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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말하는 (저 별과 달을)은 물론 7080 시절 잘 나갔던 어니언스의 노래이다, 나는 이 노래만 들으면 생각나는 사람이있다,
76년 그해 여름은 내가 많은 경험을 하였다, 입대영장 받아 놓고 매일 친구들과 어울려 술과 다방을 전전했는데,
그날도 한 놈이 먼저 입대해 왜관까지 따라갔다가 한 잔하고 늦게 돌아오다, 동네 대로변에 새로 생긴 간판집 아저씨가 보도에 앉아 밤 늦게까지 일하고 있다, 나이는 40대 중반쯤이고 왜소한 체격에 깡마른 좀 신경질적인 인상을 풍겼다, 난 별 할일도 없어 옆에서서 간판 만드는걸 구경하였다,
한참후 작업이 끝나자. 그는 간판을 가게로 옮기려니 무거워 낑낑댄다, 같이 들어서 안으로 옮겼다,사장은
" 아이구 감사합니다 이 동내 사시나요?"
" 예 바로 요 뒷 골목에요, 밤 늦도록 일하시니 일 거리가 많은가 보죠?"
" 하하하 정신이 없네요, 두 달후 전국체전이라 구청에서 불량 간판을 정비하라고 닥달을 해대니 이렇게 몰리는겁니다"
" 아- 그렇군요, 그럼 제가 거들어 드릴까요?" 사장은 나를 쳐다보더니
" 이런건 아무나 하는게 아니요"
" 제가 영장을 받았는데 아직 두달 남았어요 군에 가기전 아저씨도 거들고 일도 배우고요" 그는 머뭇거리며
" 이게 보기는 예술같지만 순 노가다인데 할 수 있겠어요?"
" 시켜만 주십시요 하겠습니다" 그 때 사장은 속으로 저 놈이 며칠이나 갈까? 반신반의 하였다는데
" 좋아 우리함 께 일해 봅시다" 하며 손을 내민다
" 감사합니다"
" 임군이라 했나?"
" 예! 그렇게 불러 주세요" 다음날 아침 8시에 출근하니 문이 잠겨있다, 옆 안경집에 가서 비를 가져와 그 부근을 깨끗하게 쓸고나니 사장님이 오셨다, 이웃가게 아저씨들이
" 자네 여기 취직했냐?"
" 예! 오늘부터 일합니다" 지하 다방의 김마담도 웃더니 모닝커피를 한잔 올려 보냈다, 아저씨는 작업을 설명한다, 아크릴판을 들고
" 내가 도안해서 자네에게 넘겨주면 직선은 이 칼로 자르고 곡선은 실톱으로 오려내면 되는거야" 하며 시범을 보이곤
" 해봐!" 보기는 쉬워도 삐뚤삐뚤 엉망이다, 몇번의 연습을 거치니 서툴지만 제대로 할 수 있었다,
정말 바쁘다 밀린 간판이 5개인데 글씨는 연방나오지, 이거원 담배한대 피울새도 없다, 사장은 썬팅(유리에 비닐을 붙혀 글자를 새김) 재료를 사러갔다, 글자를 모두 자르고. 대충 청소를 한후 작은 방에 걸터 앉아 한댈 피워물면서 전축을 켰다.
( 어두운 밤~구름 위에 저 달이 뜨면~ 괜시리 날 찾아와~ 울리고 가네~ ~하늘 나라 저멀리서 나를오라 반짝이네~) 어니언스의
(저 별과 달을)은 언제 들어도 좋다, 문득 방바닥에 놓여있는 스케치북을 무심코 펼쳐보니 (와!) 순간 입이 딱! 벌어진다.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문희, 신성일, 오지명, 라훈아, 이미자 등등 그리고 뒤로는 모르는 여자의 얼굴과 여자아이의 얼굴이 연 이어져
나오는데...
그림들은 마치 살아서 튀어 나올듯 생동감있게 그려졌다, (아-니! 이 양반은 보통 간판쟁이가 아니야, 미술을 전공한 분이야...)
몇번을 뒤척이며 본다, 그것은 공을 들여 그린게 아니고, 필 가는데로 그냥 쓱쓱 스케치하듯 그렸지만 볼수록 잘그렸다, (삐거득!)
사장님이 오시더니
" 임군 음악을 좋아하는 구나"
" 끌까요?"
" 아냐 그냥 둬! 자- 이젠 글자에 입체를 넣어야지" 하며 글자 뒷면에 백색 아크릴 폭2cm 되는걸 세우고 접착제(클로로포름)을
주사하고 버너에 달구어진 송곳으로 군데군데 지져준다,
" 예 저도 할 수 있겠어요!"
