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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한림항에서 바로 앞에 있는 비양도를 가기로 한다. 그동안 조금 무리를 해서 일정을 진행한 것 같다. 올레 2개 코스, 한라산 등산, 사려니숲 트레킹 등으로 나흘 간 걸은 거리가 하루 20㎞로 치면 전체 약 80㎞를 걸은 셈이다. 전에 백두대간을 종주할 때도 이렇게 강행군을 한 적은 없다. 좀 지친다. 그리고 솔직히 발바닥이 아프다. 쉬어가야 한다. 그래서 오늘은 비양도에 가서 천천히 낚시나 하면서 하루 쉬려고 일정을 잡는다. 모두 좋다고 한다.
새벽 6시에 일어났다. 비양도 가는 첫 배가 한림항에서 아침 9시에 있으니까 일찍 가야 한다. 세면을 하고 6시50분에 숙소를 출발한다. 아직 어둡다. 낯설고 거친 바람이 골목 가득 불어 와 얼굴을 때린다. 오늘 날씨가 걱정이다. 섬으로 가려면 제발 풍랑이 일지 않고 날씨가 좋아야 할텐데.
아침식사를 하러 길 건너 오라 정식으로 간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우리보다 빨리 사람들이 벌써 와 식사를 한다. 공사장에서 일하는 인부들 같다. 하긴 이렇게 서둘러 식사를 하지 않으면 일을 제때 시작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렇게 이른 아침 식사를 하는 사람은 이 분들과 전지훈련을 하러 온 운동선수 학생들, 그리고 우리들뿐이다.
6천원 짜리 정식의 메뉴는 밥 한 공기, 배춧국, 고등어 구이나 지짐, 멸치 볶음, 무우채, 김치로 이루어져 있다. 전형적인 집밥 메뉴다. 그리고 서민의 아침 식탁이다. 하긴 이마저도 못 먹거나 안 먹는 사람이 많다. 맛있게 꼭꼭 씹어 먹는다. 먹지 않으면 오늘 일정을 소화하지 못한다. 집에서처럼 마누라가 챙겨 주지도 않으니 알아서 먹어야 한다. 먹는 게 힘이다!!
7시15분 식사를 마치고 버스 터미널로 가서 화장실에서 서둘러 양치를 하고 702번 버스를 타고 한림항으로 간다. 두세 정거장을 지날 무렵 갑자기 宋山이 황급히 버스에서 내린다. 왜 급히 버스에서 내리느냐고 林山에게 묻는다. 아침 식사를 하다가 모자를 식당에 두고 왔다고 한다.
아, 모자! 모자는 야외활동을 하는 데 정말 요긴한 필수품이다. 우선 등산이나 낚시, 트레킹 시에 이런 바람 부는 날이나 추운 날에는 체온을 떨어지는 것을 막아 주고, 햇볕에 눈이 부신 것도 막아 주고, 비나 눈(雪)이 눈(眼)에 들이치거나 얼굴이 젖는 것도 막아 준다. 요즈음 같이 패션이 대세인 경우에는 패션도 크게 한 몫을 한다. 나같이 머리카락이 산발인 경우는 더욱 그렇고. 그리고 모자나 등산화, 스틱, 안경같이 오래 써서 길이 들은 것은 잃어버렸을 때는 정말 아쉽고 서운하다.
일단 宋山과 나중에 한림 선착장에서 만나기로 하고, 우리는 그대로 한림으로 향한다. 한림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자 바람이 세차다. 앞바다에는 파도가 하얗게 일고 있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풍랑이 일면 눈앞에 보이는 비양도에 배가 안 뜰 수도 있는데 큰일이다. “바람 때문에 배가 안 뜨면 무얼 하지?” “그럼 만화방이나 가지 뭐” 앞에 보이는 건물 2층에 있는 만화방을 보며 林山이 개구쟁이처럼 웃는다.
