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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문학의 근현대성 단상
임 춘 성 (목포대)
1.동북아의 비애
‘근현대성(modernity)’에 관한 무성한 논의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화려한 레토릭이 난무하던 이론과 담론은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 있는가? 그리고 그것들은 우리의 근현대성 규명에 어떤 공헌을 하였는가? 그것은 계속 규명할 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모던’ 또는 ‘모더니티’에 대한 정의는 실로 다양하다. 이 다양한 정의를 점검하기 전에 우리가 인정할 것은 ‘모던’이란 근본적으로 유럽인들의 삶의 이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모던(이티)’을 운위하기 위해서는 서양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심층적인 분석이 안받침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중국이라는 주변문학(한국에서는)을 업으로 삼은 지 20년이 넘은 필자로서도, 한국과 중국을 포함한 동북아의 ‘근현대’를 이해하기 위한 선결작업으로 서양의 모던을 심층 이해해보려고 하였으나 역부족과 혼란스러움만 절감할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다음과 같은 문제 설정은 참신하게 다가왔다. “… 근대 철학이 자신과 중세 철학 사이에 만드는 ‘경계’를 통해, 그리고 탈근대적 문제 설정이 근대 철학을 넘어서려 하면서 만들어 낸 경계를 통해 철학의 역사를 이해하려고 한다.” 이는 모던과 중세의 경계, 그리고 모던과 포스트 모던의 경계를 통해 모던의 실체를 규명하려는 시도라 하겠다. 이런 시도는 대상을 인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성적 주체로서의 주체의 문제가 서양 모던 철학의 핵심임을 밝혔다. 그리고 “인식하는 주체와 인식되는 대상으로 양분되면 인식된 게 사실과 일치하는지 여부를 확인할 길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굴뚝 청소부의 딜레마’). 서양의 모던은 주체와 이성을 확립하면서 시작되었고 그것들을 해체함으로써 종결되었다.
이렇게 이해하고 보니 단순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출발점은 될 듯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모던은 철학적 사유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18세기에서 19세기, 20세기초에 걸쳐 가장 전형적이고도 이른 시기에 유럽에서 일어난 사회적 변화”이며 “사회구조, 산업 그리고 정치형태, 문화의 변화를 포함하는 글로벌한 사회적 변화”라는 언급은 역사적이고 삶의 총체적 양식의 차원에서의 모더니티를 지칭하는 것일 것이다. 슈우이치는 “세상에는 갖가지 언어가 있고 하나의 낱말이 복수의 의미를 지닌다는 사실을 의식하는” 것을 ‘모더니티’라고 하여 모더니티의 다성악적 성격을 언급하기도 하였다. 또 다음과 같은 이해는 정치경제학적이면서 사회학적인 관점이라 할 수 있다. 모던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의해 규정되는 역사 단계”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다양한 근대 기획들의 헤게모니 경쟁의 장”이다. 여기에서의 모던은 포스트 모던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동북아의 근현대를 정립하기 위해서는 서양의 모던뿐만 아니라 포스트 모던까지 아울러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저들의 모던을 따라잡기 위해 한 세기 이상을 분투하였건만, 저들은 우리가 추구해온 그것을 다시 해체하고 있는 현실, 이것이 ‘동북아의 비애’일 것이다.
