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과 요셉이야기: 감옥에서 왕궁으로
연구 범위: 창 37:2~41:40
기억절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창 39:9).
야곱의 이야기는 다시 한 번 인간의 부패와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를 대조시키는 가운데 꼬이고 뒤틀리면서 계속된다. 창세기 34장에는 야곱의 딸 디나(Dinah)가 그 지역 추장에 의해 욕을 당하자, 야곱의 두 아들 시므온과 레위가 그 성읍 모든 남자를 몰살하는 사건이 나온다. 야곱은 보복을 두려워하여 벧엘로 이주하였는데(창 35장), 이 모든 끔찍한 사건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는 다시 그곳에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다음과 같이 언약을 재확인시키셨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니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국민과 많은 국민이 네게서 나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11-12절).
창세기 35장의 나머지 이야기는 베냐민의 출생과 라헬의 죽음을 다루고 있다. 또한 “그 서모 빌하와 통간”한(22절) 르우벤에 대해서도 언급되어 있다. 창세기 35장은 야곱이 180세 된 아버지 이삭과 재회하고, 아버지가 죽자 형 에서와 함께 장사하는 것으로 끝맺는다. 창세기 36장은 기본적으로 지금의 장면에서 사라지는 가족인 에서의 계보를 언급한다. 성경은 다시 야곱과 그의 선택된 자손의 이야기를 계속한다(37장). 여기서 얻을 교훈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많은 죄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뜻을 성취하실 수 있으시다. 그렇다면 그분의 백성이 그분의 말씀대로 순종할 경우에 어떤 결과가 일어날지 상상해 보라.
꿈꾸는 자
창세기 37장을 읽고 다음 질문들에 답하십시오.
요셉의 형들은 왜 요셉을 그토록 미워했습니까?
답:
요셉은 어떻게 함으로 그 상황을 더 악화시켰습니까?
답:
21~22절을 읽으십시오. 모든 형들 가운데 옳을 일을 행하려고 애쓴 사람은 르우벤 하나밖에 없었다는 사실에서 어떤 역설적인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까?
답:
25~28을 읽으십시오. 왜 그들은 요셉을 죽이지 않기로 결정했습니까?
답:
야곱의 삶을 살펴볼 때, 그의 지난날 어떤 행위와 실수 때문에 그에게 비극이 초래되었다고 생각합니까?
답:
이 이야기는 참으로 끔찍한 이야기지만, 이 가족의 배경을 고려해 볼 때, 그렇게 놀랄 일만은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초기부터 이 가족을 특징지은 것은 질투와 폭력과 기만이었다. 그리고 이 소년들은 참된 하나님을 섬기는 아버지, 심지어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계시들을 받았던 아버지에 의해 양육을 받았지만 자신들이 하나님을 알지는 못했고, 하나님을 참으로 섬기기 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필수적인 마음의 회심을 경험하지는 못했음을 보여준다.
교훈: 창세기 37장에 기록된 이 비극적인 사건은 질투와 기만과 폭력이 그 특징을 이루었던 야곱의 가족에게 있어서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가나안 족속과의 죄
창세기 38장을 읽으십시오. 이야기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이 이야기는 유다의 성품에 대해 무엇을 말해줍니까?
답:
요셉의 이야기 중에 창세기 38장의 사건이 끼어든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여호와께서는 요셉을 팔아넘긴 유다의 부도덕함과 팔려간 요셉의 도덕성을 대조하기 원하셨을 것이다. 아마도 더욱 중요한 것은, 창세기 38장이 우리에게 다음의 사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사실이다. “야곱의 아들들은 민족의 신성한 소명을 망각하므로 가나안의 죄악 중에 멸망당할 위험에 처해 있었다. 만일 하나님이 자비로써 개입하여 야곱의 모든 집안이 애굽으로 이주하도록 하지 않았다면, 그 선택받은 민족은 가나안 사람들의 관습의 부패시키는 영향에 굴복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38장은 이스라엘의 초기 역사의 필수적인 부분이다”(재림교 성경주석 1권, 470).
