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82/ 광야에서 메추라기는 언제 얼마 동안 어떻게 내렸는가?
저쪽 곧 진영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지면 위 두 규빗쯤에 내리게 한지라 백성이 일어나 그날 종일 종야와 그 이튿날 종일토록 메추라기를 모으니 적게 모은 자도 열 호멜이라 그들이 자기들을 위하여 진영 사면에 펴두었더라 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그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불렀으니 욕심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민 11:31~34)
광야에서 공급된 기적적인 음식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표현이 만나와 메추라기'이다. 이 두 단어는 신령한 은혜를 강조하는 설교단과 저술에서 일종의 관용구처럼 함께 쓰인다. 그러나 성경에는 그 두 단어가 조합된 표현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성경 기자들은 하늘의 양식을 말할 때면 언제나 '만나'만을 언급한다. 심지어 예수께서 하늘 양식을 설명할 때에도 오직 '만나'만 언급하셨다(요 6:31~35). 왜 그럴까?
우선 메추라기에 대해 알아보자. 이 새는 분류학에 따르면 닭목(目)의 꿩과(科)에 속한다. 그러니 레위기 법에 의하면 정결한 새다. 몸길이가 약 18-20센티의 철새이다. 유럽과 아시아 서쪽에 주로 번식하며 봄과 가을에 두 번 시내 반도를 통과한다. 가을에 아프리카로 내려갔다가 봄이 되면 시리아 쪽으로 돌아온다. 사람들은 이 이동 기간에 식용으로 메추라기를 잡는다고 한다.
만나와 메추라기에 대한 첫 언급은 출애굽기 16장에 나온다. “애굽에서 나온 후 둘째 달 십오일"(출 16:1)에 신광야에 이른 이스라엘 회중들이 광야에서 굶어 죽겠다며 원망을 터트린다. 그들은 "우리가 애굽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3절)이라고 부르짖는다. 그러자 여호와께서는 "너희가 해 질 때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출 16:12) 리라고 대답하신다. 하나님의 응답에는 어떤 노함의 표시도 없다. 그저 백성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 주시려는 부모와 같은 모습이다. 말씀대로 그 저녁에 “메추라기가 와서 진에 덮"(13절)인다. 그것도 “전 국민을 먹일 수 있을 많은(부조, 294) 양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만나가 내린다. 그런데 자칫 이 부분에서 오해가 생길 수 있다. '저녁에는 고기를 아침에는 만나를 주신다는 말씀에 근거하여 그때부터 만나와 메추라기가 계속 공급되었다고 생각할 수가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만나는 이후 매일 내렸지만 메추라기는 그날 그 저녁에 한 번만 내렸다. 출애굽기 16장에는 오직 만나에 대해서만 어떻게 거두고 보관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상세한 지시가 주어져 있다.
그러면 그때 메추라기는 어떻게 와서 진에 덮였을까? 계절을 생각하면 짐작이 된다. 그때가 출애굽 제2월 15일이었다. 이스라엘의 월력은 출애굽을 기념하는 유월절로 시작되었다. 하나님은 유월절을 지시하시면서 "이달을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출 12:2)하라고 하셨다. 그러니 제2월 15일이란 유월절로부터 한 달이 지난 때이다. 계절상 4월 중순을 전후한 봄이다. 그때는 철새인 메추라기가 북쪽으로 이동하는 때이다. 하나님은 그때를 이용하신 것이다.
메추라기가 다시 언급되는 것은 약 1년이 지난 뒤다. 그다음 해 "둘째달 스무날에”(민 10:11) 백성들은 시내 광야를 떠나 구름이 머문 바란 광야를 향해 삼 일 길을 행한다. 그러니 그때도 계절은 봄이었다. 다시 메추라기가 이동하는 계절이 된 것이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먹는 문제로 원망을 터트린다. 이번에는 배고프다는 것이 아니라 "고기를 주어 먹게 하라”(민 11:4)는 것이었다.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민 11:6) 기력이 진하다는 것이었다. 이것만 보아도 그들이 첫 메추라기 선물 이후에 고기를 계속 먹지 않았음에 틀림없다.
이 원망과 불평에 하나님은 반응하신다. 그런데 그 반응이 심각하다. "냄새도 싫어하기까지 한 달 동안"(20절) 고기를 먹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이런 표현은 백성들의 원망에 하나님이 노하셨음을 나타낸다. 하나님은 바람을 이용하여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진영 곁 이쪽 저쪽 곧 진영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지면 위 두 규빗쯤에 내리게"(31절) 하셨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동풍을 하늘에서 일게 하시며 그의 권능으로 남풍을 인도하시고 먼지처럼 많은 고기를 비같이 내리시고 나는 새를 바다의 모래같이 내리셨"(시 78:26~28)다고 하였다. 한마디로 동남풍을 이용하시어 엄청난 양의 메추라기를 보내 주셨다는 것이다.
