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씨(柳氏)는 2000년 기준으로 남한에 60만여명, 56개의 본이 존재한다. 이중
문화류씨가 28만여명으로 대종을 이루고 있고 그 다음으로 전주, 진주, 고흥, 강릉,
서산, 풍산이 10,000명이 넘는 본이다. 전에는 모든 류씨는 문화류씨의 분파로
믿어지기도 했으나, 현재는 본에 따라 경우가 다르다는 의견도 대두되고 있다. 또
한동안 류씨와 차씨가 뿌리가 같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으나 이는 위서(僞書)에
근거를 둔 잘못된 사실임이 판명되었다.
문화류씨(文化柳氏) 시조 대승공 류차달(大丞公 柳車達)은 황해도 유주(儒州=文化縣)
태생으로서,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남방을 정벌할 때 수레를 많이 내어 군량을
보급함으로써 그 공으로 대승(大丞)에 제수됨과 아울러 삼한공신(三韓功臣)의 호를
받았다.
그 독자(獨子) 좌윤공 효금(佐尹公 孝金)이 일찍이 구월산을 지나다가 큰 범을
만나 그 입 속에 걸려 있던 비녀를 빼내 주었는데 그날 밤 꿈에 범이 나타나 이르기를
나는 산신령인데 무슨 물건이 목에 걸려 심히 괴롭던 중 공이 나를 구해주었으니 그
음덕으로 공의 자손은 반드시 대대로 경상(卿相)이 되리라 하였다.
문화류씨는 문간공 공권(文簡公 公權: 7세손)이 고려 명종(明宗)때
정당문학(正堂文學)과 참지정사(參知政事) 등을 지내고 문장과 글씨로 명성을
떨쳤으며, 그의 아들 언침(彦琛)과 택(澤)으로부터 크게 두 갈래로 갈라져서 현재
문화류씨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다.
그 후 문정공 경(文正公 璥), 정신공 승(貞愼公 陞), 장경공 돈(章敬公 墩) 등 수대를
연이어 증시(贈諡)를 받아 문화류씨는 고려조에 소위 사세오공(四世五公)의
벌족(閥族)으로서 일찍부터 삼한갑족(三韓甲族)으로 일컬어졌다.
문화류씨는 조선조에 들어와서도 많은 인물을 배출했으니, 134인이 대과(大科)에
급제하여 음사(蔭仕)를 포함 실직당상관이 90여인에 이르렀는데, 그 중에 상신(相臣)
9인, 호당(湖堂) 5인, 청백리(淸白吏) 4인, 공신(功臣) 11인 등이 배출되었다.
시호(諡號)는 22장이 내렸는데, 그 중에 문시(文諡)는 7장이다.
국초에 청렴재상 하정 관(夏亭 寬), 사육신 낭간 성원(琅玕 誠源), 을사사화 때
강직대신 송암 관(松菴 灌), 임진왜란 때 선무공신 문흥군 사원(文興君 思瑗), 실학의
원조 반계 형원(磻溪 馨遠), 발해고 저자 영재 득공(泠齋 得恭) 등은 특히 드러난
분이다. 그리고 초야에서 학문에 전념한 유현(儒賢)과 충의효렬(忠義孝烈)로
정려(旌閭)와 복호(復戶)의 은전을 받은 분이 80여인에 이르고 무과 및 소과에 급제한
분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문화류씨는 이렇듯 많은 인물을 배출하여 고려와 조선
천여년 동안 국가와 명운을 함께 해왔다.
문화류씨는 고려 때 4대명족, 조선 때 8대성으로 일컬어져 왔으며, 더욱이 문화류씨의
족보인 영락보(永樂譜, 1423년)와 가정보(嘉靖譜, 1562년)는 우리나라 족보의
효시(嚆矢)로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계보학(系譜學) 연구의 세계적 문헌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문화류씨의 관향인 황해도의 문화(文化) 고을은 고려 초 · 중기에는 유주(儒州)로
불렸고, 감무(監務)를 두어 다스리던 지역인데, 고종 46년(1259년) 위사공신
경(衛社功臣 璥)의 고향이라 하여 문화로 개칭함과 동시에 현(縣)으로 승격시켜
현령(縣令)을 두었다. 조선조에 이르러서도 그대로 문화현으로 존속시켜 오다가 고종
32년(1895년)에 군(郡)으로 되었고, 그 이후 신천군(信川郡)에 병합되어 문화면이
되었다.
1. 문화류씨 세덕(世德)
가 . 고려조 사세오공(四世五公)
① 염근(廉謹)과 문필(文筆)로 이세의 사표(師表)가 된 문간공 공권(文簡公 公權)
② 권신을 제거하여 정권을 왕실에 회복시킨 문정공 경(文正公 璥)
③ 신의를 찬술하여 예절을 바로잡은 정신공 승(貞愼公 陞)
④ 강직한 기개로 정령(政令)을 쇄신한 장경공 돈(章敬公 墩)
⑤ 충직한 말로서 국기를 진작시킨 온정공 인기(溫靖公 仁琦)
나 . 조선조 상신
① 상신으로는 위화도회군으로 개국의 기틀을 마련했던 좌의정 만수(曼殊)
② 태종을 보필하여 국기를 다진 우의정 량(亮)
③ 대마도의 왜구를 정벌하고 국정에 지대한공을 세운 영의정 정현(廷顯)
④ 국초에 청렴재상으로 백세의 추앙을 받는 우의정 관(寬)
⑤ 중종 반정후 인망으로 정승에 재추대된 영의정 순(洵)
⑥ 강직한 지절로 을사사화에서 화를 당한 좌의정 관(灌)
⑦ 충직으로 을사제현(乙巳諸賢)을 설원시킨 중신 영의정 전(㙉)
⑧ 청백 재상으로 문필이 구비한 영의정 상운(尙運)
⑨ 건저소(建儲疏)로서 경종을 보필한 소론 사대신의 일인인 좌의정 봉휘(鳳輝)
다 . 문형(文衡) : 송암 관(松庵 灌)
라 . 호당
①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순절한 사육신의 일인인 낭간 성원(誠源)
② 기묘사화에 조정암을 구하려다가 관직을 버리고 의리에 죽은 항재 운(恒齋 雲)
③ 우복당 전(遇伏堂 㙉)
④ 이조참판 희발(吏曹參判 希發)
⑤ 제교 희량(霽嶠 希亮)
마 . 경연초선(經筵抄選) : 학문과 행의로 백세의 사표가 된 백석 즙(白石 楫)
바 . 청백리
① 우의정 관(右議政 寬)
② 선산부사 희철(希轍)
③ 승지 혼(渾)
④ 영의정 상운(尙運)
사 . 절신(節臣)
① 낭간 성원(瑯玕 誠源)
② 단종(端宗) 손위(遜位)에 절의를 지키고 명화 지곡송학도(芝谷松鶴圖)를 남긴
서산 자미(西山 自湄)
③ 기묘사화에 조정암과 함께 피화(被禍)되어 향리에서 여생을 마친
빙고별제 맹연(氷庫別提 孟連), 항재 운(恒齋 雲),
송암 관(松庵 灌)
아 . 공신
① 태종조 좌명공신(佐命功臣)인 문성부원군 량(文城府院君 亮)
② 세조조 정난공신(靖難功臣)인 문성군 수(文城君 洙), 문산군 하(文山君 河) ,
문천군 서(文川君 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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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07.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