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다음의 베스트 셀러인 천로역정의 저자가 존 번연(John Bunyan)이라고 하는데요. 조엘 R. 비키가 쓴 『설교에 관하여』(송동민 역)에는 번연이 한국어로 버니언이라고 표기돼 있습니다. 원어민이 Bunyan을 읽는 것을 들어보니 번연보다는 버니언에 가깝기는 하네요. 조엘 R. 비키 목사님은 번연이 나온 대학과 교재를 지하 감옥과 성경이라고 표현했는데, 너무나 멋진 표현입니다. 번연의 사람됨과 설교의 특징을 구분선 아래에서 한번 읽어 보시고, 번연의 책들도 많이 읽어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버니언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겪는 승리와 패배를 모두 경험했다. 그의 영혼이 죄의 무게에 깊이 눌려 있던 때도 있었지만, 동시에 그는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를 깊이 체험했다. 이런 영적인 여정을 거친 덕분에 버니언은 죄인과 성도들이 제각기 처한 상황 가운데로 다가갈 수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유명한 청교도 설교자에게서 많은 점을 배울 수 있다. 현재 미국에서는 설교단이 재담가와 이야기꾼, 대중 심리학자들을 위한 무대가 되면서 교회가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 베드퍼드의 땜장이 출신 설교자는 영적인 나태와 무감각의 시대에도 성령께서 강력히 역사하실 수 있음을 보여주는 놀라운 기념비로 남아 있다. 하나님이 세상의 약하고 어리석은 것들을 들어 쓰셔서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모습을 볼 때, 우리는 참으로 경탄하게 된다. 버니언이 나온 대학은 지하 감옥이었으며, 그가 공부한 책은 성경이었다. 버니언은 에베소서 6장의 갑옷을 갖춰 입고 어둠의 군주와 맞서 싸우기 위해 힘 있게 나아갔다.
순전히 인간적이고 자연적인 수준에서 볼 때에도, 버니언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비범한 능력이 있었다. 당시 잉글랜드에는 수많은 땜장이가 있었으며, 그 가운데는 물론 매우 경건한 그리스도인들도 존재했다. 하지만 버니언처럼 뛰어난 설교자는 오직 그 하나뿐이었다. 버니언의 언어적인 재능과 상상력, 그리고 독학을 통해 거둔 놀라운 성취는 하나님의 섭리적인 손길이 그와 함께하셨음을 보여준다. 곧 그는 하나님의 손길을 통해 평균적인 설교자의 수준보다 훨씬 더 풍성한 능력을 소유하게 되었으며, 이를 통해 죄인과 성도들의 마음과 생각에 효과적으로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이다. 설교자로서 그가 거둔 성공과 열매가 반드시 이런 은사들을 통해서만 설명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은사들이 아무 의미가 없었던 것 역시 아니다.
버니언의 예리한 설교에는 단순하면서도 다채로운 어조가 담겨 있었다. 그리하여 그의 설교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호소력 있는 것이 되었다. 이와 동시에 그의 말에는 강력한 답변이 담겨 있어서, 가장 훌륭한 웅변가까지도 머쓱하게 만들 정도였다. 버니언은 복음으로 사람들을 낚는 어부였으며, 탁월한 체험적인 설교자였다. 그는 그리스도께 나아오도록 죄인들을 따스하게 초청했으며,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체험해야 할 일들과 영적인 순례의 여정에서 실제로 체험하게 되는 일들을 힘 있게 선포했다. 여기서 우리는 그의 설교가 지녔던 세 요소 곧 청중의 참여를 유도하고 간청하며, 그리스도를 높이는 특성들을 살펴봤는데, 이는 버니언이 사람들의 마음에 호소하기 위해 사용했던 강력한 무기의 일부일 뿐이다. 버니언의 선교에 그처럼 강력한 하늘의 힘이 담겨 있었던 이유는 부분적으로 이런 특성들에 있었으며, 성령님의 복 주심을 통해 그의 설교는 큰 열매를 거두었다.
버니언의 설교가 낳은 풍성한 결실에 관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있다. 당시 그의 사역을 통해 사람들의 놀라운 회심이 일어났던 것이다. 아넛은 그중 한 사례를 소개한다.
"한번은 버니언이 어느 마을의 교회에서 설교할 예정이었다. 당시 술에 취한 상태였던 케임브리지 대학의 한 교수는 '그 땜장이가 지껄이는 말을 들으러 가보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학자는 버니언을 실컷 비웃어 주려고 교회당에 앉다가 그의 설교를 끝까지 앉아서 듣게 되었다. 그는 결국 회심하게 되었고, 마침내 그 자신도 설교자가 되었던 것이다." |
물론 버니언은 예외적인 은사를 지닌 설교자였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가 의존하고 따랐던 성령님은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교회 안에서 역사하고 계신다. 버니언의 삶과 사역은 우리가 전하는 말씀의 설교가 하나님의 손에 붙잡힐 때 강력한 무기로 쓰일 수 있음을 일깨워 준다. 존 해리스(John Harris)에 따르면, 버니언이 보기에 우리의 싸움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려는 데 있었다. 이는 그들의 마음이 대적에게 사로잡혀 있으며, 그 결과로 그들의 생각 역시 어두움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암담한 사람들의 상태를 절실히 느꼈기에, 버니언은 자신의 모든 무기를 동원해서 그 요새를 깨부수고 사람들의 깊은 마음속으로 뚫고 들어가려 했던 것이다. 버니언은 사람들의 마음을 향해 설교했다. 찰스 H. 스펄전의 말처럼 이 차가운 영혼을 따스하게 덥히고 오류의 숲을 다 태워버릴 불길을 일으키기 원한다면, 우리의 등 뒤에는 지옥의 불을, 우리의 눈앞에는 하늘의 영광을 두고 설교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방편을 동원해서 청중들로 하여금 그들의 영혼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에 동참하도록 초청하고, 그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함으로써 왕이신 예수님을 영원히 높이게 되기를 간곡히 권면해야 한다. 나는 성령께서 우리에게도 버니언 같은 설교자를 보내 주시기를 바란다. 그들은 곧 자유롭고 주권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다스림을 받아 그분의 진리로 환히 빛나는 자들이며, 그리스도를 위해 어리석은 자가 되고 감옥에 갇히며 사망의 권세에 맞서는 일들도 기꺼이 감수하는 자들이다.
