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속담에 '그 눈에 눈물이 없으면, 그 영혼에 무지개가 없다' 는 말이 있다.
우리 무지개의 집을 도와주는 여러 사람들중, 미국 전역에 살고 있는 국제결혼한 우리 한인 여성들이 제일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들은 성공한 국제결혼의 Case 라 볼수 있다. 언젠가 우리 무지개의 집에서 주최하여 그들을 위한 -세미나-를 열었다. 그때 연사로 한명숙씨를 초대 했는데, 그분이 현재 한국의 국무총리 이시다. 그의 강연엔 "국제결혼한 여성이 안고 있는 문제는, 민족의 역사적 산물이기 때문에 함께 뭉쳐 풀어 나가야 할것" 이라고 강조 했다.
또 어느해 한국에 나갔을때... '미군 범죄 근절 운동 본부' 의 주최로, 매 금요일 정오에 용산 미군 부대 앞에서 데모를 한다. 2백명 가량의 대학생들이 주류를 이룬다. 사무국장 정유진씨가 나를 오라 해서 갔더니 나에게 마이크를 넘겨준다. 그리고는 그들은 "Yankee go home" 을 외친다. 나는 큰소리로 "여러분 미군 물러가라는 구호는 외치지 마시오. 나는 6.25를 처절하게 겪은 사람인데, 그때 U.N 군이 아니었으면, 지금 공산 치하에서 인간답게 살지 못할것을 생각하면 아찔 합니다. 물론 SOFA (한미 행정 협정) 는 개정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53년에 법이 제정되고, '81년에 개정 되었으나 미군만을 위한 개정이었으니, 학인 여성들에겐 갖은 불이익을 겪고 있으니 반드시 형평성 있는 개정이 필요 합니다." 라고 나는 외쳤다. 그리고는 광고를 했다. 시간이 되는 사람은, 남영동 중국집으로 오시오. 내가 짜장면을 사리다. 40명쯤 와서 짜장면을 먹었다. 나가면서 단체로 잘 먹었읍니다 하고 인사하며 나가는데 나는 묘한 기쁨이 넘쳤다.
그리고 며칠후 수도 산악회를 따라 양평에 갔다.다산 정약용 선생의 묘소도 참배하고, '파레스 모텔' 이었나에서맛난 점심도 먹고, 그 유명한 탈렌트 정혜선12 아우가 사회를 보면서 나를 불러 세웠다. 뉴욕에서 훌륭한 일을 한다고 격려해 주었다. 나는 무지개의집을 잠깐 소개했다. 그리고는 오영숙4 언니와 김복희6 씨와 넷이 사진을 찍었다. 지금도 그사진이 내 책상 위에 놓여있다.
나는 늘 동두촌 기지촌의 혼혈아들이 마음 쓰인다. 한국에 장마가 질때, 낮은지역인 그곳의 혼혈인들이 어김없이 News 의 각광을 받는 시절이 있었다. 동물원에 놀러가도, 원숭이는 안보고 혼혈아들을 보느라 정신이 없는 한국 사회에서 역사의 희생자로 살아가는 그들이 참 가슴 아프다. 그래서 동두촌 '새움터'를 찾았다. 가는날이 장날이라 쌀이 떨어졌단다. 수제비 한그릇을 맛있게 먹고 돌아섰다.
그일로 혼혈인 가수 인순이를 만나게 되었다. 나는 갈때마다 Hyatt Hotel Loby 에서 그를 만나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99년 봄에 뉴욕의 '카네기 홀' 에서 공연을 할때엔 나의 한복을 만들어 왔다. 고운 베옷으로 흰적삼에 진달래빛 치마를 해왔다, 작년 용고 60주년 뉴욕 모임때 입고 갔었다. 내가본 인순이는 철학자요 인격자 였다.
당시 나는 미국 전역에 흩어진 국제결혼한 20만의 한인 여성들의 모임이 9년간을 이어오다가, '99년에 10주년 기념행사를 뉴욕에서 하기로 결정되어 눈.코 뜰새 없이 바삐돌아갈때 수도여고 동문회에서 이흥윤8 아우의 연락을 받았다. 이번 동문회를 뉴욕에서 하자고... 나는 도저히 안되겠다 하여 워싱톤에서 훌륭히 잘 치러줘서 고마웠다. 마치고 뉴욕관광을 하고 하루저녁을 아주 멋있게 보냈음이 뉴욕 동문들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사실 무지개의 집에서 내가 있는것이 보통 힘든것은 아니었다. 나의 몸이 약하기 때문이었다. 김치도 나의 지휘 아래 담아지고, 된장도... 무엇보다 제일 싫었던것은, 어느 후원자에게 편지를 쓰는 일이다. 특별히 써야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주겠다는 편지도 어려운데, 도와 달라는 편지는 정말 힘들었다. 나는 견디다 못해 집으로 와서 쉬고 있을때, 무지개의 집 10주년이 되었다. 맨해튼 모금만찬 장에는 300명의 내 외국인이 모인 자리에서 Letty M Russell 박사 (예일 신학대학원 교수) 가 'The Vision Award' 를 받고, 내가'The Life Sharing Award' 를 받았다. 더불어 산다는 내용이 나는 너무 부끄럽다. 나는 수상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유명하신 레티 럿셀 박사님과 나란히 상을 받는것은, 내 생애 최고의 영광 입니다.제가 무지개의 집에서 일을 잘하지 못했으나, 그간 2년반 가량을 집에서 쉬고 있었는데 나를 다시 돌아와 자매들과 함께 있어주기를 원해서 주는 상으로 속된 말로 쥐약 입니다. 어찌 할까 많은 생각을 하다가, 남은 여생을 자매들을 위해서 가기로 결정 했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 하면서..."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을 붙드심이로다" 시37편 23-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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