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백대영
파울에 의해 세워진 코린트교회는 여러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었는데, 헬라 사상의 영향으로 부활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파울은 부활에 대해 답변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코린트전서에 길게 한 장을 할애해서 부활에 대해 기록하였습니다.
1. 크리스트께서는 셋째 날에 일으킴을 받으셨습니다.
코린트전서 15장 4-8절에 “그가 매장함을 받으신 것이고, 그가 셋째 날에 일으킴을 받으신 것이고. 게바와 열둘에게 보이셨고. 500 위로 형제들에게 일제히 보이신 것이며 그들에서 많은 자들이 현재까지 머무르지만 어떤 자들은 잠들게 되었고. 그 후에 그가 야고보에게 봄을 받으셨으며 그 후에 그 모든 사도들에게. 모든 자들의 맨 끝에 조산과 같은 나에게도 그가 봄을 받으셨노라.”라고 하였습니다.
크리스트께서는 매장되셨으며 셋째 날에 일어나셨습니다(고전 15:4). 예수님께서 자신이 “세 번째의 날에 일으킴을 받으리라”고 가르치셨으며 예수님께서 세 번째의 날에 일으킴을 받으셨습니다(마 16:21, 룩 24:7).
크리스트께서 죽은 자들에서 세 번째의 날에 일어날 것이 기록되었고, 그 성경들에 따라서 세 번째의 날에 일으킴을 받으셨습니다(고전 15:4).
“세 번째의 날”이 만 3일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루가 24시간이니까 72시간 후에 부활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렇게 따지면 월요일에 부활하여야 하셨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의 날”은 이런 뜻이 아닙니다.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신 당일이 첫 번째 날이고 토요일이 두 번째 날, 그리고 부활하신 일요일이 세 번째의 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일요일 새벽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세 번째의 날에”와 “3일 후에”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1)
이후에 크리스트께서는 베드로와 열둘에게 보이셨습니다(고전 15:5). 한 사람의 증언은 채택되지 않는데, 그가 거짓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증언이 채택되기 위해서는 둘 이상의 증인들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은 12명이 보았기 때문에 증인으로 채택될 수 있습니다.
파울은 5절 이하에 예수님의 부활을 본 사람이 많은 것을 기록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객관적 실재인 것입니다.
6-11절은 초대교회의 신앙고백에 이어지는 파울 자신의 말입니다.2)
그 다음에 그가 500명을 초과하여 형제들에게 일제히 봄을 받으셨고, 많은 자들이 그 당시에 머무르나 어떤 자들은 잠들었습니다(고전 15:6). 크리스트의 부활을 직접 그 눈으로 본 증인들이 500명 이상이나 됩니다.
그 후에 그가 야고보와 모든 사도에게 봄을 받으셨습니다(고전 15:7).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야고보와 모든 그 사도에게 봄을 보이신 것입니다.
“야고보”라는 이름을 거론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야고보”는 초대교회의 유명한 지도자였습니다. 그래서 교인들 중에서 야고보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야고보가 예수님의 부활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이 의심스러우면 야고보에게 가서 물어 보라는 것입니다.
메시아의 구원하는 역할은 그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표현됩니다.3)
모든 자들의 맨 끝에 그가 파울에게도 봄을 받으셨습니다(고전 15:8). 파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사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 오기 위해 다메섹으로 갔습니다. 사울이 다메섹에 거의 도착했을 때에 갑자기 하늘에서 햇빛보다 강한 빛이 사울을 비추었습니다. 사울은 그 강렬한 빛에 눈이 멀고 말았습니다.
그때에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오기를, “사울아, 사울아 너는 왜 나를 박해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사울은 묻기를, “주여, 누구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때에 하늘에서 음성이 대답하기를,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은 충격을 받았고, 그때부터 예수님을 박해하던 사울은 예수님을 전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파울의 다메섹 체험은 내적인 깨달음을 동반한 체험의 사건입니다.4)
부활의 출현 목록은 예수님께서 파울에게 보이신 것으로 끝납니다.5)
코린트전서 15장 9-11절에 “이는 나는 사도들의 가장 작은 자임이니 ‘사도’로 불리기에 충분하지 아니하니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음이나. 하나님의 은혜에 나는 나인 것이고 그의 은혜가 공허하지 아니하였으나, 모든 그들의 더 많은 것을 내가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나 그의 은혜라. 그러므로 나 또한 저 사람들이 선포하고, 이렇게 너희가 믿었노라.”라고 하였습니다.