" 쉽지? 불조심하고 지질 때 연기를 마시지마!" 정말 지질 때의 연기는 고약했다, 아크릴과 클로로포름이 함께 타는 냄새와 연기는
눈이 아리고 머리가 아팠다, 입체가 완성되면 비닐레쟈를 댄 간판에 붙이면 끝이다, 그날 늦게 까지 간판을 모두 끝내고 청소를
하는데
" 임군 한잔하자! 회는 어때?"
" 저야 아무거나 좋아요, 시간이 늦었는데 사모님이 기다리시잖아요?" 그는 피식 웃으며
" 집에 가봐야 혼자야!" 하며 전화로 주문했다,
" 힘들지? 내일 오전에는 저 간판을 모두 달아주고, 오후에는 동사무소 옆 인쇄소,양장점 썬팅을 한다" 며 유리에 붙이는 금박지와
은박지를 펴본다,
" 임군 입대가 두달 남았나?"
" 예!"
" 이 일도 배워두면 살아가며 많은 도움이 될거야"
" 그럼요 군대가도 많이 써 먹겠죠"
" 있는 동안 많이 배우게" 속으로 나는 스케치북의 그림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으나 참았다,
회가 도착하자 우린 한 잔씩 하면서
" 사장님댁은 어디세요?"
" 부산에 살았어, 바람따라 낙엽 처럼 대구로 왔다네"
" 지금 말이예요"
" 목욕탕 바로 뒷집에 살아"
" 가깝네요!" 난 조심스럽게
" 아까... 스케치북을 봤는데... 보통 그림이 아니던데요?" 그는 거푸 두 잔을 마시더니
" 치- 그게 무슨 그림이야 황칠해논기지, 내가 옛날에 극장간판을 그렸지, 미술을 전공하고 그냥 그 길로 풀렸다네 한 때는 좋은
시절이였지..." 난 속으로 그러면 그렇지!
" 자제분은 따님 하나인가요?" 그는 잠시 비통한 표정을 짓더니
" 자- 술이나 마시게" 원래 말이 없고, 쎈치멘탈한 줄은 알았지만 직감적으로
" 뭔가 가슴아픈 일이 있구나..." 하고 입을 다물었다,
이튿날은 아침부터 분주하다 간판을 다는 작업을 하는데, 빌딩은 드릴로 드르르륵 구멍을 뚫고 콘크리트 못을 박으면 되는데,
기와집 위에 다는것은 엄청 힘들었다, 낡은 기와가 깨지지 않게 살금살금 온갖 전깃줄, 전화선을 피해가며 올라가 간판을 세우고,
지지목을 대주고 철사를 대각선으로 땡겨매어 고정시키는게 어려웠다, 오후 2시가 넘어서 작업이 끝났다, 짜장면 한그릇으로 때우고 바로 썬팅 작업을 나갔다, 난 구경하면서 보조를 하는데 큰 유리판에 아교 녹인물을 바르고 금박지를 붙인후 헤라(찰고무판)로
빡빡 문질러 물기를 빼낸후 글자를 거꾸로 새기는데 이 양반이 도사다,
글씨를 새길려면 연필로 본을 뜬다든지? 해야 되는데 그것도 정면도 아니고 거꾸로 새기는 글자를 그냥 눈 중으로 자를 대고 칼로
쓱-쓱 긋고 떼어내면 글자가 나온다, 나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맞아! 내가 배워야 할 것이 바로 이거야!) 하곤 틈나는대로 연습장에 거꾸로 글자를 새기는 연습을 했다, 사장님이 보더니
" 어 제법인데?" 한 디 일러주는데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
" ㅊ 꼭따리는 밖으로 뺀다, ㄹ 은 폭을 조금 넓게 잡아 주라, ㅅ 은 공간이 많으므로 두껍게 하라" 이제 썬팅은 나도 할 수 있을것
같다, 집에서 유리에 해봐도 잘된다, 계속 일이 바쁘니 친구들을 만날새가 없었다, 그러니 같이 영장받은 두 놈이 가게로 놀러온다,
멍청하게 앉아 있느니 일을 시킨다, 재료품 사와라, 이것 갔다 주고 돈받아 와라, 녀석들은 잘한다, 사장님은 퇴근하면서
" 모두들 수고 했어요)하며 막걸리 값 몇 푼을 놓고 간다,
