 대신들과 부형들이 불안해할까 두려웠고 끝내 그대로 놔두려고 하니 백성들에게 하늘로 떠받들 훌륭한 사람이 없는 것을 차마 그대로 놔둘 수 없었다. 이에 아침에 대부들을 불러 말하기를 “어제 과인이 꿈에 어진 사람을 보았는데 얼굴이 검고 구레나룻 수염을 하고 얼룩말을 타고 있었는데 한쪽만 붉은 발굽을 하고 있었는데 큰 소리로 말하기를 ‘너의 정사를 장땅 대부에게 맡기면 거의 백성들은 고통이 나을 것이다’라고 하더라”하고 이야기 했다.
여러 대부들은 놀라면서 말하기를 “선군왕이십니다”라고 하니
문왕이 말하기를 “그러면 점을 쳐봐라.”고 하였다.
여러 대부들이 말하기를 “先君의 명령이시니 왕께서는 다른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또 무엇을 점칠 것이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마침내 장 땅의 노인을 맞이해서 정사를 맡겼는데 典法을 바꾸지 않고 편파적인 명령을 내지 않은 지 3년만에 문왕이 나라 안을 살펴보았더니, 조정에 늘어선 관리들은 빗장을 부수고 파벌을 흩어 버렸으며, 관직의 장들은 자기의 덕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사사로운 됫박이 감히 사방의 국경에서 들어오지 않았다.
조정에 늘어선 관리들이 빗장을 부수고 파벌을 흩어버린 것은 곧 윗사람과 의견이 같음을 숭상하는 것이고, 여러 관직의 長들이 자기의 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일을 똑같이 함이고, 사사로운 됫박이 감히 사방의 국경에서 들어오지 않음은 제후들에게 두 마음이 없는 것이다.
문왕이 이에 태사로 삼고 (스스로 제자의 자리에 나아가서) 北面을 하고서 묻기를 “이 정치를 온 천하에 두루 미치게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니, 장땅의 丈人이 멍하니 대답도 하지 않고 애매하게 사양하고서는 아침에 명령을 받고서는 밤에 달아나서 몸을 마치도록 소식이 없었다.
안연이 중니에게 묻기를 “문왕도 아직 聖人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신 모양입니다. 또 무엇 때문에 꿈을 빙자했습니까?”라고 말하니,
중니가 말하기를 “입을 다물어라. 너는 아무 말도 하지 마라. 무릇 문왕이 극진히 하셨으니 또 무엇을 논하여 헐뜯을려고 하느냐. 그는 다만 방편을 따랐을 뿐이다.”라고 했다.
列禦寇ㅣ爲伯昏无人하야 射하더니 引之盈貫하니 措杯水其肘上이러라 發之하니 適矢復沓이어늘 方矢復寓하더니 當是時하야 猶象人也러라
伯昏无人이 曰 是는 射之射라 非不射之射也로다 嘗與汝로 登高山하야 履危石하야 臨百仞之淵이면 若이 能射乎아
於是에 无人이 遂登高山하야 履危石하야 臨百仞之淵하고도 背逡巡이오 足二分이 垂在外하더니 揖禦寇而進之한대 禦寇ㅣ伏地하야 汗流至踵이어늘
伯昏无人이 曰 夫至人者는 上窺靑天하며 下潛黃泉하며 揮斥八極하야도 神氣不變하나니 今汝ㅣ怵然有恂目之志하니 爾於中也에 殆矣夫인저
열어구가 백혼무인을 위하여 활을 쏠 때에 활을 화살촉까지 오도록 잔뜩 당기면 (왼쪽 팔은 곧고 편편해서) 그 팔꿈치 위에 물잔을 두어도 괜찮았다. (그런 자세로) 화살을 쏘았는데 화살을 쏜 뒤 이어지는 화살을 계속 쏘자 나란히 날아가는 화살이 다시 앞의 화살에 바싹 다가가 몸을 붙이는 것 같았는데 이때에 그는 마치 본떠 만든 인형 같았다.
백혼무인이 말하기를 “이것은 활쏘기를 의식한 활쏘기이지, 활쏘지 않기 위한 즉 활쏘기를 초월한 활쏘기는 아니다. 시험 삼아 너와 더불어 높은 산에 올라가 위험한 돌을 밟고 백 길이나 되는 연못에 임한다면 너는 활을 잘 쏠 수가 있을 것인가?”라고 하였다.
이에 백혼무인이 (열어구를 데리고) 마침내 높은 산에 올라 위태로운 바위를 밟고 서서 백 길의 깊은 못을 내려다보았다. 연못을 등지고 뒷걸음질 쳐서 발의 2/3가 (바위 밖 공중으로 내민 채) 열어구에게 읍하고서 그를 손짓하여 나오게 하였다. 그랬더니 열어구가 땅에 엎드린 채 식은땀을 흘려 발뒤꿈치까지 이르렀다.
