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 정자해변이 내려다보이는 아파트 현관 앞에서 만난 청년은 "여자친구가 길러라고 선물한 것을 외출이 잦아 키울 수 없다"며 금붕어 3마리를 나에게 건넸다. 그래서 나는 창고에 보관하고 있던 어항을 꺼내어 깨끗하게 씻어낸 후 금붕어들을 넣어 주었다. 금붕어들은 잠시 물 냄새를 맡고는 곧바로 이리저리 힘차게 요동치며 즐거워했다. 마침 이곳 신문사 사무실의 수돗물은 지하수여서 며칠 따로 보관하며 염소 성분을 휘발한 후 사용하던 번거로운 절차가 필요 없었다. 필자는 아침저녁 사료를 급여해주며 “건강하게 잘 커라”고 인사말을 건네곤 했다. 그렇게 서로 잘 지내던 물고기들은 몇 달 후 시름시름 앓더니 며칠 후에 죽어 나갔다. 그래서 나는 새로 사 온 물고기들을 친구로 사귀라고 또다시 어항에 넣어 주었다.
이렇게 물고기를 기르면서 내가 알게 된 것은 물고기도 성격이 있다는 것이다. 새로 사 온 덩치 적은 놈이 자기보다 덩치 큰 금붕어를 콕콕 쪼아댔지만 원래 있던 금붕어는 친구 없이 혼자 외로운 것 보다 새로 들어온 동료(?)가 귀찮게 해도 같이 있어 주는 사회성이 더 좋았던 모양이었다. 귀찮기도 할 텐데 친구의 행동을 너그럽게 받아주며 웰빙의 삶을 즐겼다. 한편 물고기는 아무리 정성 들여도 친근한 교감이 어렵다. 자기들이 물 밖으로 나오면 금방 호흡이 멎을 것이고, 내가 어항 속으로 들어가 지네들과 사귈 수 없는 것이다. 또 강아지에게 아무리 물고기를 소개시키려 해도 아가미 호흡하는 물고기랑 공기를 호흡하는 동물은 같은 물에서 놀 수가 없음을 알았다.
13년 4개월 기른 우리 강아지 겨울이가 올 초 몇 달간 서서히 힘이 빠져 말 그대로 기진맥진해서 죽었을 때 외출하고 돌아와서 아이의 주검을 확인하고 엄청 슬펐다. 켜켜이 쌓인 그리움 때문에 아픔은 가시지 않았지만 남은 형제 봄이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에 여태 함께 살았던 형제의 죽음으로 슬퍼할까 봐 봄이를 울산 곳곳으로 데리고 나가 산책시켜 주었다.
처음에는 형제가 죽었는지 어느 다른 곳으로 보냈는지 알지 못하던 봄이가 혼자 남았어도 엄마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으니 형제 때문에 많이 침울해하지는 않았다. 차를 타고 대왕암공원과 선암호수공원과 주전 보밑항으로 여러 차례 다녀온 산책에서 봄이는 다람쥐같이 빠른 걸음으로 자신의 건강을 증명했다.
https://youtu.be/_0vTvh7kIW8
어릴 적 봄이 겨울이는 울산 mbc 뒷산을 산책한다고 데리고 나가면 얼마나 빠르고 잽싼지 마치 새들처럼 몸놀림이 가벼웠다. 복산동에 있을 때는 바로 옆에 소공원이 있어 주일학교 아이들이 강아지와 만나 놀아야 된다고 수시로 교회로 찾아와서 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때 엄마 땡칠이가 낳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4형제의 활약은 대단했다.
교회에 아이들을 불러들이는 전도견이라 해도 무방할 만큼 아이들은 강아지와 잘 놀며 추억을 켜켜이 쌓았다. 마당이 없는 도심 속에서 강아지 네 마리를 다 건사하지 못해 두 마리를 입양 보내고 겨울이와 봄이는 여태 함께해서 가족이나 다름없는 처지가 됐다. 가끔 지난 추억을 사진첩에서 꺼내 보면 그리움 한가득 마음속에 자리 잡는 것이다. 그 주일학교 아이들이 벌써 시집가고 장가갈 나이가 됐으니 수명이 짧은 강아지들은 생의 끝자락에 서게 된다.
https://youtu.be/sSGhDIx0a70
형제 겨울이가 서서히 힘이 빠져 자연사했으니 차라리 잘 된 것인지 봄이는 마지막에 호흡이 서서히 가빠져 몇 달을 고통 속에서 살았다. 그래도 엄마가 주는 간식을 죽기 하루 전날에도 얼마나 잘 먹어주는지 그것이 감사했다.
https://youtube.com/shorts/OBZYXjbNq7A?feature=share
마지막에는 합병증 탓인지 복수가 차더니 죽기 하루 전에는 앉지도 눕지도 못하며 괴로워하다 가쁜 숨을 내쉬었다. 봄이는 엄마 아빠 곁에 더 있고 싶었는지 두 눈은 감기지 않은 채로 마지막 호흡을 마쳤다. 몸이 무거웠어도 하도 산책을 좋아해서 성내공원에 밤마다 산책시켜 주었다. 가쁜 숨을 쉬면서도 그리 바깥 공기를 맡는 게 좋은지 얼굴이 환해지곤 했다.
https://youtu.be/Y_kisR2l1oE
죽기 하루 전날엔 아빠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몇 걸음 옮겨 엄마 머리맡에 가서 또 엄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 숨차고 몸이 무거웠는데도 두 번이나 똑같이 반복했다. ‘아, 우리 봄이가 자기가 죽는 것을 아는가 보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우리 봄이가 형제 겨울이를 따라 지상에서의 마지막 호흡을 남기고 하늘나라로 떠나갔다. “겨울아, 봄아. 너희 때문에 많이 행복했다.” “하늘나라에서 내내 편안 하렴. 나중에 또다시 그곳에서 엄마 아빠랑 만나 행복하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