그 후로 이놈들이 집구석에서 뒤집어 자다가, 해거름 해지면 가게로 나타난다.하기야 중앙통 가서 빌빌 대느니, 가게에 오면 잡일도 거들고 공짜술도 얻어먹을 수 있으니,얼마나 좋은가! 이 곳은 우리의 야간 아지트가 되었다, 일요일은 사장님이 성당을 간다며 쉬란다, 집에 있기도, 딱히 갈데도 없어 가게로 나가는데, 골목길에서 부서진 머리핀을 하나 주웠다, 윗 부분은 밟혀 깨어졌지만 바닥은 깨끗하다, 쥐고 살펴보니 긴 머리카락도 한올 끼여있다, (이게 왜? 여기 떨어졌을까? 이래도 한 때는 어느 여인의 머리위에서 한껏 멋을 부리며 반짝였을텐데... 우연히 떨어졌을까? 아니야 아픈 사랑의 정표를 잊어버리려고 던져버렸나? ) 생각하며 가게로 왔다,
( 맞아! 저걸로 내가 예쁘게 만들어 보자!) 난 즉시 노란 아크릴 조각에 나비모양을 그리고 잘랐다, 그리곤 날개에 빨간 동그라미를 붙혔다, 내가 봐도 잘 되었다,자른 곳과 붙인 부분을 광내려고 안경집으로가
" 아저씨 구라인더 좀 쓸께요"
" 응-" 요리조리 깨끗하게 광을 내고 살피는데 순간
" 오빠! 이거 내꺼야!" 하며 그집 딸아이가 낚아 채어 도망갔다,
" 야! 이리내! 너 잡히면 죽어!" 하면서 허탈하게 바라보니 아저씨가
" 예쁘게 만들었네 내가 못쓰는 머리핀 모아줄테니 걱정마" 한참 후 아저씨가 낡고 틀어진걸 5개나 가지고 왔다, 부서지고 반짝이 알이 빠진 것을 내가 물개,고양이,별,장미,사탕모양으로 만드는데, 그래도 한번 만들어 봤다고, 훨씬 잘 만들었다,
또 안경집에 가져가 갈고 있는데 아주머니가 보더니
" 야! 이거는 독창적이야 한개만 주라 응!" 또 한개 뺏기고, 여동생 한개 주고, 3개는 애인에게 주었다(딸이셋임) 전부들 예쁘다고
난리였는데, 정말로는 예쁜게 아니라, 당시 시장에서 흔히 볼수있는게 아닌 독특하면서 심플한 느낌이였던 것 같다,
그날 오후 5시쯤 되었나? 멀리서 썬팅 주문이 들어왔다, 나는 속으로 (잘 되었다! 내가 해보는 거야) 재료를 챙겨서 따라나섰다,
한 번도 실전 경험이 없었지만 자신이 있었다, 큰 유리에 (00조각사) 하고 밑에 전화번호만 넣으면 된다, 큰유리 한장이면 5,000원을 받았는데, 기분좋게 4,500원 해주었다, 노련한 기술자 처럼 행동하지만, 막상 해보니 유리에서 칼이 미끌어지고, 기포가 생기고,
땀이난다, 또한 걱정도 된다, (에라이 모르겠다! 하는데까지 하는거야! 조지면 내일 아침 사장님이 하시겠지!) 이렇게 마음먹으니,
한결 편하고 손놀림이 빨라진다, 30분이면 할것을 2시간이나 걸려 마쳤다, 난생 처음 내손 내 기술로 4,500원 받아 쥐니 날아갈 것
같은 이 기분! 입에선 콧노래가 절로 나오고, 부지런히 페달을 밟는다, 길가의 가로수 잎들도 손뼉을 치는것 같다,
가게에 도착하니 사장님이 나와서 기다리고 있네? 그는
" 임군 어디 갔었어? 빨리 집에 전화해 줘!" 난 돈을 꺼내 드리며
" 제가 썬팅을 한건 하고 왔어요" 그는 깜짝 놀라며
" 야- 너 배짱 한번 좋다! 어디야 당장 가보자!" 자기가 더 흥분한다,
" 그집도 문 닫았어요 내일 가보세요" 사장은 다음날 아침 그 가게를 다녀 오더니
" 어이 임군! 아니 이제부턴 임기사야! 좋았어, 자넨 프로야 프로! 와! 그걸 일주일만에 해치우다니...역시 자넨 미적감각도 있어"
" 아이쿠 별말씀을요"
" 아니야 그 정도면 충분해! 이제 분업하자"
" 분업이라뇨?"
" 내근인 가게는 내가 맡고, 외근인 썬팅은 자네가 맡고 어떤가?"
