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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5:2~1 - 간증 중의 간증 - 유기성 목사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로마서 5장 12절부터 21절까지의 말씀입니다.
“[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또 그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온 것과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게 되었습니다.
[13] 율법이 있기 전에도 죄가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가 죄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14] 그러나 아담 시대로부터 모세 시대에 이르기까지는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죽음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아담은 장차 오실 분의 모형이었습니다.
[15]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실 때에 생긴 일은, 아담 한 사람이 범죄 했을 때에 생긴 일과 같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죽었으나,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더욱더 넘쳐나게 되었습니다.
[16]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은 한 사람의 범죄의 결과와 같지 않습니다. 한 범죄에서는 심판이 뒤따라와서 유죄 판결이 내려졌습니다마는, 많은 범죄에서는 은혜가 뒤따라와서 무죄 선언이 내려졌습니다.
[17] 아담 한 사람의 범죄 때문에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왕노릇 하게 되었다면, 넘치는 은혜와 의의 선물을 받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더 확실합니다.
[18] 그러니 한 사람의 범죄 행위 때문에 모든 사람이 유죄판결을 받았는데, 이제는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 때문에 모든 사람이 의롭다는 인정을 받아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죄인으로 판정을 받았는데, 이제는 한 사람이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인으로 판정을 받을 것입니다.
[20] 율법은 범죄를 증가시키려고 끼여 들어온 것입니다. 그러나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치게 되었습니다.
[21] 그것은, 죄가 죽음으로 사람을 지배한 것과 같이, 은혜가 의를 통하여 사람을 지배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는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려는 것입니다.”(롬 5:12-21, 새번역)
우리는 참 많은 간증을 합니다. 저는 성도들이 삶에서 경험한 하나님을 간증하도록 계속 권해드립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간증거리가 없다는 답답함을 토로합니다.
목사님 저는 특별한 간증이 없어요. 그것은 정말 옳은 말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너무나 놀라운 간증이 있습니다.
간증 중에 간증입니다. 나 같은 죄인이 예수님을 믿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이 간증이 간증 중에 간증입니다.
이 간증이 너무 놀라운 간증인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고백하는 간증이라는 그런 간증이 어디 있겠어요
저 사람의 간증이 내 간증일 수 없는 거죠.
그런데 나 같은 죄인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 자녀가 되었다는 이 간증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가지고 있는 간증입니다.
또 하나 이보다 놀라운 간증은 없습니다.
이보다 놀라운 기적은 없습니다.
이보다 극적인 간증 없습니다. 나 같은 죄인이 예수 믿고 하나님 자녀가 된 것보다 그리고 또 이 간증처럼 영원한 간증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간증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끝입니다.
그런데 이 간증은 하나님 앞에 가서도 영원토록 간증하고 또 간증할 놀라운 간증입니다.
이런 엄청난 간증을 여기 계신 여러분 다 가지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 간증처럼 또 무시받는 간증 여러분 이 간증처럼 진부하게 여겨지는 간증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왜 그럴까요? 나 같은 죄인이 예수 믿고 하나님 자녀가 됐다는 이야기할 거라면 하지 마세요.
그게 뭐 간증이에요? 이런 형편이 되어 있는 것은 왜 그럴까요?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는 나 같은 죄인이라고 하는 이 고백에 진정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 같은 죄인이 무슨 뜻이죠? 나는 정말
정말 악한 자입니다. 나는 정말 나쁜 사람입니다.
나는 벌레만도 못합니다. 나는 쓰레기 같은 자입니다.
나는 말할 수 없는 죄인이고 지옥 갈 자입니다.
그런 내용이 담겨 있는 내용입니다. 나 같은 죄인이 그렇지만 실제로 정말 그렇게 여기는가가 문제인 겁니다.
나 같은 죄인이라고 정말 그렇게 여기는가 그렇지 않다는 증거가 뭐냐 하면 남 판단하고 남 정지하고 어떻게 저렇게 나쁜 사람이 있어 사람도 아니야 어떻게 저럴 수 있어 그렇게 사는 것이 바로 이 고백이 진정성이 없다는 뜻입니다.
정말 나 같은 죄인이라고라고 이렇게 고백이 되는 사람은 남의 이야기할 수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12절에서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라고 말씀을 했는데 이 말씀이 굉장히 충격적인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좁게는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야기입니다.
유대인들은 선민의식이 대단히 강했습니다.
