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글
나, 다시 바다로 가야겠네
황 상 순
오야붕과 꼬붕
오야붕이나 꼬붕은 일본어다. 원래 일본 야쿠자 깡패들 사이에서 쓰이던 말이나 지금은 폭력 조직이 아니더라도 사회 여러 분야에서 구성원 간의 주종관계를 나타내는 말로 널리 통용되고 있다.
오야붕은 조직 내에서의 리더나 수장을 지칭한다. 말하자면 두목, 우두머리다. 반면 꼬붕은 오야붕 밑의 졸개나 부하들을 뜻하는 말이다. 오야붕은 한 명인데 꼬붕은 숫자가 많은 까닭인지 쫄따구, 쫄병, 따까리, 시다바리 등 많은 비속어가 꼬붕과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다.
2001년 초 개봉되어 공전의 히트를 친 ‘친구’라는 영화의 한 장면, 제법 머리가 굵어진 장동건이 “내가 니 시다바리가.” 어릴 적 친구였지만 조직의 오야붕이 된 유오성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을 내뱉는다. 하극상이다. 결국은 비 쏟아지는 길에서 “마이 묵었다 아이가.” 오야붕에게 대든 대가를 치러야 하는 장면은 지금도 눈에 삼삼하기만 하다. 오야붕한테는 절대 대들거나 거역해서는 안 되는구나.
작금에 이르러서는 상명하복의 수직적 문화보다 협업과 소통,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조직문화로 변모되어 가는 추세이며, 심지어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이라고 하여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잘 받들어야 하는 문화까지 권장되고 있으니 오야붕 꼬붕이라는 말은 조만간 낡은 사전 속에나 처박혀야 할 단어가 될지도 모른다.
이무기의 승천(昇天)
우리들 가슴을 울린 장종권 시인의 추모 시 첫 구절처럼, 누가 뭐라 해도 강우식은 천상 ‘깡패’였다.
그는 거친 파도와 맞서며 고기잡이로 생계를 잇던 어촌 주문진 마을의 거센 왈패들과 과감히 맞짱을 뜨는 골칫덩어리 소년이었으며, 고교 시절 거듭된 말썽으로 인해 학교 교무실에 불려 가야 하는 부친을 그가 늘 하던 버릇대로 개구멍을 통하여 모시고 간 망나니 일화는 지금 생각해도 절로 웃음이 나오곤 한다.
한 번도 얘길 꺼낸 적 없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그는 글 쓰는 재주가 비상하여 전국 글짓기 백일장에서 장원을 하기도 하였으며, 이런 계기를 발판으로 성균관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하게 되었고, 이후 시(詩)라는 문학 장르에 안착을 하여 종내는 서정주 시인의 제자로 1966년에 ‘현대문학’으로 등단을 하고 모교에서 ‘시학(詩學)교수’로 크게 자리매김하였으니,
도무지 싹수가 노랗기만 하던 주문진 건달 강우식이 국내 유수 대학의 교수씩이나, 더군다나 대한민국의 현대사에 큰 획을 긋는 대시인(大詩人)으로 우뚝 서게 된 것은 무엇보다 어촌 해변에 줄지어 선 잘 생긴 소나무들, 그 너머 아득히 도열한 설악산 준령들이 오야붕을 향한 꼬붕의 자세로 일제히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기막힌 풍수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 볼 뿐이다. 망나니 혹은 깡다구 좋은 아이로 기억하는 이무기 강우식의 용(龍) 등극 얘기는 지금까지도 뭇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고 한다.
성공 스토리에 부모님의 지극한 사랑 얘기가 빠지는 법은 없다. 시골 시장통에서 물감장수로 가족의 생계를 이으며 바람 잘 날 없는 말썽쟁이 아들 하나를 위해 정화수 떠 놓고 낮이나 밤이나 빌고 또 빌었을 모친의 가없는 사랑이 빠지면 얘기가 되지 않는다. 그가 작고하신 모친을 그리며 쓴 ‘어머니의 물감 상자’에서도 ‘콧물마저도 무지갯빛이 되는’ 모친의 무한 사랑이 여실히 드러난다.