" 좋습니다!" 그 뒤로 선팅주문은 내가 모두 처리했다, 서울서 친한 친구가 입대전야 파티하는데 가는 길에 일찍 올라가 명동 일대를 다니며 멋진 간판과 썬팅을 사진으로 찍어와, 이 동네 실정에 맞게 변형시켜 고급집 (양복,양장,제화,미장원)에 해주므로 주문이 쇄도하기도 했다,
한달 보름은 바쁘게 일하면서 아저씨가 술을 먹지 않았는데, 전국체전 준비가 끝나니 일거리가 팍 줄어 들었다, 그 때부터 그는 대낮에도 술을 마시곤 방에 쳐박혀 (저별과 달을)을 켜놓고 흥얼댄다, 계속 그 노래만 듣고있다, 냉수를 한잔 드리려 가보니, 그림을
그리면서 울고있다,
" 사장님 물 한잔 드시죠" 하면서 힐끗보니, 그 여인의 얼굴이다, 모른척
" 무얼 그리세요?"
" 오륙도 앞바다 귀신이다"
" 귀신이 아니고 예쁜 여잔데요?
" 예쁘면 뭘해 저세상 갔는데..." 갑자기 흐느낀다
" 아이쿠 여보야! 내 내일 당신한테 갈꺼야 기다려줘~ 흐흐흑!" 레코드판이 편지로 넘어간다, 그는 다시 저별과 달을로 옮기며
" 이노래는 와이프가 제일 좋아했지, 우리 와이프는 알아주는 음치였어 첫음부터 헤메는거야, 내가 일주일을 함께 부르며 가르쳤지"
난 침만 삼키며 듣는다.
" 그런데 작년에 갑자기 자궁암으로 죽었어, 마른 하늘에 날 벼락이라더니, 말짱하던 사람이 갑자기 아프다해서 병원에 갔지, 벌써
암세포가 온 몸에 전이되어 버린거야 어떻게 손쓸 방도도 없었다네 운명으로 돌릴수 밖에...내일이 그 일주기야..." 일요일 아침 부산으로 내려갔다, 월요일, 화요일이 되어도 연락이 없고, 연락할 방법도 없었다,
(이 양반이! 와이프를 못잊어 부산 앞바다에 풍덩해버렸나?) 기다리다 지쳐 성질도 나고 해서 저별과 달을 레코드판을 꺼내 부셔버리고, 가게에 편지한장을 남기고 수요일에 입대를 했다, 그후 친구로 부터 가게가 문을 안 닫았다는 편지를 받았다, 6개월후 휴가를
나와 가게에 가보니 아저씨가 열심히 일하고 있다, 예전과 많이 변했다, 살도 제법 붙었고, 표정도 엄청 밝아져 있었다,
" 충성!"
" 아-니 이게 누구야 휴가 왔구나? 고생 많지 참 여보 인사하지 전에 같이 일하던 분이야" 나도
" 안녕하세요!" 하며 여자를 보는 순간! 내 눈을 의심한다 (아-니! 이 여자가 바로 그림속의 그 여자잖아!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하며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는
" 우리 한 잔해야지" 하며 이웃 횟집으로 갔다, 횟집 주인도
" 와- 이게 누구야! 벌써 일등병 달았네"
" 예 휴가 나왔습니다" 우린 안주없이 건배하며
" 그래 군생활은 할만한가?"
" 예! 보시다 시피"
" 햐 우리 땐 배가 고파서 고생이 많았었지 참! 자네 입대할 때 못가봐서 미안하네"
" 아이고 사장님도 그 때를 생각하면...입대는 해야는데 오시진 않지! 연락할데도 없지, 마 부산 앞바다에 풍덩하신 줄 알았지예"
그는 한대를 피워 물고 지그시 눈을 감으며
" 그 때는 나도 죽을려고 마음을 먹었다네, 술이 취해 몽롱한 상태에서 다대포 바위 위에 누워 하늘을 보니 와이프가 날 오라고
반짝 반짝 손짖을 하는거야, 그래 이대로 잠들다 죽어버리는거야" 하곤 잠이 들었는데, 바위 밑에서 신음소리가 나기에 내려가보니, 아까 그 여자가 죽어가고 있더군, 입에서 약 냄새가 확 풍기기에 등어릴 쳐서 토하게 만들고 들쳐 업고 병원으로 달렸지 00 응급실에 넣고보니, 신원도 알수없고, 졸지에 나는 보호자 아닌 보호자가 되었다네, 약을 먹었지만 나의 응급처치로 살아난거야,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오늘이 자네가 입대하는 날인데..하며 가려니 경찰을 만나보고 가라나? 그래서 병원에 주민등록증과 전화번호를 주고 올라오니 가버렸더구나,
일주일 후 병원에서 연락이 왔는데 환자 퇴원수속을 밟으라나? 나원 기가차서 난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이고 (연고자를 찾아보세요!)해도 환자가 아무 말을 안한데요, 하루를 뭉기적거리다, 가만히 생각해보니(그 여자는 내가 죽을걸 살려준 사람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더군 그래서 다음날 부산가서 병원비를 치루고 퇴원을 시켜 병원앞의 갈비탕을 먹이며
" 자- 아가씨 이젠 아가씨 길로 가세요" 하고 헤어졌는데, 다음날 가게로 찾아와서, 내 주민등록증을 내 밀더군
" 아니 아가씨 집은 어디요? 친척들 없어요?" 가만히 있네?