백혼무인이 말하기를 “무릇 至人은 위로는 푸른 하늘을 엿보고 아래로는 黃泉 속에 잠기며 우주의 팔방 끝까지를 날아다니면서 神氣가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너는 두려운 듯 눈에 나타나는 정도의 心志를 가지고 있으니 너는 명중시키는 것이 어려울 것이다.”라고 하였다.
肩吾ㅣ問於孫叔敖하야 曰 子ㅣ三爲令尹而不榮華하며 三去之而无憂色하니 吾ㅣ 始也에 疑子하더니 今에 視子之鼻間한대 栩栩然하니 子之用心은 獨奈何오
孫叔敖曰 吾何以過人哉리오 吾는 以其來 不可却也며 其去 不可止也니 吾는 以爲得失之非我也라하야 而无憂色而已矣언정 我는 何以過人哉리오 且不知케라 其在彼乎아 其在我乎아 其在彼邪인댄 亡乎我요 在我邪인댄 亡乎彼니 方將躊躇하며 方將四顧어니 何暇에 至乎人貴人賤哉리오
仲尼ㅣ聞之코 曰 古之眞人은 知者도 不得說하며 美人도 不得濫하며 盜人도 不得劫하며 伏戱黃帝도 不得友하며 死生이 亦大矣로되 而无變乎己온 況爵祿乎따녀 若然者는 其神이 經乎大山而无介하며 入乎淵泉而不濡하며 處卑細而不憊하야 充滿天地라 旣以與人하고도 己愈有하니라
견오가 손숙오에게 묻기를 “그대는 세 번이나 초나라의 令尹이 되었는데도 영화로 여기지 않으며 세 번이나 그만두면서도 근심하는 기색이 없었으니, 나는 처음에 (그 이야기를 듣고) 그대를 의심했었는데 지금에 와서 그대의 코 사이(숨결)를 보니 고요하니 그대의 마음씀이 유독 어떠합니까?”라고 말하니,
손숙오가 말하기를 “내가 어찌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겠습니까? 나는 (그 영윤 자리가) 오는 것을 물리칠 수 없으며, 가는 것을 멈추게 할 수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니 나는 그 얻고 잃음이 나에게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고 여겨서 근심하는 기색이 없었을 뿐이언정 내가 어찌 다른 사람보다 뛰어남이 있겠습니까? 또 알지못하겠습니다. (참으로 귀한 것이) 저기(벼슬)에 있는 것인가요? 나에게 있는 것인가요? 그것이 저기(벼슬)에 있는 것이라면 나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고, 그것이 나에게 있는 것이라면 저기와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늘 주저하고 늘 사방을 돌아보게 되니 어느 겨를에 속인들의 貴賤에 생각이 이르겠습니까?”라고 했다.
중니가 듣고 말하기를 “옛날의 眞人은 知者도 그를 설득하지 못했으며 미인도 그를 넘치게 하지 못했으며 도둑도 그를 겁주지 못했으며 복희나 황제 같은 임금도 그를 친구로 삼지 못했다. 죽고 사는 것이 또한 큰 문제이였지만 그것조차도 자기를 바꾸게 할 수 없었는데 하물며 爵祿 따위이겠는가. 그런 사람같은 자는 그 정신이 태산을 지나가도 방해받지 아니하고 깊은 연못이나 샘에 들어가도 물에 젖지 아니하며 미천한데 처해져도 고달파하지 않아서 天地사이에 그 정신이 충만해서 이미 다 남에게 주어도 자기는 더욱 부유하게 된다.”고 하였다.
楚王이 與凡君으로 坐러니 少焉코 楚王의 左右曰 凡亡者 三이로다 凡君曰 凡之亡也ㅣ 不足以喪吾存이니 夫凡之亡이 不足以喪吾存인댄 則楚之存이 不足以存存이니라 由是로 觀之컨댄 則凡이 未始亡이며 而楚ㅣ未始存也니라
초나라 왕이 범나라 군주와 더불어 앉아 있었는데 조금 있다가 초나라 왕의 좌우측 신하들이 말하기를 “凡나라가 망할 조짐이 3가지입니다.”라고 하니, 범나라 임금이 말하기를 “범나라가 망하는 것이 나의 생존을 족히 써 상하게 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범나라가 망하는 것이 나의 생존을 상하게 할 수 없을 것인데 초나라의 존속이 道를 유지 존속하기에는 부족하다. 이로 말미암아 살펴보건데 범나라가 처음부터 망한 것도 아니며 초나라가 처음부터 존속한 것도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본 편의 뜻을 총체적으로 해설해보면]
1)전통문화연구회에서는
이 편의 주인공인 田子方은 魏나라의 현인으로 魏 文侯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는데 공자의 제자인 子夏 계열의 유학자로 추정된다. 일찍이 莊子 儒門설을 주장했던 韓愈가 장자의 출신을 공자 후학으로 본 것도 이 편의 기록에 근거한 것이다. 福永光司는 이 편은 내편 <德充符>편을 祖述하는 의도에서 논한 것이라 했는데, 그의 견해를 따르면 <達生>편은 내편 <養生主>편을 祖述한 것이고, <山木>편은 내편 <人間世>편을 祖述한 것이며, <知北遊>편은 내편 <大宗師>편을 祖述한 것이다.
