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을 단상
이 용 기 명예교수(생명응용과학대학 식품경제외식학과)
9월의 마지막 주. 가로수의 초록이 조금씩 바래지고 근처 중학교 운동장 나무들도 가을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 산보 길에 스치는 새벽공기가 제법 차다. 힌남노 초강력 태풍으로 떠들썩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여름은 어느새 저만치 가고 있다.
돌아보니 퇴임한 지 1년이 지났다. 딱히 내세울 만한 기억은 없어도 그럭저럭 심심찮게 보냈다. 제도권의 규율에서 벗어나서인지 무엇보다 마음이 편했다. 많이들 하는 학교 강의는 맡지 않았다. 학과장의 요청도 거절했다. 학교생활 하는 동안 오래 전부터 굳어진 생각이었다. 강의 부담과 잡다한 업무들로부터 자유롭고, 관계 속에서 부대낄 일도 없으니 좋았다. 백수가 되어 먹고 노는데도 월급은 연금이란 이름으로 꼬박꼬박 A통장으로 들어왔다. 소득은 전보다 줄었지만 두 사람 사는 데 부족함이 없으니 ‘먹고사니즘’을 걱정할 일도 없다.
생활은 단순해졌다. 그렇다고 무료하지는 않다. 일어나 동네 한 바퀴 아침 산책이 끝나면 신문을 읽고 오전에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오후에는 길게 펼쳐진 금호강 강줄기를 바라보며 운동을 즐기고 건강을 챙긴다. 가끔 실내 골프연습장에 나가기도 하지만 재주가 없어 그런지 나이가 들어서인지 힘만 들고 별 재미는 없다. 20매 쿠폰을 기한 내에 다 쓰지도 못해 몇 장은 버리고 말았다. 일 주에 한 번은 학교 도서관에 나가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온다. 백수의 빈 공간을 채워주는 보상 기제가 되어 좋다. 또 가끔은 서울 모임 나들이를 하며 기분전환을 한다. 그러는 사이 잊고 싶은 기억들이 하나 둘 지워지면서 상했던 마음도 제자리를 찾아갔다. 자유, 내 앞에는 자유라는 큰 선물이 놓여 있었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 아내의 투정과 잔소리가 거슬리긴 해도 맘껏 자유를 누리는 지금의 삶이 좋다.
대구로 이사와 산 지 28년이 지났다. 인생의 4할을 여기서 살았으니 제2의 고향이 되었다. 불혹이 가까운 나이가 되어, 20대 중반 일찍 시작한 공직을 접고 학문의 길로 인생 방향을 전환했다. 낯선 땅 대구에서 처음 영남대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가끔은 잘한 결정이었는지 회의와 후회도 있었지만, 퇴임하고 나서는 교수직이 좋다는 걸 실감하게 되었다. 정부 고위직을 역임하고 나온 고시 동기들의 삶도 갓끈 떨어지고 나니 장삼이사들의 평범한 일상과 같아졌다. 하지만 본직이 공부하는 나의 삶은 퇴직 후에도 하던 일 그대로 할 수 있으니 축복 아닌가. 무보수이긴 해도 평생 일거리가 보장된 직업인데 이보다 좋을 순 없다.
100세 시대라고 한다. 나도 그 장수의 행운을 잡을 수 있다면 앞으로 30년 이상의 긴 시간이 남았다. 대학에서 보낸 27년보다 훨씬 긴 기간이다. 100년을 살아본 어느 노철학자는 인생의 황금기가 60∼75세라고 했다. 동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분의 말을 빌리면 나는 인생 황금기의 중간쯤을 지나고 있는 것이다. 이 좋은 황금기와 앞으로 남은 긴 인생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오르긴 하지만 명확히 구체화하기는 쉽지 않다. 중심적인 삶은 30년 가까이 해왔던 대로 읽고, 생각하고, 쓰는 일들을 편안한 마음으로 계속해 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 교수직의 큰 장점이다. 그렇게 보면 나는 퇴임은 했지만 정년을 맞지는 않은 셈이다. 명예교수 직함은 그러라고 주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 자신뿐 아니라 주변을 위한 삶도 살아야 한다. 그 동안 가족, 이웃, 사회, 국가로부터 많은 걸 받으며 살아왔다. 이제 남은 기간 돌려주고 베풀며 살아야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쌓아온 지적 자산과 경험들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삶을 살 수 있으면 좋겠다.
가만 생각해 보니 종심(從心)의 나이가 코앞이다. 옛말에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던데 내 나이 벌써 이렇게 되었나. 화살과 같은 세월이라고 하니 인정할 수밖에 없다. 종심의 경지는 고사하고 이 나이에 얼마나 성장하고 성숙해졌나 생각하면 불현듯 두려워지기도 한다. 성장하는 한 늙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더더욱 읽고, 생각하고, 쓰는 일을 세상 떠날 때까지 계속해야 할 것 같다.
며칠 지나면 10월이다. 하늘은 더 높이 푸르르고 학교 캠퍼스도 붉게 물들기 시작할 것이다. 가을의 풍경은 어디나 그렇듯 아름답다. 오랜 기간 머물며 거닐던 캠퍼스 뒤편 소나무 숲길은 고즈넉하고 좋았다. 생각을 정리하고 삶의 위안을 받던 그 숲길도 지금쯤 가을 채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작년 가을엔 가보지 못했다. 떠난 자의 자존심에서였을까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올해는 은행나무 단풍이 절정에 이를 때쯤 다시 가봐야겠다. 아니 낙엽이 다 지고 앙상한 나목들이 찬 바람에 흔들리는 늦가을, 초겨울이 나을지 모르겠다. 떨어진 솔잎들이 수북히 쌓여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다시 그 길을 걸으며 조용히 사색의 시간을 가져보리라. 그리고 3기 인생의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겠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영광의 자리에서 죽음과 자연의 섭리를 얘기한 뜻을, 해 아래 헛되지 않은 것이 없다고 전도서를 남긴 솔로몬의 지혜를 생각해 보아야겠다. 가을이 가고 새봄이 오면 낙엽이 떨어져 나간 자리에는 다시 새 생명의 싹이 움틀 것이다. 그리고 모든 생명체의 유한성과 죽어야 사는 진리를 깨우쳐 줄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잡다한 생각들을 두서없이 늘어놓았다. 아침저녁 바람은 차가워지고 창밖에 하늘은 높아만 간다. 김현승 시인의 ‘가을의 기도’를 옮기면서 글을 마쳐야겠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