.....(중략).....
해종일 물감장사를 하다 보면
콧물마저도 무지갯빛이 되는 많은 날들을
세상에서 제일 예쁜 색동저고리 입히는 마음으로
나를 키우기 위해 물감장사를 하였습니다
.....(중략)......
나에게는 물감상자 하나만 남겨 두고 떠났습니다
내가 어른이 되었을 때
어머니가 그러했듯이 아이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운 색깔들만 가슴에 물들이라고
물감상자 하나만 남겨 두고 떠났습니다
캐츠 아이 (Cats Eye)
2000년 초, ‘문학과 창작’ 사무실인 낙산빌라에서 처음 뵙게 된 그의 첫인상은 호남형이거나 근엄하기 그지없는 원로 시인으로서의 면모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살짝 푸른 빛이 도는 눈을 지니고 있었다. 안광이 지배(紙背)를 철(徹)한다는 표현이 맞을까. 아무튼 그의 캣츠 아이(Cats Eye)와 같이 형형(熒熒)한 눈빛을 마주하곤 등단한 지 겨우 1년 남짓의 신출내기는 겁먹은 똥개가 되어 엉덩이에 꼬리를 감추고 낑낑거리기만 했다.
박제천 선생님과 늘 술자리를 같이 하시고, 자리를 함께한 여성 시인들을 향해서 껄끄럽고 야하기만 한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던지는 모습을 보고는 시인이 아니라 흡사 조직을 이끄는 조폭, 오야붕쯤 되는 사람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다. 처음엔.
그러나 그가 시단(詩壇)의 합리적이지 않고 잘못된 일들에 대해서는 에둘러 말하는 것이 아닌, 직설적으로 사자후(獅子吼)를 토하는 등 주관이 뚜렷하고 다소 고집이 있기는 하나 정말 순수한 영혼을 지닌 사람이었음을 깨닫기까지, 나의 오야붕으로 등극하기까지 그렇게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는 않았다. 한 번 두 번 자주 뵙게 되고 그럴 때마다 얼핏얼핏 마주한 그의 속살, 내면세계를 들여다보게 되면서 아, 참 따스한 양반이구나. 이 풋내기가 몸을 기대고 싶은 어른이구나, 홀연히 깨닫고 나는 자진하여 그의 수하, 꼬붕으로 편입하였다.
여성 시인들에게 거침없이 던지던 짓궂은 농담들은?
시 수업이 끝난 어느 날, 저녁을 먹고 혜화역 근처 어느 2층 술집에서 여러 명이 입가심으로 맥주를 들이키고 있을 때다. 권커니 잣거니 분위기가 무르익자 스스럼없이 스킨십까지 나누는 남녀 꼬붕들의 행태를 보며 상석에 앉아 계시던 오야붕께서는 넌지시 “시인끼리는 절대 연애하면 안 되어야, 그거이 바로 근친상간이여!”
그랬던 분이다. 입으로는 수천 번도 넘게 연애를 하였지만 실제로는 스스로 엄격하게 자신을 관리하고 통제하셨던 분이다. “한 번 자자고 했잖아요, 자 가요” 놀림을 받은 여성 시인이 짐짓 팔짱이라도 낄라치면 호방하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어린아이처럼 부끄러워하며 단호히 팔을 빼시던 모습.
그렇다, 그는 십수 년 전 돌아가신 사모님, 초등 시절부터 깊이 사랑에 빠진 여인을 오매불망 그리워하시던, 첫사랑에만 올인하신 분이었다.
