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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어린이관 마18:1-6 11.5.1 어린이 주일설교
***한 사회학자가 지나간 19세기는 여성을 발견한 세기요, /20세기는 어린이를 발견한 세기요, 21세기는 노인을 발견하는 세기가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린이를 발견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말일까요? 그전까지는 어린이가 하나의 인간이나, 인격으로 간주되기보다 부모나 사회의 부속물 정도로 취급되어 왔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그것은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920년대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로 있을 때 만해도 어린이라는 말조차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어린이들은 ‘이놈,’ ‘어린 것,’ ‘꼬마’ ‘애새끼’라는 말로 불리 우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일본 유학생이었던 소파 방정환 선생은 이를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민족의 미래는 다음세대를 귀히 여기는데 있다고 확신한 그는 여름방학을 맞아 귀국했을 때 존대 말 쓰기 운동을 벌렸습니다. 이때 처음으로 '어린이'(어리신 이)라는 말을 사용했고 어린이도 하나의 인격체임을 선언했습니다. 이것이 1921년의 일이었고 ,다음해인 1922년 5월1일에 처음으로 '어린이 날' 제정을 제안하고, 1923년에는 순수 아동잡지 '어린이'를 창간하게 됩니다. 그해 5월1일 아동문화운동단체인 '색동회'를 창설하게 됩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어린이날의 유래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만해도 어린이는 여자들과 함께 한 집안의 재산목록에 들어갔을 뿐 결코 사람으로 대접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린이를 어떻게 생각하셨을까요? ***본문에 나타난 예수님의 어린이 관을 통하여 우리가 배우고 회복해야할 삶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어린이는 귀하게 여겨야 할 대상입니다.
***눅18장 1절에 보면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만져 주시기를 바라고 자기들의 아이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자식이 하나님이 은총으로 복을 받고 잘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심정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들을 꾸짖으며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히려 제자들을 꾸짖으시며 눅18:16 절에“어린아이가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어린아이까지 용납하고 귀히 여기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린아이까지도 사랑하시고 귀히 여기셨습니다.***물론 제자들의 심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시 말씀을 전하시느라고 무척 피곤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도 알아듣지 못하는 아이들까지 데려와서 예수님을 괴롭히면 얼마나 힘드시겠습니까? 제자들은 그것을 염려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의 그러한 태도를 못마땅하게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책망하시고 어린이를 귀히 여기라고 하셨습니다.
***5절에서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이가 어른을 영접하는 것이 아니라, 어른이 아이를 영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를 영접함이 예수님을 영접함이라고 가르치십니다. 무슨 뜻입니까? ***어린이를 대우하고 영접하는 마음에 천국의 가치관이 들어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옛날 요한 트레보니우스라는 까르멜 수도원의 원장이 있었습니다. 그는 맨발의 수도사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린이들을 가르칠 때 늘 모자를 벗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하고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은 어린아이들이지만 언젠가는 그들 중에서 총독도 되고, 장관도 될 것이고, 학자나 교사들이 될 터인데 이를 생각하고 공경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그의 생각은 허사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제자들 중에서 개혁자 마틴 루터가 배출되었습니다. 어린 아이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겨야 하겠습니다.
***요즈음은 어린이 전도가 쉽지 않습니다. 신경을 많이 써야 합니다. 예산도 세우고 어린이 선교를 위해 투자를 해야 합니다. 그들이 지금은 소비자이지만 20-30년 후에는 교회의 기둥들도 성장할 것입니다. 차세대에 교회를 지킬 목사, 선교사 주님의 귀한 일꾼이 될 것입니다.
2. 어린이는 우리가 배워야만 할 대상입니다.
***3-4절의 말씀이 바로 이 교훈이 아닙니까?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지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우리들 어른의 입장에서는 아이들을 생각 할 때에 즉각적으로 우리가 가르쳐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늘의 본문에서 이런 발상을 역전시키는 선언을 하십니다. 우리가 오히려 어린이에게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린이에게는 천국에 들어 갈 수 있는 어떤 마음의 자질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마음의 자질들은 무엇이겠습니까? 단순성과 겸손과 믿음 입니다.
***어린이는 잘 믿습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믿지 못합니다. 어른들은 일반적으로 자기의 상처받은 혹은 배반당한 인생 경험 때문에 세상을 믿지 못합니다. 사람들을 믿지 못합니다. 결과적으로 이런 믿지 못함으로 인하여 하나님도 신뢰하기 어렵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믿음 없이 우리는 결코 구원 받을 수도 천국에 들어 갈수도 없다고 가르칩니다.