2.중국 근현대의 이중 과제
‘동북아의 비애’에 머물지 않고 나름대로 해결책을 찾으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마오저뚱(毛澤東)의 ‘반제 반봉건 민족해방 민중혁명(NLPDR)론’은 한 세기를 풍미했던, 동북아에 국한되지 않았던 ‘제3세계 혁명론’으로 각광을 받았음은 모두 아는 사실이다. 마오저뚱의 ‘반제 반봉건 NLPDR론’은 중국의 근현대적 과제가 서양을 학습(반봉건)하는 동시에 서양을 배척(반제)해야 하는 이중적 투쟁임을 명시하였다는 점에서 여전히 역사적․사상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아편전쟁으로부터 시작된 중국의 근현대가 태평천국 운동, 변법유신, 신해혁명을 거쳐 신민주주의 혁명에 이르러서야 ‘부정의 부정’의 역사 발전 과정을 완성하였다는 리저허우의 평가는 타당성을 가진다. 또 중국 근현대 과제의 이중성에 대한 마오저뚱의 인식이 전제되었기에, 리저허우의 ‘계몽과 구망의 이중 변주’라는 개괄이 나올 수 있었다. 또한 현실 사회주의권의 붕괴 이후 사회주의가 자본주의 발전의 특수한 형태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신중국 성립 이후 마오저뚱의 혁명주의 노선을 ‘반(근)현대성적 (근)현대화 이데올로기’로, 덩샤오핑(鄧小平)의 실용주의 노선을 ‘(근)현대성적 (근)현대화 이데올로기’로 개괄한 왕후이의 논단도 마오저뚱의 이론에 크게 빚지고 있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전통 계승에 관한 태도로서의 반봉건(反封建)은 그 방법론에서 외래 수용에 의존하였고, 외래 수용에 관한 태도로서의 반제(反帝)의 길은 도로 ‘민족화-중국화’로 회귀하였다. 다시 말해, 마오저뚱이래 중국 근현대의 이중적 과제의 해결책에서는 끊임없이 전통과 외래에 대한 태도의 문제가 착종하고 있었던 것이다. “외재적으로는(外患-원문) 배척해야할 서양이라는 그 무엇과 싸워야 하면서도, 내재적으로는(內憂-원문) 배척해야할 서양이라는 그 무엇을 배척하고 있는 모든 전통적 그 무엇과 다시 싸워야 하는 아이러니가 개화기 지성인들을 지배했다. 배척되어야할 그 무엇과 싸우면서(반제-인용자), 배척되어야할 그 무엇을 배척하는 그 무엇과 싸워야만 하는(반봉건-인용자) 형식논리적 모순성”, 이것이 바로 개화기에 국한되지 않는 동북아의 비애이자 아이러니다. 유감스럽게도 마오저뚱의 이중 과제의 실천적 층위는 후자에 치중하였고 그 결과 제3세계 특수주의의 편향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한국문학의 ‘근현대성’에 대한 백낙청의 논단 또한 주목할 만하다. 그는 우선 ‘근(현)대성 기획’이라는 명제 아래 ‘근(현)대’를 “세계사에서의 자본주의 시대”로 이해하고, ‘근(현)대성’ 논의가 서양의 역사 발전 과정에서 제기된 개념인 만큼 실세 있는 서양의 주요 논자들의 견해를 점검하였다. 그리고는 이어서 한반도의 ‘근현대’가 19세기 말엽 “강화도 조약(1876)으로 상징되는 세계 시장으로의 타율적 편입”에서 시작되었다고 하고 한국문학의 ‘근현대성’을 “근(현)대성과 탈근(현)대 지향성의 .... 결합 양상”으로 제시하였다. 아울러 “이러한 원리가 우리 현실에도 부합하고 세계적으로도 실세를 가지려면, 기존의 서양주도적 근대에 대한 우리 나름의 독자성을 반영하면서 서양과 공유 가능한 것이라야 한다”면서 “근(현)대성과 탈근(현)대 지향성을 ‘리얼리즘’에 걸맞게 결합한 문학”을 제창하였다.