비양도 가는 선착장은 장난감 같은 규모로 매우 작다. 그 건너편에 있는 매표소 겸 사무실로 가서 “오늘 비양도 가는 배 안 뜨나요?” 조심스럽게 걱정스런 어투로 묻는다. 사무실 안에 있던 몸집이 굵은 중년 사내가 투박한 목소리로 “오늘은 주의보 내려서 오전 배는 못 뜹니다아-.” 하고 답한다. “그럼 다음 배는요?” “오후에는 주의보가 해제될 거라는데 그건 그때 가서 봐야 아는데 아마 가긴 갈 것 같은데 잘 모르겠습니다” 한다. 참으로 막연하고 애매하다.
그 때 宋山이 모자를 찾아서 뒷차로 와서 뒤따라 매표소로 들어온다. 저간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어찌할까 상의를 한다. 며칠 강행군을 해서 쉬려고 비양도에 왔더니 풍랑으로 비양도에 가는 것도 허사가 된다. 오후에는 배가 갈지도 모르지만, 오후에 가 봤자 시간이 맞지 않아 나올 수가 없다. 그렇다고 만화방에 갈 수도 없고 풍랑에 낚시도 그렇고.
< 멋있어요! 한림항 비양도 도선 대합실 >
그때 사무실 사내가, “여기 매표소도 배가 안 뜨면 문을 닫을 겁니다. 나가주세요” 한다. 비양도 가려고 와 있던 아주망이랑 할망 몇 사람하고 같이 매표소 밖으로 나간다. 그러자 宋山이 제안을 한다. “에이, 할 수 없지. 그럼, 그냥 올레나 하지요. 힘들면 중간에서 그치든지”한다.
참, 모자는 어찌 찾았느냐 물으니 우리가 식사를 마치고 나간 뒤 식당주인 할망이 모자를 발견하곤 들고 문밖으로 뛰었는데 벌써 사람이 안 보이더라는 거다. 할망이 보관한 모자를 찾아 뒷차로 쫓아온 게다.
자, 그럼 모자도 찾고 바람은 불고 어쩔 수 없이 올레 걷기를 하기로 한다. 오늘의 코스는 15코스, 저번 14코스는 여기서 남쪽으로 향했는데 오늘은 출발점은 같지만 북쪽으로 향한다. 19km(6시간 소요)
코스 여정은 한림항 비양도 선착장-평수포구-영새성물-귀덕농로-선운정사-버들못농로-납읍숲길-금산공원입구-과오름입구-도새기숲길-고내봉입구-고내봉정상-고내촌-배염골-고내포구로 오늘 일정도 만만치 않다.
8시35분. 이제 길은 14코스와 같이 해안을 옆에 끼고 다만 북으로 방향을 거꾸로 바꿔 걷는다. 바람이 차다. 할 수 없이 모자 위에 등산복 모자를 둘러쓰고 옹송거리며 걷는다. 행정구역은 이제 애월읍을 가리킨다. 바람에 파도가 크게 일어 해안 절벽에 하얗게 부딪친다. “이렇게 험한 날씨에도 올레를 하는 사람이 있나?” 우리끼리 묻는다. 그리곤 옛날 경험담을 덧대며 이야기를 나누면서 앞으로 앞으로 올레길을 걷는다.
평수 포구에서 길은 해안을 벗어나 내륙(?)으로 향한다. 신작로를 건너 올망졸망한 마을길 앞에서 잠시 올레 표시를 잃는다. 쉬면서 가방에서 귤을 꺼내 입에 넣는다. 힘들 때는 서로 농담을 한다. 올레는 혼자 걷기도 하지만, 이렇게 같이 걸으면서 평소에 하지 못했던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하면서 세상살이에 대한 푸념도 하고 서로 입장을 이해하는 재미가 쏠쏠하게 있다. 宋山은 입담이 좋다. 어떤 화제든지 구수하게 경험을 중심으로 설득력 있게 재미있게 이야기를 꺼내고, 林山은 “거러엄∼”, “맞아” 그렇게 맞장구를 치면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우리는 올레고 뭐고 잠시 잊고 이야기에 몰두한다. 또 그러다가 종종 길을 잃는다. 어떠냐? 이런 게 진짜 올레 걷는 재미지!