***어린이들은 쉽게 하나님을 믿고, 어른들을 믿습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어떻습니까? 어른들의 사고는 경쟁사회를 살면서 이웃을 믿지 못하도록 죄로 길들여져 있습니다. 이웃을 의심하고 믿지 못합니다. 사고가 복잡합니다. 그리고 그 깊은 요인은 자기를 위한 이기심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만의 본질입니다. 이런 교만함과 복잡함으로 인해 이웃에게 마음을 열지 않고 쉽게 누구도 믿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믿기 힘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실로 천국의 문을 두드리려면 이런 어린이의 겸손함, 단순성 무엇보다 믿음을 배워야만 합니다.
***미국에 ‘4센트짜리 교회’라는 교회가 있습니다. 웅장하고 아름다운 교회당에 어떻게 `4센트짜리'라는 별명이 붙었는가 하는 데는 네 살짜리 어린 아이의 솔선적 봉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건물이 오래 되어 퇴락한 교회당의 신축을 위해 모든 교인들이 모여 집회를 갖고 마지막으로 교회 신축을 위해 헌금하는 순서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목표로 정한 액수가 너무 많아서 서로가 얼굴을 바라보며 눈치를 보고 먼저 돈을 바치기를 꺼려했습니다. 교회 안에는 미묘한 정적과 긴장이 감돌았습니다.
이때였습니다. 이제 겨우 네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아이가 정적을 깨뜨리고 강단 앞 계단을 올라 목사님께로 다가갔습니다. 그리고는 고사리만한 손을 펴며, 쥐고 있던 1센트짜리 동전 4개를 목사님 앞에 놓았습니다. [목사님, 이 돈은 우리 엄마가 나 사탕 사먹으라고 주신 돈이에요. 사탕 사먹는 것보다는 이 돈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 목사님께 드리는 거예요]
어린 아이에게 있어 사탕 사먹는 일은 가장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 그것을 포기하고 헌금하는 어린이를 통해 큰 감명을 받은 어른들은 마음을 고쳐먹고, 자기 차를 구입하려고 모아 두었던 돈을 비롯하여 자신이 가장 아끼는 것들을 하나님 앞에 바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건축이 시작되어 예배당이 웅장하게 세워지게 됩니다. 예배당이 훌륭하게 세워진 후 사람들은 어린아이의 솔선수범적인 4센트 헌금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시간이 흘렀어도 4센트 헌금의 감동이 사그러지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린이는 단순하고 겸손하고 잘 믿습니다. 하나님을 믿습니다. 선생님을 믿습니다. 그들은 친구를 믿습니다. 이웃을 믿습니다. 이 어린이 주일에 예수님이 칭찬하신 어린이의 마음을 배우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어린이는 우리가 보호해야 할 대상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린이는 적극적으로 보호되지 않으면 안 될 대상입니다. 본문은 소자를 영접하라는 선언으로 끝내지 않습니다. 본문6-9절까지에서 예수님은 매우 강경한 어조로 하나의 중요한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십니다. “누구든지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한마디로 그들을 '실족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실족함이라는 말은 광범한 의미에서의 보호를 뜻하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마지막 10절의 말씀이 이것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여기 10절에서 발견되는 매우 흥미로운 표현의 하나는 ‘저희 천사들’이라는 말입니다. 소자나 어린이들에게는 수호천사가 있다는 암시입니다./ 스스로 자기를 지킬 수 없는 자들을 보호하도록 하나님은 천사들을 보내시고 그들에게 보고를 받고 계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저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할 의무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들이 스스로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기까지 필요한 도움을 베풀어야 할 것입니다. 육체적으로 정서적으로 도움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영적 도움을 베풀어야 합니다.
***저는 오늘 여기 본문에서 예수님이 가장 중요하게 강조한 도움이 이 영적 도움이라고 생각합니다. 본문의 문맥에서 주님은 이 도움을 베풀지 못하고 실족케 하는 것은 영생과 영원한 멸망의 문제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무엇보다 이들이 예수 믿고 구원받아 영생 얻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이제 우리의 도움이 아닌 하나님의 도움을 스스로 받으며 살아갈 수 있도록 말입니다. 저는 이것이 진정하고도 궁극적인 도움이라고 믿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보호는 잘못된 과잉보호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오늘날 이 땅에서의 육아문제에 있어서 무관심이상의 큰 문제는 과잉보호라고 생각합니다. 과잉보호는 자녀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를 파멸시키는 길입니다. ***아이의 요구는 무조건 들어주고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하도록 버려두는 것은 자라가며 중대한 행동장애나 정신장애를 일으키는 원인이 됩니다. 이것이 자녀를 실족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 오게 됩니다.
