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건축사 윤모
그 윤모를 다시 본 것은 아마도 중학교를 졸업하고 한참 후 시퍼런 군사독재시절 80년대 초반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중학교가 있는 읍내 어느 곳에서 우연히 만난 윤모에게 나는 참으로 오랜만이라며 반갑다면서 술이나 한잔 하자고 했다. 나는 그때 대학에 다녔었고 윤모 또한 어느 전문대학 건축과엔가 다니면서 건축사무실에서 설계 일을 한다는 것 같았다.
그때 윤모와 같이 술을 마셨던가 아니면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하여 밥을 먹었던가? 아니 먹었던가? 가물가물 아슴아슴하여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다만 그날 윤모와의 오랜 만남에서 내가 전두환 군사독재를 비난하는 말을 얼핏 지나가는 말로 했는데 그 말에 발끈하며 화를 냈던 기억만이 생생하다.
잘못 말을 했다가는 감옥소에 붙들려가 혼을 나야하는 시대라서 그 전두환 어쩌고 하는 말에 두려워서 그랬을까 아니면 전두환이 옳다고 생각해서 그랬을까? 아무튼 윤모는 나와 정반대의 생각을 가진 존재임이 분명한 것이 사실이었다. 나는 그때 최초로 일반적으로 사회적 통념인 도덕관념에서 파렴치한 학살 죄를 저지른 전두환 같은 자에 대해서도 전혀 정반대로 생각하는 부류들이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던 것이다.
이를 테면 일제 강점기 때 일본군이 조선 사람들을 때리고 구박하고 강간하고 학살하는데 의당 그 일본군에게 조선 사람이라면 적개심과 분노를 가져야함에도 불구하고 그에 전혀 분노하는 마음을 느끼지 못한다거나 혹은 오히려 그 일본군에게 동조하여 똑같은 짓을 하고 더 잔인한 만행과 학살을 능히 저지를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발견 혹은 이해였다고나 할까! 그게 세상 사람들에게는 다반사로 일어나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전혀 이해 할 수 없었고 또 사람으로서 절대 그럴 수 없는 일이라고 끝까지 부정하고 싶었던 내게는 솔직히 엄청난 충격이었다.
더구나 중학교 때의 ‘착하고 선량한’(이 말 속에는 일반적인 정의감이나 도덕심이나 예의심도 함께 포함됨) 윤모로만 기억되었기에 당연히 사회적 정의나 분노를 함께 공감하고 있으리라 여겼는데 결코 그것이 아니었던 것에 대한 커다란 실망감이 몰아 닥쳤던 것이다.
아무튼 윤모의 그때 반응은 내겐 적잖은 충격으로 남게 되었고, 착하고 선량했던 중학교 동창 윤모가 아니라 도무지 말을 섞어서는 아니 될 그런 놈으로 깊이 각인되어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 후 동창 누군가에게서 윤모가 건축사 자격증을 획득하려고 목숨을 걸고 공부를 하고 그에 매달린다는 말을 언뜻 들었다. 그래, 그런가보다 하고 아무런 관심 없이 그냥 한귀로 흘려들으며 그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었다. 솔직히 ‘그깟 놈에 그까짓 것!’ 그러거나 말거나 했던 것이다.
그렇게 더 이상 만나고 싶지도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내 뇌리에서 까마득히 잊혀져버린 그런 존재 그 윤모를 다시 만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쯤 전인 것으로 기억된다. 아니 십오 년 전쯤일까? 확실한 기억은 없다. 전혀 윤모에 대하여 아무런 관심 한 점 없이 살아왔었기에 말이다.
그때 고향에서 자동차정비공장 사업을 한다는 중학교 동창 정모가 느닷없이 서울에 와서 전화를 하여 무턱대고 같이 동행을 좀 하자는 것이었다. 자동차정비공장을 차리는데 건축 설계 및 허가가 필요하고 거기에는 반드시 건축사가 개입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정을 잘 모르는 나는 모처럼 별다른 일이 없었던 까닭으로 동행을 부탁하는 정모를 따라 서울 강남의 어느 건축사 사무소라는 곳을 가게 되었다. 그곳에는 이제 어엿한 건축사가 된 그 윤모가 있었던 것이다.