오야붕의 권위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야붕은 단순한 우두머리나 리더가 아닌 아버지와 같은 존재로서 수하 조직원들을 가족처럼 여기며 돌보아야 하는 책임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스스로 모범을 보여야 하고 모든 걸 손수 앞장서서 다할 때만이 그를 따르는 꼬붕들이 넙죽 엎드려 충성을 다하며 상하 혼연일치가 된 조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4. 다시 바다로 떠나야 하리
영국의 계관시인이었던 존 메이스필드(John Masefield)의 대표 시 'Sea Fever(바다의 열병)'는 시에 대한 갈망이 움트던 소년 시절부터 마리나 해구처럼 내 가슴 깊숙이 자리한 시로써 지금도 이 시를 대하면 바로 옆에서 파도가 철썩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바다의 열병(熱病)
나 다시 바다로 가야겠네,
쓸쓸한 바다 쓸쓸한 하늘로
내게 필요한 건 키 높은 배와 길잡이 별 하나뿐
물을 차는 바퀴의 반동, 바람의 노래, 흔들리는 흰 돛
바다 위 잿빛 안개와 밝아오는 새벽뿐이네
나 다시 바다로 가야겠네,
밀려오는 파도의 부름을 뿌리칠 수가 없네
내게 필요한 건 흰 구름 흐르는 바람 부는 날
흩날리는 물보라와 거품 그리고 갈매기들의 울음소리뿐
나 다시 바다로 가야겠네,
방랑하는 집시의 삶으로
칼바람이 불어오는 갈매기와 고래의 길로
내게 필요한 건 웃음 많은 동료의 즐거운 농담과
긴 항해 끝에 찾아오는 깊은 잠, 달콤한 꿈뿐이네 (전문)
(* I must go down to the seas again...로 시작하는 원문을 제 깜냥껏 한역)
강우식, 그는 풍광 좋은 고장 주문진 어촌에서 태어났다. 아니, 바다에서 태어났다. 뭍을 향하여 쉼 없이 밀려오는 파도가 깊고 푸른 바다 한가운데서 태어난 그를 육지로 밀어냈다. 팔십다섯 해를 권력과 명예욕 등으로 바람 잘 날 없는 시단의 저잣거리에서, 소박한 아카데미 점포에서 이른바 듬직한 ‘어깨’로 지냈다.
우리들은 그의 졸개, 꼬붕으로 자진하여 구성원이 되었다. 때론 꾸중도 듣고 응석도 부리며 그가 가리키는 곳이면 주저 없이 달려가곤 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실로 안락하고 평화로운 한 시절을 구가했다.
이제 그가 떠난다. 그가 태어난 동해바다 먼 곳을 향해 닻을 높이 올렸다.
아무리 노련해도 파도를 이기는 어부는 없다. 단지 파도를 다를 줄 알 뿐이다. 바다에서 태어나 다시 바다로 떠나는 그는 전혀 파도를 무서워하지 않는, 깡다구가 남다른 일등 항해사다.
모쪼록, 나 보란 듯 멀고 먼 항구에 무사히 안착하시길 바람 세찬 백사장에 남겨진 꼬붕 갈매기들은 끼룩끼룩 울면서 엎드려 빌 뿐이다.
아내를 고향 앞바다 주문진에
수장했으니까
아들에게 나도 그리 하라고 유언했다
.......... (중략)............
혹여 내 죽거든 나를 따라
절대 바다에 묻히고자 하는
여자는 없었으면 한다
저승에는 아내가 있다 (『결초보은』 시집 「水葬 유언」 중)
먼저 떠난 사모님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마지막 시집에서까지 반전의 농담으로 노래하신 우리의 영원한 오야붕이시여, 버선발로 달려오실 사모님과 반가이 재회하여 오랜만의 깊고 달콤한 꿀잠을 주무십시오.
그곳에서도 절창의 싯귀 다듬으며 가끔은 “옛다, 이건 너 가져라.” 아무것도 아닌 듯, 꿈속에서라도 기막힌 시 한 소절 툭 선물로 던져 주시길 빕니다.
바다처럼 눈빛 푸르고 맑으신 선생님, 부디 안녕히 가세요!
- 문학아카데미시인회 회장 황상순
1999년 『시문학』 등단
시집 『시집 비둘기 경제학』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