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 of sight out of mind.』 라는 서양 격언이 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자주 만나지 않으면 잊혀지게 마련이라는
노회(老獪)한 인생의 지혜로운 선배가 지었을 법한 격언이다.
그런데 요즘 깨달은 지혜의 편린(片鱗)이 있다.
이 격언이 항상 맞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세상 모든 지혜자들의 가르침이 그러하듯이---,
어쩔 수 없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살붙이 같은 여기는,
사랑하는 님을 멀리 두고 수개월을 살아왔다.
언젠가부터 님은 목소리는 일관되다.
"이제, 그만 날 잊어라."다.
전화는 일단 안 받는다.
100에 한 번, 1000에 한 번, 어쩌다 통화를 하게되면
"당신을 잊어가는 마음 흐트러지니 전화 좀 그만하라"고 한다.
그나마 님과 나를 이어주는 유일한 끈이,
아침마다 주고받는 인사문자인데, 그것도 대부분이 내꺼다.
"안녕???"
"잘 주무셨소?"
"아침밥은 드셨소?"
"오늘 컨디션은 좀 어떻소?"
학수고대하는 심정으로 목을 길게 빼고 답문을 기다리지만
언제나 한참 후 수신되는 답문은,
메마르고 삭막하고 무심한 단문이 전부다.
"네, 잘 지내세요."
그 때문인지 난 거의 매일 밤 꿈을 꾼다.
님과 함께 했던 지난날들의 추억이
꿈속에서는 생생한 현실이 된다.
꿈에서 만난 우리는 날마다 데이트를 한다.
영화를 보고,
저녁을 먹고,
야경이 예쁜 호숫가 밤길을 걷고,
종종 근교로 나가 드라이브도 즐긴다.
바다를 유난히 좋아하는 님과 함께,
어떤 날엔 동해 바다로,
어떤 날에는 서해 바다로,
어젯밤에는 남해바다로 차를 몰고 여행을 갔다.
모든 연인들이 그렇듯 우리도
서로를 꼬옥 끌어안고,
꿀 떨어지는 달달한 눈길로 서로를 바라보며
가벼운 입맞춤을 수도 없이 나눈다.
보고, 또 보고, 또 봐도 정말 예쁘다.
자꾸 보면 볼수록 새롭게 예쁘고, 사랑스러워 신비롭다.
어떻게 이렇게 예쁘지?
그래서일까?
햇볕에 반짝반짝 빛나는 푸른 바다보다
나는 님을 바라보는 시간이 더 많다.
모처럼 에메랄드빛 바다가 보고 싶어 남해까지 왔는데
왜 자꾸 방해 하냐며,
사슴 닮은 큰 눈으로 무섭게 흘겨보며 화를 낸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내 눈엔 바다에 흠뻑 빠진 님이 비취빛 바다이니---.
못이긴 척 일어선 님과 다정히 맞잡은 손을 흔들며,
바닷가 모레밭을 걸었다.
님이 좋아하는 노래들을 부르며,
"다정한 연인이 손에 손을 잡고 걸어가는 길-----
이 세상 모든 것 내게서 멀어져가도
언제까지나 사랑은 내게 남으리---“
그런데 꿈에서 부르던 그 노래 소리에 눈이 떠졌다.
허망함에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그래도 감사하다.
꿈에 본 님을 그리며 오늘 하루를 살아갈 힘은 얻었으니---.
Out of sight out of mind???
아니다. 아니다. 결코 아니다.
보고픈 님을 보지 못하면,
그리움이 더더욱 깊어져,
매일 밤마다 꿈을 꾸게 된다.
내 님은 지금도 투병 중이다.
지난 해 갑자기 발견된 종양 때문에
수술을 받고 아직도 치료 중이다.
불과 몇 달 만에 많이 수척해졌을 것이다.
보지 못했어도 알 수 있다.
그 님을 생각하고 기도할 때마다
하염없이 눈물이 절로 흐른다.
미안함의 눈물,
죄스러움의 눈물,
송구함의 눈물이다.
나도 알고 있다. 나 때문에 님이 아프다는 것을---.
마음이 쓰리고 아리다.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죄책감에,
숨이 막히고, 가슴이 매이고, 목이 매인다.
그런 내게 내 님은
"이제 그만 날 잊으라."고만 한다.
막무가내(莫無可奈)다.
매일 밤 꿈속에서 만나는,
그립고, 그리운 사랑하는 내 고운님,
그 님을 뵙는 날 언제 일지,
그날을 기다리며 설레이는 마음으로
나는 꿈을 꿀 것이다.
그리고 데이트를 할 것이다.
오늘 밤에도,
내일 밤에도,
그리고 내 삶의 마지막 날에도
꿈속에서 만나는 내 님은 언제나 20살 새색시다.
언젠가 만나게 될 내 님도,
어쩌면 젊은 날의 눈부시게 예쁘고 빛나던
그 모습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수척해졌을지라도
첫 번째 데이트를 하던 날의 그 아가씨일 게 분명하다.
Out of sight out of mind???
아니다. 아니다. 결코 아니다.
보고픈 님을 보지 못하면,
그리움이 더더욱 깊어져,
매일 밤마다 꿈을 꾸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