백낙청의 글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그의 문제 제기가 대부분 한국 현실에 절박한 사안에 대해 이론화를 시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유럽 보편주의로의 경도 혐의를 부인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그에게 있어 서양은 보편이고 한국은 특수이다. 그러기에 특수성을 인정하면서도 보편성이라는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서양인들이 동양인들만큼 상대에 대한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고서 서양과 공유 가능한 것을 찾을 수 있을까? 그의 표현대로 서양의 지식인 사회에서 ‘실세’를 확보하지 않은 채 한국의 것을 들이밀 수 있을까? 혹시 이른바 ‘본토’와의 끊임없는 연계가 변방 지식계를 왜소한 것으로 보이게 하는 또다른 ‘문화적 렌즈’로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
보다 폭넓고 심도있는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두 이론가의 견해에서, 그들은 동북아 근현대 과제의 이중성을 인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대응 방안은 서유럽 보편주의 또는 제3세계 특수주의의 편향을 노정하였고, 두 가지 편향 모두 서양이라는 보편을 전제하였다는 점에서 ‘서양 중심-동북아 주변’의 이분법적 사고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3.이분법의 극복을 위하여
중심-주변의 이분법적 사고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서양의 모던의 실체에 대해 일별할 필요가 있겠다. 그러나 그 복잡하고 다양한 역사 과정에 대한 연구는 이미 충분히 진행되었고 이 글의 몫도 아니다. 다만 한 가지 주목을 요하는 것은 서유럽의 모던(이티)이라는 것도 이중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세를 극복하려는 측면과 모던을 넘어서려는 측면이 그것이다. 이는 단순히 순차적인 문제만은 아닌 듯하다. 즉 서양의 모던(니티) 내부에도 ‘모더니티와 포스트모던(또는 exmodern) 지향성’의 이중적 측면이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사이에 벌어지는 찬반의 비생산적 논의에 휘말리지 않고 일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현대(성)의 정신사적 지도를 예리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위르겐 하버마스의 논의를 통해 소략하게나마 서양의 모던(이티)에 대한 이해를 구해보자. 하버마스는 현재 서양이 처해있는 전환기를 모더니티의 규범적 토대를 이루었었던 유토피아주의의 종말에 기인하는 ‘새로운 불투명성’의 시대로 규정하는데, 이때 종결된 유토피아는 노동사회적인 것이다. 그리고 그는 ‘훼손되지 않은 상호주관성의 형식적 양태’와 연관된 미래지향적 유토피아를 제시하고 있다. 모던을 ‘미래를 향해 열려 있는 시대’로 이해하는 하버마스는 모던이 탄생할 때부터 이미 시대비판과 자기비판을 본질적 요소로 가지고 있다고 파악한다. 여기에서 모던은 시대적 개념이고, 모더니티는 모던이 모던으로서 존립할 수 있는 근거에 대한 반성적 개념이다. 헤겔의 ‘주체성의 원리’(모던이 자기 자신을 반성적으로 비판하는 방식)를 비판적으로 계승한 하버마스는 모던의 특성을 ‘자기정당화와 자기비판의 내면적 결합’이라고 파악하였다. 이것이 바로 ‘모더니티의 기획’이라고 일컬어지는 ‘계몽의 변증법’이다. 그러므로 분화의 병리현상만을 폭로하고 규범적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는 회의주의적 이성비판(니체-바타이유․라캉-푸꼬)도 정당하지 않으며, 분화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이성의 타자를 신비주의적으로 실체화하는 형이상학 비판(니체-하이데거-데리다)도 역시 옳지 못하다고 비판한다. 그에게 있어 모던은 ‘분화’와 동시에 ‘분화에 의한 발전’이라는 특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는 당연하게도 모더니티에 내재하고 있는 도구적 이성(그는 의사소통적 이성을 주장한다)의 총체화를 비판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각에 전체적으로 동의하지만, 모더니티를 비판하기 위하여 이성의 타자를 다시금 총체화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태도는 모더니티에 내재하고 있는 ‘반대담론’(모던의 탄생과 동시에 모더니제이션으로 인한 부작용에 관해 진행된 철학적 성찰)을 간과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가 헤겔, 니체로부터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 