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것들을 버리면
“자네는 리얼리스트구만.”
오래 전 일이다. 젊어서 하숙을 할 땐데, 같은 방을 쓰던 직장 동료가 잠결에(?) 불쑥 그렇게 말했다. 동거(同居)한 지 몇 달 되었을 무렵이었지 싶다. 그쪽이 2~3년 연상이어서 내가 ‘언니’로 호칭하며 호형호제 하던 사이였다. 살다 보면 여러 가지 평가를 받기 마련이다. 어떻게 보면, 인생은 결국 몇 개의 이름을 얻느냐로 가늠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여태 그런 이름은 처음이었다. 리얼리스트라고? 내 평생에 그런 평가는 처음 들어보는 거였다. 그 반대말을 알아야 제대로 뜻이 잡힐 것 같았다. 리얼리즘이란 말이 주는 어감이 그런 생각을 더 부추기기도 했다. 그 얼마 전에 어디선가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이란 화제로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가는 것을, 좀 지루한 느낌으로, 본 적도 있어서였을 것이다.
“어째서?”
내 반응이 그런 식으로 나갔다. 리얼리스트란 말의 함의를 이해는 하겠는데 왜 그렇게 나를 단정하는지 말해보라는 투였다. 어감 상으로는,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하시는가를 묻는 것처럼 들렸을 것이다. 그러자, 그가 한 걸음 물러섰다.
“아니, 매일 매일 반성하면서 자신을 고쳐나가는 사람인 것 같아서 그렇게 한 번 불러봤네.”
말도 안 되는 말이다. 내가 나를 모르겠는가? 그는 내 불패의 현찰주의를 그렇게 불러준 것이다. 온놈이 온말을 해도 현찰이 오고가지 않는 인간관계를 피하는 게 3.8 따라지들의 인생관이다. 피난민 근성이다. 그런 영악한 리얼리즘을 뿌리깊은 남쪽 양반집 후손이 이해할 리가 없다. 그래서 그게 인상적이었고 그래서 이름붙이기에 나선 것이다. 그 대답을 하면서 그가 다소 황망해 했으므로, 나는 그의 말대로 그날 밤을 ‘반성’하며 보냈다. 앞으로는 ‘현실’에 너무 주눅들지 말자, 인생 뭐 별 것 있나, 조금 불편하면 될 일이지, 아마 그렇게 수차례 되뇌었던 것 같다.
살다 보면, 치명적인 것들도 있고, 그저 불편한 것들도 있다. 무엇이 ‘치명(致命)’이고 무엇이 ‘불편(不便)’인가를 나누는 일부터 쉽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두 부류의 사상(事象)들을 상정해 볼 수 있다. 꼭 고수해야 할 것, 참거나 양보할 수 있는 것, 그렇게 나눌 수 있다는 거다. 매사가 ‘치명적’인 것들이면 십중팔구는 내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그런 사람들은 매사가 ‘남의 탓’이다). ‘불편’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이 그저 불편한 것들뿐이어도 문제다. 그러면, 주변 사람들이 불편해진다. 가족 중에 그런 사람이 있으면, 나머지 가족들은 그저 죽을 맛이다. 행여 가장이 그런 사람이면 그 집은 풍비박산이다. 그런 것이 이를테면 내게는 치명적인 것에 속하는 것이다. 그런데, 누구는 그런 경우가 닥쳐도, 내가 이 나이에 누구 눈치 볼 일이 어디 있는가라고 여기고 강행한다. 그러면 그에게는 그 일이 그저 불편한 일에 속하는 것일 뿐이다. 남들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리얼리스트가 아니다. 그 당시 하숙집 논리로는 그렇다.
나이 들수록 편해지는 것도 많다. 공자님이 이순(耳順)이라고 말했던 느낌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젊어서는 자타가 서로 불편할 때가 많았던 것 같다. 서로가 상대에게 칼자국을 남기는 언행도 많았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타인에게 이름을 붙이고 싶은 욕망이 들 때가 주로 그런 때다.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너는 나에게로 와 꽃이 되었다”라고 김춘수의 시는 노래하지만 현실의 실상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네가 내게 불편한 존재이므로 나는 너에게 이름을 붙인다”도 많다. 오히려 그럴 때가 더 많다. 그래서 늘그막에 본 어린 손주는 그저 내 ‘강아지 새끼’다. 이름이 따로 필요 없다. 불편한 것은 없고 오로지 주고싶은 것 뿐이다. 공자님이 나이 칠십에 “종심소욕 불유구(從心所欲 不踰矩)”라고 말했던 것도 결국은 그런 불편함의 종말에 대한 소회가 아닌가 싶다. 평생 이름붙이기에 몰두하였던 공자야말로 타고난 리얼리스트였던 것 같다.
<오래 전 작성. 오늘 아침 일부 수정> <사진은 페이스북(박노흔 님)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