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예뻤다' 라는 드라마에서 여자주인공은 자신이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왔던 남자를
다름아닌 평생단짝친구가 본인행세를 하면서 만나고 있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한다.
그리고 충격 받아 힘들어하는 여주인공에게 그 사정을 전해들은 다른 등장인물이 이렇게 말한다.
왜 당장 가서 따지지 않니? "대체 네가 어떻게 나에게 이렇게 할 수가 있어? 네가 그러고도 내 친구야? 이 나쁜
기집애야!" 라고 따져야지!
그 말에 여주인공은 상실감과 배신감을 느끼지만 기다려보겠다고 대답한다.
분명 무슨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때가 되면 본인이 믿는
그 단짝 친구가 설명을 다 해 줄 것이라고 말한다.
여주인공이 믿음을 잃지않고 따지지도 않으며 기다리겠노라고 대답하자 그말을 들은 사람은
"그 친구는 정말 좋겠네... 당신같이 미련스러울 정도로 자기를 믿어주는 친구가 있다는 거...
부럽네. 그 친구가...복 받았어 그 친구." 라고 말한다.
그러자 여주인공은 "딴 사람이 아니라 나의 가장 소중한 친구니까.." 라고 대답한다.
이 장면을 보는데, 우리들 또한 주님께 태도가 이와 같아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주님께서 기대하시는 게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신앙생활이 깊어질 수록 종종 겪게 되는 아주 익숙한 상황... 그러니까 이를테면,
아무리 기도를 드려도 그분은 침묵하시며 상황은 정반대로만 돌아가고 이러한 시간이
몇개월이 1년이 되어버리고, 1년이 다시 2년...3년...
이젠 몇년째인지조차 기억하기 힘든 .. 그래서 세상에서 내가 누구이고 여긴 어디인지
조차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나락의 지경까지 빠진 어느 시점에서
우리들은 주님께 항의하는 것 조차 항의할 힘 조차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이젠
하고 항의하고 싶지도 않고 또한 자포자기 심정으로 무념의 차원으로 헤어나오지 못할 때
즉 절망과 낙심에 빠지지 않으려 그동안 그렇게 노력해왔지만 이젠 정말 이러한
상황에서 영원히 헤어나올 수 없을 것 처럼 느껴질 때에
주님께 대한 우리들의 태도가 바로 여주인공과 같아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의 가장 소중한 친구이기 때문에...나는 나의 가장 소중한 친구가
언젠가 설명해 줄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여주인공의 대답이
우리들에게 있어서도 주님께 대하여 같은 대답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다른 분이었다면 바로 가서 따지겠지만 우리들을 위하여 몸소 십자가를 지시고
피를 흘리시어 우리들의 죄를 대신 져주었기 때문에... 그리고 바로 다름아닌 한분 밖에
계시지 않는 우리의 주님 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눈에 목격하고 귀에 들리는 모든 상황들이 여주인공 처럼 절망적으로 보인다
할 지라도 ... 인내하고 견뎌내며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들의 주님께 대한 태도가 그 여주인공처럼 절대로 믿기 힘든 상황 속에서도
믿음의 선한싸움을 하며 믿음을 잃지 않으려 인내하고 그분을 기다리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주님은 정말 좋으실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 때문에 너무나 행복해
하실 것이다. 사탄이 부럽다 못해 시기심을 느낄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렇게 말하실 것 같다.
"내가 너를 그 오랜 힘든 기간동안 계속 지켜 보았단다. 그리고 네가 나를 더이상 신뢰할 수 없는 지경 속
에서도 나에 대한 신뢰를... 믿음을 버리지 않았고, 그러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마음을 다잡고 나를
의심하지 않으며 기다리겠노라고 선언하는 너의 모습을 보았다. 너는 '믿음'을... 그리고 나에 대한 '사람'을
몸소 증명한 나의 충실한 종이도다!" 라고 말이다.
드라마에서 친구를 배신한 듯한 모습을 보여졌던 그 친구가 여주인공에게 어느날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이야기 하는 장면이 나온다. "고마워... 나를 기다려줘서 고마워..." 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