그때 윤모를 다시 보고는 건축사가 되려 한다더니 정말 성취를 하긴 했구나 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 윤모는 이상하게 사람을 냉소하며 깔보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자꾸 거드름을 피웠다. 더구나 그때가 점심시간이었는데도 멀리서 간 동창에게 밥 먹었느냐는 안부 인사 조차 한마디 하지 않고 일이 바쁘다며 매사 건성으로 소 닭 보듯 하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거기에는 정모와 윤모에 대한 둘의 관계의 까닭도 있었다. 정모는 돈이 없는 까닭으로 건축사를 한다는 중학교 동창 윤모의 도움을 전적으로 보려하는 입장이었고, 윤모는 벌써 설계를 해주었는데도 돈을 주지 않아 정모를 내심 마뜩찮게 여기며 여러 차례 독촉을 했던 터였던 것이다.
그런 터에 정모는 윤모의 도움이 더욱 절실히 필요하게 되었는데 돈을 못줘 말을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다가 그 윤모에게 부탁을 하러 혼자 가기가 어째 민망하였던지 거기 슬그머니 나를 끼워 대동하였는지도 몰랐다. 기실은 내가 거기 가보았자 아무런 도움도 전혀 되지 않는데 말이다.
나는 그날 점심도 제때 먹지 못하고 쫄쫄 굶으며 엉거주춤 불편한 자리에 끼어서 건축사 윤모의 사람 대하는 싸늘한 거만을 맘껏 겪게 되었고, 더불어 아쉬운 정모의 비굴한 모습도 맘껏 관람하였던 것이다.
사실 내게는 윤모도 정모도 전혀 가까이하고 싶은 족속들이 아니었다. 애초에 없는 관을 머리에 쓰고, 없는 돈을 주머니에 두둑이 담고 싶어 그 길을 향해 광속도로 달리고 있는 그런 류의 족속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비굴함과 독선 그리고 교만과 아집과 편견들 그 속에서 배어나오는 잔재주와 타락이 눈에 환하게 내다보여 속이 매스꺼웠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끝으로 나는 윤모뿐 아니라 정모 같은 인종도 다시는 상종해서는 아니 되었던 것이다. 동창입네 하고 생색내며 열심히 상종 해보아야 실제로 그들이 노리는 바 이득이 내게는 전혀 나올 것이 없을 것이었고 나 또한 그들을 만날 아무런 까닭도 없었던 것이다.
그것을 잘 아는 그들이 먼저 나를 찾지 않았고 나 또한 그들이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도 전혀 알 필요 없는 하찮은 족속들이라고 여기고 관심 밖으로 멀리 내팽개쳐버리고 아주 까마득히 잊고 살아왔던 것이다.
그런 달갑지 않은 윤모 소식을 중학교 동창 조모로 인해 다시 듣게 될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복잡다기하고 혼란스러운 세상사를 피해 고요히 숨어 사는 데도 온갖 일이 다 비집고 들어왔다. 세상이란 이렇게 자기가 의도한 대로만 살아지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계속>
첫댓글 아이들의 원혼이 울부짖는 것일까?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 밤입니다. 아마도 아무도 책임 져 주지 못한 이 땅의 족속들을 원망하는 듯 비바람이 울부짖고 있습니다. 죄없는 자들의 어린죽음을....... 그 죽음을 방치하고도 호의호식 권력과 부를 누리면서 큰소리치는.... 이빨을 갈아대는 저 짐승들을 향한 비바람의 울부짖음...... 좀비와 종으로 사는 못난 어른들을 향한 울부짖음..... 저 푸른 새순과 꽃잎을 흔들고 찢어버리며 울부짖는 하염없는 비바람소리........
@고구마 그러게요, 고구마님 억울한 원혼들이 현실계에 관여할수 있다면 세상은 바로 밝아져 버리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군요. 남은 인간들의 몫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좀비와 종과 ...... 탐욕에 물든 개쥐닭들과...... 저 악마의 번뜩이는 눈빛과.......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글 감사합니다!
나그네7116님 답글 감사합니다. 울부짖는 비바람 소리가 제 마음을 찢는게 예사롭지 않는 봄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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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사니님 답글 감사합니다. 어젯밤 비바람이 거세게 들이쳤는데 아마도 어린 원혼들이 밤새 울부짖었는가 봅니다...... 참 인정도 없고 피눈물도 없는 어이없는짐승의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짐승의 세상을 향한 순정한 아이들의 울부짖음 ..... 한숨만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