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방제도의 정비
조선왕조가 개창되어 통치의 주체가 바뀌었음에도 모든 제도는 고려의 그것이 그대로 답습되었다. 그러던 것이 신왕조의 왕권이 확립되어 가면서 조선왕조의 정치구조가 정비되어 갔다.
고려적인 관제에서 조선적인 것으로 이행하기 시작한 것은 정종 2년(1400) 4월 문하시랑찬성사 하륜 등의 주청에 의하여 도평의사사를 폐지하고 의정부를 새로 설치하면서부터 이다. 그러나 명실공히 조선조의 관제가 정비 확립되기 시작한 것은 태종 5년(1405)부터였다. 그 후에도 수 차례 개편이 가해져 성종대에 이르러 결실을 맺어 중앙집권체제가 완성되었다. {경국대전}은 바로 이 당시 조선의 통치체제를 반영하여 편찬된 것이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조선왕조 정치구조의 핵심은 의정부와 6조였다. 의정부는 최고의정기관으로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의 삼정승의 합의제로서 백관과 서정을 총리하였으며, 6조는 일반 서정을 담당하였다.
중앙관제의 개혁과 아울러 지방제도에 있어서도 개혁이 이루어졌다. 지방제도 역시 조선초기에는 고려의 편제를 거의 그대로 답습하였다. 그러다 태조 때에 일부 수정을 가하여 전국을 경기좌·우도, 충청도, 경상도, 강원도, 전라도, 풍해도 등 6도로 나누어 도관찰출척사(都觀察黜陟使), 관찰사(觀察使), 안렴사(按廉使)를 파견하였으며, 동북면, 북서면에는 도선무순찰사(都宣撫巡察使)를 파견하였다. 그후 태종 때에는 서북면과 동북면에 각각 평안도관찰사, 함길도관찰사를 둠으로써 조선 8도제가 성립되었다.
전라도란 명칭은 고려 현종 6년(1018)부터 불려온 명칭으로 조선시대에도 계속 그대로 사용되었다. 그 영역은 오늘날의 제주도를 포함한 전남·북과 거의 같다. 조선에 들어와 도에는 태조 원년(1392)에 안렴사가 파견되었다. 세종 29년(1447)에는 이를 도관찰출척사로 고쳤다가 세조 14년(1468)에 관찰사로 개칭했다. 이와 함께 정부에서는 도 아래의 군현제를 개편하는데 주력하였다.
도 아래의 군현제 개편은 군소 군현을 병합하는 작업과 함께 종래 향리가 다스리던 속현과 향, 소, 부곡 등의 임내(任內)를 혁파하여 이들을 중앙에서 파견되는 수령이 직접 다스리는 직촌으로 만드는 작업에 치중하였다.
군소 군현의 병합은 전라도의 경우 태종 9년(1409)에 함풍과 모평이 함평으로 같은 왕 17년(1417)에는 도강과 탐진이 강진으로 병합된 것 외에는 없다.
전라도에서 속현과 향, 소, 부곡 등의 임내를 혁파하여 수령이 직접 다스리는 직촌으로 만드는 작업은 대부분 태종 9년(1409)에 이루어졌다. 이 때 진원현의 임내로 있던 마량향(馬良鄕)이 혁파되었다.
그러나 속현을 인근 군현에 병합하지 않고 독립된 현으로 개편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경우에는 속현에 수령을 파견하는 것만으로 될 수는 없었다. 여기에는 전결과 호구를 기준으로 하는 군현 전체의 혁폐, 이속, 병합이 뒤따라야 했다.
따라서 이와 같은 군현 전체의 개편은 양전법(量田法), 호적법, 호패법, 오가작통법 등의 전결, 호구 파악방법과 군현 개편에 관한 자료로서 지리지의 편찬이 완성된 뒤에야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조선초기의 군현제 개편은 이러한 법제와 지리지가 완성된 세조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완성될 수 있었다.