유다는 자신의 행동이 아무리 비열한 것이었을지라도, 이 모든 상황 가운데서 미약하나마 어떤 모습으로 자신의 도덕성을 보여주었습니까?(26절; 참조 창 37:26)
답:
유다는 자신의 행위가 발각된 후에 자신의 죄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요셉에 대한 음모에서처럼, 그는 자신의 수치스럽고 추악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다시 정정당당하고 진실한 모습을 나타냈다. 그의 솔직한 고백과 다말을 취급한 태도, 그리고 그리스도의 조상의 계보에서 차지하게 된 그의 특별한 위치(창 49:10) 등을 고려해 볼 때, 그의 편에서 철저한 회심이 있었음을 나타낸다. 유다는 형들보다 더 탁월한 품성을 소유함으로써 집안과 후손들을 이끌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서의 자격을 얻게 되었다(참고 창 49:3~4,8~10).
교훈: 창세기 38장에는 유다의 수치스런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는 자신의 추악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철저한 회심을 통해 새롭게 변화될 수 있었다.
애굽으로 팔려간 요셉(창 39장)
요셉을 태운 상고들의 행렬이 야곱의 장막 근처를 지나갔다. 아직 십대였던 요셉은 한 동안 “억제할 수 없는 슬픔과 두려움에 빠졌다”(부조와 선지자, 213). 그러나 요셉은 아버지로부터 들은 이야기,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의 이야기들을 기억하면서 여호와를 섬기고 하늘 왕국의 시민답게 행동하기로 결심하였다. 요셉이 애굽에 내려갈 때에 하나님의 거룩한 섭리, 곧 야곱의 가족을 구하고, 가나안 아모리 족속의 죄가 관영(貫盈)하기까지(창 15:13~16)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겪어야 했던 외세의 지배로부터의 구원을 위한 길을 예비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다. 이는 비록 다투는 환경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 신실하게 남기로 결심한 사람을 통해 그분께서 어떤 일을 행하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놀라운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요셉의 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요셉 자신에 대해서도 그가 어렸을 때부터 참으로 여호와께 신실했다는 기록이 없었지만, 그가 보디발의 집에서 여호와께 신실함을 나타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까?
답:
일부다처제의 일반적인 관습은 야곱의 자녀들에게 분명 저급한 정욕을 심어주었을 것이며, 형제들에 의해 나타난 관능적인 욕망도 요셉에게 좋은 감화를 끼쳤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끊임없는 간청 중에서도 의연함을 지켰다는 사실은 그의 믿음과 성품이 바르게 서 있었음을 입증해 준다.
요셉은 부당하게 종으로 팔려갔고, 억울하게 감옥에 던져졌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39장에는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셨다”는 기록이 세 번이나 나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요셉에게 그렇게도 좋지 않은 일들이 많이 일어났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그와 ‘함께’ 하셨다는 말입니까?
답:
교훈: 요셉은 비록 좋지 않은 환경에서 자라났고, 억울한 상황에 내던져졌으나 끝까지 하나님께 신실하기로 결심함으로써 그분과 동행하는 복을 누렸다.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창 40장)
떡 굽는 관원장과 술 맡은 관원장은 바로의 왕실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한 자들이었다(비교 느 1:11). 그들은 아마도 바로를 넘어뜨리려는 음모를 꾸몄다는 참소를 당하여 감옥에 던져졌고, 요셉의 보살핌 아래 있게 되었을 것이다.
6~8절에 요셉의 성품과 기질에 대해 어떤 추가적인 빛을 던져주고 있습니까?
답:
여기 감옥에서도 요셉은 다른 사람들을 도우려고 했을 뿐 아니라 그들의 꿈을 해석한 것에 대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으로 여호와를 증거하였다(참고 8절).
요셉은 감옥에서 ‘형통’하였고 하나님께 대하여도 믿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얼마나 부당하게 취급당하고 있는지를 민감하게 인식하고 있었으며 참으로 간절히 감옥에서 나가기를 원하고 있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답:
요셉은 물론 믿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석방을 확실히 하기 위해 인간적인 도움을 청하였다. 그는 미래를 알 수 없었고, 여호와의 목적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가 처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일을 다 실행해 보았다. 이것은 분명 인간적인 행동이며, 이해할 만한 일이다. 불행하게도 이 장은 그러한 시도가 효과가 없었음을 보여준다. 전직(前職)을 회복한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에 대해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술 맡은 관원장의 입장에서 공정하게 말하자면, 그가 어떻게 “왕이여, 저 감옥 속에 꿈 해몽을 잘하는 히브리인이 있는데, 풀어 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말할 수 있었겠는가? 창세기 41장에서 보게 되겠지만, 마침내 적절한 기회가 되었을 때에 그는 요셉에 대해 언급하였던 것이다. 그 때까지 요셉은 낙담 가운데서 괴로워하며 2-3년을 더 감옥에 갇혀 있어야 했다.
