訪吉祥寺, 拜子夜搭
길상사를 찾아가 자야탑에 참배하다
當年舞館變祥寺
檀越身心寓一經
子夜吳歌粧女恨
鳳求凰曲夕風聽
당년에 춤추고 노래하던 곳
오늘엔 길상사로 변하였습니다
단월님은 늘그막에 몸과 마음을
아미타경에 의지하셨다지요
한 밤중에 부르는 오녀(吳女)의 노래
화장하고 기다리는 여인네의 한이랍니다
사마상여의 〈봉구황곡〉이
저녁 바람 타고 들려오는 듯합니다
〔해설〕
지난 10월 30일, 명탄서원에서 주관한 문학기행을 다녀왔다. 서울 성균관과 길상사를 둘러보는 코스였다. 나의 마음은 온통 길상사에 가 있었다. 1990년대 후반, 대원각이라는 고급 요정의 주인 김영한(金英韓: 1916∼1999) 여사가 시가 1천억 원대의 이 요정을 시사(施捨)하여 오늘의 길상사가 있게 한 전설적 이야기들이 이 절에 전하기 때문이다.
시인 백석(白石: 1912∼1996)과 김 여사의 숭고한 사랑 이야기는 세상에 널리 전한다. 50년 이상을 수절하다시피 살면서 한 사람만을 기다린 김 여사의 일생은 결코 강요된 열부(烈婦)의 삶이 아니었다. 기생과 부잣집 도련님은 처음부터 잘 맺어질 인연이 아니었지만, 김 여사는 83년의 생애를 백 시인만을 생각하며 살았다. 백석이 이태백의 〈자야오가(子夜吳歌)〉에서 ‘자야’ 두 글자를 따서 그녀의 별호를 삼아 마침내 ‘김자야’가 되었다. 이것은 자야 여사의 일생을 미리 내다본 것인지로 모른다. 결과가 그렇게 되었다. 자야 여사는 “1천억 원 정도는 백석의 시 한 줄 값만도 못하다”라고 하였다 한다. 백석과 백석의 시를 사랑하는 정도를 짐작하게 한다.
자야 여사와 백석의 사랑 이야기를 되새기면서, 갑자기 중국 전한 시기의 대문인 사마상여(司馬相如)와 그 부인 탁문군(卓文君)의 사랑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 부부는 술장사하면서도 문학 활동을 계속하였다. 일생토록 아기자기한 삶을 살았다. 사마상여가 탁문군을 보고 첫눈에 반하여 지어 보냈다는 시 〈봉구황곡〉과 백석이 자야에게 보냈다는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통하는 바가 있다. 무엇보다도 세레나데의 성격을 지녔다는 데서 그렇다. 수컷인 봉이 암컷인 황에게 보내는 세레나데....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렌다.
어제까지 노래 부르고 춤추던 가당(歌堂) 무관(舞館)이 하루아침에 금종(金鐘) 옥경(玉磬) 울리는 사찰로 변하였다. 그야말로 ‘인연’ 두 글자가 아니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다. 인생을 살 만큼 산 노경(老境)에 인생무상을 절감하며, 또 서방정토에서 백석과 만날 것을 기약하며, 통 큰 기부를 한 시주자(檀越)의 일생을 시 한 수로 기릴 수밖에 없는 내 재주가 안타깝다. 미래에는 꼭 부부로 만나 등전화심(燈前話心)의 즐거움 나누기를 기원한다. (2023. 11. 3, 하평성 靑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