이러한 조건이 갖추어진 세조 2년(1456)에 [병합군읍사목]이 제정되어 체계적으로 전국적인 군현제의 개편이 이루어졌다. 조선 건국으로부터 세조 2년 [병합군읍사목]이 나오기까지 약 반세기 동안에 걸쳐 군현을 정비해온 결과 세조 이후에는 약 300여 개의 독립 군현이 갖추어져서 수령을 통하여 지방민을 직접 통치하는 조선왕조의 군현제가 완성되었다.
이와 같은 군현제 개편을 계기로 지방행정구획은 유수부 1, 부윤 6, 대도호부 5, 목 20, 도호부 74, 군 73, 현 154 등 모두 314로 구획되었다. 도 밑의 지방행정구역인 부, 대도호부, 목, 도호부, 군, 현에는 각각 부윤(종 2품), 부사(정 3품), 목사(정 3품), 군수(종 4품), 현령(종 5품), 현감(종 6품)의 수령이 파견되었다. 부·목·군·현이 도 산하의 병열적인 지방행정단위이면서도 명칭과 수령의 품계가 달랐던 것은 호구의 다과, 취락의 대소, 전결의 다소 및 지역의 특수성 때문이었다.
조선 초기의 지방제도는 전국을 8도로 나누고 도 밑에는 다시 큰 고을을 계수관(界首官)으로 삼아 여기에 몇 개의 군현을 복속시켜 행정을 처리하는 계수관체제로 운영되었다. 조선초기 전라도의 계수관은 태조 2년(1393)에 완산(전주), 나주, 광주로 정해졌다. 이 때 이루어진 계수관체제는 다시 변화를 겪어서 세종 16년(1434)에 이루어진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전주, 나주, 남원, 장흥으로 되어 있다. 그 사이에 계수관의 변동이 있었던 것이다. 광주는 세종 5년(1423)에 주민 중에 수령을 구타하여 강상죄를 범한 자가 있어 무진군으로 강등되면서 장흥으로 교체되었으며, 남원은 추가되었던 것이다.
계수관은 인재의 천거, 군기의 제조, 군장의 점검, 도량형의 점검, 습업생도의 천거, 군사의 조련, 노비소송의 결송, 호구의 성급 등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예하의 군현에 대해서는 어떠한 행정적 지휘나 감독 기능을 갖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조선 왕조에서 계수관체제가 가지는 의미는 그다지 큰 것이 아니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나타난 전라도의 계수관과 그 소속 군현은 다음 [표 2-11]에 나타난 바와 같다.
다음 [표 2-11]에 나타난 바와 같이 오늘날 장성군을 이루고 있는 장성현과 진원현은 계수관체제에서는 서로 분리되어 장성현은 나주목에, 진원현은 장흥도호부에 영속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계수관체제 아래서의 영속관계는 그렇게 큰 의미가 없었다. 계수관보다는 지방제도의 최정점에 있는 도의 관찰사를 통한 지방통제가 커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조선왕조의 통지 규범을 집대성한 『경국대전』체제에 따르면 조선 전기의 지방통치는 관찰사가 파견되는 도 밑에 부, 목, 군, 현을 두어 수령을 파견하여 통치하고 있어서 계수관체제보다는 도와 군현제를 통하여 중앙정부의 통치력이 지방 깊숙이 미치고 있었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전라도의 지방행정구획은 부 1, 목 3, 도호부 4, 군 12, 현(령) 6, 현(감) 31로 모두 57로 나누어져 있었다. 이를 표로 나타낸 것이 다음의 [표 2-12]이다.