하나님이 특별히 택한 백성 하나님이 자기들에게 율법을 주셨고 자기들은 율법대로 산다고 생각하면서 이방인들과 자기들은 질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유대인들도 똑같은 죄인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여러분 현대 교회에 이런 유대인 바리새인들이 있습니다.
지금도 교회 안에 그런 이들이 있습니다.
교양도 있고 또 나름대로 수준도 있고 또 경건하고 그 뭐 나쁘겠어요 그러나 자기가 그렇다고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다른 사람을 판단한다면
그 사람은 나 같은 죄인이라고 고백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우리 안에 무서운 죄성이 있다는 것을 깨달으셔야 돼요.
괴물이 들어있는 겁니다. 우리 안에 아담이 선악과 따먹었을 때 이 죄성이 우리 안에 들어왔는데 우리 생명 속에 박혀버렸습니다.
그래서 우리 속에 무서운 죄에 괴물이 들어앉아서 우리를 지배하고 있어요.
그래서 죽음이 온 겁니다. 우리에게 12절 말씀을 보십시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아담입니다.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또 그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온 것과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게 되었습니다.
여기 죄가 들어왔다고 그랬는데 단수를 썼습니다.
여러분 죄는 많잖아요. 거짓말도 죄고 도둑질도 죄고 간음도 죄고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죄는 그런 도둑질 가늠질 이런 것과 같은 구체적인 죄를 말하는 게 아니고
어떤 한 세력 인격적인 어떤 힘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로잡는 힘이 있다는 겁니다.
그 죄가 아담으로 인하여 사람들 속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우리 속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8장 34절에서 죄를 범한 자마다 죄의 종이라 이렇게 말씀을 한 겁니다.
여러분 죄 안 지어보려고 노력하신 분들은 동의하실 겁니다.
죄 안 지을 힘이 우리에게 없습니다.
죄 안 짓고 싶은 마음은 있어도 죄 안 지을 힘이 없습니다.
왜? 죄의 종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은
죄의 종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이 아담으로부터 죄가 자기에게 들어왔다는 사실에 대해서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죄성이 여러분 속에 들어와 있는 거 하나만큼은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태어나자마자 그렇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몰라서 죄가 죄인 줄 모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보면 내가 어떤 죄인인지 그대로 다 드러납니다.
13절 말씀에 율법이 있기 전에도 죄가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가 죄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자기가 죄인인 줄 모르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로마서 7장 7절에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여러분 마음속에 탐심이 계속 역사하죠 욕심이 여러분 속에 계속 역사하죠 그게 죄인 줄 몰랐을 때는
그냥 자연스러웠는데 말씀을 보니까 탐심이 죄라는 것을 깨닫고 그리고는 정말 기겁할 정도죠.
내가 이런 죄인이구나 왜? 탐심이 끊어지지 않는 겁니다.
로마서 1장 29절에서 31절에 보면 사형에 해당되는 죄 하나님이 그렇게 정하셨습니다.
반드시 죽으리라
그런 제목이 나오는데 깜짝 놀랍니다.
시기 분쟁 수근거리는 거 오만한 거 자랑하는 거 부모를 거역하는 거 우매한 거 신의가 없는 거 무정한 거 무자비한 거 이게 다 사형에 해당되는 죄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정하신 것을 몰랐을 때는
사람이 그렇게 하고도 사는 거지 이렇게 생각했지만 말씀을 보니까 내가 사형에 해당되는 죄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말씀이 아니면 자기가 지옥에 갈 죄인인 것을 모릅니다.
사사기 21장 25절에 보면 그때에 이스라엘의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자기 생각이 옳은 대로 행하는 게 무슨 죄입니까? 성경을 보니까 그게 죄인 거예요.
어째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왕 되심을 거부한 거니까 내 생각이 옳은 대로 행합니다.
그 말은 하나님이 왕 되심을 거부한 것이기 때문에 이야 이게 그렇게 큰 죄구나 그전에는 내가 옳은 대로 살았어요.
그런데 말씀을 보니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사는 것이 하나님의 왕 되심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게 얼마나 큰 죄예요 저는 솔직히 제가 말할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어.
저는 나름대로 괜찮게 살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역사로 예수님을 만나고 거듭난 다음에
제가 얼마나 큰 죄인인가를 깨달았습니다.
저는 드러내놓고 짓는 죄는 거의 짓지 않았습니다.
마음으로 짓는 죄는 말할 수 없는 죄를 짓고 살았어.