9-11절은 “파울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9절에서 파울은 먼저 자기 자신에 대해 묘사합니다.6)
파울은 크리스트의 부활에 대해 500명 이상의 증인이 있다고 하였고, 모든 자들의 끝에 조산과 같은 자신에게도 그가 보이셨다고 하였습니다.
파울이 자신을 이렇게 표현한 이유는 사도들의 가장 작은 자임입니다. ‘사도’로 불리기에 충분하지 않으니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음입니다.
10절에서 파울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말합니다.7)
하나님의 은혜에 그가 그인 것이고 그 은혜가 공허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모든 사도들보다 더 많은 것을 수고하였으나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파울은 자신이 모든 사도들보다 더 많은 것을 수고하였다고 자부합니다.
11절에서는 파울의 사역과 사역의 결과 그들이 믿었음을 말합니다.8)
파울은 이와 같이 11절까지 지금까지 있었던 사건들을 쭉 서술합니다. 이로써 죽은 자들의 부활을 찬성하는 논증을 증명할 준비를 끝마칩니다. 예수 크리스트께서 부활하신 사실이 죽은 자들의 부활의 증거가 됩니다.
2. ‘죽은 자들의 부활이 없다’는 말은 잘못된 주장입니다.
1) 죽은 자들의 부활에 대한 첫째 입증(probation)을 말합니다.
코린트전서 15장 12-19절에 “그가 죽은 자들에서 일어남이 설교되면, 어떻게 어떤 사람들이 ‘죽은 자들의 부활이 있지 않노라’라고 말하느냐? 죽은 자들의 부활이 있지 않으면, 크리스트께서도 일어나지 않으셨으나. 크리스트께서 일어나지 않으셨으면, 너희의 믿음 또한 공허하나.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들로(to be) 발견되니, 크리스트를 일으키신 하나님에 대하여 우리가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들이 일으켜지지 않는다면 그를 그가 일으키지 않으셨노라. 이는 만일 죽은 자들이 일어나지 아니하면 그도 일어나지 아니하셨으나. 만일 크리스트께서 일어나지 않으셨으면(has not been raised), 너희의 그 믿음이 헛되며 아직 너희가 너희의 그 죄들 안에 있는 까닭에. 크리스트 안에 잠잔(fallen asleep) 자들 또한 멸망하였노라. 우리가 이 생명 안에만 있으면 모든 사람들의 더 불쌍한 자들이라”고 기록하였습니다.
12-19절은 ‘죽은 자들의 부활이 사실이 아닐 경우의 결과’입니다.9) ‘크리스트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이라는 내용입니다.10)
코린트교회에는 ‘부활이 있지 아니하다’고 말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파울은 부활의 필요성을 몇 가지로 입증합니다.
13-19절에는 “만일”이라는 ‘전제’와 뒤따르는 ‘결론’이 반복됩니다.11)
죽은 자들의 부활을 부인하면 크리스트의 부활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면 죽은 자들도 부활할 것을 믿어야 돼 ’ 이런 뜻입니다.
복음의 내용은 2가지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우리가 전파하는 것과 증언하는 것은 크리스트의 부활에 근거를 둡니다.
부활이 있지 않으면, 예수님께서 일어나지 않으셨습니다(고전 15:13). 크리스트께서 일어나신 것은 죽은 자들의 부활이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크리스트께서 일어나지 않으셨다면 크리스천들의 믿음도 공허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의 믿음도 비었을 뿐입니다(고전 15:14). 사도들의 선포도 빈껍데기처럼 공허할 뿐입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들로 발견되니, 크리스트를 일으키신 하나님에 대하여 우리가 증언하였음이며, 부활이 없으면 그가 예수님을 일으키지 않으셨을 것입니다(고전 15:15). 만일 예수님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는데 우리가 부활하셨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거짓 증인들이 됩니다.