올레길을 찾아 보니, 이번 코스는 개울이라기에는 커다란 하천을 따라 다리를 건너 왔다 갔다 한다. 재미없다. 꼭 ○개 훈련시키는 것 같다. 하지만 올레는 그러려니 해야 한다. 서둘러 질러가면 올레가 아니니까.
한참 가다보니 나무 데크가 있고 그 옆에 ‘영세성물’이란 안내 표지가 있어 읽어보니, 예전에 마을 사람들이 이곳 아이들을 위해서 작은 물웅덩이를 마련해 물놀이를 하게 해 준 곳으로 준공식에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차 다녀갔다는 이야기다. 없는 나라의 대통령으로 이런 작은 마을의 행사까지도 참석해야 한 심정이 어떨까? 이야기는 요즘 화제가 되는 영화 ‘국제시장’으로 이어지고 독일 파견 광부 이야기로 이어진다.
< 귀덕농로 옆 밭에 조금 덜 핀 유채꽃 >
귀덕농로 옆으로 오름길 곁의 밭에는 유채꽃이 제법 활짝 피었다. 노오란 꽃 풍경에 마음이 한껏 흐뭇해져 사진을 찍고, 휘돌아서 한참 가자 멀리 큰 절이 보인다. ‘선운정사(禪雲精寺)’란 현판이 보인다. 절 앞에는 작은 버스가 두어 대 보이고 사람들이 제법 많이 웅성거리며 모여 있다. 무언가 불사(佛事)라도 있나 보다.
절 앞에서 잠시 형편을 엿보느라고 있자니까 아마 죽은 이에 대한 천도제라도 하는 모양이다. 꽃으로 치장한 제단 앞에는 스님 넷이서 목탁을 치기도 하고 범패춤을 추기도 한다. 그 뒤에 망자(亡者)의 가족들인 듯한 사람들이 숙연한 표정으로 늘어서 있고 그보다 인척 관계가 먼 듯한 사람들은 그들보다 한참 뒤에 서서 있다.
범패춤 가락에 林山이 염치불구하고 절로 들어가 사람들 뒤에 붙어 선다. 宋山도 나도 주춤주춤 들어선다. 이때 주지인 듯한 스님이 우리를 발견하고 반색을 하며 안으로 들어가 차라도 한 잔 하라고 반긴다. 나가라고 하면 어쩌나 마음을 졸였던 우리는 안심을 하고 제를 구경한다.
< 선운정사 대웅전 풍경 >
林山은 자꾸 범패춤 장면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눈치인데, 남의 집안의 매우 엄숙한 제례인지라 나는 조심스럽다. 뒤돌아서서 선운정사 절 풍경만 살짝 찍는다.
절을 나와서 돌담밭을 지나다 보니 밭일을 하는 부부가 보인다. 겨울이라 들판과 밭을 그렇게 다녀도 사람들을 볼 수 없었는데 반갑다. 부부가 캐는 감자인지, 고구마인지 그 정도 크기의 붉은 뿌리채소를 보고 물었다. “이게 뭡니까?” “아, 그거 비트예요”, “맛있나요?”, “맛있기보다 붉은 색을 내는 데 많이 쓰지요”, “그럼 한 개 얻을 수 없나요?”, “저기 캔 것 중에서 하나 가져가세요.”, “예, 감사합니다.” 어쩌구 하면서 비트를 하나 집어든다.