조엘 R. 비키, 『설교에 관하여』, pp.357~360.
첫댓글 "하나님이 세상의 약하고 어리석은 것들을 들어 쓰셔서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모습을 볼 때, 우리는 참으로 경탄하게 된다." -->
//고전1:19-21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6-29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위 말씀과 번연의 삶에 유사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노베 공감합니다.
"버니언의 언어적인 재능과 상상력, 그리고 독학을 통해 거둔 놀라운 성취는 하나님의 섭리적인 손길이 그와 함께하셨음을 보여준다."-->
//롬8:26-28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아멘! 아멘!
"설교자로서 그가 거둔 성공과 열매가 반드시 이런 은사들을 통해서만 설명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은사들이 아무 의미가 없었던 것 역시 아니다. ... 버니언의 설교에 그처럼 강력한 하늘의 힘이 담겨 있었던 이유는 부분적으로 이런 특성들에 있었으며, 성령님의 복 주심을 통해 그의 설교는 큰 열매를 거두었다."
//12:3-8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좋은 내용입니다. 신비주의자와 이단들은 고전12장에만 은사가 나오는 것으로 주장하는데, 성경을 잘 읽어보면 은사는 위 말씀 포함 여러 군데에 나오는 것 같습니다.
예- 로마서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오웬이 작성한 번연을 석방시켜 달라는 탄원서를 접수한 국왕 찰스2세는 최고의 신학자 오웬이 힘없는 침례교회의 설교자 번연을 옹호하고 나서는 것에 의아해 하면서 질문을 하였다. “유명한 신학자가 왜 교육받지 못한 땜장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느냐?” 이때 오웬은 답변하였다. : “저는 그 땜장이(번연)가 지닌 만큼의 설교재능을 지닐 수 없습니다. 전하, 만약 제가 그 땜장이의 설교하는 능력을 가질 수만 있다면 저는 기꺼이 제 모든 학식을 포기할 것입니다.”(앤드류 톰슨,『청교도의 황태자 존 오웬』, 지평서원, pp.153~155.)
https://cafe.daum.net/1107/YY6J/5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존 오웬이 번연을 칭찬하고 도왔다는 것은 참 훈훈한 이야기입니다.
번연이 쓴 글이 아니라고 모함을 하고 매도했는데 경건하고 선량한 번연도 그런 불의에 대해서는 호락호락하게 당할 수 없었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쓴 글을 뺏길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반박하고 자신의 저작권을 주장하고자 애를 썼다.
https://cafe.daum.net/1107/Y4UZ/13
아래 말씀(행 4장)과 같은 편견과 오해가 작용했을 것 같습니다.
"그의 말에는 강력한 답변이 담겨 있어서, 가장 훌륭한 웅변가까지도 머쓱하게 만들 정도였다. 버니언은 복음으로 사람들을 남는 어부였으며, 탁월한 체험적인 설교자였다."-->
//행4:12-14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
베드로도 사람을 낚는 어부였는데요. 멋집니다^^
"에베소서 6장의 갑옷"-->
개역개정)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공동번역) 속임수를 쓰는 악마에 대항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주시는 무기로 완전무장을 하십시오.
새번역) 악마의 간계에 맞설 수 있도록, 하나님이 주시는 온몸을 덮는 갑옷을 입으십시오.
현대인의성경) 마귀의 계략에 맞설 수 있도록 하나님의 무기로 완전 무장하십시오.
갑옷도 좋지만 완전무장이 더 완젹한 호신구 같습니다^^
번연에게는 주님이 주신 은사가 있었고, 당사자 본인의 신실한 믿음도 합력하여 선을 이룬 것 같습니다. 성도의 귀감이 되는 아름다운 삶입니다.
존 번연,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신앙 여정을 걸었습니다. "그가 다닌 대학은 감옥이며, 교재는 성경이었다." 이보다 더 멋진 말이 또 있을까요?
번연이 오랜 기간 감옥에서 지낸 것이 오히려 그를 신앙적으로 더 키워주고 위대한 설교자가 되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땜장이로 생활 전선에 있었다면 감옥에서 만큼의 집중과 몰입을 하기가 어려웠겠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네, 매우 공감합니다.
불학무식하지만 과대망상에 빠진 이단교주나 권위주의 목사들이 존 번연의 삶을 보고 비교 성찰하며 회개하면 좋겠는데, 그건 희소한 기적이겠지요.
마음이 웅장해지는 좋은 글입니다!
맞아요. 하나님의 웅장한 섭리가 느껴집니다^^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