심지어 내가 목사를 할 자격이 없다 목사를 사표 내고 싶을 정도로 저의 죄에 대해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성령께서 그렇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나 같은 죄인이라고 고백하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의 나 같은 죄인이라는 고백에 진정성이 있습니까? 그걸 기도하셔야 됩니다.
하나님, 제가 어떤 죄인인가를 알게 해주세요.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어떤 죄가 있는지를 깨닫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여러분의 죄가 어떤 것인지 깨닫는 순간에 비로소 은혜의 문이 열리는 겁니다.
영생의 시작인 것입니다. 죄가 죄인 줄 모르는 것이 그는 이미 버림받은 상태에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저주 아래에 있는 것입니다.
20절 말씀에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치게 되었습니다.
왜 예수를 믿어도 나는 제대로 은혜를 경험하고 못하고 삽니까? 자기 죄를 모르고 사는 거예요.
나 같은 죄인이라는 진정한 고백이 없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또 하나 기도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그 고백에 감격을 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입
예수 믿는 성도들은 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고백을 스스럼없이 합니다.
문제는 감격이 없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겁 하나님도 안 믿어지고 하나님의 사랑도 안 믿어지는데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게 뭐 대단해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세상 사는 데 뭐 하나 도움이 됩니까? 이렇게 생각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자녀라 이런 고백이
뭐 감격이 없어요. 그건 간증거리도 아니에요.
기가 막힌 거죠. 계속 마음에 의심만 일어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는데 어떻게 내 죄가 사함 받아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는데 어떻게 모든 사람의 죄가 다 사함받느냐고 믿어지지 않습니다.
근데 여러분 복음을 주목해야 됩니다.
어떻게 아담으로 인하여 우리에게 죄가 들어왔고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에게 생명이 들어왔는지에 대하여 성경은 명확하게 말씀하고 아담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라고 했습니다.
14절에 아담은 장차 오실 분의 모형이었습니다.
아담 때문에 우리에게 죄가 들어왔습니다.
성경은 그 말씀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뭘 말씀하려는 거지? 예수님으로 인하여 우리에게 생명이 왔다는 사실을 말씀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15절부터 19절까지 아담으로 인한 타락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구원에 대하여 선명한 대조의 말씀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아담의 범죄로 죽음이 임하였으나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아담으로 인하여 유죄 판결이 내려졌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무죄 선언이 내려졌습니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죄인으로 판정받았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인으로 판정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에게 은혜의 선물이 넘쳐나게 되었습니다.
놀라운 복음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문제는 그런 은혜의 선물을 받고도 감격이 없다는 것을 머리로 아는 복음이 가슴으로 아는 복음이 되지 못하고 있는 거죠.
이것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지금 현재 처해 있는 실상입니다.
존 파이퍼 목사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초등학생 수준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지고
대학원급 수준의 죄와 싸우고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왜 예수를 믿고도 죄와 싸움에서 계속 무너지고 예수를 믿고도 기쁨과 감사와 간증이 없는 삶을 사는가?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것은 초등학생 수준이고
죄는 대학원급 수준이니 이게 싸움이 됩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지만 실제로는 예수님을 아는 것이 없고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에 대해서는 정말 너무나 아는 것이 초라하니 어떻게 은혜의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존 파이퍼는 계속 말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많이 아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던데요.
유명한 설교자나 신학 박사들 중에도 죄 짓는 사람들 많지 않습니까? 저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어째서 설교자나 신학 박사들이 간음죄도 짓고 파렴치한 일도 하는 것일까요? 그들이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매일 10시간을 시작 서적을 읽으면서 40년을 공부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되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을 알지 못할 수 있습니다.
지식으로만 하나님을 아는 것은 마귀가 하나님을 아는 방식입니다.
우리 신앙을 분별하는 중요한 기준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이냐 미움이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지만 마귀는 모든 것을 미워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많은데도 사람을 미워한다면
그가 아는 하나님은 마귀가 아는 하나님과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하나님을 알고 계십니까?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고 여러분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제는 많은 사람을 사랑하게 됐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참 하나님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많이 알고 있는데도 여전히 믿고 여전히 욕심이 나고 여전히 다투고 여전히 슬프고 여전히 낙심하고 여전히 우울하고 그렇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마귀가 아는 하나님 정도로만 알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놀라운 약속을 하고 있습니다.