하이데거, 데리다, 바타이유, 푸꼬 등의 이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서양의 모던이 한편으로 자연법적 질서에 대한 종교적 믿음에 의해 유지되었던 ‘전체성의 파열’을 의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종교의 세속화로 말미암은 사회의 분화와 합리화를 통해 인간의 해방능력이 축적된다는 ‘진화적 발전에 대한 믿음’을 표현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서양의 모던(이티)은 중세를 극복하려는 측면과 모던을 넘어서려는 측면, 분화와 분화에 의한 발전이라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앞에서 중국 근현대 과제의 이중성을 언급하였다. 그런데 이중적 과제 설정의 근거, 또는 최소한의 참조체계였던 서양의 모던(이티) 자체가 이중적이다. 그러므로 논리적으로 중국 근현대 과제는 4중성을 가지게 되는 셈이다. 서양의 모더니티의 ‘전체성의 파열’의 측면에 대한 지향과 극복, 그리고 ‘진화적 발전에 대한 믿음’에 대한 지향과 극복이 그것이다. 후자의 경우 진화론적 사유가 중국 근현대 지식인에게 미친 광범한 영향과 사회진화론으로 무장한 제국주의 세력에 대한 중국 지식인과 인민들의 치열한 투쟁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처럼 부분적 타당성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서양의 모던(이티)을 기준 잣대로 삼고 그에 대한 추구와 극복을 과제로 삼는 것은 여전히 ‘서양 중심-중국 주변’의 이분법의 논리에 의거하여 서양의 기준에 동북아를 대입시키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평가는 귀기울일 만하다. “중국 연구의 목적은 유럽과 아시아의 우열 관계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독자성을 규명하고 다원적인 세계관을 획득하는 것이다. 따라서 유럽의 모더니제이션 과정을 기초로 중국을 평가해서는 안된다.” 지난 한 세기 서양(사회주의를 포섭하고 있는 자본주의)을 따라잡으려고 노력하였던 한국과 중국으로서는 이제 서양의 역사 행정에서 어떤 보편성(universallity)을 발견하여 그것을 추구하려 애쓰기보다는 ‘상호 공유 가능’한 ‘횡단적 연계성(transversality)’의 확보에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특히 “어떠한 외래적 자극도 자기가 가지고 있는 언어(사유)의 틀(心 혹은 格) 속에서 융해해버리는” 강렬한 ‘회심형 문화’ 유형에 속하는 중국에 있어서는 외래 수용시 개재하는 전통 계승의 작용을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이다. 서양과 ‘상호 공유 가능’한 ‘횡단적 연계성’과 외래 수용시 개재하는 전통 계승의 작용에 대해서는 별도의 심도있는 논의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이상의 맥락에서 한 가지 문학 현상에 주목하고자 한다.
4.진융(金鏞) 현상
우리가 아직 중국 근현대문학을 제대로 접하지 못하고 있을 1950년대 중기부터 중국 권역에서는 ‘하나의 조용한 문학혁명(一場靜悄悄的文學革命)’이 일어났다. 처음에는 중국문학 연구자들조차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수많은 독자들을 확보한 이 문학혁명은 통속문학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던 학자와 교수들을 강박하여 관심을 가지게 만들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진융(金鏞)의 무협소설이었다. 진융은 전후 약 17년간 14부의 작품(飛雪連天射白鹿, 笑書神俠倚碧鴛)을 발표하였고 다시 10여년의 공력을 들여 수정하였다. 그리고 1994년 진융은 베이징 대학에서 명예교수직을 수여받았고 삼련(三聯)서점에서 15종 36권의 金鏞作品集이 출간되었다. 아울러 ‘20세기 중국소설 대가’ 서열에서 4위에 랭크되었다. 이듬해에는 베이징대학 중문학부에 ‘진융 소설 연구’라는 과목이 개설되었다. 최근 간행된 한 문학사에서는 진융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그의 작품이 지니는 “시대를 획분할 만한 의의와 가치는 바로 그의 작품들이 지니는 ‘근현대성’”에 있고 그의 강호(江湖)와 협객(俠客)들은 ‘근현대적 정보’를 지니고 있으며 “인간의 본성에 잠재된 호기심과 상상력을 충족시켜주기에 충분하다.” 또한 진융의 소설은 “중국의 한자문학이 창조해낸 예술적 상상력이 극치에 이르렀음을 상징”하고 “통속문학과 엄숙문학 사이의 경계와 영역을 허물어버림으로써 무협소설을 순수예술의 전당으로 끌어 올려놓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리고 “인생에 대한 우환(憂患)의식”을 체현하였고 “20세기 인류 문명이 지닌 비관주의와 회의정신”을 반영하였다.