죽은 자들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도 일어나지 않으셨는데(고전 15:16), 예수님께서 일어나신 것은 죽은 자들이 일어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예수 크리스트께서 일어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믿음이 헛되며 우리가 죄들 가운데에 처하였습니다(고전 15:17).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바치신 희생 제물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셨다는 증거가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희생 제물을 받지 않으신 것이고, 그것은 우리의 죄가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우리는 여전히 죄들 가운데에 처하여 있는 죄인들인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크리스트 안에 잠잔 자들도 멸망하였습니다(고전 15:18). 부활이 없다면 크리스트를 믿다가 죽은 자들도 멸망한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이 생명에만 있으면 모두보다 불쌍한 자들입니다(고전 15:19). 파울은 부활이 없으면 우리가 가장 불쌍한 자들이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만일 부활이 없고 그냥 100년 살다가 끝나는 것이라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제일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삽니다. 열심히 돈 벌어 부자 되고, 권력을 쟁취하고, 술 먹고 여자들하고 즐기면서 삽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세상의 욕심을 추구하지 않고 살기 때문에 부활이 없다면 불쌍한 사람들이 됩니다.
2) 죽은 자들의 부활에 대한 둘째 입증(probation)을 말합니다.
코린트전서 15장 21-22절에 “죽음이 사람을 통해서니 부활도 그러니. 이는 마치 아담 안에(in Adam) 모든 자들이 죽는 것처럼, 이렇게 또한 크리스트 안에서도 모든 자들이 살림을 받을 것임이라”라고 하였습니다.
20-28절은 죽은 자들의 부활에 대한 둘째 입증입니다.12)
‘죽은 자들의 부활이 사실이므로 생겨나는 결과’입니다.13)
크리스천들은 부활과 관련하여 크리스트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크리스트의 부활을 다른 이들의 부활과 동떨어져서 보지 못합니다. 연대기적 순서가 예수님의 부활과 종말론적 부활 사이에 있습니다.14)
코린트전서 15장 20절에 “그가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5장 21-28절에 파울은 “아담과 크리스트”를 대비시킵니다.15)
농부가 밭에 씨를 뿌리면 가을에 “첫 열매”가 열립니다. “첫 열매”는 이후로 계속 열매들이 열릴 것을 알려 줍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의 “첫 열매”로 부활하셨다는 것은 예수 크리스트 안에 있는 자들도 부활할 것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크리스트의 부활은 죽은 자들의 부활을 보증합니다(20-22절).16)
부활의 원리를 논하는 이 단락에서는 부활의 순서와 원리를 다룹니다. 지금 크리스트께서는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고전 15:20). 이는 죽음이 사람을 통하여서고, 또한 부활도 사람을 통하여서임입니다.
죽음이 사람을 통해서니 부활 또한 사람을 통해서입니다(고전 15:21). 아담을 통하여 죽임이 온 것 같이 한 사람을 통하여 부활이 올 것입니다.
본문 15장 21-22절에 “아담과 크리스트”가 대비되고 있습니다.17)
아담의 죽었고 아담의 자손들에게 죄와 죽음이 유전되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 아담 때문에 죽음이 모든 사람들에게 임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 사람 예수님을 통하여 예수님 안의 모든 사람들이 부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크리스트의 부활은 뒤따르는 이들을 위한 결과를 가진 사건입니다.18)
코린트전서 15장 22절에 “마치 아담 안에 모든 자들이 죽는 것과 같이 이렇게 또한 크리스트 안에도 모든 자들이 살림을 받을 것임이라.”라고 하였습니다.
아담 안에 모든 자가 죽는 것처럼 크리스트 안에 모든 자가 삽니다.19)
죽음이 아담의 죄로부터 왔듯 부활도 예수님의 부활로부터 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사람의 죽음이고 그의 부활도 사람의 부활입니다.20)
아담은 옛 질서를 이끌고 대표합니다. 이와 대조하여, 크리스트께서는 새 질서를 이끄시고 대표하십니다.21)
파울은 각 대표자가 각 그룹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말합니다. 죽음이 아담의 후손의 공동 운명이 됩니다.22)
이렇게 부활도 크리스트와 결속되는 사람들의 공동 운명이 됩니다. 크리스트와 결속되어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의 부활을 공유합니다.23)
코린트전서 15장 23-26절에 “크리스트, 그 후에 그에 속한 자들이며. 그 왕권을 하나님께 넘기실 때, 모든 권력과 권세와 능력을 폐하신 때니. 이는 모든 그 원수들을 그 발들 아래 둘 때까지 반드시 지배해야 함이라. 마지막의 원수인 그 죽음은 폐지함을 받으니.”라고 하였습니다.