비트(beet)는 잎은 쌈채소로 이용하고, 뿌리는 즙이 많아 녹즙을 내어 먹는다고 한다. 뿌리의 모양이 둥근 원형으로 전체적인 생김새가 강화순무와 비슷하다. 영양 성분은 철과 칼슘, 비타민A와 C, 단백질이 풍부하다. 뼈와 치아를 튼튼하게 해 주고, 당뇨와 혈관 질환, 피부 미용에 효과가 있다 한다. 뿌리는 속까지 진한 붉은 색이고 즙이 많아서 잘게 썰어 술에 넣으면 술 색깔이 금세 붉어져 보기에도 좋고 술맛도 순해진다나.
“어, 그거 한 입 베어 물면 입 안이 금세 새빨개지는데” 하며 宋山이 놀린다. 먹을 수도 없고 그냥 비트를 들고 간다. 이야기꽃을 피우며 돌담길을 돌아 한참 가다보니 또 올레 표시가 없다. 아차, 또 알바를 해야 한다. 길을 찾아 다시 백(back)한다. 다리가 아프다. 오늘이 닷새째인데 한 이십분 정도 알바를 적립한다.
한참 돌담을 돌아 길을 재촉하니 큰 건물이 보인다. 납읍초등학교다. 잔디가 깔린 운동장에서 초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야구선수들이 한참 전지훈련 중이다. 앉아서 뒤를 돌아보니 나무계단 옆에는 ‘제주 납읍리 난대림 지대 (금산공원)’이라는 안내표지판이 있다.
< 금산 난대림 숲 안내판 >
안 돼, 이제 더는 저 오름에 올라갈 수 없어, 발바닥이 거부한다. 오늘 걸으면 100㎞인데 참 힘들다. 일행은 알바로 인해 기운도 떨어진 상태로 아쉽지만 금산공원을 오르지 않기로 한다. 공원을 못 오르는 것은 많이 아쉽다. 다음에 여유 있게 오르기로 하고 오늘은 그냥 지나치기로 한다.
< 천연기념물 금산 난대림 숲 입구 전경 >
금산공원은 원래 척박한 돌무더기 땅이었는데, 풍수지리설에 따라 화재를 방지하기 위해 나무를 심고 벌목을 금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제주시의 서부 지구에서 평지에 남아 있는 유일한 상록수림으로 후박나무, 생달나무, 종가시나무, 동백나무 등 60여 종의 난대성 식물이 자라고 있으며, 원시적 경관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고 한다. 학술자원으로서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 제 375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고 한다.
금산공원과 납읍초등학교를 지나는데 어떤 여학생 둘이서 우리 일행을 보더니 약속이나 한 듯이 우리를 보고 깍듯이 인사를 한다. 의외의 인사로 기분이 좋아진 우리는 크게 인사를 받아 주고 칭찬을 한다. 조금 내려오니 마을의 규모가 제법 크다.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식당을 물으니 금산식당에 가라고 한다. 식당을 찾으니 저어기 금산식당이 보인다.
< 폐교 위기를 주민들의 슬기로 극복한 납읍초등학교 전경 >
11시40분. 식당에 들어가니 큰 식당 안에는 주인 아주망 혼자 휑하니 있다 우리를 맞는다. 평소 육식을 꺼리는 임산을 외면하고 우리는 돼지두루치기를 시킨다. 할 수 없이 임산도 돼지 두루치기 먹기에 동참한다. 1인분 8천원. 현옥식당보다 천원 비싸다. 소주값은 3천5백원으로 우리 기준에는 보통 식당이다. “저어, 아주머니! 소주 3천원에 주면 마시고 아니면 안 먹을래요” 흥정을 하니, 아주망이 흔쾌히 3천원에 주신다 한다.