1980년대 한국의 중국 근현대문학 연구가 범했던 추수주의적 편향을 경계해야 하겠지만, 그동안 5․4 이후 신문학 위주의 문학사 서술을 감안할 때 ‘본토(本土) 문학전통’을 회복시켰다는 점에서 진융 현상은 분명 주목할 가치가 있다.
류짜이푸(劉在復)의 평가를 보자. 그는 20세기초 중국문학이 사회 변화와 외래 문학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두 가지 다른 문학 흐름(流向)---무대의 중심을 차지한 5․4 문학혁명이 촉진한 ‘신문학’과 중국문학의 전통 형식을 유보하면서도 새로운 내용이 풍부한 ‘본토문학’---으로 분열되었다고 본다. 후자는 전자와 함께 20세기 중국문학의 양대 실체 또는 흐름을 구성하여 완만한 축적 과정을 통해 자신의 커다란 문학 구조물을 건설하였다. 20세기초의 쑤만수(蘇曼殊), 리보위엔(李伯元), 류어(劉鶚), 1930~40년대의 장헌수이(張恨水)와 장아이링(張愛玲) 등을 거쳐, 진융에 이르러 본토문학의 전통을 직접 계승하여 새로운 환경에서 집대성하고 그것을 발양(發揚) 광대(光大)시켰다는 것이다. 진융 문학의 공헌은 그동안 홀시되었던 20세기 중국문학의 한 축인 ‘본토 문학 전통’을 계승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새롭게 발전시켰다는 점에 있다.
그는 ‘온갖 장르가 구비’된 전통적 장회(章回) 형식의 일관된 특징을 유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근현대적 독서에 부합되게끔 탄력적으로 개변시켰다. 작품에서 선악과 시비가 분명한 가치 전통을 견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분명한 가치 관념을 표현하기 위해 새로운 시대 내용을 끌어왔다. 표현이 평이하고, 유럽화의 폐단이 전혀 없는 백화문의 풍격을 계승했을 뿐만 아니라 시대에 맞게끔 백화문을 발전시켜 새로운 경지에 이르게 하였다. 전통 무협소설의 제재와 형식을 계승한 동시에 무협 제재의 표현 공간을 대대적으로 확장시켰다.
특히 ‘인성’에 대한 주의깊은 형상화와 ‘아속공상(雅俗共賞)’의 지고(至高)한 경지, 문학의 이데올로기화에 대한 신랄한 풍자와 자유 정신의 추구, 그리고 민족적 문화가치가 내장된 백화문의 확립 등은 류짜이푸가 추출한 진융의 문학사적 의의이다. 류짜이푸 외에도 쳰리췬, 천핑위엔 등도 진융에 관한 글들을 속속 발표하였고 옌쟈옌은 전문 연구서를 출판하기도 하였으며 국제 규모의 “진융(金庸) 학술토론회”도 개최되었을 뿐만 아니라 ‘金學’이라는 용어가 나올 정도다. ‘진융 현상’은 신시기에 전기에 있었던 ‘왕쑤어(王朔) 현상’이나 ‘폐도(廢都) 현상’과는 그 맥을 달리하는 문화사적 사건으로 보아야 한다. 1950년대 신문 연재 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반세기 동안 지속적으로 독자층을 확대 재생산하면서 단순한 저널리즘적 흥미 유발에 그치지 않고 학문적 연구 대상으로 그 영역을 넓히고 있다. 우리는 진융의 작품을 재미있는 무협소설로만 볼 것이 아니라 중국의 전통문화와 근현대인의 인성과 심리가 내재된 문화 텍스트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
상세한 논의는 진융에 관한 전문 연구에 맡기기로 하고 우리의 주제인 ‘근현대성’으로 돌아가자.
