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편 119편 71절)
1998년 우리나라가 IMF 관리체계에 놓였을 때가 한국 전쟁을 겪은 이래 가장 어려웠던 시절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IMF가 시작되자 매일 각 신문의 지면을 채우는 기사는 우울한 내용들 뿐이었다. 이 체계를 극복하는 데 빠른 나라는 10년, 오래 가는 나라는 3~40년이 걸린다는 예측이 여기저기에 나오면서 나라와 온 국민이 우울하고 고통스러웠던 시절이었다.
나는 IMF가 시작되기 10개월 전부터 건축 사업을 주로 하는 영빈물산㈜이란 회사를 설립하여 새롭게 사업을 시작하였다. 당시 수원 영통 신도시에 상가를, 강남구 역삼동에는 오피스 빌딩을 지으려고 사업을 벌이던 참이었다. IMF가 시작되자 사업하던 사람들은 모두 사업을 축소하고 직원을 퇴직시켰다. 이 같은 경제적 상황에서 나도 예외일 순 없어 사업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원래 상가 분양은 건축허가를 얻고 지하 굴착 공사가 시작될 때 분양이 끝나야 사업이 원활히 돌아가는 법인데 분양은 상상도 못하고 공사도 중지해야 할 판이었다. 주변에서는 이구동성으로 사업을 중지하라고 권하였다. 나는 매일 새벽기도회에 나가면서 이 전대미문의 불황을 이겨나갈 수 있도록 기도하였다. 기도 중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어려울 때가 있으면 곧 잘 될 때가 있다”는 것이었다. 사람이 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고, 안 될 때가 있으면 잘 될 때가 있다는 전도서의 말씀처럼 말이다. 이렇게 믿음의 확신이 오자 공사를 지속하면서 잘될 때를 대비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공사는 최대한 천천히 하면서 경기가 살아날 때를 기다렸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구청으로부터 중과세 예고 통지서가 날아온 것이다. 서울 지역에서는 법인체가 대지를 구입하고 1년 이내에 건축을 하지 않으면 등록세, 취득세의 6.5배에 달하는 중과세를 부과하게 되어 있었다. 이 제도는 이미 불합리한 제도라 하여 폐지된 법이지만 우리의 경우 폐지 30일 전에 해당된다 하여 적용을 받은 것이다. 건축허가가 늦어져 건축 착공이 1년이 넘도록 지연되었으나 어쨌든 중과세에 해당한다는 통지였다. 법이란 때로 억울한 상황을 만들 때가 있다. 허가권자인 구청에서 건물의 높이 문제로 미관심의를 몇 번 거치면서 허가를 늦게 내주고서는 그 책임을 기업에게 전가하는 꼴이 된 것이었다. 이 통지서를 받고 나는 지연된 사유를 알리고 지연의 근본 원인이 우리 회사가 아니고 관청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였다. 하지만 해당 부서의 반응은 냉담하였다. 관청은 항상 증거 위주로 소명을 해야 받아들였기 때문에 우리 회사의 설득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문제로 인해 사업상의 손해도 컸고 또한 나를 믿고 사업에 투자한 주주들에게도 면목이 서지 않게 되어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때 나는 28년 전 석관동에서 경험했던 일을 거울삼아 구청과 접촉에 나섰다. 그 당시 석관동은 개발지역으로서 자고 나면 새로운 건물이 들어설 정도로 건축 붐이 일어날 때였다. 나는 그곳에 대지를 매입하여 대중목욕탕을 짓기로 하고 건축허가를 얻어 목욕탕을 준공하였다. 그런데 갈수기가 겹치면서 구청으로부터 수돗물 공급을 할 수 없다는 통보가 왔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목욕탕을 지어놓고 물이 없어서 건물 자체가 쓸모가 없게 될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애초부터 구청에서 허가를 내주지 않았으면 모르지만 허가를 내주고서 물 공급을 못한다는 처사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관청에서는 법규만 따질 뿐 일반 시민인 내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수도사업소를 찾아가 의논하고 협의를 하였으나 허사였다. 하지만 끈질기게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백방으로 뛰는 내 모습이 안되었는지 수도사업소의 한 직원이 서울 시청에 진정서와 질의서를 내보라고 권하였다. 나는 서울 시장을 상대로 진정서와 질의서를 제출하고 회신을 기다렸다. 그로부터 얼마 후 시에서는 나의 질의가 당연하고 적법한 절차에 의해 허가를 얻었으니 서울 시민으로서 수돗물을 공급받을 자격과 권리가 있다는 회신을 보내왔다.
이때의 생각이 나면서 건축허가와 착공이 지연된 근본적인 원인은 구청의 행정 지연이라는 관련서류와 함께 행정자치부에 질의서를 제출하였다. 그리고 중과세를 낼 의무가 없어졌다는 회신을 받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 후 IMF 상황에서 경기가 호전될 때까지 서울에서 빌딩공사를 하다 보니 건물도 꼼꼼히 지을 수 있었고 차분히 짓다 보니 이웃과의 민원도 없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3년 후 경기는 호전되어 다시 시작한 사업에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사업을 하다 보면 누구나 어려움을 겪게 되고 어려움을 겪다 보면 좌절하게 된다. 하지만 하나님께 매달리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면 길을 찾게 되고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 이 사건들은 대단한 일은 아닐지 모르나 후손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 교훈이 될까 하여 기록해 보았다.
IMF도 마찬가지다. IMF는 우리 민족이 겪은 커다란 어려움 중의 하나였지만 국민들에게 큰 교훈을 주었다. IMF는 하나님께서 강대국 속에 둘러싸여 있는 지정학적으로 불리한 위치를 가진 우리 민족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훈련시키기 위해 사용하신 연단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 민족은 일치 단결하여 전 국민이 금 모으기 운동까지 하며 힘을 모아 노력하고 기도하면서 이 어려움을 최단시일에 이겨내었다. 어려움은 누가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고 바로 내가 노력하고 연구하고 기도하며 해결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때 얻은 교훈이 인내와 노력, “나도 할 수 있다”이다.