***구약 사무엘상에 나오는 엘리의 가정이 바로 그런 가정이었습니다. 자식들이 잘못을 하고 있음에도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관대하게 대했습니다. ***삼상2:24절 을 보면“내 아들들아 그리하지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죄 하게 하는 도다.” 엘리는 두 아들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제도를 무시하고 문란한 생활을 하는데도 젊잖게 타이르기만 할 뿐 별다른 책망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그가 제대로 자식을 훈계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어떻게 자녀를 양육하고 있습니까?
1)자녀들이 잘못을 저질렀는데도 기가 죽을까봐 아무런 책망도 하지 않는 엘리와 같은 부모는 아닙니까? 2)자녀가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데도 자식이 싫어한다고 쓴 소리를 하지 않고, 아이가 예배드리기 싫어한다고 아이에게 교회당에 가자는 말조차 하지 않는 부모는 아닙니까? ***잠13:24절에 보면,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녀가 잘못을 저질렀는데도 책망하지 하는 것은 자식을 망치는 것입니다. 실족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기독교가정연구소 소장이신 송길원 목사님의 글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한 어머니가 자녀에게 심부름을 시키자 아이가 ‘나미공’이라고 말하더랍니다. 이 자리에 ‘나미공’이라는 말의 뜻을 아시는 분이 있습니까? 처음에 어머니가 그게 무슨 말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자, 아이가 “나, 미안해. 공주야!”라고 하더랍니다. ***부모들이 자녀를 공주와 왕자만 키우다보니, 주위에 보면 온통 왕자병, 공주병 환자들이 많습니다. 여러분, 왜 이렇게 공주병 환자들이 많이 생긴 줄 아십니까? 왜 이렇게 왕자 병 환자들이 많이 생긴 줄 아십니까?
***하나나 둘밖에 되지 않는 자녀를 잘 키우려고 모든 요구를 들어주는데서 생겨난 병입니다. 대여섯씩 낳던 옛날과 달리, 요즘에는 아이를 하나나 둘만 낳기 때문에 부모가 자식이 하자는 대로 끌려 다닙니다.
***아이가 예배드리기 싫어한다고 아예 아이에게 교회에 가자는 말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말을 오해하지 말고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1)우리는 자녀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인물로 잘 양육해야 합니다. 2)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보다 자식을 더 사랑한다면, 그것은 자식을 우상화하는 것이 됩니다. 자녀는 우상이 아닙니다. /자녀는 하나님의 기업입니다. /잘나도 못나도 다 하나님의 것이고, /또 부모인 우리에게 주신 상급입니다. /따라서 자녀에 과도하게 집착한 나머지, 자녀를 우상으로 삼으면 안 됩니다.
***만약 자녀를 우상으로 삼으면 첫째는 하나님께, 둘째는 자식에게, 셋째는 자신에게, 3중으로 죄가 됩니다. 우리 부모에게는 자녀를 하나님의 뜻대로 키워야 할 책임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 부모들은 자녀들이 원하는 방법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으로 자녀를 양육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문제아 자녀 뒤에 반드시 문제 부모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부모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에 문제아가 생긴다.’는 의미입니다.
1)자녀들을 부모가 아닌 주님을 의존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2)그래서 주님의 보호를 받고 평생을 살아가게 하는 일, 이것이 여러분과 저의 책임입니다.
--어느 아버지의 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나는 땅에 있는 아버지입니다./나에게 아버지의 특권과 책임을 주심을 감사하나이다./나의 자녀들이 필요로 할 때, 기꺼이 그들 곁에 머물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자녀들이 스스로 서야 할 때, 그들의 곁에서 떠나 기도하게 하옵소서. 아-멘
***그렇습니다. 1)어린이는 우리들 어른들이 오히려 배워야 할 대상입니다.
2)조건 없이 사랑 받고 영접되어야 할 대상입니다.3) 건강하게 보호되어야 할 대상입니다. 무엇보다도 어려서부터 예수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을 의지하고 스스로 살아가는 건강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보호되어야 합니다.
4)우리교회, 아니 이 땅의 어린이들이 이런 어린이들이 되도록 기도하십시다.
첫댓글 목사님 설교 말씀 중 제일 짧은 것 같습니다만 간결하ㄴ 명설교였습니다.감사하고 사랑합니다 힘내세요 목사님!
계속 짧게 하라고 하신 말씀 같은데 ^-^ ....늘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강단에 서지만 늘 부족하고 아쉬움이 남습니다.
저를 위해 진심으로 많은 중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넵 설교와 미니 스커트는 ....목사님과 사모님을 위해 기도합니다.
집사님 감사합니다. 늘 곁에서 함께 동역을 이뤄 주심에 감사하고 늘 기도하고 있습니다. 집사님도 힘내세요. 사랑합니다.
오명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