제1장에서는 田子方과 魏 文侯의 대화를 통해 道를 체득한 사람의 모습을 하늘처럼 텅 비어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제2장에서는 溫伯雪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禮儀에 밝고 까다로운 공자가 사실은 사람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며 유가의 형식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한편 제3장에서는 제2장에서 비판받았던 공자가 도리어 장자의 사상을 이해하고 체득한 이로 등장하고 있는 점이 이채롭다.
또 제4장의 시작부분에는 <齊物論>편 제1장에 보이는 南郭子綦와 顔成子游의 대화와 유사한 전개방식이 눈에 띈다.
王叔岷은 이 편의 寓意가 <人間世>편과 서로 부합한다고 했는데, 그를 포함하여 많은 학자들이 이 편의 대지를 <德充符>편과 유사하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2)고려원에서는
天晴日頭出 날이 개어 해가 나고
雨下地上濕 비가 내려 땅이 젖네.
盡情都說了 조금도 숨김 없이 다 말했거늘
只恐信不及 남이 믿지 않을까 다만 두렵네.
■ 전자방에 대하여
--- 덕을 온전히 하는 군자는 그 천진을 감춘다.
이 편의 대의는 내편의 대종사에서 흘러나왔다. 그러므로 대종사를 참작할 만하다. 장자는 전자방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하고, 전자방의 사상은 공자의 제자인 자하에게서 나왔다 한다. 그래서인지 장자는 공자의 학문을 많이 인용하였다.
도는 사람의 외형에 있지 않고 마음에 있다. 그러므로 도는 말로써 전할 수 없고, 도를 보는 것도 반드시 말을 들어서 받는 것이 아니다.
공자는 그 제자 자로에게 「눈이 마주치면 이미 마음이 통하거니 다시 말을 들을 것이 무엇인가(目擊而道存, 不可容聲)?」라고 한 것이다. 이것은 석가모니가 꽃을 들고 法床에 오를 때 아무도 그 뜻을 몰랐으나 오직 迦葉이 빙그레 웃었다(拈花微笑)고 한 것과 동일한 소식이니, 이심전심에 敎外別傳이란 것이다. 한자리에 앉아 있어도 마음은 서로 천만 리를 격하였고 천만 리 밖에 있어도 한자리에 앉은 듯, 마음은 서로 통한다는 것도 또한 이를 말한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죽지 않기를 구하는 것을 귀하다 한다. 그러므로 「마음이 죽는 것보다 더 큰 슬픔은 없다. 마음의 죽음이란 보는 바가 없는 것을 말한다. 비록 생은 있더라도 보는 바가 없으면 그 슬픔은 죽음보다 더한 것이다.」고 한 것이다.
그러면 마음이 죽지 않는 길은 어디 있는가? 노자는 공자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마음을 물의 시초에 놀린다. 그것은 마음을 괴롭혀서도 알 수 없고, 입을 열어 말해서 그 이치를 밝힐 수가 없다. 지음은 숙숙히 냉엄하고 지양은 혁혁히 밝으며, 음양이 交和하여 만물을 낸다. 그 사이에 어떤 주재가 있는 듯하나, 그 형체를 볼 수가 없다.」 이것을 물의 시초라 하는 것이다. 음을 이 물의 시초에 놀려 이 至美의 경계에 들어가고 至樂에 놀 수 없으면, 마음은 물을 따라 흔들려 반드시 마음이 죽는다는 큰 슬픔을 겪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지미는 미가 없고 지락은 낙이 없다. 이 미가 없고 낙이 없는 곳에 노는 사람을 지인이라 한다. 이 지인의 심경도 또한 말할 수 없는 것이니, 마치 사람이 물을 마시매, 그 차고 더운 것은 오직 마신 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뿐이다.
물의 시초는 천하 만물이 돌아가는 「하나(一)」이니, 다만 그 하나를 얻으면 만물과 동체가 되어, 사지와 百體는 먼지와 같고 생사와 시종은 주야와 같거니, 거기에 무슨 득실과 화복이 있어 그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며 슬프게 하겠는가?
마음을 물의 시초에 놀리는 것, 이것이 心學의 極則이 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