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교지(이문량-평릉도찰방) 교지(李文樑-平陵道察訪) |
1560년(명종 15) 9월에 이문량(李文樑, 1498~1581)을 평릉도찰방으로 임명한 교지이다. 이문량은 본관이 영천(永川), 자는 대성(大成), 호는 벽오(碧梧) 또는 녹균(綠筠)이다. 아버지는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이현보(李賢輔)이며,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충순위(忠順衛) 권효성(權孝誠)의 딸이다. 1520년(중종 15) 이후 장사랑·통사랑·종사랑·적순부위(迪順副尉)·병절교위(秉節校尉) 등의 많은 음직(蔭職)이 내려졌다. 이황(李滉)과는 이웃에 살면서 절친하였는데, 1564년 그와 함께 청량산(淸凉山)을 유람하면서 시를 읊고 학문을 토론하기도 하였다. 뒤에 이황의 고제가 된 이덕홍(李德弘)·황준량(黃俊良) 등을 초년에 가르친 적도 있다. 효성이 지극하고 우애가 독실하였으므로 사람들은 중국 삼국시대의 백미(白眉) 마량(馬良)에 비유하였다. 교지는 국왕이 신하에게 관직이나 관작, 시호, 토지 등을 내려줄 때 쓰는 문서로, 관직을 내려주는 교지를 고신(告身)이라 하고, 문무과 과거합격자에게 주는 것을 홍패(紅牌), 생원시와 진사시에 주는 교지를 백패(白牌)라 한다. | |
기탁자 : 영천이씨 농암종택
크기 : 50.0X82.5
연대 : 156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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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교지(이현보) 敎旨(李賢甫) |
1514년(중종 9) 10월 이현보(李賢甫, 1467~1555)에게 내려진 교지이다. 이현보는 본관이 영천(永川), 자는 비중(棐仲), 호는 농암(聾巖)이고, 참찬 이흠(李欽)의 아들이다. 1498년(연산군 4) 식년문과에 급제한 뒤 32세에 벼슬길에 올라 예문관검열∙춘추관기사∙예문관봉교 등을 거쳐, 병조참지∙동부승지∙부제학 등을 거쳐, 대구부윤∙경주부윤∙경상도관찰사∙형조참판∙호조참판을 지냈다. 1542년 76세 때 지중추부사에 제수되었으나 병을 핑계로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와 만년을 강호에 묻혀 시를 지으며 한거하였다. 홍귀달(洪貴達)의 문인이며, 후배인 이황(李滉)∙황준량(黃俊良) 등과 친하였다. 그는 조선시대에 자연을 노래한 대표적인 문인으로 국문학사상 강호 시조의 작가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교지는 국왕이 신하에게 관직이나 관작, 시호, 토지 등을 내려줄 때 쓰는 문서로, 관직을 내려주는 교지를 고신(告身)이라 하고, 문무과 과거합격자에게 주는 것을 홍패(紅牌), 생원시와 진사시에 주는 교지를 백패(白牌)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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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탁자 : 영천이씨 농암종택
크기 : 49.5X79.0
연대 : 15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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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교지(이현보-군자감정) 敎旨(李賢甫-軍資監正) |
1526년(중종 21) 10월에 이현보(李賢甫, 1467~1555)를 통훈대부 군자감정으로 임명한 교지이다. 이현보는 본관이 영천(永川), 자는 비중(棐仲), 호는 농암(聾巖)이고, 참찬 이흠(李欽)의 아들이다. 1498년(연산군 4) 식년문과에 급제한 뒤 32세에 벼슬길에 올라 예문관검열·춘추관기사·예문관봉교 등을 거쳐, 병조참지·동부승지·부제학 등을 거쳐, 대구부윤·경주부윤·경상도관찰사·형조참판·호조참판을 지냈다. 1542년 76세 때 지중추부사에 제수되었으나 병을 핑계로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와 만년을 강호에 묻혀 시를 지으며 한거하였다. 홍귀달(洪貴達)의 문인이며, 후배인 이황(李滉)·황준량(黃俊良) 등과 친하였다. 그는 조선시대에 자연을 노래한 대표적인 문인으로 국문학사상 강호 시조의 작가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관직에는 그에 따르는 품계가 일정하게 정해져 있으나, 경우에 따라서 어떤 관직에는 그 관직 자체의 품계보다 더 높은 품계의 관원, 또는 반대로 더 낮은 품계의 관원을 임명할 수 있었다. 그중 품계가 높은 사람을 낮은 관직에 임용하는 계고직비(階高職卑)의 경우를 행(行), 반대로 품계가 낮은 사람을 높은 관직에 임용하는 계비직고(階卑職高)의 경우를 수(守)라 한다. | |
기탁자 : 영천이씨 농암종택
크기 : 49.0X83.0
연대 : 152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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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교지(이현보-밀양도호부사) 敎旨(李賢甫-密陽都護府使) |
1515년(중종 10) 3월에 이현보(李賢甫, 1467~1555)를 통훈대부 밀양도호부사로 임명한 교지이다. 이현보는 본관이 영천(永川), 자는 비중(棐仲), 호는 농암(聾巖)이고, 참찬 이흠(李欽)의 아들이다. 홍귀달(洪貴達)의 문인이며, 후배인 이황(李滉)·황준량(黃俊良) 등과 친하였다. 그는 조선시대에 자연을 노래한 대표적인 문인으로 국문학사상 강호 시조의 작가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교지는 국왕이 신하에게 관직이나 관작, 시호, 토지 등을 내려줄 때 쓰는 문서로, 관직을 내려주는 교지를 고신(告身)이라 하고, 문무과 과거합격자에게 주는 것을 홍패(紅牌), 생원시와 진사시에 주는 교지를 백패(白牌)라 한다. | |
기탁자 : 영천이씨 농암종택
크기 : 50.0X87.0
연대 : 15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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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교지(이현보-성균관사성) 敎旨(李賢甫-成均館司成) |
1526년(중종 21) 2월에 이현보(李賢甫, 1467~1555)를 통훈대부 성균관사성으로 임명한 교지이다. 이현보는 본관이 영천(永川), 자는 비중(棐仲), 호는 농암(聾巖)이고, 참찬 이흠(李欽)의 아들이다. 홍귀달(洪貴達)의 문인이며, 후배인 이황(李滉)·황준량(黃俊良) 등과 친하였다. 그는 조선시대에 자연을 노래한 대표적인 문인으로 국문학사상 강호 시조의 작가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관직에는 그에 따르는 품계가 일정하게 정해져 있으나, 경우에 따라서 어떤 관직에는 그 관직 자체의 품계보다 더 높은 품계의 관원, 또는 반대로 더 낮은 품계의 관원을 임명할 수 있었다. 그중 품계가 높은 사람을 낮은 관직에 임용하는 계고직비(階高職卑)의 경우를 행(行), 반대로 품계가 낮은 사람을 높은 관직에 임용하는 계비직고(階卑職高)의 경우를 수(守)라 한다. | |
기탁자 : 영천이씨 농암종택
크기 : 49.5X81.5
연대 : 152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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