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공사로 멍들 동구
(인천일보, 2007,3.5)
지난 설날 성묘 다녀오는 길에 고향 남원의 금지면 도로를 걸었지요. 남원에서 곡성으로 이어지는 17번 국도는 고려시대 때 역참제를 통해 중앙정부의 각종 지시전달, 군사연락, 자수송 등을 수행했던 유서 깊은 도로 입니다. 당시 금지에는 창활역이 있었고 역 근처엔 다리가 하나 있는데 마모된 돌비 살펴보면 주교(舟橋)라는 글자가 확연합니다. 주교는 '배다리'란 뜻입니다. 태어난 고향 남원에도,살았던 고향 인천에도 배다리가 있습니다.
동구청에 근무할 때 잠깐이었지만 동료인 이강범, 한천교 님과 관내 유치원생·초등생을 대상으로 동구문화유산 답사 교육을 했었습니다. 답사 1번지는 도원역의 한국철도 최초 기공지비(우각리)였고, 루트는 인천세무소(선교사 숙소), 기독교 사회복지관과 영화학교, 창영교회, 창영학교, 양조장, 대한상덕관, 헌책방 골목, 배다리, 인천성냥공장(옛 문화극장), 배다리공방, 중앙시장, 우리소리연구회, 화도진지, 수도국산 배수지, 해반갤러리 등이었지요.
변변한 문화유산이나 시설이 없어 문화의 불모지라 하지만 동구 곳곳 둘러보면 투박한 사람들의 땀과 눈물과 숨결들이 배인 역사와 추억의 파편들이 즐비합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민초들의 고향인 동구가 송도와 청라를 잇는 산업도로 공사로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 핏빛 외침들을 외면치 말고 가슴으로 들어야 합니다.
"아무런 대안도 없이 두동강이 나버리는 동구! 과연 누구를 위한 도로 개설인지 묻고 싶습니다."(동구주민일동)
"지난 한 세기 동안, 경인철도가 인천의 심장부를 갈라놓아 동구 일대가 피폐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번 산업도로 계획 자체가 동구 주민의 삶과 문화의 보존은 안중에도 없는 일방적인 행정의 폭주라는 생각이 든다."(조우성)
"'금창동 일대는 한때 인천 근대문화의 태반이었다.(중략) 특히 배다리 헌책방 거리는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천 문화의 소중한 산실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곳을 가로질러 광포한 도로 개설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이희환)
"근대로부터 뻗어온 소중한 인천의 문화적 모태들을 간직하고 있는 이곳이 안타깝게도 '지역간 균형발전'이라는 명목 하에 자행되는 경제적 논리의 광풍에 끊어질 위기에 처해 버렸다. 그와 동시에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수많은 삶의 이야기와 기억들, 개인적 실존이 육중한 중장비들에 의해 파헤쳐져 그 흔적조차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어 버렸다."(인천 도시문화 탐사대)
상황이 이리도 급박한데 고향을 지키려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어디서도 들려오지 않습니다. 홀로 괴로워 하다 불현듯 성경 창세기의 인물인 '카인과 아벨'이 떠올랐습니다. 농부였던 형인 카인과 양치기였던 동생 아벨의 이야기가 말입니다. 물론 배다리엔 '아벨서점'이 있지만, 하느님께 바친 제물은 각각 곡물과 양이었으나, 하나님께서 열랍하신 것은 카인의 것이 아닌 아벨의 제물이었습니다. 믿음없이 잿밥에만 눈먼 카인에 비해 여여했던 아벨의 항심을 주님께서 이미 알고 계셨던 건 아닐까요. 두툼한 국어사전 마져도 경제를 앞자리에 내세워 '경제와 문화가 앞선 나라'를 선진국이라 했습니다. 그렇지만 말입니다. 땅인 문화에 씨앗을 뿌려야 비로소 경제인 먹을 게 생긴다는 것은 생명의 진리가 아닙니까.
카인같은 도로 공사여 더 이상 아벨을 죽여선 안 됩니다. 아벨을 죽이면 죽일수록 그 죄 더욱 무거워지기 때문입니다.
(김철성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