그러면 '비같이 내리시고 바다의 모래같이 주신 메추라기의 양이 얼마나 될까? 그것을 가늠하기 위해 우선 땅 위 1미터가 조금 덜 되는 "지면 위 두 규빗쯤 내리게 한지라는 표현부터 이해하자. 두 가지 견해가 있다. 하나는 두 규빗을 메추라기가 땅에 떨어져 쌓인 높이라고 보는 견해이다. “땅 위로 두 자쯤 쌓이게 하셨다"는 새번역 성경이 대표적이다. 그 경우의 문제는 쌓여진 메추라기의 제일 위층을 제외하고 그 아래는 다 죽은 사체가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먹을 것을 그런 방법으로 보내실 리가 없다. 그래서 다른 해석이 있다. 그것은 메추라기 떼가 잡히기 쉽도록 땅 위 그 정도 높이에서 날았다고 보는 것이다. “지상에서 약 1미터 높이로 날아다녔다”는 현대인의성경이 이 견해를 대표한다.
여하튼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날 종일 종야와 그 이튿날 종일토록 메추라기를 모으니 적게 모은 자도 열 호멜(32절)이었다. 호멜은 당나귀라는 뜻으로 당나귀 한 마리에 실을 수 있는 양을 나타낸다. 한 호멜은 약 230리터로 한 가마 반에 해당된다. 그러니 10호멜은 15가마이며, 말로 되면 120 말이다. 출애굽 군사 60만 가량을 생각하면 모아진 메추라기의 수는 엄청났을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것들을 거두어 “진영 사면에 펴 두었다"(32절). 나중에 먹으려고 고기를 말려서 저장한 것이다. 그러니 메추라기는 한 달 내내 매일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한 달 분량이 한 번에 주어진 것이다. "당장 필요되지 않은 것은 모두 말려서 저장하였기 때문에 그 공급은 약속된 대로 온 한 달 동안 먹기에 충분하였다"(부조, 382).
그러면 실제로 메추라기를 거둔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들 중에는 먹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거절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여하튼 고기를 달라고 불평하던 이들이 메추라기를 먹기 시작하였다. 그 순간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 “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33절)다. 그리고 "그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불렀" (34절)다. 기브롯 핫다아와란 '탐욕의 무덤'이란 뜻이다. 그러면 메추라기 고기를 먹은 이들은 모두 죽었는가? 그렇지는 않다. 죽임을 당한 이들은 틀림없이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 즉 아스프수프로서 불신과 탐욕을 선동한 무리들일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당신이 보내 주신 메추라기를 먹는 이들을 치셨는가? 어차피 죽이실 것이라면 왜 달라는 것을 주시는가? 사실, 그들은 신령한 떡이요 "기름 섞은 과자 맛”(8절) 같은 만나에 대해 불평하실 때에 이미 심판을 받아 마땅한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일단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셨다. 그렇게 하신 것은 하나님이 주신 만나를 멸시하고 다른 것을 구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교훈하기 위함이었다. 시편 기자는 "광야에서 욕심을 크게 내며 사막에서 하나님을 시험 하였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요구한 것을 그들에게 주셨을지라도 그들의 영혼은 쇠약하게 하셨도다" (시 106:14~15) 라고 하였다. 엘렌 G. 화잇도 이렇게 설명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고집스럽게 열망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최고의 유익이 되지 않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셨다. 백성들은 그들에게 이로운 것에 만족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의 반역적인 욕망이 충족되었으나 그들은 그 결과를 당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들은 마음대로 포식하였고 그들의 부절제는 곧 처벌당했다. …많은 무리가 맹렬한 열병으로 죽임을 당했고 동시에 그들 중에 가장 최가 많은 자들은 그들이 탐하던 음식을 입에 넣자마자 멸망을 당했다(부조, 382).
결국, 그들이 비축한 메추라기의 양은 한 달분이라도 정작 그것을 달라고 선동한 이들은 먹자마자 심판을 당하였다. 하나님은 이 사건 이후에 다시 메추라기를 주시지 않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도착하였을 때, 성경은 오직 '만나'가 멈추었다고만 말한다(수 5:12). 하나님께서 출애굽 첫 해에 주신 메추라기는 그들의 허기를 해결하기 위해 만나와 함께 주신 은혜의 선물이었다. 그러나 두 번째 해에 주신 것은 그들의 불신과 탐욕의 결과를 드러내시려 주신 것이었다. 메추라기를 요구한 결과는 결국 '탐욕의 무덤'이 되고 말았다. 이것이 성경에서 하늘의 양식을 말할 때 단 한 번도 메추라기를 언급하지 않고 오직 만나만 언급하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