그런데 아주망과 이야기하다 보니 그때까지 이곳 지명이 ‘남읍(南邑)’인 줄 알았는데 ‘납읍(納邑)‘이란다. 아주머니의 말에 설명을 덧붙이자면 납읍리의 원래 옛 이름은 과납(科納)이란다. 과거에 급제를 한다는 뜻이다. 일제 강점기에 명칭이 납읍리로 바뀌었다고 한다. 제주에서 邑(고을 읍)자가 들어간 마을은 성읍리와 납읍리뿐으로 조선 중기 이후 중앙 무대에서 20여 명의 과거 급제자가 속출함에 따라 문촌(文村)으로 명성을 크게 떨쳤던 영광에 주민들의 자부심이 대단하단다.
이곳 납읍리의 특이점은 농촌 인구 감소로 인하여 납읍초등학교가 분교로 전락하게 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 마을 주민들을 비롯한 출향인사(出鄕人士)들이 선비 마을이라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하여 마을 성금을 모아서 연립주택을 지어 초등학교 어린이가 있는 가정에 무상으로 입주를 시켜주겠다는 제안을 해서 학생들이 몰리자 납읍초등학교는 지금까지 폐교나 분교로의 전락 위기를 극복하고 건재하다는 것이다.
참으로 행정기관의 도움도 없이 납읍리 주민들과 출향 인사들만의 성금에 의해서 이러한 성과를 이룩하였다는 것이다. 납읍리 주민 대부분이 제주시 생활을 하는 베드타운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 농촌마을의 특징을 잃지 않으면서도 젊은이의 감소가 마을 발전에 어떤 영향을 주는 것인지 알고 예전의 출중한 인재를 배출한 납읍리의 전통을 이어가려는 슬기로움으로 이를 극복하는 실천 방안을 강구하고 있는 것이다.
12시10분. 아무튼 소주값 오백원을 깎아 줘서 우리 기준에 보통 식당에서 좋은 식당으로 승격한, 납읍리 자랑으로 자부심이 드높아진 금산식당을 뒤로 하고 걸음을 재촉해 이제 고내봉 길에 접어든다.
좁은 산길을 따라 걷노라니 갑자기 큰 트럭이 굉음을 내며 뒤에서 다가온다. 급히 길가로 몸을 숙여 피한 뒤, ‘뭐 이런 좁은 산길에 저런 차들이 다닐까?’ 투덜거리며 올라가 보니 재선충 벌목 작업 중인 작업 차랑과 운반 차량들이 보인다.
육지도 마찬가지지만 제주도에도 멋지고 잘 생긴 소나무가 참 많다. 해안가나 오름의 아름다운 경관에 어울린 소나무의 멋진 자태는 그림처럼 아름답다. 그런데 올레나 트레킹을 하다보면 여기저기 죽은 소나무가 눈에 많이 띈다. 그것은 소나무 재선충에 의해 고사된 것으로 시뻘겋게 죽은 소나무 모습에 마음이 편치 않다. 그리고 많은 곳에서 최소 백여 년은 되어 보이는 아름드리 소나무를 베어내 쌓아둔 것을 보면 정말 아깝고 안타깝다. 잘못하면 우리나라 소나무 전체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걱정된다.
< 참으로 마음 아픈 재선충 피해목 벌목 모습 >
재선충은 0.6㎜∼1㎜ 정도의 머리카락 모양으로, 소나무의 수분 이동통로를 막아 소나무를 고사시킨다. 제주도에서는 이 재선충 방제를 위해 행정기관에서 소나무를 특별 관리하여 개인소유지의 소나무라도 어느 정도 크기의 것은 방제를 한다는데 2013년에는 54만 그루를 베어내고, 작년에는 27만 그루를 베어 냈다고 한다. 그리고 재선충을 완전히 박멸하지 못하면 올해도 계속 소나무를 베어내야 하는 상황인데 현재까지 뾰족한 방법이 없어 보인다 한다.
작업차량을 뒤로 하고 조금 올라가니 절이 보인다. 정자 형태의 지붕을 가진 출입구에 ‘보광사’라 쓰여 있다. 정말 고즈넉하다. 이런 곳에 조용히 앉아 세속을 잊고 얼마간 수행을 하며 살고 싶다. 보광사를 지나 올라가자 쉼터에 삼나무 숲이 있다. 宋山이 크게 심호흡한다. 사려니숲만큼은 아니지만 숲이 형성되어 기분이 좋다.
