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버린 사랑
사랑의 뼈와 내장까지 다 들여다본 이후의 사랑,
불가능한 것임을 알면서도 사랑으로 뛰어드는 인간의 욕망에 깊이
"신성마저 발가벗기려는 태생적 죄인".
어떤 말은 하고 나면 입안이 헐어버린 것 같은데도
말을 잃는 병이 아니라 말을 앓는 꿈에 시달리는 이이체의
50편의 독어(獨語)가 펼쳐진다.
목차
책을 펼쳐보며
시인의 말
; 이 독백을 외롭지 않게 해줘서 고맙다.
제1부
몸의 애인 / 언어의 정원 / 타오르는 노래 / 몸살 / 독어(獨語) /שבולת/
인간이 버린 사랑 /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곡 / 아가(雅歌) /
우상의 피조물 / 박물지(博物誌) / 기이한 잠의 긴 밤 / 미친 세계 /
푸른 손의 처녀들 / 회음의 부적 / 성스러운 폐허 / 괴물
제2부
침묵 동화 / 폭풍이 끝난 히스클리프 / 바다 무덤 / 트럼펫의 슬픈 발라드 /
당신의 심장을 나에게 / 고통의 타인 / 무제 / 부제 / 시간의 피 / 그을린 슬픔 /
병든 손가락 / 피 흘리며 태어나는 / 모성(母城) / 연옥의 노래 / 누설(漏泄) /
유배된 겨울 / 미래로부터의 고아 / 신의 희작(戱作) / Aleph / Pharmakon /
물-집 / 살해된 죽음 / 기형도 / 살아남은 애인들을 위한 이별 노래
제3부
물의 누드 / 미안의 피안 / 편애, 사랑에 치우치다 / 서스펜스 히스테리아 /
인간은 서로에게 신을 바친다 / 오래된 눈물 / 돌아올 수 없는 윤회 / 가짜 동화 /
사라 / 無花果 / 검은 여름 열대병 / 악의 죄 / 시간을 (잃어)버린 시계 / 돌 / 백경 /
이물 / 환절기 / 침묵의 운율 / 비인칭(悲人稱) / 어둠론(論) / 후반기의 연애 /
악마식물 / 존재의 놀이 / 자야(子夜)
제4부
바벨 / 향 / 향 / 야수 / 실험실을 떠나며
해설
진심의 괴물, 혹은 말의 누드 강정
책 속으로
기억에 남는 Page
축축하지만 메마른,
축축하지만 메마른, 비 오는
북국의 겨울에 한 입 머금은 심장
그 더운 입술이 그리워서
당신은 내 앞에서 울었고 나는 울지 않았지
편애, 사랑에 치우치다 中
이이체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사랑의 실체를 집요하게 탐색해나간다.
그리하여 결국 마주하는 결론은 ‘없음의 있음’.
시인에게 사랑의 흔적은 어느 한편의 사랑이 깊어질수록
그처럼 더 깊이 사랑할 수는 없을 거라는 환멸과 자책의 얼룩,
그리고 그 절름발이 사랑을 드러내고야 마는 가혹한 진심으로 남아 있다.
시인은 없는 사랑을 있다고 믿는 “미신”이야말로 진짜 사랑임을 깨닫는다.
이이체의 시들을 따라가다 보면 자신의 감정에 혼자 사무쳐 미치고,
다시 만질 수 없는 살갗과 다시 들을 수 없는 목소리에 홀로 중독된 화자가
곤두박질치는 어떤 “심연”을, 그 무모함과 계속되는 고통을 자꾸만 들여다보게 된다.
사랑이 상상하는 사랑의 바깥
심장은 몸이 아니라 몸의 울림이다
내가 아프면
당신도 아파하고 있을 거라고 믿겠다.
그 아픔에 순교하는 심장이 사랑이다.
당신의 심장을 나에게 中
작가가 자신의 시에서 다양한 몽상의 형식으로 변주해온
“경험한 적 없는 기억으로서의 본래적 실체에 대한 그리움”은
사랑에 대입되었을 때 가장 절실하게 구체화된다.
과거의 연인과 재회하고 묵은 상처를 꺼내며 깨닫는 어떤 사랑.
한때 서로에게 진심을 모조리 내어주고 마치 영혼이 결합된 듯 나누었던 애틋한 사랑보다
더 진짜 사랑은, 헤어지고 나서도 여전히 지속되는 “아픔에 순교하는 심장”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결핍과 모순 속에서 상처받던 모든 시간들을
수용하고 사랑하게 되는, 사랑 바깥의 사랑을 발견한다.
기필코 쓰러지겠다는 신념
기필코 쓰러지겠다는 신념
살아남는다는 것은 죽음에 실패한다는 것이다
나는 번역될 수 없는 사랑의 한 구절이다
어느 부족의 여자들은 뺨 위에
눈물이 흐르는 길을 화장하는 관습이 있다
슬프므로 나는 기둥이 되지 않겠다
기필코 쓰러지겠다
연옥의 노래 中
그의 많은 시가 ‘이별’을 다루고 있지만,
이이체 시인의 독법은 사랑을 잃고 난 뒤의 상실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의 시에는 지독할 만큼 집요하게 실체를 파고드는 시인의 자세,
스스로를 무너뜨리면서까지 사랑을 가식 없이 인정하고 받아들이려는 의지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오로지 사랑 자체에만 몰두해 사랑의 비열하고 모순된 알몸과 마주치고,
그것으로서 도저히 씌어지지도 전달될 수도 없는 사랑의 말들을 ‘투명한 혼란’ 속으로
몰아가고 있음을 지적한다.
치장하지 않은 “투명”을 들여다보다가 미쳐버린 자의 언어,
그 괴물의 자기고백이 오늘도 절절하다.
[출처] 이이체 "인간이 버린 사랑"|작성자 Nie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