" 아가씨 벙어리야?" 고개를 흔든다
" 갈곳은 있어?" 눈물만 흘린다, 갈곳이 없으면 가게 이 방이 비었으니 며칠 머물며 갈곳을 생각해보라 했지, 그러면서 하루 하루
지내다 보니 정도 들고, 오랫동안 처갓집에 있던 딸을 데리고 오니 마치 지새끼 처럼 보듬어 안고 돌봐 주는데 같이 살기로 마음
먹었지"
" 잘 하셨습니다, 사장님 축하 드립니다" 그는 겸연쩍게 웃으며
" 아직 식도 못 올리고 그냥 동거하고 있다네"
" 근데 그림에서 본 첫번째 사모님과 많이 닮았던데요?"
" 자네도그렇게 생각하나? 나도 그녀가 날 찾아왔을 때 깜짝 놀랐다네 수진이 엄마와 너무 닮아서...몸집이 조금작은 것 빼고는
말이야..." 사실 사장님의 눈은 정확하다, 극장 간판을 오래 그려서 그런지? 캐리컷하는데는 선수다, 한 번은 외근나갔다 오니
큰 글씨로 (현상금 10만원)밑에 초상화를 그렸는데 구둣방 주인의 얼굴이네? 간판을 해줬는데 돈도 안주고 가게를 넘기고 도망간
사람이다, 나는 웃으며
" 이거 신문에 내면 당장 잡히겠는데요 ㅋㅋㅋ" 이 정도로 정확하다, 그리고 딸아이가 와서
" 아빠 진지드시래요"
"아 그 따님이군요?"
" 수진아 아빠랑 같이 일 하시던 분이야 인사드려"
" 안녕하세요?"
" 그래 난 처음이지만 너를 많이 봤단다" 하곤 가게로 왔다, 난 식사를 하면서 모녀를 번갈아 훔쳐본다, 속으로 (참- 둘이 닮기도 많이 닮았다) 수진이는 내가 사간 빵을 먹고 그녀는 딸의 머리를 빗겨주며
" 수진아 체한다 천천히 먹어라"
" 맛있어 엄마도 먹어봐" 하며 입에 넣어준다, 누가 저들을 친 모녀가 아니라 하겠는가! 바라보는 사장님의 얼굴에도 잔잔한 미소가
피어난다, ( 아- 사장님이 이제는 그 길고도 긴 좌절의 터널을 완전히 벗어났구나?) 생각하니 내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다, 가게를
나오면서
" 인제 저 별과 달을은 듣지 않겠네요?" 그는 빙그레 웃으며
" 그 레코드 없어졌던데 자네가 버린거 아니야?" 기다렸다는 듯이 난
" 히히히 사장님이 다시는 듣지 못하시게 제가 부셔버렸지요! 필승!"
" 잘가~ 또 휴가오면 들려"
그리고 두번째 휴가를 나오니 가게가 없어졌다? 이웃 안경집에 물어보니 다시 부산으로 내려갔단다,
" 왜? 장사가 시원찮았나요?"
" 아니야 제법 잘 되었어 친구가 하는 사업을 거들어 준다며 급히 내려가더군"
" 부산 어딘지 아세요?"
" 글쎄? 친구가 아파트를 줬다던데 그게...동래라지 아마?"
" 연락처 남긴건 없어요?"
" 없어 다시 한번 온다더니 소식이 없어" 그 와의 인연은 여기서 끝나나 보다, 난 그에게 많이 배웠는데...
그 기술로 군대에서 온갖 상황판, 간판, 보고서등이 내 손으로 만들어지고, 여기저기 불려도 다니고 바쁜 만큼 혜택도 많이 누렸다,
아쉬운 것은 그와 좀더 오랜생활을 했다면 그림을 배울 수 있었을텐데 참 아쉽다, 지금은 부산 어느 하늘 아래 가족들과 오손도손
잘 살고 계시겠지...끝.
談思 임기지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