17절에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게 되리라 생명 안에서 우리가 왕 노릇 하게 되리라 21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는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만들어 주시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현재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고도 여전히 죄의 종노릇하고 기쁨 없고 감사가 없고 사랑 없고 싸우고 욕심 내고 계속 죄 짓고 그리고 좌절하고 그리고 우울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아직 하나님이 계획하신 은혜의 자리에 온전히 이른 게 아닙니다.
결코 예수 믿는 게 여기서 여러분 끝난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그렇게 예수 믿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믿으셔도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그렇게 만드실 것에 대해서 믿으셔도 됩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에게 감격스럽게 나 같은 죄인이 예수를 믿고 하나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간증하게 만드십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간증할 수 있게 될 때가 되면 그러면 어떤 환경, 어떤 순간에도 방황 끝납니다. 낙심 끝납니다. 나 같은 죄인이 예수 믿고 하나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이 감격이 되면 그러면 여러분이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 문제가 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그런 고백을 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되지? 십자가를 바라보는 눈을 놓치지 않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눈을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여러분에게 그 놀라운 은혜의 역사를 허락해 주십니다.
여러분 어느 순간에 갑자기 환경도 사람도 달라진 게 없는데
여러분이 모든 게 감사하고 모든 사람이 사랑스러워지는 이런 경험을 해보신 적 없으십니까? 어느 순간에 갑자기 내 눈이 달라져 버렸습니다.
내 마음 생각이 달라져 버렸습니다. 이런 일을 경험해 보시지 않았나요? 미국 달라스에서 만났던 최병락 목사님 이야기입니다.
아들이 5살 때 일입니다. 목회하면서 아이들을 키우는 일이 굉장히 힘드셨답니다.
특히 아들이 아주 활발한 그런 활동력이 강해서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사모님도 지치고 목사님도 많이 지쳤습니다.
자녀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던 마음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아이들이 빨리 커서 나중에 아내와 둘이서 자유롭게 목회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었을 어느 날, 아이들을 데리고 신방을 갔는데, 방도 많고 거실도 3개나 되는 큰 집이었습니다.
목사님과 사모님은 1층에서 예배를 인도하고, 아이들은 2층 미디어 룸에서 게임을 하며 놀았습니다.
예배를 마쳤습니다.
이제 같이 모인 교인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는데, 갑자기 2층에서 무언가 꽝하고 터지는 소리가 났습.
얼마나 소리가 컸던지 깜짝 놀라서 뛰어 올라가 봤더니 연기가 자욱했습니다.
아이들은 큰 텔레비전 화면에서 게임용 장총으로 목표물을 맞히는 전자 게임을 하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그 집에는 아이들이 없었기 때문에 집 주인이 아무 생각 없이 사슴을 잡는 진짜 총을 장전한 채 그 옆에 세워두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아이들의 눈에는 게임용 총과 진짜 총이 똑같아 보였고, 4살 된 한 아이가 총을 집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장난감 총을 들고 있는 목사님의 5살 된 아들을 향하여 손들어 쏜다 하고 겨누었습니다.
장난기가 많은 아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쏴 쏴라고 했고, 그 아이는 잠시의 주저함도 없이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그 순간 집을 갈라놓을 듯한 총성이 들리고 이내 연기가 방 안에 자욱했습니다.
놀란 아이는 총을 바닥에 떨어뜨렸습니다.
4살짜리 아이라 다행히 힘이 약했기에 총을 쏜 반동으로 총구가 흔들렸고, 총알이 아들의 귀 옆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것도 약 20발에 가까운 산탄총이었는데 그중에 한 발도 맞지 않았습니다.
총성을 듣고 방에 도착했을 때 총을 쏜 아이는 놀라서 서 있었고 아들은 다리를 부들부들 떨면서 말했습니다.
아빠, 나 죽을 뻔 했어. 총알은 벽을 뚫고 나가 복도를 지나 건너방 벽까지 뚫고 그 방 안에 있는 가구에 2발 모두 박혀 있었습니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아들이 살아있다는 것이 기적이라고 느꼈습니다.
집에 도착해서 아들을 힘껏 안아주었습니다.
그리고 고백했습니다. 영광아, 살아있어서 고맙다.
그 순간 그때까지 가졌던 아들에 대한 모든 기대가 얼마나 욕심이었는가를 깨달았어.
그냥 존재하는 것 자체가 감사인 것을.
그날 아내는 은행에 있는 전 재산을 찾아와서 감사권 봉투에 넣고 이렇게 썼습니다.
