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喀什)에 들어설 때 익숙한 동상이 보인다. 윈난성 여행 때 여러 번 봤던 마답비연(馬踏飛燕) 동상이다. "마답(馬踏)"은 말이 무엇인가를 밟거나 넘는다는 뜻이고, "비연(飛燕)"은 날아가는 제비를 의미하므로, "마답비연"은 말이 하늘을 나는 제비를 밟고 있는 역동적인 순간을 형상화한 것이다. 말이 먼 거리를 빠르게 이동하는 것이 중요했던 당시 마답비연은 차마고도와 실크로드를 통한 교류와 번영의 상징이었지만, 지금은 지구본 위 글로벌 교류의 상징으로 표현되는 것 같았다.
카슈가르(Kashgar) 또는 카스(喀什)는 신장위구르자치구에 있는 도시이다. 카스(喀什)는 고대 투르크어로 옥(玉), 가르(噶尔)는 고대 이란어로 돌 또는 산을 뜻하여 옥석 또는 옥산의 의미를 지닌다. 喀什는 텐산(天山)산맥 주변 타클라마칸 사막 서부의 타림분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해발고도는 평균 1,289.5m의 오아시스지역에 속한다. 이곳은 겨울에는 최저 영하 24도까지 내려가고 여름에는 40도까지 올라가는 사막기후로 뜨거운 여름과 추운 겨울이 있으며 두 계절 간 온도차가 크다고 한다. 연평균 강우량은 64mm로 지구상에서 비가 가장 적게 내리는 도시 중 하나다.
그러나 이곳은 옛날부터 비단길의 교통요지로 정치와 상업의 중심지가 되었고 여러 민족이 이곳을 지배해 왔으나 민족과 국가가 명멸(明滅)하면서 이곳을 지배하는 주인들이 바뀌었고 지금은 중국이 이곳을 지배하고 있는 중이다. 중국이 BC 2세기 경 한나라 때 윌지(Yue Zh) 족으로부터 이곳을 점령해 서역도호부를 설치하였으나 AD 1세기경에 월지인이 카스를 탈환하게 되면서 중국의 영향이 미치기 못하게 되었다. 그 후 북부와 동부에서 쳐들어온 민족들이 카스를 지배하는 혼란기가 이어지다가, 당나라 시대인 7세기 말과 8세기 초에 점령을 했으나 752년에 돌궐이 이 지역을 점령하였고 10세기와 11세기에는 위구르가 이곳을 점령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1219년 몽골족이 이곳을 차지하면서 중국과 중앙아시아를 잇는 육상교통이 번창하게 되었으나, 14세기말 카스는 티무르 족에게 약탈당하면서 이곳에 이슬람 종교가 정착을 하게 되었고, 그 후로도 이곳을 지배하고자 하는 세력들의 각축장이 되다가 1755년에 마지막으로 청(淸)나라에 점령되었다. 그 후에도 분리독립운동 등이 있었으나 진압이 되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곳의 주민은 50여만 명 정도로 80%가 위구르인들이라고 하며 한족은 20% 정도이나 중국정부의 한족 이주정책에 의해 점점 더 한족 비율이 늘어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바닷길이 열리지 않은 시절에는 이곳이 지리적으로 동서양의 교통 중심지이다가 보니 여러 민족과 여러 국가들이 지배하는 그런 운명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곳으로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그 고통을 고스란히 감내할 수밖에 없으며 지금도 그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타스쿠얼칸을 떠난 지 11시간 만에 카스의 치니바그 호텔(其尼瓦克酒店)에 도착했다. 배낭 여행객들에게 치니바그 호텔과 셔만 호텔은 매우 유명한 숙소라고 한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중반까지, 실크로드의 핵심 요충지인 카스에서, 러시아와 영국이 서로 중앙아시아를 차지하기 위해 영사관으로 사용했던 곳으로, 치니바그 호텔은 영국영사관이, 셔만 호텔은 러시아영사관이 있었던 곳이다. 이로서 카라코람하이웨이를 통과하는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카스에서 2일을 머물고 천산남북로 중에 천산 남로에 해당하는 비단길을 따라서 키르키스스탄으로 가는 일정으로 카스에서는 지금까지 힘들었던 여정을 쉬는 곳이기도 하거니와, 카스는 위구르족의 수도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위구르족의 문화가 많이 남아 있어서 위구르족의 문화와 유적도 볼 수 있는 곳이다.
호텔에서 방을 배정받자 배낭을 내려놓고 몇몇 일행들과 카스에서 유명한 라그만을 먹으러 호텔을 나선다. 라그만은 신장위구르자치구와 중앙아시아 등에서 즐겨먹는 면 요리로 내가 중국에 올 때마다 즐겨찾는 음식 중 하나다. 토마토와 기름에 볶은 양고기 또는 쇠고기를 기반으로 각종 야채와 향신료를 넣어 만든 국물 요리로 칼국수처럼 두꺼운 면발이지만 반죽을 손으로 밀어 길게 뽑아서 만든다. 지역마다 들어가는 재료와 국물의 양이 조금씩 다르지만, 식감은 칼국수와 아주 비슷하며 국물이 없으면 마치 볶음국수나 비빔면을 연상시키며 국물이 있을 경우 장칼국수와 모습이 비슷하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곧장 바자르로 향한다. 호텔에서 지하도를 건너 이드카 모스크 광장을 지나 지하도를 건너니 가장 먼저 흙빛 벽돌로 만든 웅장한 아치형 정문이 화려한 조명을 받아 빛나고 있다. 소지품 검색을 마치고 정문 위 한바자(汗巴扎)라 쓰인 현판 아래를 지나니 수천 년 전 실크로드의 번성했던 상인들의 행렬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발아래 닳고 닳은 돌바닥이 그 긴 시간의 무게를 고스란히 전해온다. '한(汗)'은 고대 투르크어로 왕(Khan)을 뜻하고, 바자르( 巴扎, Bazaar)는 시장을 의미하니 이곳은 이름 그대로 '왕의 시장'이었던 셈이다.
카스고성의 중심을 관통하는 이 거리는 2000년 전 장건이 서역을 개척하기 전부터 서역 36국 중 하나인 소륵국(疏勒國)의 왕족과 상인들이 드나들던 동양과 서양을 잇는 오아시스 핵심기지로서, 실크로드를 가로지르던 카라반이 파미르고원을 넘기 전 마지막으로 전열을 가다듬고 물자를 교역하던 중심지가 바로 이 곳이다. 이곳에서 비단과 향신료, 유리와 보석이 거래됐고,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진 사람들이 몸짓과 눈빛으로 값을 흥정했을 것이다.
바자르 안으로 들어서자 좁고 미로 같은 골목길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홍등과 조명이 거리를 밝히는 가운데 바자르는 이미 시민들과 관광객들로 혼잡하다. 내일 저녁 다시 오기로 하고 바자르를 따라가며 대충 길만 익히고 호텔로 돌아온다. 그래도 중국에 왔으니 빠이주(白酒)는 맛보고 가야겠다 싶어 호텔 앞 편의점에서 내가 좋아하는 郞酒 제일 작은 거 한 병(100㎖)을 사가지고 방에서 마시니 중국에 온 기분이 난다. 그러나, 오랫동안 술을 마시지 않은 나는 금방 취해 잠들어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