23-28절은 부활의 순서와 크리스트의 통치에 대해 언급합니다.24)
파울은 부활이 미래에 있다고 확언합니다.25)
각각이 자신의 순서나 지위대로 살림을 받습니다(고전 15:23).26)
첫 열매 크리스트와 그 재림 때에 그에게 속한 자들이 먼저입니다.27)
첫 번째 차례는 “첫 열매”로서의 “크리스트”의 부활입니다.28)
크리스트께서 첫 열매로 부활하셨습니다. 크리스트께서 부활하셨고, 다음에 그에게 속한 자들이 부활합니다.29)
그가 왕권을 하나님께 넘기시며 권능을 폐하신 때입니다(고전 15:24). 그때에 그에게 속한 자들이 부활할 것입니다. 그가 왕권을 하나님께 넘기실 때니 그를 적대하는 모든 권력과 권세와 능력을 폐하실 것입니다.
여기 “~하는 때”라는 시간을 나타내는 말이 여러 번 쓰이고 있습니다. 그 끝이 언제냐는 것입니다(고전 15:24).
그가 왕국(kingdom)을 하나님과 아버지께 넘겨주시는 때입니다. 모든 권력과 모든 권위와 능력을 폐지하신 때입니다. 그때가 그 끝입니다.
크리스트께서는 모든 권력과 권세와 능력을 끝내실 것입니다.30)
그는 모든 원수를 발아래 두시기까지 지배하셔야 합니다(고전 15:25). 본문 15장 25절은 파울이 시편 110편 1절을 약간 바꾸어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크리스트의 적들을 그의 “발에 발판으로 두시기까지”입니다.
시편 110편 1절에 “나의 주인에게 야훼의 말함이라, 너의 적들을 너의 발에 발판으로 두기까지 나의 오른쪽에 앉아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이렇게 되셨습니다. 우리는 사도신경 여섯 번째 줄에 바로 이 신앙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일에 예배 때마다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라고 신앙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살고, 이 소망을 가지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부활의 복음을 전합시다!
1) Joseph Plevnik, 『최근 바울과 종말론 연구 동향』, 김병모 옮김 (서울: CLC, 2011), 32.
2) Plevnik, 『최근 바울과 종말론 연구 동향』, 21.
3) Plevnik, 『최근 바울과 종말론 연구 동향』, 34.
4) 조갑진, “바울의 다메섹 사건에 관한 연구”, 『신약논단』 제22권 제1호 (2015): 152.
5) Fee, 『NICNT 고린도전서』, 909.
6) 서인선, 『고전 수사학과 고린도전서 15장』 (한국성서연구, 2014), 229.
7) 서인선, 『고전 수사학과 고린도전서 15장』, 229.
8) 서인선, 『고전 수사학과 고린도전서 15장』, 229.
9) Garland, 『BECNT 고린도전서』, 885.
10) Fee, 『NICNT 고린도전서』, 931.
11) Garland, 『BECNT 고린도전서』, 908.
12) 서인선, 『고전 수사학과 고린도전서 15장』, 230.
13) Garland, 『BECNT 고린도전서』, 885.
14) Garland, 『BECNT 고린도전서』, 919.
15) Kenneth E. Bailey,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김귀탁 옮김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7), 665.
16) 서인선, 『고전 수사학과 고린도전서 15장』, 230.
17) Bailey,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666.
18) Garland, 『BECNT 고린도전서』, 922.
19) Bailey,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666.
20) Garland, 『BECNT 고린도전서』, 922.
21) Garland, 『BECNT 고린도전서』, 922.
22) Garland, 『BECNT 고린도전서』, 922.
23) Garland, 『BECNT 고린도전서』, 922.
24) 서인선, 『고전 수사학과 고린도전서 15장』, 230.
25) Garland, 『BECNT 고린도전서』, 923.
26) Garland, 『BECNT 고린도전서』, 924.
27) 서인선, 『고전 수사학과 고린도전서 15장』, 230.
28) Fee, 『NICNT 고린도전서』, 951.
29) Bailey,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666.
30) Bailey,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6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