< 고즈넉한 보광사, 쉬어 가고 싶다 >
그런데 고내봉 정상으로 가는 길 옆은 공동묘지라서 무덤이 많다. 이렇게 좋은 풍광 속에 무덤 속의 분들은 참으로 호강을 하시는가 싶다. 조금 가니 운동기구들이 늘어져 있다. 우리보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하르방이 혼자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어 고내봉 올라가는 길을 묻자 알려준다. 혹시 추자도가 보이냐고 묻자 그렇다고 한다.
13시30분. 낑낑거리며 고내봉 정상으로 오르자 송신탑과 3층 정자가 있다. 정자 위에 오르자 아래로는 오늘 트레킹의 종착지인 고내 포구가 보이고 멀리 제주의 푸른 바다가 활짝 품을 열고 우리를 반긴다. 바람은 잦아들었고 하늘은 비교적 맑다. 날씨도 따뜻해서 제주에 온 즐거움이 넘쳐난다.
< 고내봉에서 바라본 고내포구 앞바다 전경 >
그런데 바다 위를 아무리 눈뜨고 보아도 추자도는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못 찾는 것일까?’ 한라산도 잘 보이지 않는다. 조금 쉬다가 내려와 운동시설 있는 곳에 이르니 길을 알려주던 하르방은 가고 없다. 추자도가 보인다고 하는 것은 좀 뻥인 것 같다.
고내봉을 내려오는 길 옆으로는 때 아닌 억새밭이 장관으로 우거져 있다. 억새밭을 지나자 하가리 고내봉 하르방당(堂)이 나타난다. 제주에는 예부터 무속신앙으로서 마을 곳곳에 적게는 1∼2개에서부터 많게는 7∼8개 이상의 신당(神堂)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제주의 기층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신앙의 대상인 이 제주 신당은 조선 시대에는 유교라는 국가 이념의 희생양이 되어 훼절되었고, 일제시대에는 민족 문화 말살 정책에 의해 핍박 대상이 돼 수난을 겪었고, 최근에는 농촌 공간의 도시화와 관광 개발로 인해 많이 훼손되고 있다고 한다.
< 고내봉 내림길의 때 아닌 겨울철 억새밭 전경 >
이에 대해 일부 문화 단체에서 농촌 테마 관광과 연계해 제주 신당을 답사하는 문화관광 상품 개발과 마을 주민들에게 마을공동체의 정신적 뿌리로, 해녀와 어부들에게는 바다 일의 무사안녕을 지켜주는 생산 현장의 지킴이 역할을 강조하며 다시 보존하자는 운동이 일어나고도 있다 한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오히려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처럼 한 마을에 7, 8개의 신당은 좀 그렇다. 하르방당도 지나고 밑으로 내려와 귤밭을 지나는데, 귤이라기에는 유난히 작은 탱자 크기의 열매를 따고 있는 아주머니가 있어 “무슨 귤이 이렇게 작으냐”고 물으니까 “이건 일반 식용 귤이 아니라 한약재로 쓰는 귤”이라고 한다. 별 귤이 다 있다 싶다. 언덕길을 다 내려오니 올레 코스는 다시 좌회전하여 고내봉 밑으로 다시 간다.
이렇게 공연히 길을 휘돌아서 아까 출발점 옆으로 가면 헛김이 빠져 할 말이 없어진다. 그래도 꾹 참고 걸어 곧 큰 길에 와 닿으니, 또 하나의 절이 있고 고내 포구를 향한 길에 접어들자 다시 힘이 난다. 이제 길은 아스팔트 포장 도로로 차량 통행이 많다. 계속 레미콘 트럭들이 큰 소리를 내며 왔다 갔다 해서 걷기에 아주 조심스럽다. 저 멀리 밭 가운데에는 주변과 어울리지 않게 큰 건물을 짓고 있다. 이즈음 제주에서 유행하는 사각형 건물 스타일이다.
