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택동주의 (마오주의)
毛澤東思想 Maoism
중국공산당의 지도자인 마오쩌둥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중국의 현실에 맞게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시킨 독자적인 혁명사상.
1920년대부터 치열한 혁명투쟁과정에서 형성되기 시작한 마오쩌둥사상은 징강산[井岡山] 유격투쟁, 장시[江西] 소비에트 임시정부 수립, 대장정(大長征), 국공합작과 항일전, 국공내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등을 거치면서 완성되었다. 그 내용에는 마오쩌둥이 전개한 유격전술, 대중조직방법, 토지개혁정책, 민족통일전선의 형성, 신민주주의론, 사상개조운동, 실천론과 모순론, 영구혁명론, 사회제국주의론을 포함하고 있다. 요컨대 마오쩌둥사상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반(半)봉건적이고 반식민지적인 후진국 중국사회에 접목시켜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를 실현하려는 데서 전술상의 요청으로 나온 혁명이론의 체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마오쩌둥사상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구별된다. ① 혁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농민의 계급동맹을 중심으로 민족자본가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통일전선을 형성하여 농촌을 혁명근거지로 장기간의 유격전을 전개하여야 한다고 보았다. ② 인간의 인식은 생산활동 ·계급투쟁 ·과학실험 등의 실천과정에서 형성되며, 실천을 통하여 이론은 그 정확성이 검증되고 확대된다고 하여 실천을 중시하였다. ③ 모든 사물의 발전과정에는 모순이 존재한다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변증법을 확대시켜 모순을 적대적 모순과 비적대적 모순으로 구별하고, 사회주의사회에서의 인민 내부의 모순을 비적대적 모순으로 규정하여 그 해결방법으로 비판 ·설득 ·사상개조 ·교육 등을 제시하였다. ④ 자본주의사회가 전복되고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가 수립된 후에도 계급 ·계급적 모순 ·계급투쟁, 사회주의노선과 자본주의노선 간의 투쟁, 자본주의 복구의 위험성이 존재하는데, 이러한 모순은 혁명을 계속함으로써만이 극복될 수 있다고 보았다.
마오쩌둥사상이라는 용어는 1945년 중국공산당 제7전대회에서 당규약에 삽입되었다가, 그 후 1956년 스탈린격하운동이 시작되면서 그 영향을 받아 중국공산당 제8전대회 때 당규약에서 삭제되었다. 그러나 1966년 5월부터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자 마오쩌둥사상은 당규약뿐만 아니라 헌법서문에까지 삽입되었다. 1976년 마오쩌둥이 사망하자 문화대혁명에 대한 비판과 함께 4인방이 숙청되면서 마오쩌둥사상의 권위는 격하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마오쩌둥사상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은 중국공산당의 정신적 기반을 파괴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1955년 이후 마오쩌둥의 정책과 문화대혁명만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이 사상의 가치는 그대로 보존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는 ‘4대 현대화’정책의 추진과 함께 마오쩌둥사상은 이미 과거의 것이 되어가고 있다. 그의 독특한 모순론은 프랑크푸르트학파를 비롯한 네오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그의 신민주주의론은 제3세계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혁명론의 형성에 영향을 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