5.근현대화․민족화․대중화
중국문학의 근현대성이라는 복잡하고 애매한 대상을 규명하기 위해 한참을 돌아왔지만 그것은 여전히 꿈적도 하지 않은 채 실체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 그것을 해치우기 위해서는 쑨추안팡(孫傳芳)을 날려버렸던 ‘한 방의 대포’가 더 나을지도 모를 일이다. 중국문학의 근현대성을 제대로 규명하기 위해서는 서양과 ‘상호 공유 가능’한 ‘횡단적 연계성’과 외래 수용시 개재하는 전통 계승의 작용에 대해 면밀한 연구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그 하나의 방법으로 '근현대화․민족화․대중화'의 상호 연계를 제시하고자 한다.
필자는 1917~1949년 사이의 중국문학의 대중화론을 검토하면서 “대중화를 기축으로 하고 민족화와 근현대화의 세가지 힘의 총합이 중국 근현대문학 발전의 추동력”이라는 가설적 문학사론을 제기한 바 있다. 대중화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한 결과 1920년대 신문학운동기는 ‘서유럽화에 경사된 근현대화’가 주요한 축이었다면, 1930년대 프로문학운동기는 ‘소련화에 치중한 대중화’가 중심축을 형성하였고, 1940년대 항일민족문학운동기는 ‘중국화로 나아가는 민족화’가 중심충을 형성함으로써, 이 시기에 대중화와 민족화가 충분히 근현대화되지 못한 수준에서 결합되었다고 분석하였다. 또한 대중화의 진행과정을 그 중심 공간, 참조체계, 수용주체의 각도에서 살펴볼 때, 신문학운동기는 베이징을 중심으로 ‘유럽화’에 경도된 청년 지식인의 대중화, 프로문학운동기는 상하이를 중심으로 ‘소련화’에 경도된 도시 노동자의 대중화, 그리고 항일민족문학운동기는 옌안을 중심으로 ‘중국화’와 결합된 농민의 대중화로 특징지을 수 있다고 평가하였다.
한동안 손을 놓고 있던 이 가설을 다시 거론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이론적 검토가 타당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그것을 뒷받침할 작품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고, 가설을 입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이제서야 발견했기 때문이다. 작품 창작으로 전환되지 않는 문학이론은 공허한 울림이 되기 쉽다. 5․4 시기의 수많은 계몽의 외침들, 좌련 시기의 혁명의 표효들, 민족 전쟁 시기의 구국의 함성들, 이것들은 모두 시대의 과제 해결을 위한 치열한 몸짓이었지만, 소수의 작가들에 의해 이루어진 성과를 제외하면 대개 문학사 박물관을 장식하고 있을 뿐이다. 특히 독자들에게 읽혀야만 생명력을 가지게 되는 인문학적 성과물은 독자들을 확보해야만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중국 문학의 전통 형식을 보유(민족화)하면서도 근현대적인 내용을 풍부하게 보유(현대화)하고 있는 ‘중국 본토문학’의 집대성자이자, 타이완과 홍콩 그리고 대륙에 이르기까지 광범한 독자를 보유함으로써 대중성을 확보(대중화)하고 있는 진융(金庸)의 작품은 ‘근현대화’․‘민족화’․‘대중화’의 상호 긴장과 합일의 가능성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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