요즈음 제주에는 여기저기 크고 작은 건물을 짓거나 리모델링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되는데, 건축 스타일은 우리의 전통적인 것이 아니라 사각형이거나 상자 스타일의 건물을 많이 짓는다. 전통적인 기와를 얹고 처마나 추녀가 있는 건물이 아니라 유럽 스타일로 옅은 베이지톤의 벽면과 단순화한 지붕 형태로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주려는 것 같다.
큰 길을 내려와 고내 포구로 접어든다. 올레 안내 표지판을 보니 이제 종점에 다 왔으니 살았다 싶다. 발바닥이 많이 아픈데 이제 안도감에 젖어든다. 아, 그런데 그게 아니다. 아직도 하귀리 배염골 돌담 올레가 기다리고 있다. 포구로 직접 가는 것이 아니라 푸성귀밭이 있는 작은 농로에 있는 돌담 사이로 돌아가는데 거기에는 마치 한라산 성판악을 오르는 입구에 있는 것과 같이 생긴 짱돌들이 발목을 세차게 흔든다. 힘이 빠진 발목이 아프다, 아파!
< 고내 포구 16코스 종착점 우주물 용천수 표지석 >
14시25분 고내 포구 16코스 종착점에 있는 용천샘 우주물 앞에 선다. 인증샷을 하고 조금 쉬었다가 제주시로 가는 버스를 타러 큰 길로 향한다. 올라가는 길에 같이 버스를 타러가는 노부부와 말을 나누게 되었다. “왜 저렇게 집을 성냥갑처럼 사각형으로 만들지요?”하니 “여기 제주에는 바람이 많이 불어요. 밤이면 추녀나 창문에 부딪히는 바람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해요. 그래서 창문도 덮개로 덮어서 덜컹거리거나 소리가 나지 않도록 하고, 집도 저렇게 짓지요”한다.
듣고 보니 그렇게 생각된다. “이곳 분들이신가요?”하니 “아뇨, 우리도 경기도 화성에서 살다가 여기 세를 들어 내려와 몇 해 살고 있어요” 한다. 아, 이렇게 여러 사람들이 은퇴 후에 제주살이를 하시는 분이 계신 것 같다. 바깥노인이 “그런데 해안가에는 집을 얻지 마세요. 바람 소리, 파도 소리에 잠을 이룰 수 없어요”라고 한다. 그렇다! 노년에 그렇지 않아도 잠이 적은데 그 바람 소리, 파도 소리에 잠을 뺏기고 전전반측하는 고통을 겪을 수는 없지. 만약에 제주에 임대할 집을 얻는다면 해안가보다 좀 더 안쪽에다 얻어야 한다.
15시05분. 제주행 702번 버스를 타고 제주시에 도착하여 16시 숙소에 짐을 푼다. 간단히 씻고 오늘 저녁은 버스 터미널 근처의 현옥식당으로 간다. 오천원짜리 된장찌개를 시키니 꽃게가 냄비에 하나 가득이다. 웬만한 집 해물탕보다 내용이 실하다. 이 집에서는 사천원짜리 백반도 괜찮지만, 여행객이나 올레꾼 같은 사람들은 저렴하게 제공하는 돼지 삼겹살 구이를 많이 먹는 것 같다. 그런데 저 뚱뚱한 현옥식당 삼촌은 참 말이 없이 무뚝뚝하다.
19시. 다시 숙소로 돌아오면서, 제주에 와서 닷새 동안 우리가 걸은 거리가 자그마치 20㎞×5일 약 100㎞나 되니 내일은 제발 조금만 걷자고 약속한다. 그래서 내일은 조금만 걷는 추자도로 가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