[표 2-11] 전라도의 계수관과 소속 군현
[표 2-11] 전라도의 계수관과 소속 군현 - 소속군현 계수관, 도호부(사), 군(수), 현(령), 현(감)을 나타낸 표소속군현 계수관도호부(사)군(수)현(령)현(감)
전주부 | | 진산 금산 익산고부 김제 | 금구, 만경, 임피 | 옥과, 함열, 용안, 고산, 부안, 정읍, 태인, 여산 |
나주목 | | 해진 영암 영광 | | 강진 무장 함평 남평 무안 고창 흥덕, 장성 |
남원도호부 | | 순창 | 용담 | 구례 임실 운봉 장수 무주 진안 곡성 광양 |
장흥도호부 | 순천,담양 | 무진 보성 낙안 | 능성 창평 | 화순 동복 옥과 진원 |
[표 2-12] 조선전기 전라도의 행정구획(『경국대전』에 의함 )
[표 2-12] 조선전기 전라도의 행정구획 - 구분, 부윤, 목사, 도호부사, 군수, 현령, 현감을 나타낸 표구분부윤목사도호부사군수현령현감
품계 | 종2품 | 정3품 | 종4품 | 종4품 | 종5품 | 종6품 |
수 | 1 | 3 | 4 | 12 | 6 | 31 |
군현명 | 좌도 | | 광주 | 남원 · 장흥순천 · 담양 | 보성·낙안순창·여산 | 창평용담능성 | 광양·옥과·남평·구례 곡성·운봉·임실·장수진안·무주·동복·화순흥양 |
우도 | 전주 | 나주제주 | | 익산·고부영암·영광진도·금산진산·금계 | 임피만경금구 | 용안·함열·부안·함평강진·고산·태인·옥구고창·무장·무안·장성진원·해남·대정·정의 |
* 좌우도의 구분은 『대전통편』을 준용함.
[표 2-12]에 나타난 바와 같이 조선 전기에 장성이나 진원은 모두 수령으로서는 제일 품계가 낮은 종 6품의 현감이 파견되었다. 이와 같이 이 지방에 가장 급이 낮은 현감이 파견되었던 것은 현세가 약했기 때문이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이 당시 장성현은 183호에 인구 840명, 간전(墾田) 3,366결이었으며, 진원현은 144호에 인구 747명, 간전 2,340결로 일반 군현에서 제일 낮은 수준에 속하고 있었다. 그 뿐 아니라 이 지역에는 조선초기에 일반 군현이 대부분 갖고 있던 향, 소, 부곡도 거의 없었다. 다만 진원현에만 마량향이 하나 있을 뿐이어서 다른 군현과는 크게 차이가 나고 있다.
이 지방에는 또한 토착 성씨집단도 다른 군현에 비하여 적었다. 물론 성씨집단의 크기에 따라 차이는 있었지만 이 당시에는 대체로 현 지역에는 5∼6개 내외의 토성집단이 거주하고 있으다. 그러나 이 지방에는 장성이 토성 5, 진원이 토성 2, 마량이 1로 다른 지역보다 훨씬 적었다. 이것은 토착세력의 성장이 다른 군현에 비하여 뒤떨어졌음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읍세가 다른 지역보다 적은데다가 장성과 진원으로 나뉘어져 있어서 지방행정단위로서는 제일 낮은 현감관으로 존속되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로 이 지방의 성씨집단을 적기하면 다음 [표 2-13]과 같다.
[표 2-13] 장성 지방의 성씨집단
[표 2-13] 장성 지방의 성씨집단 - 지역, 구분, 출전, 도성, 내성, 망성, 속성을 나타낸 표지역구분출전도성내성망성속성
장성 | 본현 | 세실 | 이, 서, 유, 공, 노 | | | |
동여 | 이, 서, 유, 공, 노 | | | |
진원 | 본현 | 세실 | 오, 박 | | | |
동여 | 박, 오, 안, 문 | 이(보령),김(장흥) | 문 | 이(보령), 김(장흥),김(부지)모두 향리 |
마량향 | 세실 | 신 | | | |
동여 | 신 | | | |
영광 | 삼계현 | 세실 | 주,최,손,성,공,전 | | | |
동여 | 주,최,손,성,공,전 | 김, 이 | | |
(출전: 세실: 『세종실록지리지』, 동여: 『동국여지승람』)
위 [표 2-13]에서 보면 조선 초기에 영광현의 속현으로 있었던 삼계현의 성이 여섯이었는데 비하여 독립 군현인 장성이 다섯, 진원이 둘에 불과하였음을 알 수 있다. 삼계현은 조선시대에는 영광군에 소속되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장성군에 편입된 지역이었으므로 이 당시의 실정을 알아보기 위하여 위 [표 2-13]에 포함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