하나님 하연이와 영광이가 살아있는 것만으로 감사합니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이 나에게 뭔가 특별한 새로운 은혜를 주시기를 기다립니다.
그러나 사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새로운 은혜를 더 주실 것도 없습니다.
뭘 더 주실 게 있습니까? 십자가면 충분하죠.
십자가보다 뭘 더한 은혜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미 우리는 말할 수 없는 은혜, 더 필요하지도 않는 완전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눈 뜨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은혜를 은혜로 깨닫는 눈이 뜨이는 것입니다.
영국의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가 좌절에 빠졌을 때 요한복음 15장 15절 말씀 나는 포도나무에 너희는 가지니 이 말씀에 은혜를 받고 그가 일어섰습니다.
포도나무 가지는 영양분을 끌어올리려고 애쓸 필요도 없고 꽃을 피우려고 열매를 맺으려고 힘쓸 필요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믿어보려고 애쓸 것이 아니구나.
제대로 사역하려고 몸부림칠 필요가 없구나 오직 원줄기인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지지 않고 있으면 저절로 열매가 맺히게 되는 것이구나 이제는 진정 주님께 다 맡기고 주님만 의지하리라 주님께 감사만 하고 모든 이들을 사랑만 하리라.
이것은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님이 모르던 내용이 아닙니다.
이미 잘 알던 말씀이지만 그 말씀을 그날 결론 삼은 겁니다.
주님만 바라보는 눈이 뜨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간적으로 노력하고 애쓰던 것을 다 내려놓았습니다.
완전히 주님께 맡겼습니다.
그 후에 그는 주님의 놀라운 능력으로 많은 열매를 거두었습니다.
그가 영국 케직 총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저는 패배를 당했고 그래서 승리를 간구했으나 승리는 도무지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저는 믿었습니다. 그랬더니 승리가 왔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이 도움이 필요한 것은
더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니고 이제는 받은 은혜에 눈이 뜨이는 것이 필요한 것입 어느 성도님이 한 사람을 전도를 해서 그를 복음을 전하고 말씀으로 양육하여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세례받는 그 새 가족에게 물었습니다.
교회에 와서 무엇을 배웠습니까? 그런 곰곰히 생각하다가 대답했습니다.
눈물을 배웠습니다.
이보다 더 정확한 대답이 있을까요? 예수를 믿고 당신은 뭘 배웠습니까? 눈물을 배웠습니다.
회개의 눈물 기쁨의 눈물 구원의 눈물 감격의 눈물 기쁨과 치유 생명의 눈물이 예수님 안에 다 있습니다.
안식년 때 미국 달라스에서 40일 이상을 지냈습니다.
그때 제가 묵었던 집 바로 옆이 교회였습니다.
얼마나 넓은 공간에 교회가 있는지 부러웠습니다.
주차장도 넓은데 더 넓은 잔디밭이 있었습니다.
그곳에 십자가 세계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 십자가 뒤편으로 아주 자그마한 연못이 또 있었습니다.
그 연못에서 십자가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갈릴리 호수와 십자가 골고다 동산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으로 자주 갔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저에게 분명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십자가 앞에 더 머물라 이것이 저에게 주님이 주시는 안식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에게도 동일한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십자가 앞에 더 머물러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너무 분주하게 사느라 십자가를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주 예수님을 바라보고 생각할 겨를이 없이 삽니다.
그래서 우리는 은혜를 모르는 것입니다.
다음 주일이면 종료 주일,
그리고 고난 주간, 그리고 부활주일로 이어집니다.
이 두 주간 여러분 정말 십자가를 묵상해 보십시오.
계속해서 할렐루야 찬양을 들으십시오.
주 예수님만 바라봐 보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성령님께서 나 같은 죄인이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가슴 뜨거운 노래요, 감격스러운 고백이 되게 해 주십니다.
은혜의 눈이 뜨이는 거죠 그리고 우리 인생은 바뀝니다.
나에게 이보다 더 큰 간증은 없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 우리 같이 기도하십시다.
정말 하나님 간증이 간증이 되게 해주소서.
나 같은 죄인이 예수를 믿어 하나님 자녀가 되었다는 너무나 잘 아는 이 간증이 이제 진짜 간증이 되게 해주소서.
주님, 십자가의 은혜를 바라보는 눈이 더욱 열리게 해주소서.
머리로 아는 지식이 가슴으로 내려오게 해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