교훈: 요셉은 감옥에서도 신실하였고,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체험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감옥에서 나오기까지는 인내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했다.
요셉의 석방(창 41:1~40)
창세기 41장에서 우리는 전형적인 애굽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암소들은 몸을 반쯤 강에 담근 채 더위를 식히고 있다. 갈대밭이 등장한다(창 41:2). 그리고 요셉은 감옥에서 풀려나서 수염을 깎는다(애굽인들의 벽화에서 턱수염을 기른 사람들은 셈족임을 나타낸다). 애굽인들은 나일강을 생명의 원천으로 여겼기 때문에, 강에서 파리한 암소들이 올라왔다는 사실은 그들로 하여금 겁에 질리게 했을 것이 분명하다.
술 맡은 관원장은 결국 어떻게 요셉의 요청을 들어주었습니까?
답:
요셉은 그 모든 낙담 후에도 여전히 그 조상의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표현하고 있음을 주목하라. 16절에서 그는 자신이 꿈을 해석할 수 있었던 것이 오직 하나님의 능력이었음을 분명히 언급했다. 그 당시의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요셉이 바로 앞에서 자신을 더 훌륭하게 보이려고 이 모든 것의 공로를 자신에게 돌리기가 매우 쉬웠을 것이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요셉의 ‘행동하는 믿음’을 보게 된다.
요셉이 그 꿈을 해석한 후에 다른 어떤 방법으로 그의 하나님을 증거 하는 말을 하였습니까?
답:
요셉은 자신이 예언한 그 모든 사건들이 하나님께서 활동하시는 결과임을 깨달았다. 다시 말하면, 그는 이 모든 일이 일어나게 한 것은 하나님의 손길이었음을 보았다. 그의 말은 그가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신뢰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또한 그가 어떻게 감옥에서도 믿음을 지킬 수 있었는지를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요셉이 그 꿈을 해석한 후에 곡식을 저장하는 책임을 맡은 사람을 임명하는 일을 포함하여 왕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조언하였다. 아마도 요셉은 자신이 감옥에서 나올 수 있게 해 준 기회를 생각하면서 자기 자신을 의식했을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께 신실한 자들이 그분께서 주시는 기회를 놓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교훈: 요셉은 바로의 꿈을 해석한 다음, 그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그분의 이름을 높였다. 매사에 하나님을 높이는 자를 하나님께서 높이신다.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요셉은 감옥에서 나와 온 애굽 땅의 통치자로 높임을 받았다. 그 직위는 높고 명예로운 것이었으나 어려움과 위험도 따르는 직위였다.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 높은 지위에서 견디어 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폭풍이, 골짜기에 피어 있는 나직한 꽃은 해치지 않으나 산꼭대기에 있는 높직한 나무를 뿌리째 뽑는 것처럼, 비천한 생활 중에서는 성실을 유지하던 자들이 이 세상의 성공과 명예가 동반되는 유혹을 받고는 질질 끌려 내려가다 구덩이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요셉의 성품은 역경에서나 순경에서나 한 결 같이 시험을 견디어냈다. 그는 바로의 궁전에 있을 때나 감옥에 있을 때를 막론하고 한 결 같이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였다. 그는 여전히 친척들과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있는 이국땅의 나그네였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손길이 그의 발걸음을 인도하실 것을 전적으로 믿고 한 결 같이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성실하게 자기의 직무를 수행하였다”(부조와 선지자, 222).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고대 세계에서 꿈은 하나의 전조(前兆)로 간주되었고, 이번 주 교과에서도 여러 꿈과 그 해석이 하나님의 사역에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꿈을 통해 역사하신다고 생각합니까?
한 때 고통스런 경험을 겪었으나 나중에 되돌아보았을 때, 그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였음을 깨달은 적이 있습니까? 자신의 이야기를 교과시간에 나누어 봅시다.
어떤 이들은 인생의 쓰라린 경험을 통하여 더욱 강한 믿음을 갖게 되고, 또 어떤 이들은 그나마 가지고 있던 믿음을 상실해버리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이 둘의 차이점을 가져오는지 교과 시간에 함께 토의해 봅시다.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이나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